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헬라어성경 설교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 그 후에 일어난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에 다시 배가 고파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예수님을 세상 임금 삼으려고 찾았습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엿보려고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죄악에 빠져 있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에 예수님을 억지로 세상 임금 삼으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임금 삼으려 하고 있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 그 후(요6:14-15)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로마의 압제 하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로마의 황제를 숭배해야 하며 육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영육으로 힘들고 지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사상으로 가득 찼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아는 자신의 육적인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윗 때의 영광을 회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로마 군대를 자신의 영토에서 몰아내어 육적인 쉼을 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해방자로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원죄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할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적인 해방 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초라했고, 처량했으며, 육적인 권세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고 더 나아가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에 못 박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재 어떤 임금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나의 물질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실 임금을 기다립니까? 영혼을 구원해 주실 임금을 기다립니까? 교회 나오면 축복받아 사업이 잘되어 돈을 많이 벌고, 직장에서 승진하여 권력과 권세를 얻는 왕을 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죽을 원죄에서 해방시켜 줄 구원자 메시아를 원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왕을 기다리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벳새다 근처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오천 명에게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한은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려는 의도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입에 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한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게 했던 것처럼,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는 분과 매치를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을 따르던 오천 명이 굶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먹이는데 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어른의 보리떡과 물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남자 13세가 되면 성인이 되어 율법에 매이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율법에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그렇다면 한 아이의 보리떡과 물고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율법에 매이지 않은 백성들에게 영의 양식을 제공해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주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리’ 히브리어(세오라 8184) 보리,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사아르 8175) 떨다, 전율하다, 두려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이적을 나타내니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떨면서 몸에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두려워하면서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율법에 얽매이지 않은 자들은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이적을 통해서 영의 양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은 영의 양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의 이적을 보면서 어떻게 전율을 느끼고 있습니까?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주신 생명의 떡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런 자들은 율법에 매이지 않은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을 먹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은 세상적인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신 분으로 생각하고 따르게 됩니다.
‘물고기’ 히브리어(다그 1709) 물고기,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다가 1711) 수가 늘어나다, 번식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물고기 두 마리는 큰 생선이 아닙니다. 멸치처럼 아주 작은 물고기입니다. 그런데 이 물고기 속에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번식과 증가의 기적을 예수님이 만드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충족시켜주실 메시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율법에 매여 있는 성인과 같은 자들은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 기적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원죄의 죄를 끊어줄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풍성하게 차고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의 반응이 두 갈래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 번째는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삼으려는 사람입니다.
요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신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 옆에만 붙어있으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의 초점은 무엇에 맞추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표적을’ 헬라어(세메이온 4592) 표적, 표시, 증거,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헬라어(세마) 표시, 예고,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지 육적으로 굶주려있는 백성들을 먹이시기 위해서 표적을 행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현재 따르고 있는 무리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굶주린 영혼을 채워줄 메시아라는 사실을 예고하시고 있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육적인 표적만을 보고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들은 어떤 표적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교회에 나왔더니 복 받아서 세상에서 육적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이런 표적을 보고 있습니까? 주님은 이런 표적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영원히 죽어서 멸망 받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보고’ 헬라어(에이도 1492 VPPANMP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복수) 보다, 알다, 경험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왜 이런 기적을 베풀고 있는지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예수님이 베풀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에만 관심이 쏠려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바로 이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현재 이들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육적인 배고픔을 해결해 주니 자신들의 메시아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배고픔을 해결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이 육적인 배고픔과 세상에서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의 욕심과 정욕을 채우기 위한 믿음은 아닙니까?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이와 같이 영적인 배고픔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영혼의 굶주림에서 해결해 줄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육적인 것을 채워주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의 믿음은 거짓된 믿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이 사라지자 이들은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주님은 이들에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구나! 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영적인 메시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표적을 나타내셨던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이들은 어제 배고픔을 해결 받고 금방 육적인 배고픔이 오니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배부른’ 헬라어(코르타조 5526 VIAPP2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2인칭) 배불리다, 먹이다, 살찌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어제 따르는 무리들에게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었고 하루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육적인 배고픔을 해결 받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니 배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주님은 너희가 표적을 보고 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육적인 떡을 먹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육적인 만족감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주님만 있으면 모든 일들이 만사형통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적인 은혜는 필요 없고, 오직 세상에서 권력과 물질의 풍요만 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정욕을 채웠기 때문에 만족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만족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권력 때문에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습니까? 육적인 정욕이 채워지면 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배부른 것 때문에 따르고 있습니까? 주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삼으려는 사람입니다.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목적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떡을 먹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현재 내가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표적을 보고 있습니까? 육적인 표적이 아니라 영적인 표적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무리들이 안타까워 영적인 생명의 떡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가는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요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께서 영적인 생명의 떡을 말씀하시고 난 후에 주님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이들은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혹시 자신을 세상에서 영웅으로 만들어 줄 주님을 찾고 믿지는 않습니까? 물질을 많이 주셔서 영웅 되게 하시고, 사업이 잘되어서 남들 위에 있게 하시고, 권력을 주셔서 남들을 호령하게 하시는 이런 주님을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번지 수를 잘못 찾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영혼을 살리시고 원죄에 죽었던 자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세상에서 영웅이 되려면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영웅을 만들어 주는 단체와 개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 가면 더 빠르게 세상에서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면, 세상의 재벌을 만들어 주는 단체에 가서 공부하면 됩니다. 권력을 갖기를 원하면 그런 단체에 들어가서 공부하면 됩니다. 꼭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절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요6:67-68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이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라고 대답합니다. 열두 제자들은 영생의 임금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영웅을 만들어 줄 줄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자신들에게 육적인 충족감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혼의 충족을 채워주신다고 말씀하니 선택받은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과 함께 남게 됩니다. 그럼 육적인 배부름의 표적만 본 사람들의 행동은 어떻습니까?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에서 영웅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떠나가시니라’ 헬라어(아나코레오 402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돌아가다, 물러가다, 떠나가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을 세상의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이들을 돌아서 떠나가셨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메시아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육적인 문제를 구원할 자로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떠나서 이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게 다시는 오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내가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고, 건강해지고, 돈 많이 벌고, 자녀가 잘 되고, 남편 사업이 잘 되고, 직장에서 진급이 빨라지는 것 때문에 주님을 임금 삼아 신앙생활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나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생명의 떡인 복음을 나에게 주시는 영적인 메시아로 임금 삼아 믿음생활하려고 하십니까?
이제 우리는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임금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만 바라보면서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으로 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육적인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으면 떠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육적인 배고픔을 채워주지 않는다고 하니 떠났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배고픔을 채워주시는 분으로 깨달은 자들은 남았습니다. 육적인 표적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임금으로 삼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임금으로 모셔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세상에서 영웅이 되려고 믿음 생활 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주님을 높이고 찬송하기 위해서 주님을 임금으로 삼았습니다. 이 마음이 변치 않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