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인물 히브리어 단어공부 중에서 오늘은 눈의 아들인 여호수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모형을 닮고 있는 사람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יהושוע(3091, 예호슈아) 여호수아 Jehoshua
예호슈아(명남)는 예호와(יהוה , 3068)와 야샤(ישע , 3467)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1. 에브라임 지파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 눈의 아들이며(민 13:8, 대상 7:27), “호세아”라고도 부른다(민 13:8). 그는 모세의 수종자(사레트)었으며,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사적은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탐정하러 보낸 자들의 명단에서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민 13:16).
여호수아는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워 승리했다. 이 때 그의 이름이 성경에서 최초로 나온다. 그 때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했다(출 17:8-15).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자로,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을 때 동행했다(출 24:13, 17, 출 33:11, 민 33:28).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를 대표하여 가나안 땅에 파견된 열두 정탐군 중의 한 사람 었으며(민 13:1-3,8,16),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다른 10지파 족장들과 달리 갈렙과 함께 모세와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능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있다고 보고했다(민 14:6-9). 이런 긍정적 보고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나 하나님에 의해 보호받았다(민 14:10).
여호수아는 상급으로 갈렙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정탐갔던 사람들 중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결국 그들 뿐이었다(민 14:30,38, 민 26:65, 32:12).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싯딤에서 엘르아살 제사장과 회중 앞에서 모세의 후계자로서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다(민 27:18-23, 신 1:38).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자였으며(민 27:18, 신 34:9), 하나님의 격려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약속받을 받았다(수 1:5,9).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명에 따라 요단을 건너기 위해 준비하고(수 1:10-18), 여리고에 정탐군을 파송했으며(수 2:1-24),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좇아 요단강을 건너게 했다(수 3:3,11,17). 요단강에서 취한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게 했다(수 4:5-7,20).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고(수 5:3,8-9), 여리고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지키게 했다(수 5:10)
여리고 성에 가까왔을 때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났다(수 5:1,3,10-15). 여리고성을 점령하고(수 6:16, 20-21), 여리고에서 정탐군을 보내어 아이성을 정탐하고(수 7:2-3), 공격했으나 아이 사람에게 패배했다(수 7:4-7). 이유는 아간이란 자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노략한 물건을 숨겨 두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 가족을 처치했다(수 7:4,5,11,16-21,22-26). 아이 성을 다시 공격하여 점령하고 불태워버렸다(수 8:10-11,19,28). 여호와를 위해 에발산에 단을 쌓았다(수 8:30).
가나안의 여섯 왕이 동맹하여 여호수아를 대적했으며(수 9:1-2), 기브온 거민들에게 속아 언약을 맺었다(수 9:3-4,15),
여호수아는 아모리 족속(수 10:5, 10-11)과 가나안의 다른 일곱명의 왕들을 패배시켰으며(수 10:28-39), 하솔 왕 야빈의 연합군을 쳐부수고(수 11:1-2,7-8), 가나안 온 땅을 점령했다(수 11:23, 12:7-24).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고(수 13-21장), 실로에 성막(회막)을 세우고(수 18:1), 도피성들을 구별해 세웠다(수 20:1-2,9),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수 23:1-16), 백성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고별 강연을 하고(수 24:1 이하), 세겜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수 24:25-8).
여호수아는 죽고 매장되었다(수 24:29-30, 삿 2:8-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삿 2:9)
여호수아는 담대하고(민 14:6-9), 확고한 신앙의 소유자이며(수 6:16), 감정이 풍부하고(수 7:6-10), 지혜로운 군인(출 7:13, 수 8장. 수 10장. 수11장), 예언자(수 6:26-7), 강력한 종교 지도자(삿 2:7), 신뢰받는 지도자(수 1:16-18)였다. (참조, 주제별성서대전, 이병철).
[참고] 여호수아는 ‘신성한 역사에 의해 성별된 첫번째 군인’이라고 불리워왔는데, 이는 올바르다. 그의 인물됨을 연구하는 적절한 방법은 다음과 같은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1) “아들로서”. 여호수아는 “번영, 영속성이 있는”을 의미하는 이름인 눈의 아들이었으며, 에브리암지파에 속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어머니는 영향력있고 영예로운 지위에 도달한 남자의 배경에 있었던 선하고 자비로운 여인이었을 것이다.
(2) “노예로서”. 여후수아는 그의 민족이 애굽의 바로 왕 아래에서 속박을 받았던 고난의 세월에 태어났다. 그는 채찍질과 거의 견디어내기 어려운 벽돌장에서의 노역, 자유에 대한 깊은 탄식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읽개 노예에 불과한 자신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이자 지휘관이 되리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했다. 그는 당시에 가공할만한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동포들의 도덕적, 사회적 타락을 목격하였다. 따라서 그가 지도자의 지위에 앉게 되었을 때, 초기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엄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수 24:15).
(3) “군인으로서”. 여호수아는 야전을 계획하고 병력을 훈련시키며 정탐문을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탁월한 군사 지도자였다. 많은 장군들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면밀히 연구하고 그의 전략을 따랐다. 그가 아말렉을 어떻게 패배시켰는지를 읽어보자(출17:9-16)! 그는 결코 도둑질을 하거나 약탈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한 군인이자 철저한 기독교인”이라고 칭송받았던 헨리 하브록 경(Sir Henry Havelock)과 같았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여호와의 군대의 대장으로 모시고 순종한 여호와의 모든 훌륭한 군사들 중 으뜸이었다(수 5:13-15).
(4) “종으로서”. 아말렉에 대한 여호수아의 승리는 그에게 한층 더 유용성과 책임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가 지휘권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확고한 충성심과 헌신 때문에 “모세의 종”으로 일컬어졌다는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민 11:28, 수 1:1).
(5) “정탐꾼으로써”. 여호수아는 11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선발되었다.(민13:1-16). 모세가 자기 종의 이름을 “돕는다”를 의미하는 오세아(Oshea) 또는 호세아에서 “하나님의 도움” 또는 “구원”을 의미하는 여호수아로 바꾼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모세가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은 백성들의 생각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지도자들을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보도록 인도하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내었다. 갈렙과 함께 그는 가나안 땅에 대해 신뢰할만한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으나, 백성들이 그것을 거부하였으며, 그럼으로써 광야에서 40년간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러한 경험에 의해 유익을 얻었다(수 2:1,2).
(6) “구원자로써”.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는 백성들을 가나땅의 접경까지 이끌어 왔으나,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해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하나님의 구원)였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러한 임무를 위임하신 것은, 아마도 그가 싯딤에서 지휘관의 자리에 있었던 때인 85세 무렵이었던 것같다. 그가 구원자였던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욕을 씻도록 도우며 그들의 소유를 얻도록 인도한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의 정보고가 승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신 것을 표상한다.
(7) “정치가로서”. 여호수아가 얼마나 넓은 도량과 사심없는 정치적 수완을 드러내주었는가! 땅의 분배가 끝나자, 그는 성막을 세우고, 도피성을 지정하고, 레위의 서열과 직무를 배정하였는데, 이러한 일에도 역시 이스라엘의 최고 권력자이자 지도자로서 다른 일을 수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철저하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8) “성직자로서”. 여호수아의 성자다움은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눈에 띄게 하였다(신 34:9).
그는 실로 군인이면서 성자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다(신 34:9).
그에게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다(수 1:5, 수 6:27)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았다(수 1:8)
그는 하나님의 뜻에 늘 순종했다(민 32:12, 수 5:14).
그가 11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모든 사람이 심히 슬퍼하였으며 그가 수행한 탁월한 일들을 모두가 인정하였음은 놀라운 일이 이니다. 간략하지만 숭고한 그의 비문은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 앞에”라는 매우 감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죽어서도 영향력을 여전히 끼쳤으니,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의 사는 날동안 계속하여 여호와를 섬겼기 때문이다(수 24:31)(H.Lockyer)].
2. 대제사장인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그는 스룹바벨이 유다 총독으로 있었을 때의 대제사장인 여호사닥의 아들이다(학 1:1,12,14, 2:2-4).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는 “예수아”로 읽는다. 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지도하여 성전중수를 했다(스 2:2, 느 7:7, 슥 3:1-9, 6:11). 그의 조부 스라야는 예루살렘의 함락시 제사장이었으나 느부갓네살왕 때문에 립나에서 피살되고, 아버지 여호사닥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고 거기서 여호수아는 탄생된 듯하다. 여호수아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성전 부흥을 계획하여 먼저 번제를 드리는 하나님의 단을 쌓고 번제 드리며 초막절을 지켰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듬해 2월(현력 5월) 스룹바벨을 비롯하여 여호수아 등 20세 이상된 자들을 건축 감독자로 세워 본격적으로 성전 건축을 착수하였다. 70년 전에 무너진 성전이 이제 그들의 자손을 통하여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스 3:2- 9). 스10:18에 나오는 제사장들 중 이방인 아내를 취한 제사장 명단에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림과 그달랴라”라는 기사가 있다. 스가랴 선지를 통해 이스라엘의 내부의 영적 축복에 관한 이상으로서 여호수아가 나온다. 당시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다.
백성의 죄를 대표할 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사단에게 피소되었으나, 하나님의 긍휼로 도리어 패소되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원수들의 방해로 인하여 성전 재건을 중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그 시작한 성전 재건의 과업을 완수시키고야 만 것이다. 하나님은이 사실을 보여 주시려고 스가랴에게 이 계시를 주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위하여 변호하실 뿐만 아니라 적지에서 더러워진 옷을 벗기시고 성결의 새 옷을 입히시고 면류관을 씌워 주심으로 제사장의 권위를 갱신케 하셨다. 즉, 이스라엘의 과거의 불의를 제거하시고 포로로 인하여 잃었던 제사장의 나라와, 성민 최초의 특권을 회복해 주심으로 사단의 송사를 일축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선민된 권리를 사단 앞에서 확인해주셨다.
하나님은 송사하는 사단 앞에서 여호수아를 존귀케 하신 축복을 주셨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이 제사장의 임무를 다하면 영영히 제사장의 특권을 누리는 동시에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메시야 왕국의 구원 축복을 예언하셨다(슥 3:1- 10).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마침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금과 은의 면류관을 받았다(슥 6:11).(성서대사전, 이성호).
3. 벧세메스 태생의 이스라엘인.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수레에 실려 블레셋 땅에 들어 왔을 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섰다(삼상 6:14, 삼상 6:18).
4. 요시아 때에 예루살렘을 치리하던 부윤.
요시야 왕 시대에 예루살렘 부윤이며, 그의 집 대문 앞에 있던 산당은 요시야 왕의 신명기적 개혁의 결과로 파괴되었다(왕하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