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장은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다. 각 지방에서 귀족들이 모였을 때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 왕후를 불렀다. 그런데 와스디가 왕의 초청을 거부하여 나오지 않았다. 아하수에로 왕은 와스디를 폐위시켰다. 에스더 설교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나누어 보자.
Ⅰ.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1:1-9
이 아하수에로 왕이 바사의 어느 왕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모르드개는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사로잡혀’ 온 자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2:5,6). 이로 보아서 이 아하수에로 왕은 바사 제국의 초기 제왕 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많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이 아하수에로를 성전 건축을 방해했으며 후에 메대 족속이던 증조부의 이름을 좇아(단 9:1) 아하수에로(스 4:6,7)라고 불리운 아닥사스다로 보고 있다.
1. 아하수에로 왕의 광대한 통치(1)
다리오와 고레스는 백 이십 도를 다스렸을 뿐이지만(단 6:1) 이때에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 이십 칠 도가 있었다(1절). 그 나라는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그런 나라는 자기 무게에 눌려 조만간 쇠퇴하게 된다.
2. 아하수에로 궁의 화려하고 장엄함(2-6)
아하수에로 왕은 대단히 사치스러운 잔치를 베풀어서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었다'(4절). 이런 일은 도무지 쓸모없는 허례허식이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자기의 어떤 후계자들이 했던 것처럼 성전 건축을 도와줌으로써 그 나라의 부를 과시했더라면 훨씬 좋은 결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아하수에로는 잔치를 두 번 베풀었다. 하나는 귀족과 방백들을 위한 것으로서 ‘일백 팔십 일’이나 계속되었다(3,4절). 또 하나는 ‘대소 인민’을 위한 것으로서 ‘왕궁 후원 뜰에서 칠일 동안’ 베풀었다(5절).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한 장막은 매우 값지고 화려한 것이었다. 걸상이나 그들이 걸어다니는 보도도 역시 매우 화려했다(6절).
3. 이 잔치에서 보여지는 훌륭한 질서(7-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어떤 면에서 아주 훌륭한 질서가 잡혀 있었다. 그러나 갈대아 해설판에는 이 잔치에 성소의 기명들을 사용해서 경건한 유대인들을 근심케 했다고 되어 있다. 여기 나타난 내용 가운데 칭찬할 만한 일이 두 가지 있다.
(1) ‘마시는 것도 법에 따랐다’. 아마도 그 법은 최근에 만들어진 법이었을 것이다.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요세푸스는 이를 계속해서 술잔을 권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이방인 군주가 보여 주는 이같은 모습은 그것이 비록 그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일지라도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취하게 만들어야만 친구들을 환영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축배를 든다는 구실로 죽음을 담은 죄악의 잔을 돌리는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2) 그 자리에는 난잡한 춤이 없었다. 와스디는 여자들에게 ‘왕궁에 있는’ 자기 처소에서 잔치를 베풀었다(9절). 이렇게 해서 왕이 위엄을 과시하는 동안 왕후와 여인들은 정숙함을 과시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여성이 갖추어야 할 위엄인 것이다.
Ⅱ. 왕명을 거역하는 와스디 1:10-22
아하수에로 왕이 배설한 잔치는 왕의 어리석음 때문에 침통하게 끝이 난다. 왕과 왕후 사이에 불화가 생기자 잔치는 갑작스레 중단되고 손님들은 묵묵히 그리고 수치스럽게 그 자리를 떠야만 했다.
(1) 왕이 술이 취한 채, 그리고 다른 손님들도 다 술이 취해 있는 상태에서 사람을 보내어 와스디를 오라고 한 것은 확실히 왕의 잘못이다.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아름답게 차려 입은 와스디를 오게 해서 방백과 백성들 앞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이려고 했다(10,11절). 그렇게 함으로써 왕은 스스로 남편으로서의 명예를 손상시켰다. 남편은 아내의 정숙함을 보존시키며 아내의 “눈가리개”가 되어 주어야만 한다(창 20:16). 여자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는 것은 바사의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왕은 와스디에게 정중하게 대하지 않고 그렇게 무례한 일을 하라고 명하여 구경거리가 되게 함으로써 그녀에게 심한 고통을 주었다.
(2) 왕이 일곱 명의 사신을 보내어 오라고 명령했지만 왕후 와스디는 오기를 싫어했으며 계속해서 왕명을 거역했다(12절). 와스디가 만약 왔었더라면 그것은 명령에 복종해서 온 것이 분명하므로 그녀의 정숙함에 대한 비난은 없었을 것이다. 와스디는 아마도 거만한 태도로 오기를 거절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왕후 와스디는 왕명을 좇아오기를 싫어했다.’ 이것은 왕에게 얼마나 굴욕적인 일이었겠는가!
(3) 왕은 심히 분노하였다. 일백 이십 칠 도를 다스리던 그이건만 자기 성질은 다스리지 못하고 ‘중심이 불붙는 듯하였다'(2절).
(4) 왕은 매우 화가 났지만 궁중 자문들과 의논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치를 취하고자 했다. 이들 자문들은 매우 박식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즉 이들은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사례를 아는’ 현명한 자들이었으며 왕이 매우 신임하며 존경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아 있었다'(13,14절).
1) 이 궁중 자문에게 제기한 질문의 내용(15절) : 왕후 와스디를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2) 므무간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은 와스디와는 이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①왕후가 남편인 왕에게 순종하지 않은 것을 그냥 묵인할 경우 초래하게 될 좋지 못한 결과들에 대해서 말한다.
②와스디와 이혼한다는 조서를 반포할 경우에 따라올 좋은 결과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며’ 이 결정을 바꾸지 못하게 하라는 판결을 내린다(19절).
3)이러한 제의에 따라 통과된 조서는 왕후가 왕에게 불순종했으므로 규례대로 이혼당하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도 이같이 남편에게 불충실하면 와스디와 같은 수치를 당할 줄로 각오해야만 했다(21,22절). 그들이 왕후보다 나을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