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장 히브리어 원어성경 설교 말씀은 이스라엘의 포로 해방 선언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은 말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한다고 했다. 성도는 예수님의 복음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야곱의 후손으로 큰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모세를 구원자로 세워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원죄에서 고통당하는 나를 구원해 주시는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 광야로 인도하여 시내 산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런 시내 산 계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이 있는 실로에 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데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마을마다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귀찮게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가나안 신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가나안 신과 같은 것에 매료되어 주일에 열심히 준비하여 교회에 나오는 것이 귀찮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방송으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꼭 교회에 나와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더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매료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이 있는 곳에 나와서 제사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편하고 쉬운 것을 찾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마을에서도 드릴 수 있다는 미혹에 빠져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하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할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편한 것을 찾다가 보면 교회 나오는 것이 싫어지고 귀찮아져서 신앙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복음 말씀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렇게 육체적으로 편안한 것을 찾다가 하나님께 진노 받아 징계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추구할 때는 육체가 힘들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고 말씀을 배워야 하고 시간을 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나에게는 더 영적으로 유익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셨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갈라져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죄악을 저지르면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처럼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앗수르 민족에 의해서 멸망시켜버렸습니다. 혼혈 민족이 되어 하나님 백성의 정통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북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남 유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왕들이 나왔습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 같은 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같은 극악한 왕도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남 유다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멸망을 시켜버렸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과 다른 점은 남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했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고 다시 회복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렘24:3-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나이다 하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열매를 보여주셨습니다. 좋은 무화과 열매와 나쁜 무화과 열매를 예레미야가 보았습니다.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 중에서 좋은 무화과를 선택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멸망을 받을 때 좋은 무화과를 선택하여 바벨론으로 이주시켜서 하나님이 잘 돌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무화과 열매와 같은 바벨론 포로들을 보호하셔서 그들의 마음에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들이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금도 좋은 무화과처럼 선택한 백성이 있습니다. 지금 이시간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가 바로 좋은 무화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고난의 풀무에서 나를 선택하여 주셔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원죄의 고통에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겨주셨습니다. 이제 때가 되매 다시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듯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물질의 고통과 질병의 고통과 영적인 문제에 부딪혀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고난의 풀무 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유다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풀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회복해주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회복해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아도 때가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고통받던 유다 백성도 칠십 년이라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되니 하나님은 예언하신 그대로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내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유다 백성에게 예언합니다. 이사야 39장에서는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40장에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해방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백성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힘들고 지쳐서 살고 있지만 죄악 가운데 고통스럽게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끝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도 바벨론에서 포로로 사는 것이 언제 끝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가 되니 고난의 끝이 왔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위로받으시고 그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1 נַחֲמ֥וּ נַחֲמ֖וּ עַמִּ֑י יֹאמַ֖ר אֱלֹהֵיכֶֽם׃
나하무 나하무 암미 요마르 엘로헤켐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택받은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식언하지만 하나님은 식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로 고통을 당했지만 이제는 끝이 났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위로하라’ נַחֲמ֥וּ(나하무 5162 동사 피엘 명령법 남성 2인칭 복수) 후회하다, 위로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합니다. 위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살았던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통 중에 살았던 것을 유다 백성들은 후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았던 것을 후회하면서 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피엘 강조능동 동사를 사용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해서든지 위로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백성을 반드시 위로해야 합니다. 포로로 살았던 삶을 후회하여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어떻게 위로가 될까요? 우리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처럼 원죄의 죄악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럽게 살았던 인생입니다. 육적으로 편안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속사람인 영혼은 너무나 괴롭게 살았습니다.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했으니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영적으로는 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은 평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산상수훈 팔복에서 말씀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고통 중에 괴로워하고 애통했습니다. 육체의 고통도 있지만 속사람인 영혼의 고통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애통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속사람의 원죄 때문에 애통해하고 괴로워하던 우리들에게 복이 있는데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단어가 יְנֻחָמוּ(예나하무)입니다. 우리는 원죄 가운데 고통당하여 애통해 할 때 주님이 위로를 해주십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 주님이 위로해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으니 이 시간 세상의 육적인 고통과 고난과 질병과 물질의 부족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과 속사람의 영혼이 아직도 원죄 가운데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런 심령들에게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빨리 주님의 위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원죄에서 회복하고 육체적인 고통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심으로 해결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사40: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2 בְּכָל־חַטֹּאתֶֽיהָ׃ דַּבְּר֞וּ עַל־לֵ֤ב יְרֽוּשָׁלִַ֨ם֙ וְקִרְא֣וּ אֵלֶ֔יהָ כִּ֤י מָֽלְאָה֙ צְבָאָ֔הּ כִּ֥י נִרְצָ֖ה עֲוֹנָ֑הּ כִּ֤י לָקְחָה֙ מִיַּ֣ד יְהוָ֔ה כִּפְלַ֖יִם
다베루 알 레브 예루솰라임 베키르우 엘레하 키 말르아 체바아 키 니르차 아오나흐 키 라케하 미야드 아도나이 키펠라임 베콜 하토테하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라고 합니다. 그것에게 외치는데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하라고 말합니다. 그럼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고 외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닿도록 외치라는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새롭게 하나님이 세우시는데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우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닿도록 외치셨습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면서 크게 소리 질러 말씀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하나님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우리의 원죄와 자 범죄를 모두 속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절규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유다 백성이나 선택받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노역의 때가’ צְבָאָ֔הּ(체바아흐 6635) 전쟁, 군대, 무리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절규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여 노역의 때가 끝났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임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 노역의 고통이 끝나게 될까요?
시4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만군이라는 단어가 צְבָאֹ֣ות(체바오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워주시니 영적 고통이 사라지고 육적인 괴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셔서 그 안으로 환난 날에 숨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받았느니라’ לָקְחָה֙(라케하 3947 동사 칼 완료 여성 3인칭 단수) 취하다, 택하다, 옮겨가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원죄와 자 범죄가 사함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절대 나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자신들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께 벌을 배나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원죄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칼 능동태 동사를 사용한 것은 예수님이 아무런 죄가 없지만 유다 백성의 죄와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벌을 배나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료 시제는 예수님이 유다 백성과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죽었기 때문에 모든 죄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 대신 벌을 대신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잘못된 죄악의 길로 갔습니다.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켜서 벌을 십자가에서 배나 받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원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 범죄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가져가셨습니다. 그럼 지금 주님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시고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원죄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죄인이 있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회복되고 원죄에서 해방되어 자유 함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벌을 배나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 범죄도 주님이 담당하셨으니 우리는 매일같이 주님께 자 범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마음에 평안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나의 모든 죄악들과 세상에서 고난받는 풀무 불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존귀한 자들과 함께 몫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천국에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벌을 받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 시간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안에서 주님을 통해서 위로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