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장 강해 설교말씀은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를 조롱하던 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에녹도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을 이어받은 엘리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기적과 이적을 나타냈습니다.
제 2 장 승천(昇天)
(대 지)
一.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감(1-8)
二.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함(9-10)
三. 엘리야가 승천함(11)
四.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취함(12-14)
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를 찾아봄(15-18)
六. 좋지 못한 물을 좋은 물로 만듬(19-22)
七. 엘리사를 조롱하던 아이들 42명이 죽음(23-25)
(본문강해)
一.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감(1-8)
• 2: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산 채로 하늘로 데려 가시려고 그 일을 엘리야에게 알게 해 주셨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알게 해주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하늘 나라에 데려 가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① 모든 성도들을 장차 다 부활시켜서 하늘로 데려 갈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요, ②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다. 아담의 칠대손 에녹도 죽지 아니하고 산 채로 승천하였다(창5:24 ; 히11:5).
• 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떠나 벧엘로 갔다.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길갈에 머물라고 했다. 이것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억지로 떼어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유(勸誘)이다.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결심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사의 영감(靈感)받은 비결은 끝까지 선생을 따라간데 있다.
이것은 가나안 여인과 같은 신앙이다(마15:22-28). 가나안 여인은 자기 딸이 귀신들렸으므로 예수님께 가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도 하지 않고 길을 갔다. 그래도 그 여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부르짖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며 이방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래도 그 여인은 예수님을 따라갔다.
세 번째에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여 개와 같은 너희에게 줄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으나, 그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애쓰며 끝까지 따라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딸이 나았다. 엘리사도 그런 신앙이다. 따라오지 말라는 권유를 몇 번 받았고 여러 선지자의 생도들이 따라가지 말라고 하였으나 끝까지 고난을 당하며 따라갔다.
• 2: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선지자의 생도는 오늘날 신학생과 같이 선지자 수업을 받으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훈련받는 자들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실 줄을 알았다. 그들은 엘리사가 그 선생을 따라가는 것을 만류(挽留)했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만 보는 자들이고 직접 따라가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이므로 그 생도들의 만류를 거절하고 엘리야를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 2:4-6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벧엘에서도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거기에 머물라고 했으나 엘리사는 여전히 선생을 떠나지 않고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이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여리고로 갔다. 엘리야가 거기에서 또 엘리사에게 머물라고 했으나 엘리사는 거기서도 선생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벧엘에 있는 생도들과 같이 말하며 엘리사를 만류하였으나 엘리사는 그들의 말을 물리치고 끝까지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그 곳을 떠나 요단으로 갔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러 번 머물라고 한 목적은,
① 엘리사가 얼마나 갈급해 하며 얼마나 사모하는지 시험한 것이다. 그 때에 엘리사의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와 영감을 많이 받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났다.
② 자기 제자 엘리사로 하여금 더욱더 사모하고 갈망하게 하여 갑절의 영감을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 들로 옮겨가면서 머물라고 한 것이다. 엘리야가 가는 길이 엘리사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따라가야만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엘리사에게 은혜를 더 많이 주어 하나님의 일을 계승시키려고 이렇게 한 것이다. 그 때에 엘리사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선생을 따라갔으므로 그 목적을 이룬 것이다.
• 2:7-8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 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두 사람이 요단 강가에 가서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서 강물을 치니 그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 강을 육지같이 건너갔다. 여기서 엘리야의 능력이 크게 나타난 것이다.
二.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함(9-10)
•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에게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하였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제자로서 자기 선생보다 영감(靈感)을 갑절이나 더 구한 것은 너무 교만한 것같이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① 갑절은 기업 나눌 때에 장자에게 돌아오는 몫으로(신21:17), 엘리야의 하던 사역을 장자와 같이 이어 받으려는 뜻에서 나온 간구이기 때문이다.
② 엘리사 시대는 엘리야 시대보다 더 악하므로 갑절의 영감을 가지지 않고는 선생이 해놓은 일을 계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즉 엘리야가 하던 구원 운동을 계승해 나가려면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해 나갈 수가 있다. 엘리사는 엘리야 보다는 부족하기 때문에 엘리야만한 영감 가지고는 그 일을 계승할 수가 없다.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나이도 어리고 또 인격이나 실력이나 경험도 부족하고 연조도 부족하다. 모든 면에 부족한 자기가 선생님의 하던 일을 계승하려면 선생님보다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계승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엘리야 때의 일보다 그 후대의 일은 점점 큰일이 이루어져 나가겠기 때문에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이다. 요한복음 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집을 짓는 일 중에서 기초 공사를 해 놓으신 것이고, 제자들이 할 일은 예수님이 닦아 놓은 터 위에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일이다.
터 닦는 일도 중요하지만 집 짓는 것은 더 큰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야가 해 놓은 터 위에 엘리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므로 더 큰 영감이 필요하였다. 가면 갈수록 세대는 악해져 가고 대적은 커 간다. 즉 악한 자는 점점 더 악을 행하고 의로운 자는 점점 더 의로워진다(단12:10 ; 계22:11).
오늘날 말세가 되어 죄악이 점점 커지고 그 악의 상태가 점점 극악해진다. 거기에 따라 이제는 성도들도 점점 악을 이길 만한 영권과 진리가 있어야 된다. 갑절의 영감은 꼭 배(倍)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좀더 많은 영감을 가리킨다. 엘리사는 이미 그 선생을 통해서 세미한 음성, 즉 신령한 진리를 다 받았다(왕상 19:12). 엘리야는 하나님의 신령한 세미한 음성을 듣고 엘리사에게 그것을 다 가르쳐서 엘리사로 하여금 참 교회를 세워 나가게 하였다. 그 말씀과 사명을 받은 엘리사는 이제 그 일이 너무 크고 그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영권이 가장 필요했다.
엘리사는 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영감을 겸하여야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영감을 구한 것이다. 말씀만 있어도 안 되고 영감만 있어도 안 된다. 모세도 애굽에서 40년 공부하고 많이 배웠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일을 하려다가 사람만 죽이고 실패했다. 그후 미디안 40년 동안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모세는 배운 진리와 영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많은 성경을 배웠으나 회개 후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3년 동안 진리를 연구하며 깊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전할 때 능력으로 전했다(살전1:5). 이 복음은 말로 전파되고 능력으로 전파되었고 성령으로 전파가 되었다. 그러므로 영감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은 병행해야 한다. 이것은 열차의 두 레일과 같다.
• 2: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갑절의 영감을 받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나 여호와께서 엘리야 를 하늘로 취하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면 가능하다.
三. 엘리야가 승천함(11)
•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불수레와 불말 이것은 천군 천사의 출동을 상징한다. 6:17에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야를 하늘로 끌어올린 회리바람은 신령한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시에 모든 성도가 구름을 타고 올라 갈 것인데, 그 구름도 신령한 구름이다. 이것을 영광의 구름이라고 했다(마17:5).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하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아야만 영감을 받게 된다. 회리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엘리야를 끝까지 바라보는데는 난관이 많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라보기가 쉽겠으나 회리바람으로 인하여 자기 몸도 잘 가누지 못할 형편이고 또 회리바람이 엘리야를 이리 저리로 날리며 올라가는데, 그 엘리야를 따라 다니며 바라보는 것은,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큰바람과 물결이 치는 것을 이기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
엘리야가 끝까지 바라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① 사모하라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영감을 주시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엘리야를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엘리사가 큰바람이 불어도 무서워하지 않고 엘리야만 사모하고 그 명령을 지켜 끝까지 따라갔다.
四.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취함(12-14)
• 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병거와 마병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지켜 주었는데 이제 그가 승천하면 누가 이스라엘을 지키겠는가!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받으려는 것은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나 자기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 신앙이다(마6:33),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이것은 옛사람을 찢고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옷을 찢어버려야 한다. 제 생각, 제 뜻, 욕심, 이기주의, 모든 부패성을 찢어 버리고 하나님과 엘리야에게로부터 오는 능력의 옷을 받아 입어야 한다. 자기 것을 찢지 않고는 그 능력의 옷을 입을 수 없다.
• 2: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사는 자기 선생 엘리야가 승천하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라갔어도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엘리야의 겉옷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리사는 회리바람에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그 겉옷을 일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바라보며 그 떨어지는 곳까지 따라가서 마침내 그 능력의 겉옷을 주어 가지고 왔다. 이것이 능력을 받는 법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사모하고, 영감(靈感)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힘써 예수님을 바라보며, 환난과 핍박이 많고 난관이 많아도 끝까지 따라가면 하나님의 능력의 옷을 받게 된다.
• 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가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요단 언덕에 돌아와 서서 그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강물을 가르고 마른땅으로 건넜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어디 계시니이까”하는 말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하는 말이다. 이것은 첫째,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여기 계신 줄로 믿습니다”, 둘째, “내가 지금 엘리야에게 있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갑니다”, 셋째, “엘리야의 영감이 갑절이 온 것을 믿습니다”, 넷째, “이제 역사해 주시옵소서“하는 말이다. 이런 신앙으로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니 요단 강물이 이리저리 갈라져 육지가 되어 건넜다.
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를 찾아봄(15-18)
• 2: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맞은편에서 바라보던 선지자의 생도들은 전에 엘리사가 따라가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엘리사가 요단 강물을 가르는 것을 보고는 엘리야의 영감이 그에게 온 것을 알고 엘리사를 영접하며 그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믿으며 걸어 갈 때에 비방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 그들이 와서 엎드려 절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3:9에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믿고 걸어 나가면 언젠가는 반대하고 핍박하던 자들도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다”라고 할 때가 온다.
• 2:16-17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엘리사에게 나와서 엘리야를 찾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 이유는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올라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떨어졌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찾아 볼 것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생을 하늘 나라로 데려 가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① 엘리야가 바람을 타고 올라간 것만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넉넉히 엘리야를 하늘 나라로 올려 갈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무리가 엘리사가 부끄러워하도록 까지 사람을 보내자고 강청하므로 엘리사가 보내라고 했다. 엘리사가 억지로 막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믿음으로 나가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억지로 하지 않기 위함이요 그들이 가보아야만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간 것을 믿겠기 때문이다.
발람 선지자가 모압 사신이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했다. 그 다음에 모압 사신들이 더 많은 뇌물을 가지고 와서 가자고 할 때 갈 마음이 생겨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했다. 이는 억지로 막아야 소용이 없겠기 때문이다.
• 2: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선지자의 생도들이 사방으로 다니며 엘리야를 찾다가 못 찾고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사람의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그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 책망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영영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
六. 좋지 못한 물을 좋은 물로 만듦(19-22)
• 2:19-22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여리고 성읍의 땅은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여 떨어지고 농사가 안되었다. 그것을 안 엘리사는 그 일을 위해 기도한 것 같다. 그때 하나님께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 그 내용은 그릇에 소금을 담아다가 물 근원에 던지라는 것이다. 엘리사가 하나님 말씀대로 소금을 물에 던지매 그 물이 좋은 물로 변했다.
새 그릇 로마서 7:6에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했다. 새것은 영(靈)의 역사(役事)이다.
소금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리킨다(민18:19 ; 대하13:5). 그러므로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영으로써 받아들여 영적 생명으로 삼은 것을 가리킨다.
근원에 부은 것은 말씀을 영적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 그때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심령이 새로운 생명으로 받아 가지지 못할 때는 신앙의 열매가 결실하지 못한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면 행복이 없고 늘 실패만 한다. 외부적으로 보기에는 그 땅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고 실지 속에 들어가 살려고 하면 살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영적 생명으로 삼아 나아갈 때에,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지던 곳이 열매를 잘 맺는 곳이 되며 황무지가 소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 자기 심령에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주위 환경이 토산이 떨어지고 열매가 없고 사망의 골짜기 같을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역사하면 토산이 잘 결실하는 좋은 곳이 된다.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곳은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실제는 근심과 고통이 많고 기쁘고 즐거운 열매가 없다. 거기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그대로 한 걸음씩 순종하여 나가면 생명이 소생하고 기쁘고 즐거운 열매가 맺히는 낙원이 된다.
七. 엘리사를 조롱하던 아이들 42명이 죽음(23-25)
• 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벧엘에 올라갈 때 젊은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그를 조롱했다. 엘리사는 머리가 벗어져서 머리 뒷부분이나 앞부분에 머리털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을 근거로 엘리사를 멸시하며 배척한 것이다. 이때 엘리사가 그 아이들을 저주하니 암콤 둘이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죽을 사람도 살려야 하겠는데,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했다고 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많은 아이들을 죽게 한 것은 잘못된 일인가? 그것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저주한 것이므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곳이다. 그것을 엘리야가 책망하고 또 엘리사도 책망했다.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자주 틀렸다고 하니까 벧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싫어했다.
3절에 보면 벧엘에도 선지자의 생도가 있기는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 같다. 벧엘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엘리야나 엘리사를 좋아하지 않고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아이들도 이를 본받아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고 배척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가서 살리려고 하는데 벧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고 비방하고 배척하였으므로 그 동네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한 것이며 또 하나님이 저주하라고 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 그 저주를 받아서 아이들 42명이 죽었다. 하나님의 종을 어른들이 비방하고, 배척하고, 무시하면 아이들도 그 본을 받고 어른보다 아이들이 먼저 망한다.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고 영접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마태복음 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다. 어른들이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면 아이들이 그것을 배우고 존경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을 비방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그것을 배우고 배척한다. 부모가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고 비방하면 그 자녀들은 더욱 악화된다.
왜냐하면 부모는 하나님의 종이 잘하는 면을 알면서 잘못한 면만 비방하지만, 아이들은 그 비방하는 것만 듣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다 잘못된 줄 알고 거역하며 악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신앙이 타락되고 더 심한 징계와 저주를 받게 된다.
• 2: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엘리사가 벧엘에서 갈멜산으로 갔다가 갈멜산에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갈멜산은 그의 기도처요, 사마리아도 사역(使役) 근거지이다. 엘리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겸하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