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힘이 되는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고 물고기와 새를 창조하고 땅 위의 생물을 창조한 후에 인간을 창조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Ⅴ. 넷째날 1:14-19
여기에는 넷째날의 역사, 곧 해와 달과 별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런 것들은 위 세상을 아주 아름답게 할뿐만 아니라 이 아래 세상에 많은 축복을 주는 장식물들이다. 우리는 하늘의 광명들의 창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일반적인 면(14,15)
(1)하늘의 광명들에 관한 명령 :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3절)빛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말하자면 빛이 사방에 흩어져 무질서하게 있던 빛의 혼돈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이 빛이 모아져 모형을 이루어 그처럼 영광스럽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가 빛이신 만큼 그는 또한 빛들의 아버지이시며 조성자이시다.
(2) 이 땅을 위한 이 광명들의 용도 : (1)이것들은 시간, 곧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의 구별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해 아래에서는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는 것이다(전 3:1). (2)이것들은 활동의 지시를 위해 존재한다. 이것들은 일기의 변화를 보여 주는 징조로서 존잰 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제 2의 원인들이 작용하기 시작했을 때 하늘의 모습을 보고 일기가 좋을지 나쁠지를 분별하고 예견하여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마 16:2,3).
이것들은 우리가 길을 걸을 수 있고(요 11:9)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요 9:4)땅에 빛을 비춘다. 하늘의 광명들은 우리의 즐거움과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빛을 비춘다. 이들은 우리를 섬기도록 지어져서 충실하게 그 일을 행하여 어김없이 제때에 빛을 비춘다. 우리 또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빛들과 세움을 받았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그것들과 같이 우리의 창조 목적에 응답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의 초만 태울 뿐 그의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
2. 특별한 면 (16-18)
(1) 하늘의 광명들이란 곧 해와 달과 별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1) 해는 모든 것 중 가장 큰 광명이다. 시편 19:1-6을 통하여 우리는 해를 지으신 분으로서의 하나님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2) 달은 작은 광명이지만 여기서는 비교적 큰 광명들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가장 유용한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비교적 큰 이 광명들은 최상의 은사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겸손하고 충실하게 힘껏 선을 행한다.
3) 또 별들을 만드시고.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우리를 천문학자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성도가 되도록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이 광명들은 하나님 아래 있는 대리 주관자들이다. 여기에서 작은 광명인 달은 ‘밤’을 주관하게 된다. 그러나 시편 136:9은 별도 그 일을 함께 맡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가장 훌륭하고 명예로운 통치 방법은 빛을 비춰 주며 선을 행하는 방법이다. 유익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삶은 광명같은 빛나는 삶이 되는 것이다.
(2) 이 모든 사실로부터 다음 사항을 배우자.
1) 해와 달과 별을 섬긴 고대 우상 숭배의 죄와 어리석음을 알자. 여기서 이런 것들에 관한 설명을 볼 때 이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신으로 삼고 그것에 신적인 경의를 표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크나큰 모욕이며 우리 자신에게도 치욕거리가 된다.
2) 이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께 대한 매일 경배를 드리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와 찬양의 엄숙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동시에 지혜이다.
Ⅵ. 다섯째날 1:20-23
다섯째날에 이르기까지는 생물의 창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바로 이 다섯째날의 기사에서야 비로소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섯째날에 물고기와 새가 창조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여기서 다음 두 가지를 살펴보자.
(1) 물고기와 새의 창조(20,21) :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생겨나도록 명령하셨다. ‘물들은 번성케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친히 이 명령을 실행하셨다.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모든 생물을 창조하시니라. 여느 동물들만큼이나 다양하고 수가 많으며 진지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곤충들도 이날에 만들어졌다. 보일(Boyle)은 자신이 큰 코끼리를 보고 놀랄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개미를 보고도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며 찬양을 드리게 된다고 말하곤 했다. 동물들이 부여받은 민감한 생명의 놀랄 만한 능력들과, 그들 신체의 기이한 구조, 그리고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 특성들이 제대로만 인식된다면 이 모든 것들은 무신론자들과 이교도들의 반론을 부끄럽게 하고 잠잠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돕는다(시 104:25).
(2)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번성할 수 있도록 축복하심 :생명이란 점점 쇠약해지는 것이다. 생명의 힘은 돌의 단단함과 같이 오래 가지 않는다. 생명은 일부러 불어 끄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다 타고 마는 촛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창조주께서는 각각의 개체들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개체들이 번식하도록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니라(22절).
Ⅶ. 여섯째날의 첫 번째 부분 1:24,25
여기서 우리는 여섯째날 역사의 첫 번째 부분을 대하게 되는데 이날에 땅의 짐승들, 곧 육축과 땅에 속하여 기는 것들이 지어졌다. 앞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주께서 말씀을 하셨다. 즉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내라’고 하셨다. 또한 주께서 일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시되 여러 가지 모양뿐만 아니라 여러 특성들, 습관, 음식물, 생활 양식 등을 따라 만드셨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풀과 채소를 먹고 사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고기를 먹고 살고, 어떤 것들은 대담한가 하면 어떤 것들은 겁이 많고 또 어떤 것들은 말처럼 사람을 돕지만 먹이로는 쓰이지 않는데 반하여 어떤 것들은 양처럼 사람을 돕지는 않지만 먹이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소처럼 두 가지에 다 쓰이는 것들이 있고 또한 들짐승처럼 아무데도 쓰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Ⅷ. 여섯째날의 두 번째 부분 1:26-28
여섯째날의 두 번째 부분의 역사는 곧 사람의 창조이다.
(1)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 중 가장 나중에 창조되었다. 이것은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사람이 하나님을 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맨 마지막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사람에게 영광과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왜 영광이 되는가? 창조의 방법이 덜 완전한 것에서부터 보다 더 완전한 것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왜 은총이 되는가? 사람이 거할 저택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완전히 준비되고 꾸며진 이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창조 받은 즉시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들을 소유하여, 그것들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 사람의 창조는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에서 보다 신적인 지혜와 능력이 더욱 두드러지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난 행위였다. 이제까지는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땅이나 물은 이러저러한 것을 내라는 식의 말씀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령의 말씀이 의논의 말씀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다른 피조물을 지은 것은 사람을 위함이었다. 이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이 일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할 일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가진 자로서 말씀하고 계시다. 아마도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드디어 준비 작업을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자. 자, 사람을 만들자.” 사람은 이제까지 만들어진 모든 것과는 다른 피조물이 되어야 했다. 육체와 영혼이, 하늘과 땅이 그 안에서 합쳐져야 했다. 그는 두 세계에 다 연결되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짓는 일에 착수하실 뿐만 아니라 마치 그 일을 협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는 것처럼 자신을 표현하기를 기뻐하셨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그 일에 관해 의논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 분께서 또한 사람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3)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어졌다. 이 두 단어는 같은 뜻을 의미하며 서로가 그 뜻을 더욱더 잘 나타나게 만든다. ‘형상’과 ‘모양’이란 말은 가장 닮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럴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사람에게 입혀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도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나 동전에 새겨진 왕의 초상화 정도에 지나지 않는 형상이다. 사람에게 입혀진 하나님의 형상은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볼 수 있다.
1) 사람의 신체가 아닌 영혼의 특성과 구조에서 볼 수 있다(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몸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에도 이같은 명예를 주셨는데 그것은 곧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셨고 그가 또한 머지 않아 자신의 것과 같은 영광을 우리 몸에 입히실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사람의 위대한 영혼이다. 사람의 영혼에게 있는 세 가지 귀중한 능력, 곧 이해력, 의지, 활동력을 생각해 볼 때 사람의 영혼이라 본질상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가장 밝고도 맑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2) 사람의 위치와 권위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다스리게 하자.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한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이를테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나 총독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가 다스린다는 사실에서보다는 자유 의지로써 자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3) 사람의 순결과 정직에서 볼 수 있다. 사람에게 입혀진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에 있다(엡 4:24;골3:10).
(4)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지어졌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곧 이어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이 뒤따른다. 하나님께서 결심하신 바를 곧 실천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서로 다르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다른 피조물들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한 종류 당 한 쌍씩이 아니라 여러 쌍을 지으셨던 것 같다(20-22절).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 만큼은 오직 한 쌍만을 만드시지 않으셨던가?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이혼을 반대하는 논증을 끌어 내신다(마 19:4,5).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은 한 아내로 제한을 받았다. 만일 그가 그녀를 버렸다면 그에게는 달리 결혼할 사람이 없었다. 이 사실은 결혼의 계약이 마음대로 취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셨다. 이것은 모든 민족들이 자기들이 한 혈통이며 한 줄기로부터 나온 자손들이라는 것을 알고 이로써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음의 두 가지를 주셨다.
1) 광대한 유산 : 땅에 충만하라. 사람의 자녀들에게 부여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온 땅에 거하도록'(행 17:26)지어졌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보다 나은 상태를 준비하는 수습생으로서 거하게 하고자 정하신 장소이다.
2) 이 유산을 누리며 계속해서 존속할 수많은 가정.
(5)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나서 그에게 자기보다 열등한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주셨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비록 사람이 이들 중 어느 것도 부양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사람에게 영예를 주시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람들은 이들 피조물로부터 그들 생명의 안전을 유지하고 또한 그것들에서 음식을 얻게 되었다.
Ⅸ. 여섯째날의 세 번째 부분 1:29, 30
여섯째날 역사의 세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모든 육체를 위하여 양식을 마련하신 기사이다(시 136:25).
1. 사람을 위하여 마련된 양식(29)
채소와 열매가 그의 음식이 되었다. 여기서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1)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점 : 우리가 흙에서 나왔듯이 또한 우리는 흙으로부터 부양받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양식인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은 주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2) 우리가 감사하게 만드는 점 : 주께서 우리의 몸을 위하신다.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고 편안케 하는 모든 것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시는데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또한 윤택한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서 갖가지 맛있는 것들을 풍성히 주신다.
(3) 우리가 우리 분깃에 순응하여 만족하게 만드는 점 :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식물을 주셨다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의 탐욕을 위해 식물을 구하지 않도록 하자(참조, 시 78:18;단 1:15).
2. 짐승들을 위하여 마련된 양식(30)
하나님께서는 소를 위하여서도 염려하시는가? 확실히 그렇다. 그는 짐승들에게도 먹기 좋은 식물을 마련해 주신다. 그러므로 황소뿐만 아니라 젊은 사자들도 그에게서 음식을 공급받으며 어떤 까마귀들도 그의 섭리의 보호를 받는다. 그는 위대한 주부이시며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부유하고 후한 분이시다.
Ⅹ. 전 창조 역사의 결론 1:31
1. 하나님의 자기 역사에 대한 평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셨다. 그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작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능에는 반드시 전지가 따른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의 산물들에 대한 영원하신 지성의 엄숙한 반성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일을 반성하는 모범을 보이셨다. 우리가 하루의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낮 동안에 행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자기 역사에 대한 만족
하나님은 모든 것이 선하게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듣기도 전에 대답하지 않도록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1)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지으신 모든 것이 좋았다. 첫째, 그 모든 것이 창조주께서 마음에 원하신 그대로 꼭 들어맞았기 때문에 좋았다. 둘째, 그 모든 것이 창조의 목적에 합당하며 그 계획된 것이 보이는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자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에게 쓸모 있기 때문에 좋았다. 넷째,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좋았다.
(2) 그 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 한 날 한 날의 역사(둘째날 역사를 제외하고는)가 보시기에 좋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 그 이유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과정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주 영광의 보이는 형상으로, 그리고 찬양함에 있어서 온 피조물의 입노릇을 하기로 되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부분이 다 좋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쳐지자 심히 좋았다. 섭리와 은혜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작품의 영광과 선하심, 아름다움과 조화 등은 이때와 같이 그러한 것들이 완성되었을 때에 가장 잘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때가 이르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라.
3. 이 역사가 마친 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날이니라. 이같이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세상을 지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단번에 세상을 지으실 수 없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이 있게’하신 분께서 또한 “세상이 있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며 그랬다면 순식간에, 즉 부활 때처럼 (고전 15:52) ‘홀연히’세상이 생겨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의 시간에 그 일을 이루셨다. 따라서 안식일도 하나님께서 창조의 시간을 정하실 때 그것을 고려하신 만큼 세상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