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 히브리어 원어 성경 설교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압살롬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설교문을 통해서 시편의 시를 지은 다윗의 심정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시3:1-8)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위기가 닥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위기 대처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재물과 인맥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위기와 환난과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성도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나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시편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이 이런 시편을 짓게 된 이유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 자신의 왕권을 찬탈하고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을 치면서 이 시를 지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위기는 생각하지 못할 때 닥치는 일이 위기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닥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것은 위기가 아닙니다. 그 일에 대해서 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아서 위기를 맞았다면 준비 부족으로 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생명이 위협받는 이런 위기 속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를 보면서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יְ֭הוָה מָֽה־רַבּ֣וּ צָרָ֑י רַ֝בִּ֗ים קָמִ֥ים עָלָֽי׃
아도나이 마 라부 차라이 라빔 카밈 알라이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이렇게 많은지요 적들이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다고 고백합니다.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다윗에게는 대적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대적자들이 일어나 주님을 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압살롬은 율법주의자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왕권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권을 노리는 이런 대적자들이 많다고 말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대적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율법주의 대적자들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십자가 복음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시3: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רַבִּים֮ אֹמְרִ֪ים לְנַ֫פְשִׁ֥י אֵ֤ין יְֽשׁוּעָ֓תָה לֹּ֬ו בֵֽאלֹהִ֬ים סֶֽלָה׃
라빔 오메림 레나페쉬 에인 예슈아타 로 벨로힘 셀라
다윗은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압살롬에 의해서 피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윗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윗이 여호와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므이 같은 경우에는 다윗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삼하16: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다윗이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사울의 친족 중에 한 사람인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을 저주합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라고 말하면서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친족이다 보니 다윗에게 악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마27:41-42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했지만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조롱합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왕이며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시므이에게 받은 저주와 모욕을 예수님도 똑같이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지’ יְֽשׁוּעָ֓תָה(예슈아타 3444) 구원, 탈출이라는 뜻입니다. 예슈아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니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왕인데도 왕으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와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인데도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왕으로 인정하지 못한 자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인정한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고 있습니까? 주님의 겉모습만 보고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생각하여 멸시하고 모욕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권을 보는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인정한 왕이라는 것을 믿은 사람들은 다윗이 쫓겨감에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후새 같은 경우는 다윗에게 와서 다윗의 책사가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겉모습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인정한 구원자이며 독생자이며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는 것입니다.
시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וְאַתָּ֣ה יְ֭הוָה מָגֵ֣ן בַּעֲדִ֑י כְּ֝בֹודִ֗י וּמֵרִ֥ים רֹאשִֽׁי׃
베아타 아도나이 마겐 바아디 케보디 우메림 로쉬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말합니다. 현재 다윗은 압살롬에 의해서 쫓기는 몸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왕권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מֵרִ֥ים(메림 7311 동사, 히필, 분사능동, 남성, 단수) 높아지다, 올라가다,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권을 다시 세워주셔서 백성들로부터 높아지게 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히필 사역능동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세워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왕권이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은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럼 구속사 관점에서 다윗의 머리를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의미합니다.
빌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다윗처럼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다윗도 왕으로서 가장 낮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저주받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켜서 승천하게 하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를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 꿇게 했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도 이렇게 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상황과 환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장 밑바닥과 같은 상황에 처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게 됨으로 하나님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시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קֹ֭ולִי אֶל־יְהוָ֣ה אֶקְרָ֑א וַיַּֽעֲנֵ֨נִי מֵהַ֖ר קָדְשֹׁ֣ו סֶֽלָה׃
콜리 엘 아도나이 에크라 바야아네니 메하르 코드쇼 셀라
다윗은 자신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신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에게 쫓겨가면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여호와 하나님께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다윗의 처지는 처량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좌에서 호령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날벼락 맞은 것처럼 생명을 위협받아 왕궁을 버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성산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다윗은 말합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성산이 어디입니까? 골고다입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 외침을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산에서의 응답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죽음으로 구원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시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אֲנִ֥י שָׁכַ֗בְתִּי וָֽאִ֫ישָׁ֥נָה הֱקִיצֹ֑ותִי כִּ֖י יְהוָ֣ה יִסְמְכֵֽנִי׃
아니 솨카브티 바이솨나 헤키초티 키 아도나이 이세메케니
다윗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자신을 붙드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지금 마음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눕고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지키시고 보호하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도 하나님이 죽을 고비에서 지켜주셨음을 체험했습니다.
‘나를 붙드심이로다’ יִסְמְכֵֽנִי(이세메케니 5564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붙들어 주다, 견고하다, 안심하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을 붙들어 주시니 다윗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마음에 안도감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나갈 때 주님이 우리 심령의 거친 파도를 잠잠하게 해 주셔서 안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칼형은 능동태로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계속해서 현재 위기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이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현재는 쫓기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압살롬의 편이 아니라 다윗의 편이 되어 지키고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시면 끝납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권력과 돈과 명예와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있어도 주님이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이런 것들이 없어도 주님과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면 인생은 달라집니다.
시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לֹֽא־אִ֭ירָא מֵרִבְבֹ֥ות עָ֑ם אֲשֶׁ֥ר סָ֝בִ֗יב שָׁ֣תוּ עָלָֽי׃
로 이라 메리브보트 암 아쎄르 사비브 솨투 알라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고 있으며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확신하니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천만인이 자신을 에워싸서 진을 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돈과 명예가 나를 지키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윗을 대적해도 하나님 한 분이 다윗의 편이 되어 주시니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이 다 떠나도 하나님 한 분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시면 인생이 두렵지 않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렵지 않습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두렵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3: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ק֘וּמָ֤ה יְהוָ֨ה׀ הֹושִׁ֘יעֵ֤נִי אֱלֹהַ֗י כִּֽי־הִכִּ֣יתָ אֶת־כָּל־אֹיְבַ֣י לֶ֑חִי שִׁנֵּ֖י רְשָׁעִ֣ים שִׁבַּֽרְתָּ׃
쿠마 아도나이 호쉬에니 엘로하이 키 히티카 에트 콜 오예바이 레히 쉬네 레솨임 쉬바르타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깨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제 일어나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고 악인의 이를 꺾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모든 것은 끝입니다. 하나님이 잠잠하고 계시니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시면 역사는 일어나게 됩니다.
‘일어나소서’ ק֘וּמָ֤ה(쿠마 6965 동사, 칼,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일어서다, 일으키다, 함께 있다, 복구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잠잠하게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깨우고 있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현재 자신의 상황을 보시고 원래 상태로 복구시켜 달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믿었던 자식에게 이렇게 쫓기는 수모를 겪고 있는 상황을 보시고 일어나 달라고 다윗은 하나님께 강청하고 있습니다. 명령법은 잠잠하게 있는 하나님이 빨리 일어나셔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강력하게 간구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현재 다윗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깨워야 합니다. 제자들도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그때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힘으로는 문제의 대적자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깨워서 일어나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치아를 부서뜨려 달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에 주님이 일어나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시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לַיהוָ֥ה הַיְשׁוּעָ֑ה עַֽל־עַמְּךָ֖ בִרְכָתֶ֣ךָ סֶּֽלָה׃
라아도나이 하예슈아 알 암메카 비르카테카 셀라
다윗은 말하기를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려달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백성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면서도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가장 큰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깨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어나는 것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이 광풍에 주님을 깨웠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주님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주님은 광풍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에 주님이 손을 대시면 끝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의 문제에 주님이 개입하셔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