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주석 강해설교말씀은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심(창1:26-31)
26-31절, 사람을 창조하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육일 중 여섯째 날, 하나님께서는 가축들과 땅의 짐승들과 땅의 기는 것들을 창조하셨고 또 사람을 창조하셨다.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은 땅의 동물 중 하나이거나 원숭이 같은 저급한 동물로부터 진화(進化)된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창조하신 존재이다. 26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27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증거한다. ‘만들다’(아사 עשה)는 단어와 ‘창조하다’(바라 ברא)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창세기 2:7에는 ‘지으신다’(야차르 יצר)는 단어도 사용되었다. 그 셋은 다 서로 교대로 쓸 수 있는 동의어(同義語)이다.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경에 밝히 증거된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암시한다. 창세기 3:22에 하나님께서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러한 암시는 더욱 분명해진다. 다른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명령함으로써 창조되었으나,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의논하심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은 특별한 창조물이었다. 여기에 사람의 가치성과 존귀성이 있다. ‘형상’과 ‘모양’은 성경에서 특별한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어떤 영적 특성을 가리킨다. 성경은 그것을 지식과 의(義)라고 가르쳐준다.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에베소서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요소는 사람이 범죄함으로 상실된 것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통해, 중생(重生)과 성화(聖化)를 통해 회복된다.
성경이 범죄한 사람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기 때문에(창 9:6; 고전 11:7),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과 의 외에 어떤 독특한 점들도 포함한다. 그것들은 영육의 결합체로서의 사람의 인격성과 도덕성 그리고 생물통치권 등을 포함할 것이다. 사람의 눈과 귀와 입과 손발 등 몸의 지체들까지도 그것들이 선한 일을 하는 한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여섯째 날에 창조된 짐승은 몸의 구조나 자녀 출산과 양육의 방식이나 지능 등에 있어서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사람을 포유동물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이 바로 그 차이이다. 즉 사람은 지식과 도덕성과 인격성에 있어서 짐승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여기에 사람과 짐승들의 가치성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는 남자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창조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방식이었다. 남자와 여자 간에는 기능의 차이와 질서가 있을 것이지만, 그 둘은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귀한 존재이었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받아 누리는 복과 영광은 동등하였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녀로 창조하신 일차적 목적은 출산에 있었다. 출산은 하나님의 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땅의 생물들 곧 가축들과 땅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었다. 다른 생물들과 같이(창 1:22), 사람은 출산을 통해 땅에 충만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도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창 9:1).
오늘날 사람들이 자녀 출산을 짐스러운 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함이요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그 중의 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인구 폭발을 염려하는 것도 순전히 사람의 생각에 불과하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자녀들을 많이 출산하는 것이다.
시편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물론 자녀 출산은 결혼을 전제한 것이다. 오늘날 세속 사회는 결혼 없는 동거(同居)를 허용하는 풍조가 많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명백한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율법은 결혼 관계를 벗어난 모든 종류의 행음자를 사형시키라고 명시하였다(레 20:10-21). 신약성경도 음란한 자나 행음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고전 6:9; 계 22:15).
오늘날 결혼 관계를 벗어난 음행의 풍조는 낙태의 죄악을 사회에 가득하게 만들었다. 산부인과 의원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1980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행해진 낙태만 약 150만건이었고 우리나라도 비공식적 낙태가 한 해에 100만건이 넘으며 세계적으로 연간 약 5,500만건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들이 약 1,7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낙태는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무서운 유아 대학살의 죄악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성경 다른 곳들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지만(롬 11:36; 사 43:21), 그 일차적 목적은 본문에 증거된 대로 사람으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생물들을 다스려야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그 목적에서 떠나며 그 임무를 포기하고 오히려 피조물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적 악을 행하였다.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 속에는 노아 시대의 홍수 후에 허락된 대로 생물을 먹을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창 9:3). 생물은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윤회(輪廻)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생명체를 죽이는 살생(殺生)을 금지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축이나 물고기를 감사함으로 잡아먹을 수 있다.
특히,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어떤 개혁신학자들의 말처럼 ‘문화 명령’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문화라는 영역 속에는 인류의 삶의 물질적, 정신적 모든 부분들이 다 포함된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영역인 농업, 어업, 목축업, 광업을 비롯하여, 옛날부터 공업, 상업, 건축, 교통, 음악, 미술, 정치, 교육, 철학, 법, 군대, 경찰 등의 영역이 발달하였고, 오늘날 사회는 훨씬 복잡해져서 고층 건물, 자동차, 고속도로, 큰 다리, 비행기, 선박, 고속전철,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 등의 고도의 기술 문명과 대학, 과학, 의학, 약학, 대기업, 은행, 신문, 방송, 언론, 영화와 연극 등의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이 모든 영역이 땅을 정복하는 일들이며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의에 일치하고 인류의 유익을 위해 발전하도록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환경 보전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 같은 자들이 있다. 그러나 환경 보전만 말한다면 사회는 원시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발은 땅을 정복하는 일이다. 단지 그 개발이 다른 이들에게 해를 주는 개발이 되지 않도록 연구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고 자연 환경을 고려하면서 땅을 정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29-3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食物)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먹을 양식으로 주셨다. 그는 또 새들과 동물들에게는 푸른 풀을 먹이로 주셨다. ‘푸른 풀’이라는 원어(예레크 에세브 ירק עשב)는 ‘푸른 채소’라는 뜻이며 이것은 풀과 씨 맺는 채소(창 1:11-12)를 다 포함한 듯하다. 식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의 양식이다.
창조된 만물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오는데, 그 중에 31절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증거한다. 창조된 세상은 단조롭지 않고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색깔과 조화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늘과 바다, 산과 들은 다 아름다웠다. 하늘에 새들과 들에 식물들, 땅에 동물들과 물 속에 고기들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별들과 그 규칙적 운행, 자연 법칙들과 인간의 신체 구조 등은 신비하고 놀랍다. 사람의 마음의 지혜와 사랑은 신비하고 아름답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놀랍고 아름답게 만드셨다.
창조된 세상은 아름다웠다. 아직 죄가 없었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창조된 세상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천사의 타락과 그 꾀임을 받은 첫사람의 탈선이 문제이었다. 하나님께서 본래 만드신 세계는 진선미의 세계이었다. 천국의 영광은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그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본받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인간 창조에 대한 진리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존귀성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범죄함으로 그 형상을 잃어버렸다.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과 의이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는 데 사람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교훈대로 힘써 살자. 여러분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먼저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으라. 죄는 사람을 무가치하게 만들었으나, 구원은 사람의 존귀성과 가치성의 회복이다.
둘째로, 우리는 남녀의 동등성과 역할을 깨달아야 한다. 남녀는 다 하나님의 귀한 형상이므로 서로 귀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남녀의 역할이 있다. 특히 출산이 하나님의 뜻이며 복인 줄 바로 깨닫고 우리는 출산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세속 사회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결혼을 중히 여기고 음란을 버리고 자녀 출산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명령인 줄 알고 사모하며 감사히 받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힘써 행해야 한다. 우리는 피조물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히려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해야 한다.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문화적 활동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따라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각자의 직업의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연구하고 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