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설교 말씀은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운명에 대해서 말씀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쫒지 않는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도 않는다. 항상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서 살아간다. 그러나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이 불면 모두 날아간다. 의인들은 여호와의 길을 인정하지만 악인들은 망하게 된다. 시편 1편을 통해서 우리가 여호와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한다.
Ⅰ. 복 있는 사람 1:1-3
시편 기자는 경건한 사람의 특성과 조건을 말함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한다.
(1) 여호와는 그의 백성을 그 이름만으로도 아시지만 우리는 그들의 성품으로 그들을 알아야 한다. 선한 사람의 성품은 본문에 나오듯이 그가 행할 바를 선택하는 그 규칙에 의해서 알 수 있다.
1) 경건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1절). 경건한 자의 이러한 특성은 여기서 첫 번째로 놓여 있다. 왜냐하면 악에서 떠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주변에 있는 행악자들을 본다. 세상은 그러한 자들로 가득차 있다. 그들은 여기서 세 가지 특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악인, 죄인, 그리고 오만한 자이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던져 버린 악인이다.
종교적인 일을 멀리할 때, 죄인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개적인 반역에 가담하는 자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태만, 즉 소극적인 범죄는 적극적인 범죄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태만으로 마음이 완고해지게 되면 마침내 오만한 자가 된다. 즉, 그들은 공연히 신성한 모든 것을 무시하며, 신앙을 비웃고, 죄를 장난처럼 한다. 우리가 그러한 자를 악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불안정하며 아무런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지도 않고 확실한 어떤 규범에 따라 행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모든 정욕의 지배와 온갖 유혹에 이끌려 행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슬픈 마음으로 본다. 악인들은 선한 사람들의 의로운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선한 사람은 악인들이 행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 선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한다.’
선한 사람은 악인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주고 받는 말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 선한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 그는 그들이 행하는 대로 하기를 피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죄인의 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닮지 않기 위하여 그들과 교제하려 하지 않으며, 그들을 자기의 동료로 택하려 하지도 않는다. 선한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선한 사람은 마귀의 나라를 후원하고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과 수단을 찾고자 몰래 음모를 꾸미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2) 경건한 사람은 선한 것을 행하고 전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에 복종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2절).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매우 기뻐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유일한 계시이며, 하나님 안에 있는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계시해 주는 성경이 있다는 것을 매우 기뻐해야 한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하게 감동 받고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의 향기와 능력을 체험하기까지, 그 말씀에 들어 있는 위대한 것들에 관해서 마음을 집중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우리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2) 경건한 사람은 행복이 보장된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시며 그 복은 그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선함과 거룩함은 행복에 이르는 길일 뿐만 아니라(계 22:14) 행복 그 자체이다. 이후 다른 생이 없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다. 그는 열매맺는 무성한 나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실제적인 효능을 일으킨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3절). 이 나무들은 본래 돌감람나무로 그 나무들이 새로이 접붙임을 받고 위로부터의 능력으로 심기우기까지는 여전히 돌감람나무로 있을 것이다. 어떤 선한 나무도 저절로 자라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심으신 나무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사 61:3). 선한 사람은 은혜의 방편이 되는 ‘시냇가’로 인도된다. 이곳에서 그는 힘과 활력을 공급받지만 그것은 식별할 수 없는 은밀한 방법으로 행해진다. 자비로운 은총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마음과 생활이 은혜가 인도하는 대로 따르며 열매를 맺을 것이 기대된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아무런 선한 열매도 없이 신앙 고백의 잎사귀만 내는 자들은 그 잎사귀마저 마를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지배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 고백은 푸르름을 유지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월계수들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Ⅱ. 악인 1:4-6
(1) 악인에 대해 묘사되고 있다(4절).
1) 일반적으로 그들의 특성과 상태는 의인의 반대이다. 그들은 소돔의 포도 열매 이외에는 아무 과실도 맺지 못한다. 그들이 열매 맺지 못하게 땅은 방해한다.
2) 의인은 귀중하고 유용하며 열매 맺는 나무와 같은 반면에,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그들은 타작 마당 주인이 쓸어 버리기 원하는 먼지로, 아무 쓸데없는 가장 가벼운 겨와 같다.
(2) 악인의 운명에 대해 묘사되고 있다(5절).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즉 그들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한 자는 의인의 회중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부정하거나 성별되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럴듯한 신앙 고백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 이 세상의 위선자들도 의인의 회중에 끼어들어 저지당하거나 적발되지 않은 채로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들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3) 경건한 자와 사악한 자가 이같이 다른 상태에 처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6절). 여호와께서 의인의 길을 인정하시고 매우 기뻐하셨으므로, 그의 자비로운 은총을 힘입어 의인의 길이 변영할 것이며, 형통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악한 자의 길에 분노하신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불쾌하므로, 그들이 행하는 일과 더불어 그 가운데 있는 그들도 멸망할 것이다.
이 시를 노래하고 기도함으로써, 우리들은, 사악한 자의 운명에 대해 거룩한 두려움을 갖고, 우리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 하면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도록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