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1장 성경 말씀은 선지자 하박국이 너무나 궁금하여 하나님께 질문하는 내용이다. 악한 남 유다 백성을 징계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고 악한 바벨론 민족을 통해서 유다 백성을 징계하는 것이 궁금했다. 하나님은 바벨론 민족을 통해서 유다 백성을 징계하고 바벨론은 영원히 멸망 된다.
Ⅰ. 선지자의 불평 1:1-4
본서의 기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위임을 받은 ‘선지자’였다. 또한 본서 자체는 ‘묵시로 받은 경고’이다. 본서에서 선지자는 마치 이미 이루어진 일을 육안으로 보듯이 그 일의 사실성을 확신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당시의 죄악상을 통탄해 한다. 그 땅은 옛적에 그러했던 것처럼(창 6:11) ‘강포’로 가득찼다. 선지자는 ‘강포로 인하여 외쳤다'(2절). 즉 ‘패역’과 ‘간악,’ ‘겁탈’과 ‘강포’로 인하여 외쳤다. 하박국 선지자 자신에게 어떤 악이 행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패망해 가는 시대에는 옳은 것이 없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악이 행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를 비통케 했다. 그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싼 것’을 불평하고 있다(4절).
흔히 정직한 사람과 정직한 대의는 사방에서 원수들에게 에워싸이곤 한다. 나라는 쉴새 없이 서로 물어뜯고 삼키는 파당과 도당으로 쪼개졌다.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3절). 그것들은 분열을 조장하고 형제들 가운데 다툼의 씨를 뿌린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면’ 평화를 파괴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있다. 공의의 집행과 율법이 무시되었으므로 ‘강포’와 ‘분쟁’이 억수같이 강하게 밀어닥쳤다(4절).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대적하지 않으셨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저지하지 못하셨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즉 잠잠하고).
본래의 의미는 “그 맥박이 뛰지 아니하고”이다.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그는 하나님께 이러한 일에 대해서 불평했으나 그 패역의 치유책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여호와여…어찌하여 나로…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즉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로 그러한 것들을 볼 수밖에 없는 시대와 장소에 있게 하셨나이까?” 하나님께서 악인의 사악을 묵과하시는 듯이 내버려 두심으로 그러한 것을 조장하시는 듯이 보일 때 선한 사람들의 믿음은 충격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형벌을 유예시키시고 선인을 꾸짖으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의 부르짖음이 악을 행한 자들을 고발하고 기도의 부르짖음이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자들을 위해 들려질 날이 올 것을 믿어야 한다.
Ⅱ.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 1:5-11
하박국 선지자의 불평에 대한 응답이 분몬에 나타나 있다. 비록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는 하나, 이 범죄하는 백성을 항상 참지는 않으실 것이다.
(1) 선고의 서언(5절) :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그토록 오래 참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심판을 가하실 것이다.
1) 그것은 공개적인 형벌이 될 것이다. 이방 민족들은 그들을 보고 놀랄 것이다(신 29:24,25). 이스라엘은 세상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2) 그것은 놀라운 형벌이 될 것이다. 형벌이 임할 때 그것이 너무 기이한 것이어서 눈으로 그것을 본 자들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한 백성들이 형벌을 받을 때 그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직 놀라운 것일 수밖에 없다.
3) 그것은 신속한 형벌이 될 것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즉 “경고된 이 심판이 이루기까지 이 세대가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라.”
4)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나타날 형벌이 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라.’
5)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임할 멸망을 예시해 주는 형벌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이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갈대아인들에 의해 파멸케 된 것은 곧 후에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거절함으로 로마인들에 의해 받게 될 파멸의 상징이었다.
(2) 선고의 내용은 두렵고도 특이한 것이다(6절). 보라 내가…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하는 백성이 서로 다투고 으르렁거리며 잡아먹고자 할 때게 그들에게 대적을 보내셔서 황무케 하심으로 화평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 정당한 일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러 당파가 서로 대적하여 분쟁을 일삼자 로마인들이 와서 그들의 나라와 처소를 빼앗아 버렸다.
1)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일어나게 될 백성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 즉 잔인하고 광포한 백성이다. 그들은 전혀 자비를 보이지 않으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7절). 특히 그들은 광야에서 강한 군대로 유명하였다.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8절). 이리는 저녁 무렵에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는'(시104:20) 흑암을 기다리며 가장 포악스러워진다고 한다.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그들은 그들 각각의 나라로부터, 곧 사방에서부터 나아올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뜻이 그들에게 법이 되며 인륜의 법이나 평등의 법, 혹은 명예의 법 등에 의해 지배 받지 않을 것이다.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7절). 이성이나 야심이 아닌 오직 탐욕과 혈기가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2) 갈대아 민족에 의해 살벌한 형벌의 집행이 있을 것이 예언되고 있다. 그들은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닐 것이다'(6절). 갈대아 군대는 그 지역의 모든 나라를 굴복시킴으로 마치 세계를 정복한 듯이 보여졌다. 흑은 이 구절을 “이스라엘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라고 읽을 수도 있다. 그곳은 그들에 의해 완전히 황폐하게 되었다. ‘그들의 얼굴은 동풍처럼 삼킬 것이니'(9절, 한글 개역에는 ‘그들은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로 되어 있음-역주). 즉 그들은 광포하고 두려운 외모를 가진 자들로 한 번만 보아도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취하고 말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들은 마치 동풍이 꽃봉오리를 따내고 꽃송이를 날려 버리듯이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포로를 취하여 바벨론으로 보낼 것이다.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많이 할 것이요. 그들은 ‘열왕을 멸시할 것이다'(원문에는 “그가 멸시할 것이다”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그’는 승리로 인해 기고만장해 있는 느부갓네살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은 군대 장관들을 멸시할 것이다.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이는 그가 보기에 그것들이 약하기 때문이다. ‘흙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다'(한글 개역에는 ‘흙’대신에 ‘흉벽’으로 나와 있음-역주). 흉벽을 위해 쌓여져 있던 흙은 도리어 그에게 온갖 이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조롱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 인해 그는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교만하고 기고만장하게 되어 결국엔 그것으로 파멸케 될 것이다(11절). 그 둘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벨”과 “느고”는 갈대아인들의 신들로 그들은 그 신들에게 자기들의 승리의 영광을 돌렸다. 그들은 우상 숭배로 마음이 강퍅해졌으며, 또한 참람하게도 자기들이 이스라엘을 이겼다 하여 자기들의 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주장하였다.
Ⅲ. 선지자의 불평과 통탄 1:12-17
하박국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께로 돌이켜, 자신이 본 경고로 인해 눌린 자신의 심령을 편케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선지자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이스라엘에 의해서 행해진 강포 뿐이었다. 그리고 앞을 내다보니 온통 이스라엘에 대해 행해질 강포 뿐이었다. 갈대아인들이 널리 번성해 갈고 있는 사실은 하박국 선지자로 무릎을 꿇고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케 만들었다.
(1) 갈대아인들의 위협 아래서, 자신과 자신의 벗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으로 그가 끝까지 지키지로 결심한 진리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여호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거룩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존재, 모든 권세, 모든 완전의 근원이신 ‘여호와’이시다. 우리의 ‘반석’은 그들의 것과 같지 않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는 백성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임했으나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지 않았도다. 우리는 그에 대해 그리고 그를 섬기는 일에 대해 어떠한 강퍅한 생각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
2) 우리의 하나님은 영원부터 계시다. 만일 그가 영원부터 계셔왔다면 또한 영원까지 계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시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이 우리를 낙담케 할 때일지라도 이 근본 원칙을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충분한 소망과 도움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는 옛적부터 주의 백성과 언약을 맺어오신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즉 “주는 여전히 그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또한 ‘변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3) 세상이 존속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교회를 가지실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원성으로부터 교회의 영속성을 추론해 내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가 살았고’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사는 한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12절).
4) 갈대아인들에게 그 권세를 주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셨다. 그는 그들에게 ‘탈취하며 노략질하도록'(사 10;6) 허락해 주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즉 용사의 힘이 그로부터 나오며 그의 견제 아래 놓여져 있다. “여기까지는 올 것이나 더 이상은 안될지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 이상의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은 ‘심판하기 위함’이며 또한 ‘경계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경계를 필요로 하며 또 마땅히 받아야 한다. ‘경계’란 곧 마음 속에 깃든 어리석음을 몰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5) 악인이 비록 잠시 번성할지는 몰라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악을 인정하지 않으신다(13절).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갈대아인들이 얼마나 사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해 얼마나 큰 승리를 거두었는가를 지켜본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무익하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남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근본 원칙, 즉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도 후원자도 아니하는 사실을 의지하므로 그러한 생각을 억눌렀다.
즉 그는 정결한 눈을 가지신 분으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이시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에는 그의 거룩한 법에 위배되는 것들을 가증히 여기는 것이 들어 있다. 따라서 비록 그가 죄인들과 화해할 방편을 즐거이 찾으신다 할지라도 결코 죄와는 화해하지 않으실 것이며 또 하실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핍박자들에 의해 자기 백성에게 재난이 가해지는 것을 묵과하신다 할지라도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으신다.
(2) 하박국 선지자는 비통한 현실이 이상의 진리들과 부합되지 않음을 발견한다 “우리는 주께서 거룩한 하나님이신 줄 확신하나이다. 그런데 주께서는 어찌하여 궤휼한 갈대아인들을 방관하시며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원하는 주의 백성들에 대해 이처럼 잔인하게 행하는 저 원수들을 참고 계시나이까? 이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이까?” 이것은 욥(욥 21:7;24:1)이나 다윗(시 73:2,3), 예레미야(렘 12:1,2)에게도 있었던 유혹이었다. 다음 내용이 그가 불평했던 것들이다.
1) 하나님께서 죄를 용납하시며 죄인들을 참으신다는 사실이다.
2) 그의 참으심이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악행과 악인에 대한 선고가 신속히 시행되지 않음으로 악인들은 더욱더 악을 행하는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거짓되고 속이기를 잘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듯이 사람을 죽였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섭리가 약한 자를 건져내어 강한 자의 먹이가 되게 하심으로 사실상 그들이 ‘바다의 어족’같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있다(14절). 따라서 그들은 서로 서로 잡아 먹기를 큰 고기가 작은 고기에게 하듯 하였다(3절). 그들은 또한 ‘주권자없는 곤충’같았다(창세기 1:20에서는 같은 말이 ‘생물’로 쓰이고 있다). 그들은 마치 어부에게 물고기가 맡겨지듯이 갈대아인들에게 넘겨졌다. 저 거만한 압제자들은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사람을 죽이되, 사람들이 물고리를 물 밖으로 끌어내듯이 한다.
사람들이 고기를 잡는 데 있어 여러 방법이 있듯이 그들 또한 탈취하고 파멸시킴에 있어 여러 가지 방법을 행사한다. 어떤 것들은 하나 하나 ‘낚시로 취하며'(15절) 또 어떤 것들은 그물로 한꺼번에 잡아 초망에 모은다. 따라서 그들의 소득은 풍부하고 그들의 식물은 풍성케 된다. 그들은 즐겁게 산다(15절).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이는 그들의 부가 막대하고 그들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간을 크게 찬양한다. 즉 그들은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한다.’
(3) 마지막으로 하박국 선지자는 겸허하게 하나님께서 이 인류의 파괴자들을 이처럼 번성하도록 항상 방관하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자신의 희망을 표현한다(17절). 그가 그물을 떨고는…이 옳으니이까. “그들이 그물에서 자신들이 잡은 것을 떨어내고 다시 그것을 바다에 던져 더 잡아야 옳으니이까? 열국의 수많은 사람들과 재산이 그들의 그물에 희생되어야 하겠나이까? 하나님은 열국의 왕이 아니시니이까? 그런데 그들의 침해된 권리를 옹호하지 않으시겠나이까? 자신의 영광을 투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대로 버려두시겠나이까?” 선지자는 그 문제를 마치 시편 기자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겼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소서'(시 7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