히브리어 알파벳 상형문자 중에서 알파벳 싸멕은 버팀대 물고기 뼈 상형문자입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סמך(싸멕)
סמך(사마크 5564) 지지대, 버티다
싸멕은 지주, 버팀대에서 나온 상형문자이다. 뜻은 진리를 세우고 지탱하는 역할로 원래 의미는 받침대, 골조, 하부구조, 물고기 뼈이다. ‘측량하다, 평가하다는 의미의 ‘세아’로 쓰이며 분별하는 안목을 가진 의미도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피조물의 사고에 새겨 점점 견고한 기둥으로 되어 가는 것을 나타낸다.
‘싸멕’은 창조주의 말씀으로 규정된 것을 사람의 삶에 적용하도록 측정하는 것을 말하며 흔들리고 변하기 쉬운 정신세계에 밑받침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싸멕’은 실존의 목표를 측정하여 삶 속에서 일하며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목적없이 방황하며 시끄럽던 정신이 진리로 계몽되기 위해서는 버팀대가 필요하다. 기둥이 약하면 집이 무너지는 것처럼 믿음의 집을 지을 때에도 기둥은 중요하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 두 기둥을 세워서 ‘보아스’와 ‘야긴’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집도 진리가 튼튼하게 세워져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으로 확실하게 세워져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싸멕’은 여러 곳에서 원과 주기의 개념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그것을 계절의 바뀜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을 에워싸고 있는 신성의 차원에서부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순환하는 영혼의 차원까지, 만물이 이 세상에서 변천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모든 만물은 순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 ‘눈’에 관해 배웠듯이, ‘눈’은 아주 ‘충성된 종’으로 글자 ‘눈’과 ‘싸멕’은 연결된다. 원은 위든 아래든 어디에도 위치하지 않기 때문에, 원 위의 모든 점은 어떤 의미에서 동일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개의 점이 원에서 무의미하므로, 랍비들은 ‘싸멕’의 수인 육십(60)을 사용해서 무효화라는 개념을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평등(equality)과 지탱(support)이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랍비들은 누군가 앞으로 어떤 것이 무효화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는 육십(60)이라는 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글자 ‘싸멕’에 대한 최고의 묵상은 하나님의 도우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느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인생을 마치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무가치한지 느끼는 대신에 하나님이 돌보시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위대한 도우심을 느끼는 것이다.
‘소돔’ סדום (쎄돔 5467)
창13: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질 때에 롯은 소돔을 선택하여 갔다.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소돔’ סדום(쎄돔 5467) 소돔이라는 뜻이며 타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돔 땅은 사람들이 악함으로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하셨다. ‘쎄돔’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버팀목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고 진리의 문을 통과하지 않은 자들은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죄 씻음받지 못함으로 죽을 운명에 처해졌다는 의미이다.
소돔과 같은 장소는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정욕에 빠져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원죄의 죄를 십자가 보혈로 씻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롯이 갔던 소돔과는 반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도 있다. 벧엘이다. 이곳에서 야곱은 꿈을 꾸었다.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이 꿈에서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닥다리가 하늘과 연결이 되었는데 그 꼭대기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사닥다리’ סולם(술람 5551) 사닥다리, 이며 이 단어는 סלל(쌀랄 5549) 칭찬하다, 들어 올리다, 수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갈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들어 올려지셔서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시켜 주셨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게 하신 분이다. ‘술람’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서 버팀목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교육하셔서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통제하시고 자신이 희생하심으로 운명을 전환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의미이다.
사닥다리와 같으신 예수님의 헌신이 십자가에서 없었다면 나는 절대 영혼이 살아날 수가 없다. 진리의 복음 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나의 사이에 있는 죄악의 담을 허물어 주시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든지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면 중보자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구할 때에 응답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