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장 복음 설교말씀은 아도니야와 시므이의 최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에게 도전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여호와의 제사장에서 파면당했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도 죽임을 당했다. 다윗을 대적했던 시므이도 결국 솔로몬의 손에서 죽고 말았다.
I. 다윗의 유언과 죽음 2:1-11
우리는 여기서 위대하고 선한 사람인 다윗이 죽게 된 것(1절)과 죽은 것(10절)을 보게 된다. 사후에 내세가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이는 죽음이 이생의 모든 영광을 퇴색케 하고 흙 속에 묻어 버리기 때문이다.
1. 다윗의 훈계와 지시(1-9)
다윗은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기의 뒤를 이을 아들은 솔로몬에게 훈계와 지시를 내렸다. 그는 마지막이 가까워 온 것을 스스로 느끼고 그것을 인정하기를 주저치 않았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2절). 히브리어 원문에는 “내가 그 길로 가고 있노니”라고 되어 있다. 죽음은 일종의 길이다. 즉 이생을 끝마치는 길을 뿐 아니라 더 나은 곳으로 가는 통로이다. 하늘 나라의 자녀들일지라도 그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야만 한다. 즉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신 23:4)를 걸으면서도 이 길을 기쁨으로 걷는다. 선지자들, 심지어 왕들 조차도 예언이나 정권보다도 더 밝은 빛과 영예로움 가운데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길을 가야만 한다. 다윗은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솔로몬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있다.
(1) 그는 솔로몬에게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의무를 잊지 말라고 훈계한다(2-4절). 그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1) 따라야 할 선한 규칙 :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으로 네 자신을 다스려라.” 그에 대한 다윗의 훈계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2) 지녀야 할 훌륭한 정신 :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즉 “비록 나이를 먹었어도 아직 어린 아이 같으므로 힘써 대장부가 되도록 하라.”
3) 이 모든 것들을 행하도록 하는 선한 이유 : 이는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영속케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여호와께서 내게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기’위해서이다. 각 사람은 자신의 세대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말씀을 계속 지키실 것이다. 우리가 그 훈계를 파괴시키지 않고는 결코 그 약속이 파기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메시야가 그의 허리로부터 나오리라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조건적인 것이었다. 즉 그의 자손이 행해야 할 바를 행하는 한에서였다. 만일 솔로몬이 그의 사는 날 동안 그 조건을 이행한다면 그는 그 약속의 영구화를 위한 자신의 직임을 완수 하는 것이 된다. 그 조건을 그가 하나님이 앞에서 신실하게 그리고 열정과 결단을 가지고 그의 모든 규례대로 행하는 것이다.
(2) 그는 솔로몬에게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 행할 바를 지시한다.
1) 요압에 대한 지시(5절) : 다윗은 요압이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임으로 율법을 먹칠했을 때 그를 살려둔 것이 잘못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자기 뜻대로 금들을 죽임으로써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다윗에게 해를 끼쳤다. 요압이 내게…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5절). 요압이 자기의 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형벌받을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하나님과 왕의 공의를 무시하고서 뻔뻔스럽게 무고한 피로 더럽혀진 띠와 신을 신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죄를 더욱 가중시켰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요압을 심판하라고 암시라고 하듯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6절).
2) 바실래의 집안에 대한 지시(7절) : 다윗은 솔로몬에게 바실래를 위하여 그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 것을 명하고 있다. 이 당시 그는 이미 죽은 다음인 것 같다. 우리가 친구들로부터 받은 은총은 그들이 무덤에 묻혔다거나 우리가 무덤에 묻혔다고 해서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며 우리의 자손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손들에 대해 그 은총의 보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시므이에 대한 지시(8,9절) : 저는…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 저주의 말이 더욱 독하게 여겨졌던 것은 그가 다윗에게 저주했던 때가 다윗이 비참한 가운데 있었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그의 상처에 초를 부은 것과도 같았다. 그에 대한 일은, 기회만 포착되면 지혜롭게 그 일을 처리할 솔로몬에게 맡겨졌다. “그의 거치른 기질은 너에게 곧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너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이 말은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나라를 빛내기 위한 신중한 열망과 하나님이 그의 집안에 대해 하신 언약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이 언약을 멸시하는 자는 반드시 형벌을 받을 것이다.
2. 다윗의 죽음과 장사(10,11)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10절). 그는 사울처럼 그 아비의 묘에 묻히지 아니하고 자기 성에 묻혔다. 다윗의 집안으로부터 많은 왕들이 나와 그 성에서 즉위했으며 그 성의 무덤에서 장사되었다. 그의 비문에는 사무엘하 23:1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이새의 아들, 높이 올라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그리고(자신이 시편 16:9에서 말한 것처럼)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라’고 한 자인 다윗이 여기에 누워 있다.”
Ⅱ. 아도니야의 죽음 2:12-25
1. 솔로몬이 왕위에 오름(12)
그는 다윗보다 훨씬 더 쉽고 평화롭게 왕위에 올랐으며 그의 정권은 곧바로 확립되었다. 한 선정이 끝날 때 여기에서처럼 또 다른 선정이 시작된다는 것은 한 나라에 있어 대단히 복된 일이다.
2. 아도니야의 제거(13-25)
여기서 우리는 솔로몬이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적수인 아도니야를 정당하게 제거하는 것을 보게 된다.
(1)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 : 그는 다윗의 첩인 아비삭과 결혼하고자 하였다. 이는 그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서 다시 왕권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압살롬도 아비의 첩들과 동침함으로 자기의 위치가 더욱 든든해지리라고 생각하였었다. 아도니야는 제딴에는 만일 자신이 다윗의 침상에 들 수 있다면, 그것도 특별히 다윗의 아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인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그의 보좌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2) 그가 취한 방법 : 그는 직접 아비삭에게 구혼하려 하지 않고 이 일의 조력자로서 밧세바를 이용하였다. 그녀라면 이것을 애정 문제로 여길지언정 쉽사리 정치 문제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밧세바를 아도니야가 자기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혹 그가 자기를 해할 목적으로 찾아온 것은 아닌가 물었다. 이는 그녀가 그의 왕위 찬탈 기도를 분쇄하는 도구가 되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화평한 목적(13절)으로 말씀할 일이 있어(14절) 왔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신이 아비삭과 결혼할 수 있도록 그녀가 그녀의 아들 솔로몬에게서 동의를 얻어달라는 것이었다(16,17절). 그는 자신을 왕위를 빼앗긴 자라고 하면서, 즉 동정을 받으려 하면서 아내로나마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솔로몬에게 근심을 가져다주기 위해 온갖 획책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을 매우 기뻐하는 체하였다. “그의 말은 버터보다 더 부드러웠으나 그의 마음은 적의가 가득했다.”
(3) 밧세바는 아도니야를 대신하여 솔로몬에게 청을 한다. 그녀는 그를 위해 왕에게 말하기를 약속했으며(18절). 그렇게 했다(19절). 솔로몬은 비록 자신이 왕이긴 했으나 어머니에게 응당 행해야 하는 모든 예를 갖추어 그녀를 맞았다.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그리고 그녀를 제 5계명의 율법에 따라 ‘그 우편에 앉게 하였다.’ 그녀는 마침내 그에게 자신의 용무를 말하였다.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21절).
그녀가 그 반역을 의심해 보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제안 안에 들어있는 근친상간을 묵과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녀는 다윗과 아비삭의 결혼이 동침하지 않는 결혼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다윗의 아내로 여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도니야가 솔로몬에게 온순히 복종하는 것을 보고서 그를 만족케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4) 솔로몬의 정당하고도 분별있는 거절 : 솔로몬은 그의 어머니에게 그 요구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납득시키고 그녀가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음모의 목적을 보여 준다. 그의 답변은 다소 날카로운 것이었다.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22절). 즉 “그가 왕의 침상을 계승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왕의 자리까지 계승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가 목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아도니야의 요구에 대해 맹세로써 유죄를 선언하며 정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아도니야의 유죄를 선언한다(23절). 그는 그를 즉시 처단하도록 심판하고 있다.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24절). 아도니야가 왕위를 노렸다는 것은 이제 아주 맹백해 졌으며 따라서 그가 살아있는 한 솔로몬은 안전할 수가 없었다. 대개 야심이 많고 광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자초한다. 왕위를 노리다가 목이 달아난 자들은 부지기수다.
Ⅲ. 아비아달의 파면과 요압의 죽음 2:26-34
아비아달과 요압 두 사람은 아도니야의 반역을 선동하고 도왔던 자들로 아마도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취하고자 한 이 새로운 모의에 가담했었던 것 같으며 솔로몬이 이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22절). 두 사람이 이러한 일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국가에 대해서 묵과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것으로 그들의 높은 지위와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똑같이 반역죄를 행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려진 심판은 충분한 이유로 해서 서로 차이가 있었다.
1. 아비아달의 파면(26,27)
아비아달은 그의 오랜 충성이 참작되어 단지 파면만 되었다.
(1) 솔로몬은 그의 큰 지헤로 아비아달에게 유죄선고를 내린다.
(2) 그는 아비아달이 전에 그의 아비 다윗에게 보인 충성, 그리고 그가 거룩한 일로 다윗을 섬겼던 것(‘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과 다윗이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같이 환난을 겪었던 것을 상기한다.
(3) 이러한 이유로 그는 아비아달의 목숨을 살려준다. 그러나 그를 파면시켜 그의 고향 아나돗으로 쫓아내며 그에게 궁과 성, 성막, 제단 등 공무에 관여하는 것을 일체 금한다.
(4) 아비아달의 파면은 엘리의 집에 대한 저주의 성취였다(삼상 2:30). 이는 그가 그 집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2. 요압의 죽음(28-34)
요압은 그의 지난 날의 죄로 인해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1) 그의 죄의식으로 말미암아 제단 뿔을 잡았다. 그는 아도니야가 처형당했으며 아비아달이 파면당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 다음 차례가 자기라는 것을 알고는 두려워하여 제단으로 도피했다.
(2) 솔로몬은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죄로 그를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이 죄가 그가 아도니야를 좇은 죄보다도 이 선고를 내리기에 더 합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32절). 즉 그에게 아무런 잘못도 행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아무런 악의도 없는 자들을 살인한 것으로 만일 그들이 살았다면 아마도 그보다도 다윗을 더 잘 섬겼을 사람들을 죽였다는 말이다. 솔로몬은 이 점에 입각해서 선고를 내렸다.
이러한 죄 때문에 그는 죽어야 하되 공개적인 공의의 칼에 죽어야 했다. 또한 그는 제단에서 죽어야 했다. 요압은 제단에서 꼼짝 않기로 결심했다(30절). 브나야는 거기서 그를 죽일 것인지, 아니면 끌어내야 할 것인지 주저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단이 결코 고의적인 살인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율법을 알고 있었다. 짐승의 피로 씻어질 수 있는 그러한 죄의 경우에서는 제단이 도피처가 될 수 있겠으나 요압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거기서 그를 처형할 것을 명령하였다. 거룩한 장소라고 해서 인간의 사악이 결코 묵인되어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죽더라도 여기서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붙잡는 자들은 그 안에서, 요압이 제단 뿔에서 찾으려 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보호를 찾게 될 것이다. 브나야는 의심할 여지없이 엄숙하고도 공개적으로 그를 죽였다(34절).
(3) 솔로몬은 이 공의의 행위를 흡족해 했는데 이는 그것이 개인적인 복수를 충족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친의 명을 이루었기 때문이며 솔로몬 자신과 그 자신의 왕권에 실제적인 유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다윗 위에 평강이 있게 되었다(33절).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요압과 같은 난폭한 사람이 제거되는 곳에는 평강이 있을 것이다. 솔로몬은 그의 집과 보좌 위에 임한 이러한 평강의 축복 가운데서 그 평강을 가져다주신 하나님을 경건히 우러러보며 그것이 영원히 있을 것을 바라고 있다.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 그것도 영원한 평강이 있으리로다.” 평강의 주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영원한 평강을 베풀어주신다.
Ⅳ. 시므이의 죽음 2:35-46
1. 브나야와 사독의 발탁 (35)
우리는 여기서 솔로몬과 그의 정권에 대해 매우 충성스러운 두 사람인 브나야와 사독이 발탁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요압이 죽자 브나야가 군대 장관으로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고 아비아달이 파면되자 사독이 대신 대제사장으로 그 자리에 들어섰는데 이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킬 것이매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실 것'(삼상 2:35) 이라는 엘리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다.
2. 시므이에게 내려진 조치 (36-46)
그는 다윗의 집에 대한 자신의 적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아도니야의 운명과 별다를 바가 없으리라고 각오하면서, 소식을 전하는 자를 통해 바후림에 있는 자기 집에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난 솔로몬은 죄와 죄인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윗은 생전에 시므이의 생명을 살려줄 것을 약속했었다. 솔로몬은 그 약속에 구속받지 않으나 정면으로 그것을 거스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1) 솔로몬은 그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드론 시내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여 그의 행동 반경을 예루살렘으로 한정시켰다(36,37절). 이는 그로 하여금 그의 이웃들 가운데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크게는 그를 예루살렘에 묶어둠으로써 죄수처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여유있는 경계 안에서 살게 되었다. 즉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기만 한다면 살게 될 것이었다.
(2) 시므이는 그 제한에 복종하며 감사함으로 그 경계 안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의 종들 가운데 두 명이 블레셋 땅으로 도망하여 갔다(39절). 그는 그곳으로 그들을 찾아 나섰고 거기서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다(40절). 그리하여 솔로몬은 그의 생명을 거두게 된다. 시므이가 약속을 위반했다는 소식이 그에게 들려졌다(41절). 만일 그가 사정이 급박함을 솔로몬에게 알리고 가도록 해줄 것을 간청했다면 아마 솔로몬은 허락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모르리라고 생각하거나 그가 묵인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를 몹시 모욕하는 것이 된다. 솔로몬은 전에 지은 시므이의 죄에 대해서, 즉 다윗이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그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저주한 일에 대해서 심판을 내리고 있다. 그는 즉각 시므이를 처형하도록 명령을 내린다(4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