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주석 성경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과 싸워서 정복해 나가야 합니다.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정착하는 초기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장: 불완전한 정복
[1-2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 . . .
사사기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사사 시대의 역사적 교훈을 기록한 책이다. 사사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 왕을 세울 때까지 약 330년간의 시대를 가리킨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구주요 재판관이요 통치자이었다. 사사기에는 열두 명의 사사들이 나온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은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하고 하나님께 물었다. 그것은 바른 태도이었다. 후에 다윗 왕도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삼하 5:19, 23).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다.
[3-4절]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 . . .
유다는 그 형제 시므온에게 말하기를,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갔다. 유다가 올라갔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으며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 명을 죽였다.
전쟁은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어린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고(삼상 17:47) 과연 그를 이겼다. 또 여호사밧 때에 하나님께서는 야하시엘을 감동하셔서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증거케 하셨다(대하 20:15).
[5-7절]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 . . .
그들은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을 죽였는데,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므로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었다. 그때 아도니 베섹은,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고 고백하였다. 수족의 엄지가락(보헨)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가리킨다. 아도니 베섹의 고백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잘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한 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다.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그는 거기서 죽었다.
[8-10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 . . .
유다 자손은 예루살렘을 쳤고 성을 불살랐으며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들과 싸웠고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민수기에도 언급된 인물들로 유명한 아낙 자손 거인들이었다(민 13:22, 33). 여호수아 때에는 그들을 쫓아내기만 하였었다(수 15:14). 헤브론의 본명은 기럇 아르바이었다.
[11-15절]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들을 쳤으니 . . . .
유다가 또 드빌 거민들을 쳤는데, 드빌의 본명은 기럇 세벨이었다. 갈렙은 기럇 세벨을 쳐서 취하는 자에게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말했는데,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즉 갈렙의 조카 옷니엘이 그것을 취하였기 때문에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악사는 출가할 때 남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렸고 갈렙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고 요청하였고 갈렙은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다.
드빌 성의 정복에 관련된 이 내용은 여호수아 때에 이루어진 일을 회고하며 삽입한 것 같다. 같은 내용이 여호수아 15:13-19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후에 열둘 중 첫 번째 사사가 될 옷니엘의 믿음과 용맹을 증거하고, 또한 드빌 부근에 있는 윗샘과 아랫샘이 옷니엘의 소유임을 확인시켜 주는 뜻이 있는 것 같다.
[16절]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 . . .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었는데,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였다. 종려 나무 성읍은 여리고를 가리킨다(신 34:3). 후에 사사기 4장에 보면, 겐 사람 헤벨이라는 여인은 이스라엘을 도와서 용감하게 하솔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죽였다(사 4:11, 17-21).
[17-21절]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한 . . . .
유다는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완전히 죽였으므로 그 성읍 이름을 호르마라고 불렀다. 유다가 또 가사와 그 경내(territory, 경역)와 아스글론과 그 경내와 에그론과 그 경내를 취하였고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적었고 충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큰 믿음을 가졌고 죽도록 충성하려 했다면 가나안 거민들을 다 쫓아내었을 것이다.
한편 갈렙은 모세의 명한 헤브론을 받았고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들을 쫓아내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가나안 정복의 분량을 온전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여부스 사람은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사사시대의 말까지 예루살렘에 거하였다.
[22-26절] 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 . . .
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갔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셨다. 요셉 족속이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명은 루스이었다. 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 성의 입구를 가르쳐주었고 그래서 그들은 칼날로 그 성읍을 쳤고 오직 그 사람과 그 가족만 놓아 보냈다. 그는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다. 벧엘 거민을 다 죽인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수행한 것이지만, 성 입구를 일러준 그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려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잘한 일인 것 같지 않다. 그와 그가 복구한 루스 성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부패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27-29절]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 . . .
므낫세는 벧스안, 다아낙, 돌, 이블르암, 므깃도 등의 성읍들과 그 촌락들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가나안 사람들은 결심하고 그 땅에 거했다. 이스라엘은 강성한 후에야 그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못했다. 에브라임은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가나안 사람들은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했다.
[30-33절]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 . . .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들과 나할롤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 중에 거하며 강제 노동에 복종하였다. 아셀은 악고 거민들, 시돈 거민들,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으므로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거했다. 납달리는 벧세메스 거민들과 벧아낫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은 그들에게 강제 노역을 당하였다.
[34-36절]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 . . .
심지어 아모리 사람들은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지 못하게까지 하였고 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다. 그러나 요셉 족속이 강성해져서 아모리 사람들은 결국 강제 노역에 굴복하였다. 아모리 사람들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이었다.
사사기 1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취하고자 할 때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후에 다윗도 그러하였다(삼하 5:19, 23). 잠언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자손과 함께하셨고 또 요셉 자손과도 함께하셨다(2, 4, 19, 22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은 이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도니 베섹을 공의로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시편 62:12,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담대히 하나님만 의지하자.
셋째로, 이스라엘의 불완전한 정복이 문제이었다. 이것이 본장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유다 자손, 베냐민 자손, 므낫세 자손, 에브라임 자손, 스불론 자손, 아셀 자손, 납달리 자손, 그리고 단 자손까지 그들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고 죽이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과 용기가 부족하고 충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육신의 연약함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믿음이 적을 때 세상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불완전한 정복은 이스라엘 사회 즉 구약교회의 부패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작은 누룩은 온덩이에 퍼질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자신의 온전한 성화를 위해 분발해야 한다. 우리 속에 남은 작은 죄성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는 그 죄 때문에 범죄하고 결국 실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했다(골 3:5-6). 또 주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또 세상의 것들을 참으로 버리고 미워하지 않으면, 참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마 16:24; 눅 14:26-27, 33), 이 세상의 염려와 물질과 육신적 쾌락을 극복치 않는 자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와 같다고 하셨다(눅 8:14). 그것은 결실치 못하는 실패하는 씨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중요한 교훈이 된다. 우리는 온전한 교회 건립을 위해 성실해야 한다. 전도와 양육은 병행되어야 한다. 성경은 교회가 부패되지 않도록 깨어 있고 서로 권면하고 충고해야 할 것을 말했다. 교리 사상에서도, 인격과 삶에서도 그렇다. 성경은 나쁜 친구를 멀리하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히브리서 3:12-13,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브리서 12:14-16,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우리는 온전한 교회를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