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3장 성경강해 말씀은 예루살렘의 비참함을 보면서 하나님께 탄식과 구원의 소망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3장: 선지자의 고통과 소망
1-33절, 진노 중에도 소망이 있음
[1-3절]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나는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한 고난을 본 자로다](원문). [그는]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그는 참으로 나를 대적하시고 종일토록 거듭 그의 손을 드시는도다].”
유다 백성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노의 매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죄 때문에 온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인 동시에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재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흑암 중에 행하도록 이끄셨다. 광명은 기쁨과 행복을 가리키고, 흑암은 슬픔과 불행을 가리킨다. 유다 백성이 현재 처한 상황은 흑암이다. 슬픔과 고통, 불행과 죽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징계의 손을 유다 백성을 향해 펴시고 종일토록 거듭 징벌하셨다.
[4-6절]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 . . .
예레미야는 또,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부수셨고] 담즙[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셨고 그들의 뼈를 부수셨다. 유다 백성은 그 전쟁 중에 먹지도 못하고 마음을 쓰고 매 맞고 넘어짐으로 온 몸이 상하고 찢기고 뼈가 부서지고 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수고로 그들을 둘러싸셨고 그들로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고통과 불행에 가득히 에워싸이게 하셨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7-9절]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둘러싸서 그들로 나가지 못하게 하셨고 그들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 군인들의 감시 아래 감금되어 자유가 없었고 도피할 곳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듣지 않으셨고 그 기도를 물리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다듬은 돌을 쌓아 그들의 길을 막으시며 그들의 첩경을 굽게 하셨다. 그는 그들이 그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의논하고 세운 계획들을 막으셨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하셨다.
[10-13절]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전동[화살통]의 살로 내 허리(킬레요사이)[나의 콩팥]를 맞추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같이 그들을 위협하여 곁길로 가게 하셨고 그들의 몸을 찢으셨고 그들로 적막하게, 쓸쓸하고 비참하게 만드셨다. 또 그는 숙련된 궁수처럼 활을 당기고 과녁을 맞추듯이 그들의 내장을 맞추셨다.
[14절]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 . . .
예레미야는 또,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래거리가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본절은 선지자가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이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 침공을 받아 멸망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멸시하였다.
[15-18절]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 . . .
예레미야는 또,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고통으로 배불리시고 취하게 하셨고 그들의 이를 꺾으셨고 그들의 몸이 재로 더러워지게 하셨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평강이나 형통의 복을, 잊혀진 옛 이야기가 되게 하셨고 그들의 힘과 소망을 끊으셨다. 백성들에게는 낙심과 절망만 있었다.
[19-23절]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 고초와 재난(마루드)[안정 없음, 방황함](BDB, NASB, NIV)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주의 크신 자비로 인해 우리가 다 멸망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크신 긍휼이 다함이 없음이니이다](KJV, NIV).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로 큰 고난을 당하고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다. 그것은 쑥과 담즙과 같이 그들의 심령에 쓴 고통이다. 또 이런 고통 가운데서 그들은 낙심하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낙망할 만한 큰 고난 중에도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에 근거한 소망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중요한 진리이다. 죄로 인해 회복 불가능하게 된 죄인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근거한다. 또 이 소망은 그의 크신 성실하심에 근거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에 근거하고 그의 성실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아침마다 새롭다.
[24-26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는 남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경건한 고백이다. 땅의 것을 재산과 기업으로 삼는 자는 땅이 불탈 때 그의 소망이 땅과 함께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재산과 기업과 복으로 삼는 자는 그 소망과 영광이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참 소망이 되신다. 그는 우리의 기쁨과 힘과 위로가 되신다. 그는 그를 기다리며 구하는 자에게 선과 복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고 의지하며 소망하는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 시편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27-30절]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유다 백성은 지금 하나님의 징벌로 큰 고난 가운데 있다. 그러나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단련을 받아서 거룩하고 온전한 인격이 되어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당하는 고난의 멍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메우신 것이니 잠잠히 메는 것이 좋고 입을 티끌에 대듯이 겸손히 또 잠잠히 하나님 앞에 굴복하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좋다.
[31-33절]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고난받는 유다 백성이 소망 중에 인내하며 대처할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그들을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비록 근심케 하셨지만 그의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주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고생케 하거나 근심케 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택자들을 향해 크신 자비와 긍휼을 가지셨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오직 죄를 멀리하자.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우리에게 고난과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죄 짓지 않는 것은 최상의 길이다. 의는 충만한 평강을 가져오며(사 48:18) 몸의 건강까지도 보장된다(잠 3:7-8).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자.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큰 징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인간에게 고난을 주는 것이 아니다. 33절,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모든 좋은 것을 주신다. 평강과 행복은 본래 인간을 위해 예비된 바이다. 죄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고 상실되었으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죄와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다(롬 3:23-24).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야 한다. 21-22절,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6절,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달게 받으면서 잠잠히 긍휼의 하나님만 바라고 죽는 날까지 의와 선을 힘써 행하자. 그것이 성도의 본분이며 승리하는 길이다.
34-66절,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함
[34-36절]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지극히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일들을 결코 인정치 않으신다.
[37-39절]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주’(아도나이) 즉 주권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의 일들이다. 예레미야는 애가 2:17에서도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라고 말하였다.
예레미야는 사람의 복과 재앙이 다 지극히 높으신 자 곧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그것이 섭리자 하나님을 아는 신자의 바른 지식이요 바른 고백이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당한 고난을 하나님의 손이 그를 친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하셨고 그를 괴롭게 하신 것이라고 고백하였었다(룻 1:13, 21).
예레미야는 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사람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원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공의의 통치자이시며 사람은 자기의 심은 대로 복과 화를 거둔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지 않아서 어떤 이는 악의 보응에 대해 원망하며 불평한다.
[40-41절]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방탕하던 둘째 아들이 심히 가난하고 곤고해졌을 때 제정신이 들었고(눅 15:17)(KJV, NASB) 아버지 집에 돌아갈 마음을 가졌듯이,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세례를 받았듯이(행 2:37-38, 41),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또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고 말한다. 마음과 손을 든다는 말은 진지하고 간절한 기도의 모습을 말한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는 하나님께 진지하고 간절한 기도를 올릴 것이다. 유다 나라의 소망은 오직 참된 회개와 간절한 기도에 있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그 나라는 다시 세워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42-43절]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窘逐)하시며 살육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그는 유다의 멸망의 원인이 그들의 범죄함과 패역함 때문임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용서치 않으셨고 진노로 자신을 가리우셨고 그들을 내쫓으셨고 죽이셨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응과 심판이요 징벌이었다. 죄가 죽음과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죄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의 원인이다. 실상, 그 외에 다른 원인은 없다. 이것은 모든 시대에 중요한 기본적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평안과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자마다 죄 문제의 해결을 얻어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이치이다.
[44-47절]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塵芥)와 폐물을 삼으셨으므로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우셨고 유다 백성의 기도가 그 앞에 상달치 못하게 하셨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날에 그를 찾지 않다가 징벌과 환난의 날에 그를 찾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열방 중에 진개(塵芥)와 폐물을 삼으셨다. ‘진개’라는 원어(세키)는 ‘쓰레기, 찌꺼기’라는 뜻이다(BDB). 모든 대적은 그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조롱하고 멸시하였다. 그 날은 그들에게 수치와 치욕의 날이었다.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였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48-51절]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멸망의 참혹한 재앙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흘렀고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하늘에 계신 주권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렸다.
[52-54절] 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쫓도다.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선지자가 자신만을 두고 말하는지 그 백성을 대표해서 말하는지 불분명하지만, 후자인 것 같다. 선지자 자신은 동족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유다 백성은 바벨론 군인들에게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고 바벨론 사람들 앞에서 잘못한 것은 없으나 바벨론 군인들은 까닭 없이 그들을 새같이 심히 쫓았다. 대적자들이 예레미야를 물 없는 구덩이에 던진 적이 있었으나(렘 38:6) 53절의 말씀은 비유적인 것 같다. 유다 백성은 고난의 깊은 구덩이에 던지웠고 물이 그 머리에 넘쳤다. 그들은 아직 목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나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55-56절]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탄식’이라는 원어(레와카)는 ‘호흡’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절망적 상황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이시다. 그는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절망적 상황에서 주권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성도만의 특권이다. 또 그것은 모든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유다 백성은 과거에 하나님의 응답을 여러 번 체험하였다. 그런 체험에 근거하여 그는 현재의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57-59절]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송사들을 변호하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伸寃)하옵소서.”
예레미야는 과거에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주께서 그에게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 응답의 첫 단계는 마음의 평안이다. 구체적인 응답은 그 다음에 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했다(빌 4:6-7). 예레미야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갚아주셨고 현재의 억울한 형편도 감찰하심을 확신한다. 과거의 체험은 현재의 지침이 되고 해결책이 된다. 과거에 공의로 섭리하신 하나님께서는 현재도 모든 일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 분명하다.
[60-63절] 저희가 내게 보수(報讐)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저희가 내게 보수(報讐)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방[훼파](한글 개역성경)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 ‘모해’라는 원어(마카솨바)는 ‘생각, 계획, 악한 계획’이라는 뜻이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말과 모든 행위를 다 감찰하시고 들으시며 공의로 보응하신다. 그는 악한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 백성을 향해 원수를 갚고 악한 계획들을 한 것을 다 감찰하셨고 그들이 유다를 비방하는 악한 말들을 다 들으셨고 그들이 앉든지 서든지 유다를 말거리로 삼고 비방거리로 삼는 것을 다 보셨다.
[64-66절]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진노로 저희를 군축(窘逐)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
원문은 네 개의 명령형 동사(미완료시제 단축형)로 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다 기도의 내용들이다. 첫째는, ‘보응하소서’라는 말이다.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소서.”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전도서 12:14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말한다.
둘째는, ‘주소서’라는 말이다.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소서.” 직역하면, “그들에게 마음의 강퍅함을, 그들에게 저주를 주소서.” ‘강퍅함’이라는 원어(메긴나)는 ‘덮개, 어두움, 완고함’이라는 뜻이다. 완고함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며 징벌이다.
셋째는, ‘쫓아내소서’라는 말이다. “저희를 진노로 쫓아내소서.”
넷째는, ‘멸하소서’라는 말이다. “저희를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소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간구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자. 37-38절,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주권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 경건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40-41절,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유다의 멸망은 그들의 범죄함과 패역함 때문에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진리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불경건과 부도덕의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55절,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9절,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 성도는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시편 46:1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