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Jer) 8장 주석 성경 설교문] 여호와께 심판 당할 유다 백성(렘8:1-22)

예레미야 8장 주석 성경 설교문은 남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여 심판 당할 위기에 처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 유다 백성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경고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결국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했다.

Ⅰ. 임박한 심판의 참상 8:1-3

본문에는 갈대아 군대가 그 땅에서 행할 무서운 파괴에 대해 좀더 설명되고 있다.

(1)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항상 안식되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의 유해가, 왕들과 방백들의 뼈가지도 널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다'(시 141:7). 죽은 자가 매장되지 못하리라는 경고가 앞 장 마지막 부분에서 나왔으나,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매장되었던 자들의 묘가 적군의 악의로 인해 파헤쳐지는 것을 본다. 묘안에 있는 보물을 찾고자 하는 저희의 탐욕은 묘안에 있는 보물을 찾고자 하는 저희의 탐욕은 ‘유다 왕들의 뼈와 방백들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의 묘소의 위용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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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뼈 역시 파헤쳐져 내던져졌다. 야만적인 민족들은 때때로 저희가 정복한 자들에게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승리를 과시하는 죄를 지었다. 묘소에서 파내어진 그들은 그들이 우상으로 섬기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일’ 것이다(2절). 그들이 구애하였던 하늘의 이 빛들 아래서 저희의 죽은 몸들은 널려지고 썩게 될 것이었다.

(2) 이전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으나 산 자는 이제 죽음을 택하고자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죽음에 어떤 즐거운 것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너무도 지겨우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할 정도로(3절) 장래에 대한 전망이 너무 암울하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 행복이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평안에 대한 완전한 절망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쫒겨나 각처에 살아남아 있는(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자들로, 일부는 적국의 죄수이며 다른 일부는 이웃 나라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자이고, 또 다른 일부는 저희 나라에서 이리 저리 도망하며 방랑하는 자들이다.

Ⅱ. 회개치 않는 유다를 향한 책망 8:4-12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회개치 않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해 주도록 지시받고 있다. 그들은 무한하신 지혜자께서 저희를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취한 모든 방법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와지려고 하지 않는 지각없는 백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1) 그들은 이성의 명령에 유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의 일에 있어서는 다른 일에서 저희가 보여주었던 현명함으로 행하려 하지 않았다.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신다(4,5절).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만일 사람이 땅 바닥에 넘어지고 진흙 속에 빠지면 할 수 있은 한 재빨리 다시 일어서려고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바른 길에서 벗어나겠느냐? 아무리 주의 깊은 여행자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느니라. 그렇지만 그것을 깨달으면 곧바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다른 모든 일에서 사람들은 이와 같이 행하는데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저희가 죄에 빠졌을 때 속히 회개함으로 다시 일어서려 하지 않음은 어찜이뇨? 저희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희 실수를 바로 잡고 고쳐나가려고 하지 않음은 어찜이뇨?” 죄는 뒷걸음질치는 것 즉 바른 길에서 물러나 곁길로 갈 뿐만 아니라 정 반대 방향의 길로도 들어서는 것이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벗어나 멸망으로 이르는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죄인은 끝없이 방황할 뿐만 아니라 멸망으로 향하는 길로 달려 나아간다. 유혹자 사단은 사람들을 죄로 이끌며 죄 가운데 그들을 단단히 묶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희 스스로 죄의 포로가 되는 것을 돕는다.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저희의 죄에 대하여 그들이 하는 변명은 거짓임에도, 그들은 그 미혹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돌아오기를 거절한다.’

(2) 그들은 양심의 명령에도 유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양심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곰곰히 반성하는 우리의 이성이다(6절). 선지자는 그의 설교가 그들에게 어떠한 효과를 주었는지 알아보고자 귀를 기울였다. 죄인들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친히 귀를 기울이셨다. 회개를 기약하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들으시면 참으로 기뻐하실 터이었다. 그러나 이 기대들은 어긋났다. 즉, 그러하리라고 생각하였건만 ‘그들은 정직을 말하지 아니했다.’

하나님께서는 저 민족적인 악을 회개하는 어떠한 사람도 찾아보실 수 없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저희의 공적인 죄의 무게를 더는데 도움이 되었을 터이었다. 그들은 회개를 향하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그들 주에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라고 말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결연히 저희의 죄 가운데서 행하기를 계속하였다. 그들은 고삐로 제어 당하는 것을 멸시하는,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였다.’

(3) 그들은 섭리의 명령에도 유의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소리도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다(7절). 그들은 자비의 의미도, 고난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셨을 때 베푸신 은혜를 보람있게 이용할 줄을 몰랐으며 성에서 그의 소리가 퍼질 때 받은 책망을 유용하게 만들 줄도 몰랐다. 인간보다 열등한 생물들에게는 슬기가 있다. ‘공주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안다.’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 등 다른 철새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기온이 변함에 따랄 이들은 자연적인 본능에 의해서 저희의 서식처를 바꾼다. 그들은 봄이 옴과 동시에 오며 겨울이 다가오면 보다 따뜻한 기후의 지방으로 날아간다.

(4) 그들은 기록된 말씀의 명령에도 유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8절). 그들은, ‘저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고.’ 율법서와 그것을 해석하는 자들이 있으므로 저희가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한다(신4:6). 그러나 이 모든 자에 대한 저희의 자부심은 근거 없는 것이다. 그들이 선용하지 않을 바에야 율법이 없었던 편이 그들에게 더 나았을 것이었다. 율법을 처음 기록하였고, 또 이제는 그 율법에 대한 해석을 기록하고 있는 ‘서기관의 붓’은 헛되다.

갈라디아서 3장 율법과 그리스도 성경말씀

그런데 그들은 저희 가운데는 지혜로운 자들이 있다고 말하였던 듯하다. 이에 대한 대답이 나오고 있다(9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이는 그들이 저희의 지혜를 선용하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황 중에 잡힐 것이다.’ 즉, 저희의 온갖 지혜가 저희로 하여금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걷지 못하게끔 막지 못하였다. 그들은 저희의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도다.” 지혜로운 체하는 자들,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분명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기에서 그들을 두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가족과 재산을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10절).

“그들이 포로로 잡힐 때,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저희의 승전군들이 그들에게서 그들의 전지를 빼앗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줄 것이라.” 그리고 모든 지혜로운 체하는 것과 성결한 체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다. 그들이 징벌받을 때에, 그리고 그 땅의 사악함이 심문에 부쳐질 때에, 그들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그 땅을 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심판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신다(10-12절). 그들은 이 세상의 부를 탐하였다.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쳤다(미 3:11).’ ‘다 거짓을 행하였으며’ 한 쪽을 바라보면서 속셈을 단 데에 두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성실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은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빌붙어 비위를 맞췄다. 그리고 국가의 병을 고치는 의사인 체하였으나 적절한 치료를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심상히 고쳐주며’, “평강하다, 평강하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으니,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말로 저희의 두려움을 무마시키면서 완화책을 써서 환자를 죽게 만들었다. 그들은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럴 정도로 그들은 도의심과 지조를 완전히 망각하였다.

Ⅲ. 유다가 받을 진노의 심판 8:13-22

(1) 하나님은 이 죄 많은 백성의 파멸을 경고하신다. 그는 그들을 오래 참으셨으나 그들은 갈수록 더 그의 진노를 야기시키고 있다. 그들은 저희에게 위안이 되는 모든 것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13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저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13절).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남용된 자비는 몰수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몰수하시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내가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17절). 곧 불뱀, 갈대아 군대이다. 그 뱀들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다.’ 즉 그들은 다른 본성을 지닌 뱀들인 것이다. 그들은 귀머거리와 같아서 저희 귀를 막고 술사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2) 이와 같은 재난의 압박 하에 백성들은 절망에 빠진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던 자들은 이제 재난이 저희에게 닥쳤을 때 소망도 없게 되었으며 그 재난에 대항할 지모를 짜낼 마음도, 또한 그것을 참고 견딜 마음도 없게 되었다(14절).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비록 그들이 결국에는 거기에서 멸절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기대할 수가 없었지만 성 밖에서 곧장 멸망당하기보다는 들어가서 거기서 가만히 있다가 멸망한다. “거기에서 아무 것도 하려 하지 말고 불평도 하지 말라. 불평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은 음울한 침묵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노하셨음을 알았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잠잠케 하시며 놀라도록 우리를 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우리에게 마시우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맞서 싸우시는데 우리가 우리의 운명과 다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변명의 말 한마디 할 수 없게끔 그렇게 가혹하게 다루셨었다는 듯이 하나님과 언쟁하려는 것 같다. 마침내 그들은 재난 가운데 펼쳐진 하나님의 손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를 진노케 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2) 그들은 자기들로서는 적들을 감당하기 벅참을 알았다(16절).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말탄 군대의 무쌍한 힘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전국에 퍼졌으며 모든 사람들은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진동하였다.’ 그들이 이르러. 그들을 대항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거민을 삼켰다.’

3) 그들은 구원에 대한 기대가 좌절됨으로써 절망하였다.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15절). 곧 국외로부터의 좋은 소식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고치심을 입을 때와 나라의 번영을 바랐지만, 그러나 보라, 환란 곧 전쟁의 놀라움 뿐이라.” 저희의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외쳤었다. 그들은 오랫 동안 기대하였으나 구원은 오지 않았다(20절).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즉, 많은 시간이 흘렀다. 추수기와 여름은 일년의 한 절후들이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이와 같다.

레위기 24장 등잔대와 진설병 규례 성경말씀

“한 해가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지나며 한 전투가 끝나고 또 다른 전쟁이 계속되어도 우리의 고난은 여전하며 어떠한 구원도 이르지 않았도다.”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행동하기에 적합한 시기인 여름과 추수기는 지나가 버렸으며 춥고 음울한 겨울이 왔다. 그들은 저희 자신의 빛 앞에 가로막고 서서 스스로의 불행을 초래하고 있으며 저희 자신의 문에 빗장을 걸고 있다. 그리하여 아직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

4) 그들은 저희에게 평강을 보장해 주리라고 믿었던 것들에게 기만을 당하였다(19절). 딸 내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로다. ‘심히 먼 땅에서’ 거하는 자들, 먼 나라에서 그들의 소유를 취하기 위해 온 외적들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이것은 그들이 오랫 동안 의지해 온 두 가지 사항이었다. 즉, 첫째로, 저희 가운데에 하나님의 전,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징표가 있다는 것이며, 둘째로, 저희에게는 다윗의 집안의 왕위가 있다는 것이다. “시온의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리고 시온의 하나님이 시온의 왕과 그 왕국을 보호해 주시지 아니한가?” 그들의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는 즉시 대답하신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3) 여기에 예레미야의 애곡이 계속된다. 그는 자기 나라의 멸망을 눈으로 목도하였다.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18절). “나의 슬픔에 대해서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모색하지만 슬픔을 완화시키려 하는 온갖 노력은 도리어 슬픔을 가중시킬 뿐이라.” 때로 슬픔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도리어 더욱 더 강하게 솟구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여기 이 선지자와 같이 매우 선한 사람의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그의 영혼은 위로받기를 거절하였으며 이같이 말하고 있다(21절).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내가 슬퍼하는 것, 조객과 같이 곡을 하는 것은 그들의 죄,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불행으로 인해서이라. 그로 인해 내가 놀라움에 잡혔으며, 어느 길로 가야할지를 알지 못하노라.” 은혜로운 심령은 공공의 안녕을 염려하는 심령이며, 부드러운 심령이며, 슬퍼하는 심령일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언했었다. 그리고 그의 예언이 참인지 의심받아 온 터였지만 그의 예언이 참으로 증명되었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았으며 선지자로서의 자신의 명성보다는 조국의 행복을 중시하였다. 그의 소망은 참으로 적은 것이었다(22절).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병들어 죽어 가는 왕국을 치유하기에 적절한 약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약을 처방해 줄 만한 충실하고 능한 손이 있지 아니한가?”

이 말씀은 저희의 질병이 치료 불가능한 그 모든 책임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다는 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 확실히 거기에는 유향과 의사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고 치유시켜 주실 수 있다. 길르앗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바로 저희 자신의 땅 안에 있었다. 저희에게는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선지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도움으로 저희는 회개에 이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저희의 파멸은 방지될 수 있었다. 저희에게는 또한 방백들과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들의 일은 나라를 개혁하고 저희의 불만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희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음은 어찜인가? 확실히 그것은 유향과 의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약바르기를 용납지 않고 치료책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의사와 약제 모두가 준비되었지만 환자는 제멋대로 고집을 부렸고 규칙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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