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목회 세미나 중에서 오늘은 교회 목회자의 이미지 개발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은 종합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설교만 해서도 안 되고 교회 행정도 필요하고 목회지 이미지 개발도 필요합니다. 교회의 목회자가 주변에 이미지가 좋아야 합니다. 평판이 좋지 않으면 교회 부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교회 목회자의 이미지 개발 방법
서 론
목회의 개발은 결국 목회지도자의 개발이라고 말할 수 있고 목회지도자의 개발은 목회자가 갖는 다양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목회자의 이미지 개발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본 론
교회의 목회를 담당하는 지도자의 이미지가 그 시대에 따라 달라져 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천년의 그리스도교 목회를 개관해 볼 때,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목회 지도자가 차지해온 위치가 있으나, 그 이미지와 스타일은 항상 변천해 온 것입니다. 짧은 시대구분으로도 그 변화를 서술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오늘의 목회 지도자상을 이해하기 위해 큰 윤곽만을 지적해 두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크게 구분해서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에서는 “제사장적” 목회자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목회자의 중요한 기능은 예배에서 미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적 역할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예언자적” 목회자상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미사보다는 설교자로서의 목회자상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미사보다는 설교자로서의 목회자상이 지배적이었고, 18세기 이후엔 전도자, 부흥사로서의 목회자, 나아가서 선교자로서의 목회자의 이미지가 부각되었습니다. 이 모든 목회자상을 예언자적 목회자상에 포괄해서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50년을 전환점으로 또 하나 새로운 목회자상이 교회의 지평에 드러나기 시작해서, 그것이 오늘날까지 좀더 분명히 발전되어 왔고, 앞으로 긴 시간을 두고 지배적인 목회 지도자상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목회자적” 지도자상입니다. 목자로서의 목회자의 역할과 기능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목회자상을 현상학적으로 고찰한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는 1950년대 말기에 벌써 그 이미지를 “목회적인 지휘자”(pastoral director)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후, 최근에 출판된 「미국에 있어서의 목회」란 방대한 조사 연구에서 더욱더 이런 경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요청되는 목회자는 교회 회중을 잘 이끌어 주는 지도자이어야 하고, 인간의 문제를 이해해주고 돌봐 줄 수 있는 “목회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북미주 교회에만 국한되는 현상 같지는 않습니다. 유럽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고, 자리가 잡혀가는 제 3세계 교회의 형편도 그 사정이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이런 현상은 개신교회 뿐만 아니라, 로마 카톨릭 교회를 포함한 세계 교회의 공통된 현상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오늘의 지배적인 목회자상으로 목회자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큰 항목만을 열거하면 현대사회의 변천, 교회신학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지도력 개념의 등장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는 과학기술의 혁명으로 온 지구가 한 마을처럼 생각될 만큼 가까워졌으나, 이런 변혁 과정에서 인간은 점차로 비인간화되고, 나아가서 더욱더 “외로운 군중”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인간은 현대 문명의 숲 속에 잃어버린 양이 되어 가고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목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 변화의 와중에서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그 선교적인 사명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가 교회로서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 제사장도 필요하고 예언자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 교회를 교회답게 먹이고 인도해 줄 목회 지도자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요청하게 된 것이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상황은 좀더 새로운 스타일의 목회 지도력의 개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카리스마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지도력이 더 이상 먹혀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도 종전처럼 그 직위나 직분 때문에 주어지는 권위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무언가 새로운 스타일의 지도자를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곧 목회자로서의 이미지 개발입니다.
“목회자”로서의 지도자상이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이미지만은 아닙니다.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오랜 전통이 있는 목회자상입니다. 다만 오늘이라는 시대적 교회적인 상황이 특수한 목회자상을 요구하고 있고, 목회자들도 이런 시대적 요청에 적응해 가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개발해 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오늘날 목회론의 지평에 부각되어 가는 몇 가지 목회자상의 개발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전문직 목회자 이미지
교회 전통에서 목회자는 언제나 그가 받은 개인의 신앙적 소명과 그 소명에 대한 교회의 인준, 그리고 그 직분에 대한 기본 훈련을 통해서 양성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배출된 서구 사회 전통의 목회자는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3대 전문직으로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런 근대사회가 점차로 아마추어보다도 전문직을 요청함에 따라서 교회에서도 전문직 목회자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대등한 다른 두 전통적 전문직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염두에 두고 목회자로서의 전문직(profession)형성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적 요청에 따라서 전문직으로서의 목회자의 직능에 대한 이해와 훈련 방안이 모색되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의 하는 일 하나 하나를 상식과 지혜에 맡겨 버려서는 안 되고, 그 직업적 실천이 신학 이론의 뒷받침은 물론, 그 결과도 전문적 사고에 의한 비판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그 목회의 대상인 교인 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회중 전체와의 관계에서의 직업적 행동이 객관적으로 분석되고 비판됨으로써 목회자의 직업의 전문성이 인정받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이 대체로 세 가지 현상으로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먼저는 인턴, 임상 훈련 등의 과정을 통한 목회자 스스로의 전문적 자질 향상을 추구해 온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의 전문적 사고와 수완을 갖추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엔 이런 전문적 목회기술 습득의 방안이 신학교육의 제도적 장치로까지 발전을 하게 되었지만, 목회 상황적 요청에 따른 개개 목회자의 전문적 준비가 이렇게까지 발전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개인적 전문적 노력만으로 목회자의 현실적 요청을 모두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협회, 변호사협회와 비슷한 목사협회를 구성해서, 이런 조직체를 통한 목회자의 자질 향상과 그 전문성의 견제를 꾀한 실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목회자끼리의 조직을 통해서 스스로 전문적 수준을 유지하고, 그 사회적 보장을 받으려는 시도로서 “북미주 목사협회”의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목회 사례 연구 같은 방법을 여기서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문적 목회자의 현실적 요청을 신학 교육 기관에서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동한 것이 목회 박사(D. Min.)의 출현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도 다른 전문적인 의사와 변호사와 대등한 호칭으로 불리어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 교육의 내용을 질적으로 좀 높여서 전문적인 차원의 훈련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소홀히 하는 이른바 전문적 훈련을 전제로 하지 않은 학위의 남발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는 있으나, 이 학위의 근본 동기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문적인 목회자의 요청을 위한 적극적인 대처 방안으로서 바로 이해되고 선용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든 오늘날엔 전문적인 목회자가 요청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능적 목회자 이미지
오늘날엔 목사직 전체를 전문직으로 보고 그 전문성을 확보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목회자의 여러 가지 기능을 부분적으로 전문화하려는 경향도 점차로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기능 전체가 아니고 주어진 특수 상황이나 개인적인 소양을 감안해서 몇 가지 목회 기능의 전문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기능을 전통적으로는 예언자, 제사장, 목자(왕)로 3분해서 생각해 왔고, 근래에는 현대 인접 학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전달, 조직, 목양으로 3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이론은 현대 지도력의 관점에서 목회자의 기능을 달리 3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지도자요, 둘째는 조직의 관리자이며, 셋째는 인간관계의 화해자입니다. 목회자 각자가 자기 나름의 은사를 생각하면, 위 어느 경우이든 한 분야에는 어느 정도의 소질을 타고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각 있는 목회자라면 자기의 장점은 계속 발전시켜 가면서 약한 부분을 보완해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목회를 해갈 것입니다.
요즈음의 목회 상황은 이보다도 더욱 좁은 분야의 전문적 기능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수한 상황의 목회적 책임을 맡게 될 경우입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목회자로서의 일반적인 기능에 대한 숙달을 초월해서 그 이상으로 어떠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과 실천 방법을 갖추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에는 그런 경우가 더욱 더 많아져 가는 실정입니다. 아울러서 오늘날에는 목회자의 기능도 이런 추세에 따라서 더욱 더 세분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전형적인 개혁 교회의 목회 기능을 설교자, 행정가, 목양자, 예언자, 신학자, 전도자, 교사 등 일곱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예배 인도자, 화해자의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예언자의 기능 같은 것은 전문적인 수련으로 훈련이 되어질 수 없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밖에 기능들은 훈련을 통해서 기능적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특수한 자질을 요청하는 교회의 목회자는 설교 연구와 메디아의 도구를 활용해서 능력을 개발해 갈 수 있습니다. 요즈음 기능적 목회자의 수가 많아져 가고 있는, 오늘의 목회적 상황은 이를 더욱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목회에다 역점을 둘 수밖에 없는 교회에서는 그 분야의 특기를 갖춘 목회자를 요청하고 있고, 교회 전도에 목회의 우선 순위를 둔 교회적 상황에서는 전도의 전문가를 목회자로 모시려고 합니다. 근간에는 상담을 잘하는 목회자로서의 전문적 요청이 많아져가고 있고, 행정을 잘하는 목회자도 이에 못지않게 숫자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가 커가고 또 안정되어 갈수록 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의 모든 전문직이 다 그렇지만, 목회도 기능적인 전문성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협동적 목회자 이미지
오늘의 목회 상황은 목회자 혼자서만 목회할 수가 없고,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협동으로 목회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목회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목회기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협동적인 목회 기술이 곧 그것인데 어떻게 보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서로 받은 바 은사를 나누며, 함께 목회했던 초대 교회 목회의 재현일는지도 모릅니다. 협동 목회를 요청하는 경우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큰 교회의 경우 여러 목회자가 공동으로 목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또 다른 한 경우는 그와는 정반대로 작은 여러 곳의 교회들을 혼자 혹은 몇 사람이서 함께 목회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 등장하는 에큐메니칼 목회가 다른 하나의 경우입니다.
최근의 사회현상 가운데 산업화, 도시화는 역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인구이동현상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도시 교회는 비대해지기 마련이고, 목사 혼자서 목회하기는 점차로 어렵게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목사, 남녀 전도사를 두고,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교회에서 부목사를 여러 사람 두고, 교육 목사, 전도 목사, 심방 목사 등등의 직분을 가진 목사들을 초빙하기도 합니다. 더욱 비대하면 구역 목사, 청년 목사, 대학생 목사 등도 두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목회 기술은 어떻게 협동해서 좋은 목회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협동의 기술이 없이는 협동 목회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협동해서 일하기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으나, 오늘날엔 일단 협동 목회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훈련이 필수적인 경향입니다. 많은 서구의 교회에서는 같은 급의 목사 둘, 혹은 셋이 함께 목회하는 동사 목회의 경우가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당회장, 설교, 심방 등을 윤번제로 해가면서 조화 있는 목회를 해가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유형과는 다른 형태의 협동목회도 있습니다. 한 교회를 여러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농촌지방과 도시의 구역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팀을 형성해서 목회하는 경우입니다. 특수한 선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목회자들이 협동하면서 여러 개 교회를 함께 목회하는 사례입니다. 인구 이동으로 이농 현상이 심한 농촌 교회의 경우와 도시의 빈민가에서 실천되어 온 목회 패턴입니다. 이런 상황에 적절한 협동목회의 방안이 고안되고 거기에 따른 목회 이론도 정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상의 두 방법이 교파가 다른 여러 교회와 여러 목사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사례가 없지 않습니다. 그것을 에큐메니칼 협동 목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변천 과정에서 시대적 특수 요청이 있을 때, 이런 협동 목회 패턴이 등장되고 있습니다. 한 교회 건물을 여러 교파의 교회가 함께 사용하면서, 동시에 다른 교파의 목회자가 각기 전문적인 기능을 달리 봉사하는 실례가 생겨져가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한 교구나 지역에 있는 10여개 이상의 다른 교파 교회들이 협동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공동으로 일함으로써 효과적인 종교교육, 목회 상담센터의 운영, 사회봉사는 물론 개체 교회의 발전도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협동 목회를 위해서는 종래와는 다른 목회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목회이론과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경영적 목회자 이미지
오늘의 목회 상황이 요청하는 다른 한 목회 지도자는 경영자로서의 목회자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를 잘 다루는 목회 기능이 목회 상담이라면, 교회 회중 전체를 대상으로 그들의 조직체를 잘 관리하는 목회 기능을 목회 경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성장시켜 가기 위해서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이해하고 그 조직을 개발시켜 가야 합니다. 오늘날엔 이런 교회 개발을 관리할 줄 아는 경영적 목회자가 더욱 더 요청됩니다. 인접학문의 조직 이론에서 많은 것은 배워 올 수 있습니다. 모든 조직체는 입력체계(input)와 출력체계(output)로 균형을 유지해야 되고 그 입력과 출력은 교회 안에서 에너지의 변형체계로서 균형이 유지 되어져야 합니다. 경영적 목회자는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성장과 건강을 관리할 줄 아는 이론과 방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가 목회하는 교회는 조직체로서의 균형을 상실한 비정상적인 기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경영적 목회자의 첫째 임무는 교회의 기획입니다. 계획성이 없는 교회로 하여금 계획을 세워서 발전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러려고 하면 교회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장기 단기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야 합니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또 하나의 임무는 이 기획을 추진할 사람들은 골라서 조직하는 과제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을 훈련하고 감독하는 일이 세 번째 네 번째로 뒤따르는 임무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임무는 전체과정에 대한 평가의 과제입니다.
교회경영의 모든 국면을 이런 절차를 밟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서 최대한의 경영적 효과를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경영적 목회의 실천이 조직 관리의 절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적인 지도로서 영적인 동기 부여가 선행되어야 하고 경영과정에 무리가 없도록 인간관계의 긴장을 막거나 해소해 주는 임무를 부단히 계속해야 합니다. 흔히 목회라 하면 이 두 후자의 임무만을 생각하는데 경영적 목회자는 그것들은 수행함과 동시에 조직 개발의 관리까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 목회자는 이 분야의 관심과 훈련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촉매적 목회자 이미지
오늘의 목회 상황에 요청되는 다른 한 목회 지도력의 유형은 촉매적 목회자 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목회자 혼자 모든 것을 다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목회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 제공만 하는 간접 목회입니다. 평신도들에게 동기를 주어서 그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몰이꾼의 목회”(enabling ministry)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바람직한 목회가 교인들에게 서비스나 제공해서 수동적인 신도를 만들거나 교회의 자체적 물량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도나 개교회로 하여금 맡은 바 선교적인 사명을 완수하도록 이끌어 주는 데 목적이 있다면 이 촉매적 목회자의 기능은 필요 불가결한 것입니다.
촉매적 목회자는 우선 교인들의 삶이나 교회의 현실에 변화를 촉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변화가 오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본분을 찾아서 실천하도록 지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소집단 역학을 활용해서 촉매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한 그룹이 가지는 힘은 그 그룹회원 하나하나가 가진 힘의 총화보다도 훨씬 강하다는 것이 현대 집단역학의 지론입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전체 교인들을 촉매해서 동원한 목회의 힘이란 엄청난 것입니다. 이런 촉매적 방법은 교인들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 상담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고 개 교회 전도를 위해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방법입니다. 이런 목회 기능의 습득을 위해서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의 성패는 일반 신도들의 잠재 능력을 활용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목회자들은 새롭게 촉매의 기능을 연마하고 또 발굴해 가야 할 것입니다.
결 론
이상에서 오늘의 세계적인 교회 지평에 부각되고 있는 목회 지도자의 이미지를 몇 가지 열거해 보았습니다. 극히 피상적인 고찰이기는 하나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현상들이 벌써 우리 교회의 현실에도 팽배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의 경우는 아직도 현실의 요청에 대처할 만한 준비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학 교육기관에서 이런 요구에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밖의 인접학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교역자들이 외국에 가서 교육과 훈련을 받아오고 있는 실정이나 최근 각급 신학 교육기관에 전문직 대학원의 확장으로 이 방면의 목회 지도자 양성에 새로운 전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여기서는 다만 이런 우리의 실정에서 목회자가 지도자로서의 자기 이미지를 어떻게 개발해 갈 것인가의 대략만 시사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오늘의 목회자들은 스스로의 전문적 직업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이론적인 신학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요청하는 목회 기술을 습득해 가야 합니다. 계속 교육의 기회를 이용해서, 나 스스로 동료집단을 형성해서 협의와 워크샵을 통해서, 스스로의 목회 기능을 개발해 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오늘의 목회자들로서 필요한 것은 목회 기능에 있어서 유연성과 적응성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목회 상황마다 똑같은 목회기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구가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재빨리 그것을 깨닫고, 거기에 적응해서 필요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을 키워가야 합니다. 상황의 요구는 다른 데 지금까지의 자기 장기만 가지고 대처할 수는 없습니다.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오늘의 목회자는 기능면에서 유연성을 길러야 합니다.
셋째로 오늘의 목회자로서 위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자면 전문적 기능 훈련을 받지도 못했고 자신이 목회 기능면에 있어서 유연성도 적응력도 없을 경우라면, 자기의 제한성을 알고 그런 자신으로서도 최선을 발휘할 수 있는 꼭 맞는 목회 상황을 찾아갈 수 있는 선택의 능력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역자들은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른 데 기준을 두고 교회를 옮김으로 해서 좌절감에 빠진 경우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개 교회에서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오늘의 교역자들은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목회 상황에서 목회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다양한 이미지를 개발함이 없이 목회에 성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