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 복음 설교문은 다윗의 시로서 고난 받는 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는 것을 다윗은 시로 표현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고 다윗은 원수로부터 고난을 받았다.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Ⅰ. 환난에 대한 불평 22:1-10
1. 하나님이 물러가신 것에 대한 슬픈 불평(1,2)
(1) 이것은 다윗에게 혹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으므로 도움도 받지 못하고 응답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면서 밤낮으로 계속하여 진정으로 자비로운 응답을 간구하며 부르짖는다. 영적인 버림받음은 성도에게 가장 혹심한 고난이다.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병들고 가난하게 하시나이까?” 라고 부르짖는 것은 불만과 속됨을 느끼게 할 것이지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그의 행복을 묶어 우려는 표현이다. 만일 확실한 신앙을 원한다면, 우리는 믿음에 집착하여 살아가야 한다. “하여튼, 하나님은 선하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나를 죽이신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리이다.”
(2)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불평의 첫마디는 그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님 앞에 이렇게 토로했기 때문이다(마 27:46). 어떤 사람들은 그가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해도 속으로 시편 전체를 반복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고난 가운데서 아버지께 열심히 부르짖었다. 낮에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었고, 밤에 동산에서 고민하고 계시면서 부르짖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죄를 짊어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죄에 대한 진노하심과 불쾌하심을 그에게 부과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다'(사 53:10).
2. 지금까지 받은 격려(3-5)
주는 거룩하시나이다. “주님의 섭리 중 어떤 점에 있어서도 불의하거나 거짓되거나 불친절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환난당하는 백성 중에 구원하시기 위해 즉시 찾아오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과 맺은 계약에 신실하시며, 압제자들의 불의를 지지하지 않으시니이다”(합 1:1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님은 주의 영광과 은혜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며, 주의 백성들이 찬송으로 주께 드리는 성소에서 주의 백성과 특별히 함께 계시기를 즐겨하시나이다. 거기에서 주는 언제나 경외 받으실 준비가 되어 계시며 회막에 대해 ‘여기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이다’라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잠시동안 귀머거리가 되신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찬양을 매우 기뻐하심으로 적당한 때에 그들의 생각을 바뀌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바랄지어다. 나는 그를 찬양하리라.” 다윗은 이전 세대에 살던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로써 유익을 얻었던 경험을 통해 위로를 받을 것이다(4,5절).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주께 부르짖어…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주께서는 합당한 때에 나를 건지실 것이나이다. 이는 주께 소망을 둔 사람은 아무도 그의 소망으로 인해 수치를 당한 적이 없으며, 주를 찾은 자 중에 아무도 헛되이 주를 찾았던 자가 없기 때문이니이다. 그리고 주는 여전히 동일하시나이다.”
3. 또 다른 근심에서 생겨난 불평(6-8)
그것은 사람들의 멸시와 비난이다. 이 불평은 전에 하나님이 물러가셨을 때와 같이 결코 비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실한 영혼을 아프게 했던 것처럼, 이것도 매우 여린 고결한 영혼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사람은 기껏해야 벌레에 불과하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만일 그가 벌레라고 자처하지 않았다면 그가 벌레처럼 짓밟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악인, 불경스러운 자, 안식일을 범한 자, 귀신들의 왕과 동행한 자로서 비난받았다.
또한 그는 멸시당했다. 즉 천하고 하찮은 사람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자로, 자기 나라에서 명성이 없는 자로, 가난한 기능공의 혈통을 지닌 자로 멸시당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는 하층민들 뿐이며, 관원이나 바리새인들은 없었다. 그는 어리석은 자라고 조롱받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는 자라고 조롱당하였다. 다윗은 때때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이유로 조소를 당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이것은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하나니다(8절).
4. 이 불평에 대해 받은 격려(9,10)
사람들은 나를 멸시하나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나이다.’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다윗과 다른 선한 사람들은, 앞에서 말했듯이(4절) 하나님이 그들의 열조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태어남으로부터 그들을 돌보기 시작하신 그들의 요람의 하나님이시었다고 스스로 격려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다. 도움받지 못하고 쓸모없이 무력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양육시키시고서 우리를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일찍이 어떻게 베풀어졌는가를 보라.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만일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거기서 죽었거나 태어날 때에 질식당했을 것이다.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나를 위하여 영양을 공급해주시고 내가 당할 위험에서 나를 보호하셨나이다. 그것이 일생동안 주님께 나의 소망을 두게 하셨나이다.” 태의 축복이 이루어진 것처럼 모친의 젖을 먹는 축복은 우리 전 삶의 축복에 대한 증거가 된다. 우리를 먹이어 살리신 그분은 결코 우리를 굶주리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욥 3:12).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아마도 그것은 팔일째에 할례를 가리킬 것이다. 그때 그는 그의 양친에 의해 계약되어진 그의 하나님께 맡겨졌다. 왜냐하면 할례는 계약 보증의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 선하게 베풀어 주셨으며, 끊임없이 보호하시고 공급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10절).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주는 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유익하게 나를 돌보셨나이다.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오늘날까지 그리하셨나이다.” 이 사실은 우리 주 예수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 즉,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분의 성육신과 탄생을 돌보셨던 하나님의 섭리에 적용시켜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마굿간에 태어나서 구유에 누우시고, 헤롯의 악의에 의해 곧 애굽으로 도망하게 되었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이다.
Ⅱ. 원망과 간구 22:11-21
(1)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실제로 자주 고난을 당했으며 대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 세부적으로 열거된 대부분의 특별한 상황들은 결코 다윗에 대한 사실들이 아니다. 따라서 심한 굴욕을 당하신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져야 한다.
1) 그는 자기 친구들에게 버림받는다. “환난과 고통이 가깝고 도울 자 옹호할 자 없나이다”(11절).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했기 때문에 그는 혼자 포도주 틀을 밟았다.
2) 그는 그의 대적들에게 모욕당하고 에워싸임을 당하였다. 대적들의 힘과 맹렬함은 바산의 힘센 소인 황소에 비유되었다(12절).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박해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었다. 그들이 또 더럽고 탐욕스러우며 쓰러뜨리기에 지칠 줄 모르는 개에 비유되었다(16절). 그를 해하려고 악한 것을 모의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잡으려는 방법과 수단을 모의하기 위해 공회에 앉은 대제사장들이었다.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16절). 그들은 거대하고 위협적이다(13절). “내게 그 입을 벌림이 나를 삼키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 주나이다.”
3) 그는 십자가에 못박힌다. 유대인들 중에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방법이 묘사되었다. 악한 무리가…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6절). “저주받은 나무에 내 수족이 못박혔나이다.”
4) 그는 죽어가고 있다(14,15절).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는 고통과 고뇌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14절).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15절). “최소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이제 막 음부로 떨어지려 하나이다.” 죄인의 생명이 상실되었으므로 희생 제물이 그것을 대속해야 했다. 아담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는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표현되었다. 죽음에 복종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유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주께서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5) 그는 벗김을 당하였다. 벗김을 당하는 수치는 직접적인 죄의 결과였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벗김을 당하신 것은 그의 의의 두루마기를 우리에게 입히우시고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나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① 이와 같이 벌거벗겨졌을 때 그의 몸은 어떻게 보였는가?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17절). “지나가는 구경꾼들과 행인들이 나의 뼈를 보고 놀라며, 나를 동정하는 대신에 이러한 비참한 광경을 보고 즐거워하나이다.”
② 그들이 그에게서 취한 옷으로 무엇을 했는가? 저희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18절). “저희가 각 군병의 몫으로 나의 옷을 나누며, 솔기없는 옷이라고 제비뽑나이다.”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성취되었다(요 19:23,24).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커다란 예가 전혀 못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그에 관해서 나타난 성경이 성취된 중요한 일례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 당하신 것이다.
(2) 죽음의 고통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는 그 잔이 그에게서 지나가기를 기도하였다. 여기에 있는 다윗의 기도가 그것의 모형이 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부르고 있다(19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11절).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19절). “모든 사람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여 주는 그리하지 마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히 5:7), 그로 하여금 그의 일을 완성할 수 있게 하셨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그의 영혼을 내 유일한 것이라 부른다. ‘내 영혼은 내 유일한 것이니이다.’ “내가 돌볼 것은 오직 유일한 영혼이니, 만일 내가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나는 더 큰 수치를 당할 것이니이다.”
그는 칼에서 구원받기를 기도한다. 즉 사방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화염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것에서 내 영혼을 구하소서. 비록 내가 내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 내게서 주의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하소서. 나를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이것들은 옛적 사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호와여 나를 그 공포에 압도되지 않도록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21절). “내 기도에 응락하여 나를 그에게서 구원하셨나이다.” 우리가 괴로움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과연 들소 뿔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찢기우지 않도록 사자의 입에서 우리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소망으로 용기를 갖으라.
이 그리스도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고난당하였지만 아버지께서 그를 사흘만에 죽음의 티끌에서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하신 것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했다면 그의 사업을 못하게 방해한 것이 되지만, 부활은 그것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Ⅲ. 하나님께 대한 노래 22:22-31
불평의 첫 마디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에 의해 발설되어진 것처럼, 승리의 첫 마디도 그에 의해 표현되었다(히 2:12). 이것은 자신의 말인 것이 분명하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22절).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 가운데 속죄하시고 승리하신 것에 대해 다섯 가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 그는 세상에 교회를 가지실 것이다. 그가 그 씨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사 53:10). 하나님의 성호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또한 명확하고 오류가 없는 영원한 복음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갈 것이다. 이와 같이 부름받은 자들은 그의 형제로서 그와 매우 가깝고 귀중한 관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믿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이다(히 2:11). 이러한 그의 형제들은 큰 회중에 연합될 것이다. 그러한 회중이 우주적인 교회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지명된 전체 가족, 즉 모든 자녀들은 흩어진 곳에서 모여 하나가 될 것이다(요 11:52;엡 1:10). 또한 그들은 집단의 일원인 좀 더 작은 모임으로 연합 될 것이다. 이들은 야곱과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여겨질 것이며(23절), 비록 이방인들이라할지라도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할 것이다(갈 3:14). 복음 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불려진다(갈 6:16).
(2) 하나님은 그 교회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크게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쾌히 다음과 같이 내다본다.
1) 하나님은 그에게 모일 교회에 의하여 영광 받으실 것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찬양할 것이며(23절),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참조. 118:2-4;135:19,20).
2) 하나님은 구속자와 그의 사업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다(히 2:12). 우리의 모든 찬양들은 구속 사업에 집중되어야 한다.
(3) 겸손하고 은혜로운 모든 영혼들은 그분 안에서 충만한 만족과 행복을 받을 것이다(26절). 많이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감사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며 그 소망 가운데서 그를 찾는 동안도 그를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헌신 된 영혼들은 항상 그와 함께 행복할 것이다.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4)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와 함께 사람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모든 구석에까지 미칠 것이다(27,28절). 오랫동안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나누었던 담이 무너지고 이방인들이 세상 사방 끝으로부터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그들이 회심할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진지한 반성은 참된 전향의 첫 단계가 되며 훌륭한 단계이다. 우리는 충분히 자신을 고려한 끝에 돌아서야 한다. 탕자는 먼저 본심으로 되돌아 온 후 그의 아버지께로 갔다.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온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를 섬기는 무리속에 들어가도록 허락될 것이다. ‘저희가 주 앞에 경배하리니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재물을 드림이라'(말 1:11;사 66:23). 열방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28절).
1) 자연의 왕국은 주 여호와의 것이며, 그의 섭리가 열국을 다스리신다.
2) 은혜의 왕국은 주 그리스도의 것이며, 중재자이신 그가 열국들의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또한 그는 그의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높은 자와 낮은 자,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속박된 자와 자유로운 자들이 모두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는 많은 위대한 자들로부터 경의를 받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 할 것이요. 가난한 자도 그의 복음을 받을 것이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어’ “먼지 가운데 앉아 자기 영혼을 살릴 수 없는 자(113:7)도 거름 무더기에서 일으키시므로, 가난한 자의 왕이 되는 것을 그의 영광으로 여기는 주 예수 앞에 절하리로다”(72:12).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살아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살도록 구원하시고 지키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5) 그리스도의 교회나 그와 함께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왕국은 대대로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30절). 상속을 보존하기에 충분한, 남은 자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그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 대하셨던 것과 같이 후세대의 그들에게도 대해 주실 것이다. 그들은 와서 그들의 날에 일어나서, 지나간 세대의 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장차 올 세대에서 영혼들의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그들은 그 세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이것을 찬양함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개가를 불러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에서 그를 찬송하고 있을 때, 땅에서도 그를 찬송하는 백성들이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