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장 설교말씀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말씀이다.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멋대로 인생을 살아가니 하나님은 징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원인은 세상 백성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의지하므로 하나님께 심판받게 되었다.
Ⅰ.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책망 2:1-8
(1)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이 예레미야에게 주어졌다. 사역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비교하여 보고 그것들이 서로 일치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할 뿐 아니라 “주께서 나를 보내사 이렇게 말하게 하셨다”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그는 이제 즐겁게 은둔 생활을 하며 율법을 공부하던 성읍 아나돗을 떠나 번잡한 성읍 예루살렘에 가서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의 귀에 대고 외쳐야 했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라. 저희에게로 가까이 가서, 귀를 막고 살아온 자들의 귀에 대고 외치라.”
(2) 그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는 저희에게 가서, 오랫동안 그토록 자비롭게 대해 주신 하나님을 저버린 저희의 엄청난 배은 망덕을 비난해야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오래 전 그들이 처음 한 민족을 이루었을 때 베푸셨던 은혜를 상기하게 하신다(2절).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너로 하여금 그것을 기억하게 하겠노라. 네가 선하게 되도록 그 기억을 새롭게 하겠노라. 나는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을 잊을 수 없노라.”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자랑할 만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하나님께 보인 사랑이 적은 것이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었을 때,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었을 때, 그들이 홍해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그들이 시내산 밑에서 하나님께 언약했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지키고 복종하겠다”고 말한 것이 바로 ‘저희 소년 때의 우의와 결혼 때의 사랑’인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듯이 보여졌을 때 그는 “실로 그들은 나의 백성이요, 나에게 충성할 것이며, 거짓되지 아니하는 자녀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저희 소년 때의 우의’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타났었다.
① 그들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지시를 따랐다. 40년 동안 ‘광야에 하나님을 좇아 지냈으며’, 비록 그곳이 ‘씨 뿌리지 못하는 땅’이었을지라도 그가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믿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 받으셨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종종 그의 제자들을 질책하셨으면서도, 그와 계속하여 함께 있은 것을 칭찬하여 그들을 인정하신 것과 같다(눅 22:28).
② 그들은 저희 가운데에 성막을 세웠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대하여 거룩하였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영으로 시작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상기시키사 저희로 하여금 육으로 끝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③ 혹은 이 말씀은 저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후에 이 말씀을 다시 언급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호 11:1).
첫째,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특별히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산 중 첫 열매’이었고 그가 이 세상에 세우신 첫 교회이었다. 그렇지만 완전한 추수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부터 해야 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들과 혼인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는 그의 문제가 되었으며, 그들의 적은 곧 그의 적이 되었다(출 23:22).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와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 백성을 타락시키고자 하며, 여호와께 거룩한 백성을 그 거룩함에서 떨어지게 하는 자, 브올의 일로 미디안을 치시는 여호와(민 25:17,18)를 증거하는 자를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대적하셨다.
셋째, 그는 강한 손과 크고 두려운 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신 4:34). 그리고 자비로운 손과 많은 보살핌으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광대한 황야를 저희로 하여금 통과케 하셨다(6절). 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그들은 40년 동안 행보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셨다. 그뿐 아니라 거기에서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상(床)을 베푸셨다'(시 23:4,5). 그리하여 그들에게 구름으로부터 떡을 내주셨고, 바위로부터 마실 물을 내주셨다.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은 몸에 위험이 있을 때나 영혼에 위험이 있을 때나, 이 세상이라고 하는 광야를 통하여 안전하게 인도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넷째,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에 정착시키셨다(7절).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곧, “내가 너희를 갈멜 땅으로(원뜻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인도했노라.” 갈멜은 특별하게 풍요로운 땅이었다. 가나안은 드넓은 옥토였다(신 8:7).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식과 은혜라고 하는 수단을 주셨고 그와 교제할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이 8절에 암시되어 있다.
2)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배은 망덕을 책망하신다(4절).
① 그는 그들에게 자신에게서 어떠한 불의함이나 무자비함이 있었으면 말하라고 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을 버린 이유를 제시하도록 분명히 요구하신다(5절).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너희는 하나님이 가혹한 주인이라고 여기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린 너희가, 그 규례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너희가 부딪쳤던 낙담과 실망은 결코 하나님 때문이 아니요, 너희 자신들 탓이었느니라. 그의 계명의 멍에는 쉽고 그것을 지키면 커다란 상이 있느니라.” 비록 그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실지라도 그는 우리에게 잘못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불의는 우리에게 있다.
②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에게 불의하고 불친절한 것을 책망하신다. “저희가 나를 떠났도다. 저희가 나를 멀리 떠났도다.” 그들은 무익한 것, 즉 우상을 좇았다. 그들은 우상 숭배와 더불어 보든 사악한 행위를 끌어들였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저희 자신을 더럽힘으로써 그 땅을 더럽혔다(7절). 그곳은 하나님의 땅, 거룩한 당이었으며, 임마누엘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을 가증스럽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버린 후 그들은 다시 그에게로 돌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백성도 제사장도 그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나타내지 않았으며, 그의 은총을 회복하고자 하는 어떠한 열망도 드러내지 않았다.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고 말하지 않았으며(6절), 제사장들도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고 말하지 않았다(8절).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도 그 지식을 얻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율법을 다루는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의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 맡은 바 양무리들을 범죄로부터 지켜야 할 사역자들 자신이 범죄의 장본인이었다.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거짓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맞섰다.
Ⅱ. 하나님을 버림 2:9-13
선지자는 여기에서 그들의 비할 데 없는 변덕스러움과 우둔함을 보여 주고 있다(9절).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하나님은 죄들을 징계하시기 이전에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그들과 변론하신다. 이제 하나님은 ‘저희 열조들의 유전을 받아 헛된 변론을 하는 자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후손’, 즉 모든 세대에 있어 저들의 전철을 밟는 자들과 변론하신다.
(1) 그는 그들이 모든 민족들의 관습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음을 보여 주신다. 그들이 저희의 참 하나님에 대해 했던 행동에 비하면, 그들의 이웃 민족들은 자신들의 거짓 신들에게 보다 확고하고 충실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깃딤 섬, 헬라, 유럽의 여러 섬들과 좀 더 문명화되고 지식 수준이 높은 나라들, 그리고 게달의 현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이웃 민족들에게서 저희의 신을 바꾼 민족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신이 비록 나무나 돌로 만들어졌을지라도 그들은 은이나 금으로 만든 신과 바꾸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살아계신 참 하나님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저희의 신에 대해 충실하였다. 물론 우리는 그들을 청송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저희의 하나님을 바꿀 아무런 요인도 없는 유일한 민족, 그러면서도 저희의 하나님을 바꾼 유일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질책하기 위하여 마땅히 강조되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우상 숭배자들의 열의와 집념은 자기 신앙에 냉담하고 꾸준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이 상식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음을 보여 주신다. 즉 그들은 자신들에게 나쁜 것으로 바꿈으로써 해로운 교환을 하였다.
1) 그들은, 자신의 영광을 저희의 성막에 나타내심으로써 그들을 참으로 영광스럽게 만드셨던 하나님을 떠났다.
2)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선한 것도 해 줄수 없는 신들, 다시말하여 예배자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신들을 가까이 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들의 죄와 어리석음은 하늘조차도 놀라와할 만한 것이다(12,13절).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이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이 백성의 태도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① 언제나 이성을 따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이 대단히 불합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② 우리의 창조주에게 행해진 그와 같은 불경과 경멸에 모든 사람이 거룩한 분노를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내 백성, 내가 이제까지 가르쳐 온 백성이 두 가지 큰 악을 행하였나니, 곧 배은 망덕과 어리석음이라. 그들이 저희의 의무와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도다. 그들은 나, 곧 풍성하고 끊임없이 공급하는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렸도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의 원천이시다(시36:9). 그분 안에는 은혜와 힘이 온전히 풍성하게 있으며 우리의 모든 근원이 그에게 있다.
그는 우리에게 있어, 은총의 선물을 넘치게, 항상 넘치게 주시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속였다. 그들은 헛된 거짓을 위하여 저희에게 주어진 자비를 버렸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기 위해 큰 수고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물은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였다. 그들이 갈증을 채우려고 웅덩이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그것이 단지 진흙과 수렁과 고인 호수의 더러운 쓰레기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우상 숭배자들에게 있어 저희가 섬기는 우상은 바로 이와 같다.
만일 우리가 어떤 피조물들, 즉 부나 쾌락이나 명예 같은 것들을 우리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기쁨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그것을 파고 채우기 위해 애쓴다 해도 결국 그것은 한낱 웅덩이, 기껏해야 단지 적은 물밖에 담지 못하며 이내 말라붙는 죽은 웅덩이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더운 날씨에 갈라지고 틈이 생겨 우리가 물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물이 없는(욥 6:15) 터진 웅덩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그는 영생의 말씀을 가지신 이인 것이다.
Ⅲ. 이스라엘의 황폐 2:14-19
하나님을 버린 저들의 우둔함은 이미 비싼 대가를 치렀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은 온갖 재앙이 저희의 나라를 짓눌러 신음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 그들의 숙적인 이웃 나라들이 그들을 쳐서 이겼다.
1) 그들은 자유를 잃고 종이 되었다(14절).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아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그들은 자녀요, 후사들이다 아브라함의 씨이다. 그들은 섬기는 자들로가 아니라 다스리는 자들로 정함 받았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유를 잃게 되었는가? 왜 그들은 날 때부터 된 노예와 같이, 종으로 쓰임 받게 되었는가? 왜 그들은 자기 정욕에 스스로 노예가 되었으며, 저희 우상의 노예, 무익한 것(11절)들의 노예가 되었는가? 그와 같은 생득권이 죽 한 그릇에 팔리며, 그와 같은 왕관이 더럽혀져 재 가운데 놓이게 되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방백들은 저희의 신하들을 노비로 삼았으며 주인들은 저희의 종들을 노비로 삼았다(렘 34:1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일찍이 복되고 영예롭게 하신 저희의 나라가 비천하고 비참하게 되었다. 이웃 나라들의 방백들과 권세자들이 그들에게 침입해 들어와서 그들 중 어떤 이들을 자기 나라의 종으로 삼기까지 했으며, 다른 이들을 외국에 팔기도 했을 것이었다. 오직 그들은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다(사 50:1). 우리는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영혼은 종인가? 날 때부터 노예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망쳐졌는가? 그것은 욕망과 정욕에 빠져 스스로 저희의 자유를 팔고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저희의 부요함을 잃고 빈궁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름진 땅으로 인도해 내셨다. 그러나 모든 이웃들이 그들을 먹이로 삼았다(15절).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해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때로는 한 강력한 적이, 때로는 다른 적이, 그리고 때로는 많은 적들이 동맹하여 그를 향해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리고 정복하였다. 그들은 그 땅의 결실들을 거두어 갔고 ‘그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성읍들을 불태웠다.’
3) 그들은 학대받고 모욕을 당하였으며 정수리를 상하였다(16절). “군사적인 용맹으로 이름높지도 아니하며, 힘도 없는 비열한 민족인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들까지도 네 멀리의 왕관을 상하였도다.” 우리가 볼 수 있거니와, 므낫세의 재위 말기에 있어서 유다의 상태는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대하 33:11).
4) 이 모든 일들이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17절).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다른 족속들과의 죄된 연합, 그리고 그들의 우상 숭배 풍습을 스스로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들을 멸시당하게 만들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하던 바로 그때에 너희가 그를 버렸도다.”
(2) 그들의 친구인 체하던 이웃 족속들은 그들을 돕지 않았다. 이것 또한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1) 그들은 헛되이 애굽과 앗수르에게 원조를 청했다(18절).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이 ‘시홀’은 나일의 신이다. “너희는 그들이 너희에게 한 달콤한 약속을 의지하고 있도다. 또 다른 때에 너희는 구원병을 부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앗수르의 길을 달렸으며, 유브라데의 강물로 너희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하였도다. 너희가 거기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더냐? 그들을 의지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더냐? 그들은 도움이 되지 못하며 너희가 강으로 여겼던 그것은 한낱 터진 웅덩이에 지나지 않도다.”
2) 이것 역시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19절).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저희가 너를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 네가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악한 일임을 깨닫고 살펴보라. 하나님을 버린 것은 너희 원수를 정말 원수되게 하는 것이요, 친구를 헛된 친구로 만드는 것이니라.” 죄는 우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버리는 것이며, 그에게서 영혼을 멀리 떼어내는 것이다. 죄의 원인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죄는 그 안에 선한 것이라고는 없는 악한 상태이다. 그것은 쓴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 값은 죽음이며 죽음은 쓴 것이다. 죄는 그 자체 안에 악과 쓴 것을 가지고 있듯이 또한 우리를 비참한 상태로 만들려는 기질을 명백히 가지고 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죄 그 자체가 네게 형벌이라고 말해질 만큼 그렇게 피할 수 없는 형벌이 죄에 동반되리라. 너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납득케 하고, 너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하리라. 그리하여 네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