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 강해설교말씀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성령 하나님이 인을 쳐서 구원시켰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여 예정하셨다. 구원받은 백성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인침 받고 속량받았다.
Ⅰ. 서언 1:1,2
[1]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붙인 칭호 :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1절). 바울이 가진 그러한 직책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모든 신실한 사역자들은 바울과 같이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으로 명예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2] 수신자들 :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1절). 그는 신앙 고백을 한 사람들을 일컬어 성도라고 불렀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성도이어야만 한다. 그는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신실치 못한 자들은 성도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은 모든 은혜와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다.
[3] 사도의 축복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절).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분에 넘치도록 거저 주시는 사랑과 은총을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그 은혜로부터 있게 되는 성령의 은사들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평강에 의해서 은혜의 산물이자 열매인 다른 모든 축복들을 얻게 된다. 은혜 없이는 평강이 있을 수 없다. 아울러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어떠한 평강이나 은혜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특별한 축복들은 창조주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또한 그것들을 얻도록 해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성도들은 이미 은혜와 평강을 받는 것이다. 훌륭한 성도들이라면 성령의 은혜의 신선한 공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각자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여야 한다. 이는 이러한 축복들이 더욱 그들에게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본 장에서 바울의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강론이 기도와 찬양으로 시작되는 것을 좋게 여기셨다. 기도의 내용과 찬양의 내용은 전파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찬양 역시 그럴 수 있다.
Ⅱ. 바울의 감사와 찬양 1:3-14
바울은 먼저 감사와 찬양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크고 귀한 유익을 매우 상세히 설명해 간다.
[1] 그는 ‘신령한 복’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3절). 모든 축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3절). 신령한 복은 최상의 복이다. 그는 우리를 참으로 축복하시되 우리에게 그와 같은 신령한 복을 주심으로 축복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이와 같이 축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찬양할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복주시고자 하시는 이들에게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신다.
그것은 현세적인 복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복 즉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서 하늘로부터 오는 그러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도록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신령하고도 하늘에 속한 복이 가장 좋은 복임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있을 때 우리는 결코 불행하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없을 때 우리는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신령한 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4-14절). (1) 선택과 예정(4,5,11절): 선택 혹은 택하심으로 뭇사람들은 나뉘어지게 된다. 예정은 그들이 받기로 되어 있는 복과 관계되어 있다.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5절). 때가 되면 우리는 그의 택하신 자녀들이 되어 자녀들이 누리게 되는 온갖 특권의 권리를 갖게 된다. 창세 전에,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문전에 있는 거지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갑작스런 결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주는 것들은 많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에게 신령한 복을 줌으로써 그의 영원한 목적을 시행해 가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그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3,4절). 즉 선택의 위대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했다.
이 선택에는 한 가지 큰 의도와 목적이 있다. 4절에 그것이 나타나 있다.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거룩하게 하시려고, 그 목적에 있어서 행복을 위하여 택함받은 모든 이들은 그 수단에 있어서 행복을 위하여 택함받은 모든 이들은 그 수단에 있어서 거룩함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 앞에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는 그들의 거룩함이 단지 외적인 것이 되지 아니하고 내적이며 참된 것이 되게 하기 위함이며, 그러한 거룩함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나타나는 데 이 사랑은 모든 참된 거룩함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또한 하나님의 선택의 법칙과 주된 동기가 나타나 있다 그 기쁘신 뜻대로(4절). 이는 선택이 그의 주권적인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된 것이다(11절).
최종적이고도 가장 큰 목적은 그 자신의 영광이라고 하겠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6절).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절). 하나님의 영광은 그 자신의 목적이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목적이 또한 될 수 있어야 한다. (2) 양자됨(6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받는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6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에게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 때문에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 (3) 예수의 피를 통한 죄의 용서와 구속(7절): 대속이 없이는 사함이 있을 수 없다. 죄책과 죄의 오점은 예수의 피가 아니고서는 다른 방법으론 결코 제거되어질 수 없다. 죄책과 죄의 오점은 예수의 피가 아니고서는 다른 방법으론 결코 제거되어질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 피의 흐름 가운데서 우리에게 넘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에 따라서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도무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없었을 때,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는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아들로 보증을 삼으신 것은 풍성한 은혜였다.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셨을 뿐 아니라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셨다'(8절). (4) 하나님의 계시 :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9절). 이것은 그리스도 덕택이다. 그는 자녀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 기쁘심을 따라 예정하신 것’이라고 했다(9절). 그것은 ‘진리의 말씀과 우리 구원의 복음으로’ 묘사되어지고 있다(13절). 오,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얼마나 귀히 여겨야 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하겠는가! (5) 그리스도와의 연합 :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0절).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며 모든 신앙은 그에게로 집중된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그리스도와 결합되어짐으로 서로 결합되어지게 되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 안에서 합하여 졌다. 수많은 천사들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와 하나가 되어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정하신 것이다. (6) 영원한 기업 : 우리가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11절). 하늘 나라는 곧 기업이다. 자녀는 상속자이다. 우리가 수중에 지니고 있는 온갖 축복들은 장차 기업으로 받을 것과 비교할 때 지극히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속자가 미성년이었을 때 주어진 것은 그가 어른이 될 때를 위해서 남겨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7) 성령의 보증과 인치심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3절).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케 하신다.
그는 약속의 성령이시다. 성령에 위해서 신자들은 인치심을 받게 되며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다. 성령은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신다(14절). 보증은 일부를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전체 지불금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성령의 영향으로 하늘 나라가 시작되고, 영광의 씨가 부려지고 싹이 돋게 된다. 그의 위로하심은 영원한 기쁨을 보증한다. 그는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기까지 보증하시는 자로 일컬어진다.
이 보증으로 인하여 상속자들은 그것을 이미 얻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얻어진 바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크신 목적과 의도는 우리로, 먼저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다. 먼저 은혜를 입은 자는 우선권이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오래 입은 자들이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14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 가운데서의 그의 크신 계획이라고 하겠다.
Ⅲ. 바울의 중보 기도 1:15-23
바울이 이 에베소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이 신령한 복을 준비해 두셨다. 그는 우리에게 기도로 그것을 얻도록 명하셨다. 우리가 그 복음 믿음과 기도로써 구하지 아니하는한, 그 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너희 사랑’이라고 바울은 그들을 좋게 평하였음에 유의하자(15절).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은 은헤 안에 연약한 자든, 세상에서 비천한 자든, 성미가 까다롭고 괴팍한 자든 상관 없이 단지 모든 성도들을 다 사랑한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한 또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기업의 보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16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을 찬양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17절). 이는 성령의 더 큰 분량의 은사를 주고자 해서였다. 그가 위해서 기도하는 큰 것이란 그들의 마음눈이 밝아지는 것이며 아울러서 그들의 지식이 증가되어지고 풍성해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지식은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인 것이다. 성령의 은혜와 위로는 비춤을 받은 마음에 의해서 영혼에 전달되어진다. 사단은 정반대의 방법을 취한다. 사단은 감각과 정욕을 통하여 인간을 지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음 가운데 행하신다.
[1] 이러한 지식이 오는 곳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17절). 주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또한 주께로부터 오는 것 외에는 어떤 바른 구원의 지식도 없다. 그는 지식의 성령을 주심으로 지식을 주신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시므로 성도들의 교사가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성령의 계시를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마음 가운데 성령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성령의 계시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령의 지식 안에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지식은 먼저 마음 가운데 있게 된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18절). 그리스도인들은 따뜻한 사랑을 가지는 것으로 족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밝은 마음을 가지도록 수고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들은 지식있는 그리스도인과 분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
[2] 그들이 알아야 할 지식(18-20절) : (1) 그의 부르심의 소망(18절). 이 부르심 가운데는 소망이 있다. 이는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은 믿음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큰 상급을 좇아 수고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한다. (2)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18절). 성도 안에서 현재의 기업이 있다. 이는 은혜 안에서 영광이 시작되고, 거룩함으로 행복이 싹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이 기업 안에는 영광이 있으며 또한 그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늘 나라에 있는 영광스러운 기업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풍성함을 베풀어주신다.
그러므로 읽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가능한 한 하늘나라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도록 힘쓰도록 하자. 이는 그곳에 가게 되기를 바라고 고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3)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19절). 한 영혼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는 것은 전능하신 능력이시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행사하시며,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능력을, 즉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표현하기를 원한 것처럼 말해가고 있다(20절).
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을 향한 복음이 진리임을 입증하는 큰 증거였다. 그러나 또한 우리들 가운데서 나타난 그 능력의 역사는 우리에 대한 큰 증거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말하는 의도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영생하도록 일으키시는 데 사용하실 지극히 크신 능력은 곧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을 때 사용하신 것과 같은 그 능력이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능력이 영생으로 다시 일으켜 주는 것이라고 알게 되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바울은 조금 곁길로 벗어나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높아짐에 대해서 언급한다. 살리시고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20-22절). 그가 그처럼 능력과 권세를 지닌 머리가 되신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선물이자 교회에 대한 선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다 주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요 3:25).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문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에서 우리는 영혼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지탱해 주는 바로 그 권세가 또한 교회를 지탱해 주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자기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확신한다. 이는 교회는 그의 몸이기 때문이다(23절). 그는 교회를 돌보실 것이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 중보자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만일 교회를 소유하지 못하셨다면 완전케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 만일 그가 왕국을 소유하지 못하셨다면 어떻게 왕이 되실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