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 성경 말씀은 노아가 방주를 건조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홍수 심판하겠다고 예고했다. 노아에게는 방주를 만들라고 했다. 창세기 6장은 하나님이 인간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했다.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다.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홍수 심판에 구원받았다.
I. 옛 세상의 사악함 6:1,2
우리는 여기서 옛 세상의 사악함을 야기시킨 두 가지 사실을 보게 된다.
1. 인류의 증가(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사람이 땅위에 번성한 것은 축복의 결과였다(1:28). 그러나 사람의 타락이 이 축복을 악용하고 곡해하여 저주가 되게 하였다. 죄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만큼 죄도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전염병만큼 파괴적인 존재는 없다. 그런데 죄란 바로 전염되는 문둥병과 같은 것이다.
2. 혼합된 결혼(2)
‘하나님의 아들들’, 즉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 ‘사람의 딸들’, 즉 하나님과 경건을 알지 못하는 저속한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하였다.’ 셋의 후손들의 그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대로 자신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파문 당한 가인의 족속과 자신들을 뒤섞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대체 이들의 결혼에서 잘못된 점이 무엇이었는가? 첫째, 그들은 단지 외모만 보고 선택하였다.
‘그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이 점이 그들이 주목해서 본 전부였다. 둘째, 그들은 그들 자신의 타락한 성정이 결정하는 대로 선택했다. 셋째, 그들에게 악한 결말을 가져왔던 점은 그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다는 것, 즉 ‘믿지 않는자와 멍에를 같이 하게 되었다'(고후 6:4)는 사실이었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을 개심시키는 것보다는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Ⅱ. 하나님의 싫어하심 6:3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불쾌하게 여기신 사실이 드러난다.
(1) 그의 신으로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는 아니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 : 성령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계셔서 양심의 가책과 충고로써 그들을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신다. 그러나 만일 성령께서 오랫 동안 그렇게 애쓰신다 해도 계속 저항을 받고 억제당하시며 거부당하신다면 언제까지나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호 4:17).
(2) 이러한 결심을 하시게 된 이유 :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즉 그들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세속적이며 육욕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내주를 반대하고 헛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타락한 본성과 육신으로 향하는 영혼의 성향이다. 그러나 먼저 죄로 인해 성령의 애쓰심을 상실한 그러나 먼저 죄로 인해 성령의 애쓰심을 상실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성령의 내주를 잃지 않을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 유예가 승인됨 :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진노를 일으키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은 때때로 오래까지 계속되나 언제나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집행 유예가 곧 용서는 아니다.
Ⅲ. 옛 세상의 부패 6:4,5
옛 세상의 부패에 대한 설명이 계속된다.
(1)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억압하고 폭행을 가하게 하는 유혹을 받았다. 그들은 ‘용사’였고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악 자손들(민 13:33)처럼 거대한 몸집을 가졌다. 또한 그들은 앗수르 왕(사 37:11)처럼 대단한 명성을 지녔다. 다른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을 만큼 큰 힘을 지닌 사람들은 좀처럼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을 제어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2)드러난 죄과(5절) : 하나님은 무엇을 주의해 보셨는가?
1)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흐르는 모든 죄악의 흐름을 보셨고 그 흐름의 넓이와 깊이를 보셨다. 압제자들은 ‘용사였으며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때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함을 보셨다.’ 가장 악명 높은 죄인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는 그때가 사실 사람들의 사악함이 관영하는 때인 것이다. 죄인들의 모든 죄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다 알려진다.
2)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죄의 근원을 보셨다. 누구든지 ‘사람의 죄악이 관영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소돔 사람들처럼 자기들의 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깊이 내다보셨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것을 보셨다.’ ①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이 그러했다. ②그 마음의 생각이 도모해 낸 바가 그러했다. 즉 그들의 계획과 궁리가 악했다. 그들은 단순히 부주의로 인해서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해를 끼칠까를 궁리하면서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였다.
IV.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그들을 멸망시키실 결심 6:6,7
1. 사람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6)
하나님은 그 사실을 무관심한 방관자처럼 보시지 않고 그로 인해 상심하고 모욕을 당한 자처럼 보셨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는 자애로운 아버지가 반항하며 불순종하는 자식의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보듯이 그 점을 보셨다. 그러므로 그 점은 그를 진노케 할 뿐만 아니라 슬프게도 하는 것이었다.
(1) 이 말이 하나님 속에 어떤 격정이나 근심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어떤 것도 하나님의 마음에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없다). 그보다 오히려 이 말은 죄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하고 거룩한 불쾌를 표시한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죄를 미워하시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죄를 미워하시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죄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마음에 슬픔을 끼쳤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마음으로 슬퍼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이 말은 하나님의 심정의 어떤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법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의 변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이 불쾌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변한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은 아니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사람을 구원하신 사실을 한탄하셨다는 것은 결코 보지 못한다.
2.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결심(7)
우리가 우리의 죄를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슬픔을 준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죄 짓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원문의 말은 매우 의미심창하다. 즉 먼지나 오물이 깨끗해야 할 곳에서 닦아 내어지듯이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닦아 내어 버리리라'(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자기 삶의 목적에 부응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의 삶을 잃어 버린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과 더불어 오랫 동안 헛되이 씨름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 관해 이러한 결심을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개혁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파멸되지 않는다.
V. 노아의 특성과 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6:8-10
우리는 여기서 노아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과 그에게 특별한 명예가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노하셨으나 노아에게는 은혜를 베푸셨다. 노아는 그때 세상에 남은 단 한 사람의 의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내시고 그에게 미소를 보내셨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의 그릇이 되었다. 하나님은 근 당시에 용사였고 유명한 사람들이었던 모든 네피림(장부)들보다 그를 더욱 위대하게 하셨고 영광스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 자들은 크게 은혜를 받는다.
(2) 노아는 자신의 순전함을 지켰다. 노아는 의인이요(9절). 노아의 이러한 성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 성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푸신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그 안에 이러한 선한 역사를 일으킨 것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다(고전 15:10). 이제 그의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그는 의인이었다. 즉 언약의 후손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는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였다(히 11:7). 하나님께서 때때로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지만 세상의 악한 것들은 결코 택하시지 않는다.
2) 그는 완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죄 없는 완전함이 아니라 진실함의 완전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의로 인한 은혜 언약의 공로로 우리의 믿음이 이 복음의 의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행한 일이다.
3)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믿음의 눈으로 그를 진실하게 우러러보는 자들을 사랑의 눈으로 내려다보신다. 신앙이 유행하고 있을 때 경건해 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타나려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타나거나 사악한 세태의 풍조를 거슬러 천국에까지 헤엄쳐 올라가는 것은 강한 믿음과 결심의 증거가 된다.
VI. 노아 세대의 사악함 6:11,12
이 당시 세대의 사악함이 여기에서 다시 언급된다.
(1) 모든 종류의 죄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였으며'(11절), 사람들에 대한 ‘강포’와 불의가 ‘땅에 충만하였다’. 사악함이 인간 본성의 수치가 되듯이 그것은 또한 인간 사회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된다.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없애 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짐승이 되고 서로에게 마귀가 되고 말 것이다. 죄는 땅을 폭력으로 가득 채워서 세상을 광야와 싸움터로 만든다.
(2) 그 사실에 대한 증거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땅을 보셨고’그자신이 친히 세상에 가득 찬 패괴함의 증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3)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그 전염병이 온 세상에 퍼진 것이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12절). 사악함이 널리 퍼지게 되면 전체적인 파멸은 멀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한 민족 안에 죄악의 분량이 넘칠 때 그것을 없애려고 기도하는 남은 자들이 있는 한 파멸은 오랫동안 지연될 수 있다.
Ⅶ.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6:13-21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실이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 하나님은 여기서 노아를 자신의 ‘의논 상대’로 삼으신다. 그래서 그는 후에 소돔에 관한 자신의 결심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18:17) 이 악한 세상을 물로 멸망 시키실 자신의 계획을 노아에게 알리신다. ‘여호와의 비밀’은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있다(암 3:7). 하나님은 계시의 영에 의해서 자신의 계획을 특별히 그들에게 알리신다. 모든 신자들은 지혜와 믿음의 영에 의해서 여호와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을 멸하시리라는 것을(13절) 대략적으로 말씀하셨다. 필시 노아는 이웃들에게 그 사실을 전파하면서 그들에게 경고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노력들을 후원하신다.
2) 하나님은 노아에게 구체적으로 세상을 홍수로써 멸하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17절). 하나님께서 이때에 천사의 검으로써 세상을 완전히 다 멸하시지 않고 대신에 홍수를 일으키시고 노아의 가족을 남기신 이유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정당하고 지혜로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나님은 화살통에 많은 화살을 가지고 계셔서 원하시는 대로 쓰실 수 있다. 하나님은 ‘내가 바로 내가(흠정역) 행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심판의 확실성을 암시하신다.
(2) 하나님은 여기서 노아를 ‘그의 계약의 사람’으로 삼으신다. 이 계약의 사람이란 히브리어에서 친구를 나타내는 완곡한 표현이다(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언약을 세우리니.
1) 하나님은 섭리의 언약을 세우셨다. 즉 자연의 진행은 비록 홍수로 인해 잠시 중단될지라도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약속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직접 주어졌다(9:8이하). 이때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맡은 자들로서 있었다.
2) 하나님은 또한 은혜의 언약을 세우셨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후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여기서 노아를, 사람을 아끼시는 긍휼의 기념비로 세우신다. 남다른 경건은 특별한 구원으로 보상될 것이다.
1)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지시하신다(14-16절). 이 방주는 커서 주체하기 어려운 거대한 배와 같았다. 그것은 바다를 항해하기에는 적합지 않았으나(그때는 항해하여 다다를 어떠한 해안도 없게 될 것이므로 그렇게 날렵한 배일 필요가 없었다)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면서 물 위에 떠돌아다니기에는 적합한 배였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 줄 수단을 마련하는 일에 그를 사용하기로 결정하셨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고, 우리에게 오직 ‘자기의 구원을 애써 이루는’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구원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은 우리 없이 그 일을 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건조물에 관해 그에게 매우 자세한 지시를 내리셨다. ①이 방주는 ‘잣나무’로 만들어야 했다 ②이 방주의 내부는 3층 높이로 만들어야 했다 ③그 내부를 칸막이로 막아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서 여러 종류의 짐승들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조금이라도 비는 곳이 없게 하여야 했다. ④하나님께로부터 정확한 치수가 그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방법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지켜야 한다. ⑤방주의 ‘안팎을 역청으로 칠해야’했다. 빗물이 새거나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밖을 칠하고, 문이 밀폐되었을 때 짐승들의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안을 칠해야 했다. ⑥빛이 들어오도록 지붕 쪽으로 작은 창문을 내야 했다. ⑦배 옆면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만들어야 했다.
2)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와 그의 가족이 방주안에서 목숨을 보존할 것을 약속하신다(18절). 너는 방주로 들어가고.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①선한 부모들의 관심 :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의 구원, 특별히 그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염려한다. ②경건한 부모를 가진 자녀들의 행복 : 부모들의 경건은 때때로 여기에서처럼 그 자녀들에게 현세적인 구원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만일 자녀들이 부모의 경건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선용한다면 그것은 더 나아가 영원한 구원에도 이르게 한다.
(4) 하나님은 여기서 노아를 세상에 주시는 커다란 축복으로 삼으신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가운데서 그를 메시야의 탁월한 예표로 삼으신다.
1) 하나님은 그를 그 세대 사람들에게 외치는 전파자로 삼으셨다.
2) 하나님은 그를 그보다 못한 피조물들의 구조자로 삼으시고 그 중 여러 종류의 생물들을 대홍수 가운데서 멸종되지 않도록 보존하게 하셨다(19-21절). ①그는 그 생물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도록 그들을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야 했다. ②그는 그 생물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그들을 먹일 양식을 준비해야 했다(21절). 이 사실에서도 그는, 세상을 유지하고 만물을 존속시키며 죄로 인한 파멸과 완전한 제거로부터 인류를 보전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노아는 자기가 다스려야 할 자들을 구원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셨다(히 5:9).
Ⅷ. 노아의 순종 6:22
방주를 짓는 일에 있어서의 노아의 고심과 부지런함은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믿음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행위로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이웃들은 그의 고지식함을 두고 그를 비웃었을 것이며 또한 그는 술꾼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방주는 ‘노아의 호화로운 별장’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이 수많은 반대들을 믿음으로 이겨냈다. 그는 모든 일을 지시 받은 그대로 행하였고, 일단 방주를 짓기 시작한 후에는 완성할 때까지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행하였으니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주님의 심판들 가운데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특별히 죽을 때와 심판 때에 주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하며,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어야 하고(마 7:24) 방주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야 한다. 넷째, 노아가 휘두른 도끼와 망치에서 나는 소리 하나하나는 모두 그 세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였고 그들도 역시 방주를 예비하라는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