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성경인물 원어설교 말씀은 아브라함과 그의 형제 나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고 왔을 때 나홀의 종이 아브라함에게 왔습니다. 나홀의 종은 밧단 아람에서 이름 있는 부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식들도 잘 되었고 세상에서 큰 자리에 올라서 살고 있는데 당신은 현재 어떻게 사느냐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형제 나홀(창22:20-2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삭을 바치라는 믿음의 시험을 받게 됩니다. 이 시험을 잘 통과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을 살릴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시키신 것을 보게 됩니다.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숫양을 준비시켜 놓으시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시험의 목적은 아브라함이 어느 정도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열어 놓으시고 시험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험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두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도 함께 주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도 미리 계획하시고 믿음을 시험하시면서 이미 숫양을 준비하셔서 하나님께 바치도록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이삭을 드림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복을 허락 받았습니다.
(창 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데 너의 씨로 말미암아 되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가장 귀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약속하시고 그 복을 허락하셔서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아까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는 간절히 원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 없어서 드리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만큼은 하나님께 항상 열려 내가 있는 한도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드릴 때에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심과 같이 우리에게도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모리아의 산에 올라갈 때는 이삭과 둘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19절에 내려 올 때는 혼자 내려옵니다.
(창 22: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라는 문장에서 ‘돌아가서’는 히브리어(슈브)입니다. 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돌아서다, 회복하다, 새롭게 되다, 라는 뜻입니다. 올라갈 때는 복수를 사용함으로 이삭과 올라갔는데 내려 왔을 때는 단수를 사용함으로 아브라함만 내려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회복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번제를 드림으로 시험을 이기고 새로운 영적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에서 믿음의 삶으로 돌아서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삶은 달라집니다.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라는 문장에서 ‘거주하였더라’는 히브리어(야샤브)입니다. 자리잡다, 잔류하다, 살다, 거주하다, 라는 뜻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완전히 거주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브엘세바에서 살았는데 천막을 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바치고 난 후에는 완전히 건물을 짓고 살게 됩니다. 천막생활을 치워버렸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떠나야 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야샤브는 이곳에 완전히 정착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엘세바’는 브엘과 세바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브엘은 히브리어(베에르)이고 돌에 글자를 새기다, 라는 뜻이고 세바는 히브리어(셰바)이며 맹세하다, 맹세로 묶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다시는 불신의 삶을 살지 않기를 맹세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맹세로 묶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인생이 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께 집을 지었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신앙이 되겠다는 고백이며 다짐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식을 하나님께 세우기만 하면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자 13세 여자 14가 되면 성인식을 치르게 됩니다. 이것은 이제 네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부모가 전혀 간섭하지 않고 죄를 지어도 부모가 책임을 지지 않고 본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이삭은 모리아의 산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통해 육신의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이제 육 적인 탯줄을 끊고 하나님께 영적인 탯줄을 붙여서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을 모리아 산에서 만들게 됩니다. 우리도 이제 이삭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깊은 영성의 단계까지 들어가는 체험이 있어야 힘들 때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탯줄을 끊고 하나님께 탯줄을 붙여 어렵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기도로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한편 아브라함이 이렇게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고 혼자 내려와서 브엘세바에 있는데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을 찾아오게 됩니다. 이 사람은 나홀의 명령을 받고 아브라함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창 22: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이 일 후에 라는 것은 이삭을 드리고 모리아의 산에서 내려온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이’는 히브리어(나가드)입니다. 호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언하다, 설명하다, 선포하다, 비난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전에는 감탄사 히브리어(힌네)가 있는데 한글 성경에는 빠져 있습니다. 이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맞은 편에 서서 선포하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야 아브라함아 보아라!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소리치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떤 사람이 가지고 온 소식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홀의 소식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온지 30년이 흐른 뒤에 이 사람이 찾아온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떠나올 때에 아버지 데라의 나이는 145세였습니다. 그 후로 60년을 더 살다가 205세에 죽게 됩니다.
그 후로 나홀은 하란에 머물게 되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온지 30년이 흐른 것입니다. 그런데 나홀은 하란에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나홀은 히브리어(나호르)입니다. 콧김을 뿜다, 콧김이 센, 힘있는 자, 라는 뜻입니다. 나홀은 30년 동안 하란에서 입김이 센 유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말 한마디만 해도 지역이 떠들썩 할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의 아들들이 12방백이나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사람의 이름들이 그 지역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지역을 맡고 있는 수장이라는 뜻입니다. 나홀의 아들들은 이미 12개의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힘있는 자들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홀의 아내 밀가는 히브리어(밀카)입니다. 왕후, 여왕, 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밀가는 왕후의 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이미 12방백의 수장인데 얼마나 극진 대우를 받으면서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살고 있는 여인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나홀에 대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동생은 이렇게 복을 받아서 잘살고 자식들도 잘되는데 당신은 어떤 복을 받았는지 말해보라! 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셨는지 하나님을 섬긴다고 이렇게 30년 동안이나 한 번도 고향에 찾아오지 않았는데 그럼 하나님이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한 번 말해봐! 라면서 비난하면서 힘을 다해 소리치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이삭도 모리아 산에 두고 왔지요. 천막을 거두고 지금 막 건물을 지으면서 살고 있지요, 자식도 잘 된 것도 없고 외적으로는 보여줄 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지요, 사라는 브엘세바에서 천막 생활하다가 고생만 죽 살 나게 하고 애굽 왕에게 빼앗길 뻔했지요, 블레셋 왕에게도 빼앗길 뻔 했지요, 이런 생활만 하다 보니 보여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도 인간에게 받는 시험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향을 나오고 친척을 멀리하면서 인생을 살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만나서 보면 안 믿는 친척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자식도 더 잘되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열심히 주님을 믿으면서 살았는데 아파트도 없고, 차도 별볼일 없고, 자식도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다 보니 안 믿는 친척들이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도 인간들에게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이 어떤 사람이 나홀에게 지시를 받고 찾아와서 비난을 늘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으면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비난을 하고, 소리를 치고, 수치를 주니 아브라함의 마음에 이 사람은 보기도 싫고 이름조차 기억하기 싫은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나홀의 인생은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름조차 더 이상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인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잘됩니다. 하갈과 사라와 그두라를 통해서 자식을 주십니다. 이렇게 점점 자식을 통해서 번성케 되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날이 갈수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약 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칭해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과 벗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숨기지 않고 모두 말씀하실 정도로 친분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눅 16:23-24)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미 음부에 있던 부자도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낙원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에 의해서 인간의 시험을 받게 되어 낙심은 되지만 이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약속하신 모든 복을 허락하시고 아브라함이 죽어서 까지도 자손을 통해서 이루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가 주님을 섬기다 보면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물질이 부족할 수 있고, 명예나, 지식이나, 자식들이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마지막 날에 왕 노릇 하는 존재로 세워주십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지금은 더 높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세까지 가서도 복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시간이 흘러 갈수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인간의 시험을 받는다 하더라도 말씀으로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실 복을 바라보시고 이미 주신 복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사시는 주님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