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2장 설교 말씀] 바벨론 심판의 하나님 응답(합2:1-20)

하박국 2장 설교 말씀은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를 심판한 후에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겠다고 하박국에게 응답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고 그들도 교만하여 심판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지만 교만한 백성은 심판하신다.

Ⅰ. 하나님의 대답이 주어짐 2:1-4

(1) 하박국 선지자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 있다(1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내가 포위된 도성의 성벽 위에 파숫군으로 서리라. 나는 위와 주위와 안을 살피며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혹은 “그가 내 속에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볼 것이라.” 즉 “내 속에 있는 예언의 영이 내 불평에 대한 답변으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는지를 볼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양심을 통해, 즉 “이것이 그 길이니 이 안에서 행하라”고 우리에게 속삭이심으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기도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는 세상에서 물러나와 세상 밖에 서서 주의를 기울여 생각을 고정시키고 성경을 연구하며 이전의 경험을 돌이켜 보고 경험자에게 자문을 구하며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한다. 즉 그는 ‘성루’에 서야 한다.

1)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에 대해 의심함으로 혼란에 빠지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현명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될 때, 우리는 혹 유혹을 잠잠케 하고 어려움들을 해결하게 해주는 것을 찾을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성루에 설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성소 가운데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러한 일들을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힘써야 한다.

2) 하나님 앞에 우리의 탄원과 간구를 내오 놓으며 기도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과 그의 영, 그리고 그의 섭리를 통해서 주시는 응답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2) 하박국 선지자는 갈대아인들의 번영에 대해서 불평하셨었다. 따라서 이제 그 일에 대해 그의 마음을 평온케 하고자 하나님께서는, 이에 앞서 이사야에게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과 더불어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케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 그들의 몰락과 파멸을 보여 주고 계시다.

1) 하박국 선지자는 그 ‘묵시를 기록해야’ 했다(2절). 우리는 묵시들이 기록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서에 있는 것 뿐 아니라 그의 선지서들에 있는 위대한 일들을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도록 해주신 것에 대하여 찬양을 드리게 된다. 하박국 선지자는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겨야’ 했다. 즉 그것을 읽기 쉽게 큰 글자로 기록해야 한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2) 백성들은 그 묵시의 성취를 기다려야 했다(3절).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너희는 이제 갈대아인들의 권세가 깨뜨려짐으로 구원의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정해져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일에 대해 정하신 때를 가지시며 그때가 되면 반드시 그 일을 행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설교말씀 예수님 속죄사역의 완전성

3) 이 묵시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참 모습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의 믿음과 인내에 대한 시험이 될 것이다(4절). 거만하게 이 묵시를 멸시할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손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약속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들은 그 약속을 가치있게 여길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맡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어려운 시험의 때일지라도 하나님과 자신들의 의무를 유념할 것이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가운데, 즉 그와 교제하는 가운데 안온히 살 것이다.

Ⅱ. 하나님의 심판〔1〕 2:5-14

하박국 선지자는 ‘묵시를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어떤 이들은 그 묵시의 내용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느부갓네살의 운명이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강퍅하게 대한 모든 거만하고 압제적인 권세자들의 운명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1. 이 원수에 대해 내려진 비난(5)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올가미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사로잡아간 자가 바로 이러한 것들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1) 그는 육욕에 빠진 자로 쾌락만을 좇는다. 그는 술을 즐기며. 술취함은 수많은 죄악의 원인이 된다.

(2) 그는 교만하고 거만하다. 그는…교만하며. 그리고 그의 교만은 그의 파멸의 확실한 조짐이 된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비록 자신은 짐승처럼 되지만 왕처럼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자기를 수치스럽게 한 일로 오히려 자신을 자랑한다(사 28:1).

(3) 그는 부에 대해 탐욕스럽고 게걸스럽다. 이것은 그의 교만의 결과이다. 갈대아 제국은 세계적인 제국을 꾀했다. 그는…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즉 그는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그의 야심은 그를 끝까지 괴롭힌다. 아무리 궁전같은 집일지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게는 감옥과 같다. 그는…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즉 그것은 매일같이 시체를 받으면서도 “달라 달라”고 부르짖는 무덤과 같다.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하여금 만족 할 줄 모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당하신 처사이다.

2. 그에게 내려진 판결(6-14)

그 무리가 다 속됨으로 그를 평론하며(6절).

(1) 교만이 그의 죄였기에 불명예와 치욕이 그의 형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을 것이다.

(2) 그가 그의 이웃들을 모욕했기에 그가 모욕한 바로 그 사람들이 그를 치욕스럽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 무리가 다…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6절). “이재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와 같이 그는 조롱받게 될 것이다. 자기 이웃을 침해함으로 그 소유를 모으는 자에게는 저주가 따른다(6-8절). 그는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였다. 부는 단지 ‘볼모’에 불과하다. 금과 은이란 단지 광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백성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는다.

“주께서는 열방을 괴롭게 하는 이 거만한 압제자를 언제까지 참으실 것이니이까?” 혹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 즉 그가 이처럼 부정하게 축제한 것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보라.”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강포로 얻은 것은 다시 강포로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갈대아인들이 열방을 노략한 것처럼 메대와 바사가 갈대아인들을 노략할 것이다(7,8절). “너를 물고 괴롭게 할 자들이 있을 것이라. 즉 잠자는 것처럼 보였던 자들이 깨어 일어나 너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 그때에 ‘홀연히’ 일어날 것이라. 보응의 법칙에 따라,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듯이’ 너도 노략을 당할 것이라(8절).”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탐욕으로 인해 더욱 더 높아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따른다(9-11절).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정당한 이익은 하나님의 추곡에 의한 것으로 가정에 평안이 될 수 있으나(‘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사기와 불의로 얻은 것은 부정한 것으로 가정에 빈궁과 파멸만 가져다 줄 것이다.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죄악으로 일으킨 재산은 가정의 수치가 될 것이다.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즉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만일 죄인이, 자기가 속인 것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무죄를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게 될 것이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11절).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있을진저(12절). 느부갓네살이 그와 같이 행하였다(단 4;30).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은 것이 아니냐.’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압제한 그의 백성들의 피와 그가 침략한 이웃 나라들의 피로 건축된 것이었다. 크게 수고하고 막대한 경비를 들여 그 성읍을 방비하려고 했던 갈대아인들의 수치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탐욕의 권세에 매여 지내는 자보다 더 괴로운 자는 세상에 없다. 그것으로 인해 받는 보수는 지극히 보잘것없다. 왜냐하면 결국 그들은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로 그것은 헛되 것보다 더 나쁜 것이며 영혼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Ⅲ. 하나님의 심판〔2〕 2:15-20

앞에 나온 항목들은 여기에 나오는 저주들의 근거가 되는 것들로 서로가 매우 유사한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 언급되어 있는 두 개의 항목은 서로가 다른 성격의 것들로, 일반적인 의미로는 그것들에 해당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이며 특별한 의미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로잡아 간 바벨론 군주들에게 대한 저주이다.

(1) 술취함을 조장한 자가 여기서 정죄받고 있다. 벨사살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귀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며(단 5:1) 그들로 축배하도록 강요했던 바로 그 날 밤에 그에게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에스더 1:8에서 볼 수 있듯이) 바사의 후대 군주들은 바벨론의 열왕에게서 축배를 강요하고 백성들로 술취하게 하는 이르는 불행한 결과들을 보았다. 그러나 본문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건, 이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분명하고도 두려운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 본문이 고발하는 죄인은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자이다(15절). 취하게 할 목적으로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그로 하여금 자신을 노출케 하고 어리석은 말을 하게 하며 비밀을 드러내게 하는 행위는 가증한 악행이다. 그런 죄를 범하는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거룩한 율법을 대적하는 것이며 지옥에 있는 마귀를 위하는 것이고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을 원수로 만드는 것이다.

2) 여기에 그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그에게 저주가 있게 되며 그 죄에 상당한 형벌이 있게 된다(15,16절).

① 그는 술취하게 하는 잔을 이웃의 손에 쥐어 주고 있는가?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즉 예레미야 25:15,16,18,26,27에 예언된 대로 결국에는 그 잔이 바벨론 왕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 짧은 설교문 이단과 이단 사상의 경계 말씀

② 그는 그 이웃으로 수치를 당케 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가? 그 자신이 멸시의 짐을 지게 될 것이다. 네가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는 떨림의 잔을 마실 것이며 겁냄으로 스스로 자신을 수치스럽게 할 것이니, 그것은 마치 ‘하체를 드러내는’ 것과 같으리라.” 대저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두렵게 하여 잔해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17절). 즉 “너는 레바논에 있는 맹수 이상으로 참혹하게 사냥될 것이라.”

(2) 우상 숭배를 조장한 자가 정죄받고 있다. 벨사살은 패역하게도 그의 우상들을 찬양하였다. 예레미야는 갈대아인들이 ‘우상에 미쳤다’고 기록하고 있었다(렘 50:38). 그들은 ‘새긴 우상, 부어 만든 우상’등 여러 가지의 우상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놀라울 정도로 자기의 일을 잘 수행하였다. 즉 우상의 형태를 잘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들에 ‘금과 은을 입혀’ 그들의 신으로 삼았으며 그것들을 의지하였고 그것들에게 기도하였다. 나무더러 깨라 하며.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해 깨라”고 하였다.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였다.

그들은 우상들에게서 신탁을 구하였으며 그것들에게 지시 받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어리석은 것임이 드러났다. 그 우상들은 감각과 이성에 있어서 전적으로 헛된 것이었다. 그리고 말못하고 생명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숨만 쉬고 움직이기만 하는 가장 작은 벌레일지라도 그것들보다 훨씬 더 나았다. 그것들은 그 숭배하는 자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 줄 수 없었다(18절). 새긴 우상은…무엇이 유익하겠느냐. 그것들은 단지 그 숭배하는 자들로 심한 망상 가운데 빠지게 할 뿐이다.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육체를 가진 유한하고 가시적이고 의존적인 자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시고 불가시적이고 자존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은 우상 숭배자들이 이와 같이 스스로 수치를 당할 때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20절).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다'(신 32:31). “그들의 반석은 말못하는 우상들이나 우리의 반석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스스로 계신 여호와로 그들의 것처럼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었던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의 격노와 악의는 미치지 못하며 오직 그의 백성들의 믿음과 기도만이 미치는 하늘에 그의 성전을 가지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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