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강해설교 말씀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악의 길에 앉지 말고 오만한 자와 함께하지 않아야 합니다.
1편: 복 있는 사람
시편 1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된 삶을 증거한다.
[1-2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로 묘사된다.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거의 동의어이다. 죄인은 악하고 오만하다. 꾀는 생각을, 길은 행위를, 자리는 교제를 나타낸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인과 어울리면 악의 영향과 본을 받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잠언 13:20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했다.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모세오경을 가리키든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모세오경의 율법도, 구약성경 전체도 세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며, 둘째는 구주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의롭고 선한 삶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게 된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규칙적이게 읽고 그 뜻을 항상 음미하는 것을 말한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본문은 복된 자, 즉 악인을 멀리하고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나무로서 가장 복된 나무이다. 나무에게 필수적인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나무로서 걱정거리가 없다. 이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과 함께 또 그 말씀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상징한다고 본다.
이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나무로서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많이 열어야 하고 포도나무는 포도를 많이 열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우리가 많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요 15장). 열매는 성도의 좋은 인격과 선한 행실을 가리킨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땅에는 때때로 가뭄이 있다. 땅이 가물면 나무 잎사귀가 마르게 되며 심하면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냇가에 뿌리를 박은 나무는 물 부족이 없고 시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시냇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의 시냇가이며 그것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결코 영적 침체가 없다.
또 이렇게 경건한 사람의 계획하고 행하는 일은 다 형통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교훈된 바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영육으로 복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고 죄짓는 일을 두려워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를 형통케 하셨다(창 39:2-3, 23).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계명을 지킨 히스기야와 함께하셨고 그를 형통케 하셨다(왕하18:6-7).
[4-5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 . . .
본문은 악인 즉 불경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가 복된 자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즉 악인은 선한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가뭄을 타고 범사에 형통하지도 못하다는 뜻이다.
본문은 악인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한다. 이 바람은 세상의 풍조나 환난의 바람 등을 가리킬 것이다. 악인은 세상의 풍조를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고 또 환난의 때에 매우 당황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풍조와 환난 앞에서 든든히 설 수 있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시편 125: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본문은 또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평안한 때에는 악인과 의인이 별차이가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평시에는 악인도 번창하고 형통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악인은 그 앞에 서지 못하고 그 심판을 감당치 못할 것이다. 잠언 24:16의 말씀대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진다.
본문은 또 악인 곧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말한다. 악인은 죽음과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과 영생을 가진 의인들의 회중인 참 교회에 들지 못한다. 물고기가 땅 위에서 살 수 없듯이, 악인은 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고 장차 영광의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요 3:5). 의인과 악인은 본질상 차이가 있다. 그것은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의 차이이다.
[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을 알고 계신다. ‘인정한다’는 원어(요데아 현재분사)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길은 행위와 삶을 가리킨다. 의인의 삶은 불경건과 악을 버리고 미워하고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를 멀리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항상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을 알고 계신다. 그는 의인의 행위와 삶을 처음부터 또 마음의 깊은 것까지 속속들이 다 아신다(시 139:1-4; 히 4:12-13). 그는 단지 그것을 지식적으로 아시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인정하시고 의인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영생의 복을 주신다.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다(시 16:11).
그러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악인의 삶은 하나님을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뜻을 거슬러 불의와 악을 행하는 삶이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 삶이다. 즉 세상의 유행과 여론과 풍습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세상적인 삶이다.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다. 그 육신은 늙고 병들고 쇠약하여 마침내 죽을 것이다. 그들이 쌓은 부와 재물은 허무하여 독수리처럼 날아갈 것이다(잠 23:5). 그 재물은 남에게로 돌아갈 것이다(눅 12:20). 또 그 영혼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며 마지막 날 부활하여 영원한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복음 5:29,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와 같이, 의인과 악인의 길은 확실히 다르다. 그 둘의 생활목표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고 그 결말이 다르다.
복 있는 자는 악한 자를 멀리하고 성경말씀을 가까이하는 자이다. 우리는 악을 멀리하고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과 친근히 하지 말고, 오직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의로운 교훈대로 살기를 힘쓰자.
복 있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계절을 따라 좋은 열매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고 그 하는 일들이 다 형통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이 되지 말고 의인이 되고 의인의 길을 걷자. 우리는 모든 죄악된 일을 멀리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말씀의 교훈대로 순종하여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그것이 복 있는 자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