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2장 새벽예배 설교문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 기도하는 요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칠 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풍랑을 만나게 해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여 회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도망치면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고 결국 고통스럽게 살다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Ⅰ. 물고기 뱃속에서의 요나의 기도 2:1-9
하나님과 그의 종 요나는 분노 가운데서 결별했었다. 그리고 그 분쟁은 요나 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즉 그는 자기 직무를 피하고자 다른 나라로 도망쳤던 것이다. 이제 화해가 하나님 편에서 시작되고 있다. 앞 장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을 보았다. 즉 구덩이로 내려가는 그를 구원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본 장에서 우리는 요나가 하나님께로 돌이켜 자기 직무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1) 그가 기도한 때(1,2절) : (그때) 요나가…기도하여 가로되(한글 개역에는 ‘그때’가 빠져 있음-역주). 즉 고난 중에 있을 때 죄의식을 가지고 그는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심으로 구원의 소망을 품게 되었을 때 그는 기도하였다.
(2) 그가 기도한 장소 : 물고기 뱃속에서. 어떤 장소든 기도하기에 적합치 않은 장소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에 던지시든 우리는 하늘을 향해 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믿음으로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어디로 가든 제단을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그 제단은 제물을 거룩케 하며 자신은 산 성전이 된다. 사람들이 우리로 서로 교제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요나는 현재 바다 밑바닥에 덜어졌으나 깊음 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3) 그가 기도한 대상 : 그 하나님 여호와께. 전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으나 이제는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에게로 돌이키고 있는 것이다.
(4) 그의 기도의 내용 : 그는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자기 마음의 변화와 그리고 그의 흉중에 있었던 믿음과 죄의식, 소망과 두려움간의 갈등에 대해 회고를 하고 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그리고 그 부르짖음은 헛되지 않았다.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즉 그의 환난 중의 소리를 들으셨다. 그는 지금 얼마나 낮은 곳까지 떨어진 것인가(3절).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실제로는 선원들이 그를 던졌으나 그는 하나님의 손이 그를 그곳으로 던지신 것으로 보았다. 그는 매우 두려운 상황에 떨어졌다. 큰 물이 나를 둘렀고. 바다의 해협과 물의 근원이 사방에서 그를 둘렀다. 즉 그에게 있어서 바다는 항상 만조였다.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이 말은 요나가 시편 42:7을 인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원문에는 시편의 다윗의 간구와 문자적으로 같다. 요나의 경우처럼 어떤 사람의 처지가 유례없을 만큼 기막힌 가운데 처하게 될 경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조차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내 위에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큰 위로가 된다.
우리가 걷는 환난의 길이 전인미답의 길은 아니다. 5절 말씀 역시 같은 의도로 기록된 것이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이것도 또한 시편 69:1의 다윗의 호소에서 인용해온 것이다.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그는 매우 단단히 붙잡혔다(6절).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즉 영원히 그를 막는 것 같았다. 그는 절망 가운데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물이 그를 영혼까지 둘렀을 때, 그의 영혼이 그의 속에서 피곤케 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못된다. 그 자신의 행위가 가져다 준 환난에서 어떻게 구원받을 소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다’고 말하였다.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처지에 떨어지는 수가 있다.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할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불신앙에서 연유된 추측일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에서 회복하여 위로가 될 만한 구원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믿음은 두려움과 불신의 추측을 통제하며 바로잡아 준다. 죄의식과 믿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있었으나 믿음이 마지막을 장식하였으며 승리자로 나타났다. 요나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내가 다시 주의 전을 바라보리라’고 말하게 하였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회복에 대해서 확신하기를 원했을 때 그는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사 38:22)라고 물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유일한 이유인 양 그와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요나도 여기서 마찬가지로 자신이 다시 성전을 보게 될 것을 소망하고 있다. 요나는 매우 겸손하게 말하였다.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에 대해서 깨달은 자답게 그는 감히 하나님의 전에 거할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허락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 말씀은 고난 가운데서 요나가 한 서원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서원한 것을 갚겠다고 말하고있는 것이다(9절). 하나님께서 그를 추적하신 죄명은 ‘여호와의 낯을 피한’ 것이었다.
그는 결코 다시는 다시스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며 다시금 성전을 바라보며 힘에 힘을 얻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피곤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은총을 기억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은혜롭게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절). 비록 그 기도는 가장 낮은 깊음 속에서 한 것이지만 가장 높은 하늘에 상달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절). 어떤 이들은 그가 육지에 토해졌을 때 이 말을 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즉 구덩이의 빗장에서부터 건지셨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가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 믿음으로 이 말을 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즉 “주께서는 구덩이에서도 나를 살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주는 구덩이에서 내 생명을 건지실 수도 있으시며 또 건지실 것이니이다.”
따라서 그는 마치 그것이 이미 되어진 일인 양 굉장한 자신을 가지고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내 생명을 건지셨나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우리에게 부활과 생명이 되실 것이며 우리의 생명을 멸망에서, 즉 무덤의 권세에서 구속하실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8절).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이방의 선원들이 했던 것처럼 구원과 위로를 기대하고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린’ 자들이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복에 대해 등을 돌려대는 자들인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한 요나처럼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 역시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 즉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자기의 직무를 제대로 행하기만 하면 받게 될 은혜를 버린 자들이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면 그의 은혜의 하나님은 찬송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약속을 자신의 영혼으로 엄숙하게 맹세하고 있다(9절). 요나는 감사의 희생과 함께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말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이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림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반드시 자기의 서원한 것을 이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아마도 그의 서원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다면 비록 니느웨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시고자 하시는 곳을 기꺼이 가겠노라는 것이었을 듯싶다. 그는 하나님을 그 백성의 구원자로 인정함으로 끝을 맺고 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시 3:8). 요나의 경험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도록 사람들을 격려하여 줄 것이다.
Ⅱ.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 냄 2:10
요나가 갇힌 곳에서 풀려나고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은 고통 가운데서 기도하는 불쌍한 참회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한 본보기로 간주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영원히 그와 다투지 않으실 것이다. 그의 풀려남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표이자 상징인 듯이 보인다. 그는 우리의 죄가 일으킨 폭풍을 잠잠케 하시고자 죽으셨으며 장사지낸 바 되셨다. 그리고 요나처럼 우리의 빚 때문에 죄수가 되셔서 밤낮 사흘을 무덤에 계셨다. 그러나 그는 널리 이방인에게까지 회개와 죄의 사유를 선포하기 위하여 사흘 만에 무덤에서 나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