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장 히브리어 원어성경 복음 설교문은 하나님이 블레셋 다곤 신상을 심판하여 깨뜨려 버렸다. 블레셋 민족이 언약궤를 가지고 가므로 하나님이 심판했다. 블레셋 민족을 심판하니 당할 수밖에 없다.
성 경: [삼상5:1] 우필리쉬팀 라키후 에트 아론 하엘로힘 바이비이후 메에벤 하에제르 아쉬도다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다곤 신당에 안치된 언약궤]
블레셋…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 ‘하나님의 궤'(the Ark of God)는 블레셋 족속에게는 자신들의 역사 이래 최대의 전리품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하나님의 궤를 탈취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들의 처음 염려(4:6-8)와는 달리 그 궤가 어떤 능력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그 궤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아스돗에 이르니라 – ‘아스돗'(Ashdod)은 원래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긴 하였으나(수 15:47) 그 지파에 의해 정복되지는 못했다. 이 도시는 강대국 애굽과의 교역을 위한 근거지였고, 또한 애굽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블레셋의 도시 중 중요하게 여겨졌다. 수 11:22;13:3 주석 참조. 한편 블레셋 사람들이 이때 여호와의 궤를 이곳으로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이곳 신전(神殿)에 모셔진 자신들의 다곤(Dagon) 신에게 그 궤를 일종의 예물로서 바치기 위함이었다.
법궤의 이동 경로 – 여호수아시며 이래 계속 실로(Shiloh)에 있었던 법궤는 마침내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르러 옮겨졌다. 즉 엘리의 두 아들의 주관하에 법궤는 실로로부터 에벤에셀(Ebenezer)과 아벡(Aphek)사이의 전쟁터로 이동되었다(4:4, 5).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블레셋 족속에게 법궤를 빼앗겼다(4:11).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족속은 처음 그것을 아스돗(Ashdod)으로 가져갔다가, 곧 가드(Gath), 에그론(Ekron)으로 옮기었다(5:1-10).
그 이유는 법궤가 가는 성읍마다 독종 재앙이 발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블레셋 방백들은 법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숙의(熟議) 결과 암소 두 마리가 모는 수레에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땅의 벧세메스(Bethshemesh)로 돌려보내게 되었다(5:11-6:15). 이후 법궤는 곧 기럇여아림(Kiriath-jearin)땅의 엘리아 살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법궤는 이곳에서 근 20년 동안 안치되었다(7:1, 2).
성 경: [삼상5:2] 바이카흐 필리쉬팀 에트 아론 하엘로힘 바야비우 오토 베이트 다곤 바야치구 오토 에첼 다곤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다곤 신당에 안치된 언약궤]
다곤(Dagon) – 고대로부터 이 우상은 메소보다미아, 앗수르, 베니게 지역 등지에서 널리 숭배되어 온 우상인데(The New Bible Dictionary), 블레셋 족속은 이 우상을 베니게 족속들에게서 수입하여 자신들의 민족 수호신(民族守護神)으로 삼은듯하다(H. Schmokel). 그것은 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아스돗’ 뿐만 아니라 ‘가사'(삿 16:23) 등 블레셋의 주요 성읍 여러 곳에 세워진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분명해진다(R. Payne Smith). 한편 이 다곤의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상호 이견이 있는데, 크게 다음 두 가지 견해로 대별될 수 있다.
즉 (1) ‘다곤’을 ‘물고기’란 뜻을 지닌 ‘다그’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고, 곧 ‘다곤(Dagon) 신’은 ‘물’과 ‘물고기’를 토템(Totem)으로 한 신으로서, 자연의 활력 및 무수한 번식력을 상징하는 ‘풍요의 해양신’으로 보는 견해(Jerome, Kimchi, Keil, Bochart, Fay), (2) ‘다곤’을 ‘곡식’, ‘곡물’이란 뜻을 지닌 ‘다간’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고,곧 ‘다곤(Dagon) 신’을 땅의 비옥과 땅의 열매를 상징하는 ‘풍요의 농경신’으로 보는 견해(Albright, Ewald, Bunsen, De Groot, Gaubert) 등이 있다. 그런데 다곤 신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바, 레이야드(Layard)에 의해 콜사밧(Khorsabad)에서 출토된 양각(陽刻) 조각품의 그림에 따르면, 몸의 상반신은 수염이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왕관을 머리에 쓴 형상이고, 몸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형상으로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Layard, Nineveh, ii. p. 466).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전자의 견해대로 다곤 신이 ‘물’ 또는 ‘물고기와 밀접히 관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그러나 마리(Mari), 우가릿(Ugarit) 등지에서 발견된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블레셋 족속은 분명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하여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M. J. Mulder). 따라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블레셋 족속은 이 다곤 신에 해양 민족의 특성을 가미시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가나안의 농경신의 영향을 받아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해’ 숭배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L. Wood). 특히 우가릿(북부 가나안) 문헌(Ugaritic Texts)에 나타난 바, 다곤 신이 가나안의 농경신인 바알 신의 아버지로 기록된 사실은 이러한 점을 보다 분명히 뒷받침해 준다.
다곤의 당 – ‘다곤 신당'(Dagon’s Temple)은 블레셋 지역에서는 발굴되지 않았으나, 고대 우가릿(Ugarit, 북부 가나안) 지역에서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우리에게 다곤 신전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즉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그 신당(新黨)은 제단이 있어서 종묘적 의식이 집행되는 개방된 마당 가운데 위치했다. 그 마당에서 그 신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으로 올라 가야 했다. 그런데 그 신당은 마치 성막의 경우처럼 성소와 그것의 뒤에 위치한 지성소로 구성되었다. 또한 그 지성소의 중앙 부분에 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단 위에 제단과 신상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블레셋 족속이 원래 해양(海洋)민족이면서도 이처럼 중근동지방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후 그 지역의 여러 관습 및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보여 준다.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탈취한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다곤의 신당’ 에 가지고 들어가 그 곁에 놓은 것은 (1) 자신들에게 숭리를 가져다 준 다곤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Keil), (2)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다곤 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상징적 행위 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Smith).
성 경: [삼상5:3] 바야쉬키무 아쉬도딤 미마하라트 비힌네 다곤 노펠 라파나이브 아리차 리피네 아론 아도나이 바이키후 에트 다곤 바야쉬부 오토 리미코모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다곤 신당에 안치된 언약궤]
다곤이…엎드러져…땅에 닿았는지라 – 여기서 ‘엎드러지다'(나팔)는 주인 앞에서 종이, 군왕 앞에서 봉신이, 신 앞에서 사람들이 경배할 때의 자세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20:41;25, 24;수 7:6;삿 13:20;에 7:8) 더구나 이 단어는 ‘항복하다’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왕하 7:4). 따라서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곧 다곤 신이 여호와 앞에 항복했음을 상징한다. 이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신 것이다(갈 6:7;출 20:7).
다곤을…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 이것은 블레셋 족속이 본절 초반부의 사건, 곧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진 사건을 우연으로 보았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사실상 본절의 사건은 블레셋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징계였으며, 또한 블레셋의 우상 다곤에 대해 당신의 우월성을 확증하시기 위한 신적인 행위였다.
성 경: [삼상5:4] 바야쉬키무 바보케르 미마하라트 비힌네 다곤 노펠 리파나이브 아리차 리피네 아론 아도나이 비로쉬 다곤 우쉬테 카포트 야다이브 키리토트 엘 하미피탄 라크 다곤 니쉬아르 알라이브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다곤 신당에 안치된 언약궤]
그 이튿날…다곤이…끊어져 – 전날에 일어난 사건(3절)보다 블레셋 족속들에게는 더 심각한 양상으로 비쳐진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1) 블레셋 족속이 첫번째 싸움 때(4:2)보다 두번째 싸움 때(4:10) 더 많은 이스라엘 군인을 살륙한 것에 대향 묵시적 징계이며, (2)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우월성이 현시된 첫번째 사건의 의미(3절)를 깨닫지 못한 데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머리 – ‘상상’, ‘생각’, ‘지혜’를 상징한다(계 13:16).
손목 – 이 단어(카포트, 문자적으로는 손바닥)는 ‘활동’, ‘능력’을 의미한다(계 13: 16). 한편 우가릿 문헌(Ugaritic Texts)에는 여신 아낫이 자신의 허리에 달린 머리와 손바닥으로 적과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머리’와 ‘손목’이 뜻하는 바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Pritchard). 따라서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란 말의 의미는 전투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17:51;31:9).
문지방에 있고 – 이 말은 고대 중근동 지역의 미신적(迷信的)풍습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문지방(threshold) 밑에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진정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 집안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있는 여러 종류의 귀신들이 살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곤의 목과 손을 부러뜨린 채 문지방에 걸쳐 놓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공격에 대해 잡귀 따위의 도움이나 받아야 하는 다곤 신의 비겁한 모습을, 다곤 신의 우월성을 믿는 블레셋 족속들에게 분명히 보이시려는 의도 때문이었다(삿 19:25-27). 아울러 다곤 신을 경배하기 위해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곤 신의 무능력함을 똑똑히 보여 줌으로써 경멸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삼상5:5] 알 켄 로 이디리쿠 코하네 다곤 비콜 하바임 베이트 다곤 알 미피탄 다곤 비아쉬도드 아드 하욤 하제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다곤 신당에 안치된 언약궤]
그러므로…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 하더라 – 다곤의 숭배자들이 이처럼 다곤 신당의 문지방을 밟지 않고 피해 넘어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숭배하는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이 일시 놓여져 있었던 곳이므로 그곳을 신성시했기 때문이요,(2) 다곤 신도 보호를 요청하는 만큼, 그 문지방 밑의 귀신들을 성나지 않도록 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같은 풍습은 그 후에도 이방인들에게서 계속되었다(습1:9).
오늘까지 – 이 말은 사무엘서가 기록된 때까지를 가리키며, 따라서 본절의 사건이 있은 지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난 후 본서가 기록되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는 본 사건과 관습의 역사적 사실성을 확증하는 표현이다.
성 경: [삼상5:6] 바티키바드 야드 아도나이 엘 하아쉬도딤 바이쉬멤 바야크 오탐 바아팔림 바티호림 에트 아쉬도드 비에트 기불레하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로 인한 재앙]
여호와의 손 – 이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신인 동성적(神人同性的) 표현이다(수 4:24; 스 7: 9; 시 89:13).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능력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 신에게 나타났었으나(3, 4절), 이제 그 능력이 블레셋 사람들에게까지 내려졌다. 한편 여기서 ‘더하사'(솨멤)는 ‘황폐케 하다’란 뜻이다.
독종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오팔림’은 일반적으로 보기 흉한 외부 질환을 통틀어 가리킨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1) 페스트의 일종으로서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의 피부염의 일종으로서 황부가 보기 흉하게 헐어서 환자 스스로 수치감을 갖게 되는 질환(Hertzberg) 등의 두 가지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6:4에서 블레셋 족속들이 속건제를 위한 제물로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을 취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독종'(毒種)은 쥐에 의해서 전염되는 페스트(pest)로 봄이 더 타당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70인역(LXX)은 본 절에 쥐 재앙을 덧붙이고 있다.
쳐서 망하게 하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야크’는 ‘쳐부수다’, ‘깔아뭉개다’ 등의 뜻으로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삿 15:16;삼하 11:21 ;왕상 16:11; 왕하 3:19).
성 경: [삼상5:7] 바이리우 아나셰 아쉬도드 키 켄 비아미루 로 예셰브 아론 엘로헤 이스라엘 임마누 키 카쉬타 야도 알레누 비알 다곤 엘로헤누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로 인한 재앙]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 이전의 사건들(3,4절)을 모두 우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블레셋 족속이 이제 그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신인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일어났을 최초로 시인하는 장면이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 다곤(Dagon)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셨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굽 위에 내린 각종 재앙으로 인해 바로의 술객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한 것과 같다(출 8: 19).
성 경: [삼상5:8] 바이쉴리후 바야아시푸 에트 콜 사리네 필리쉬팀 알레헴 바요메루 마 나아세 라아론 엘로헤 이스라엘 바요메루 가트 이소브 아론 엘로헤 이스라엘 바야세부 에트 아론 엘로헤 이스라엘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로 인한 재앙]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 – 블레셋의 다섯 지방 곧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각각 분할 통치하던 수령들을 가리킨다(수 13:3). 여기서 우리는 당시 블레셋이 부족 연합 성격의 국가였으며, 또한 그들이 집단 지도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 Payne Smith). 한편 ‘방백'(세라님)은 성경 안에서 여기처럼 항상 복수로 나타나는(수 13:3) 비셈어 계통의 단어로서, B.C. 11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블레셋 통치자들에게 적용되었다(Greenfield). 그리고 이 단어는 헬라로 넘어가 ‘군주'(君主)라는 의미의 (튀란노스)가 되었다.
모으고 – 이같은 블레셋 방백의 회동은 하나님의 진노가 다곤 신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당이 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는 결정을 하기 위함이었다(F.R. Fay).
가드로 옮겨 가리 – 이 곳은 구(舊) 가나안의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11:21, 22). 그때 그 도시의 주민들은 아낙 자손(the Anakims)이라고 불리던 자들로서, 신체가 장대했던 자들이었다(민 13:33). 그러나 여호수아 정복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가드 사람'(the Gittite)불리워 졌다(삼하 6:10, 11;15:18, 19, 22). 한편 이 도시는 아스돗(Ashdod) 동쪽 약20km지점에 위치하였고, 성벽이 잘 갖춰져 있던 특별히 중요시되던 지역이었던 것 같다.
성 경: [삼상5:9] 바예히 아하레 헤사부 오토 바테히 야드 아도나이 바이르 미후마 기돌라 메오드 바야크 에트 아나셰 하이르 미카톤 비아드 가돌 바이시테루 라헴 아팔림 티호림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로 인한 재앙]
심히 큰 환난 – 여기서 ‘환난’에 해당하는 ‘메후마’는 ‘큰 소요를 일으키다’, ‘파괴하다’란 뜻의 ‘훔’에서 파생된 말로 ‘혼란'(confusion), ‘소동'(uproar), ‘파괴'(destruction), ‘난리'(tunult) 등을 뜻한다. 그러므로 ‘심히 큰 환난'(a very great destruction)이란 표현은 3중 강조된 말로서, 곧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얼마나 엄중했으며, 또한 그로 인한 성읍 사람들의 소동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작은 자와 큰 자 –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을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다쳐서 – 이 단어(솨타르)는 ‘입술이나 눈꺼풀이 깨어지다’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극심한 피부 질환으로 피부가 완전히 해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스돗 보다도 가드에 더 큰재앙을 내리셨음을 뜻한다. 결국 이것은 방백들의 모사(8절)가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성 경: [삼상5:10] 바이샬리후 에트 아론 하엘로힘 에키론 바예히 키보 아론 하엘로힘 에키론 바이지아쿠 하에키로님 레모르 헤사부 엘라이 에트 아론 엘로헤 이스라엘 라하미테니 비에트 암미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에 대한 두려움]
본절에서는 방백 회의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앙을 수반하는 법궤의 이동 문제는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었으므로, 8절에서처럼 여기서도 방백 회의는 열렸으나다만 생략된 듯하다.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 아스돗(Ashdod)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의 하나이다(8절). 이 성읍은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그의 생전에는 점령되지 못했었다(수 13:3; 15:11,45,46). 그 후 이 성읍이 유다 지파에 의혜 정복되긴 하였지만(삿 1:18), 얼마 안가서 블레셋의 지배 아래 떨어진 이후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된 듯하다(렘25:20). 특히 이 도시에서는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신이 모셔지고 있었다(왕하1:2, 3, 6, 16). 수 13:3 주석 참조. 이처럼 이 도시에서 ‘다곤'(Dagon) 신이 모셔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 도시로 보내려고 한 중요한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에게로 가져다가…죽이려 한다 – 에그론(Ekron) 거민들이 이처럼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성읍 내로 들여놓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한 이유는, 이미 그들도 그 궤 때문에 아스돗과 가드에 임한 큰 환난 소식을 익히 듣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성 경: [삼상5:11] 바이쉴리후 바야아시푸 에트 콜 사리네 필리쉬팀 바요메루 샬리후 에트 아론 엘로헤 이스라엘 비야쇼브 리미코모 비로 야미트 오티 비에트 암미 키 하예타 미후마트 마베트 비콜 하이르 카비다 메오드 야드 하엘로힘 샴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에 대한 두려움]
블레셋 모든 방백 – 8절 주석 참조.
궤를 보내어…죽음을 면케 하자 – ‘궤를 보내는 일’은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취한 방책이었다. 만일 블레셋 족속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또 다른 도시로 보낸다 해도, 옮겨진 그 도시 역시 앞의 다른 도시들처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었던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블레셋 족속은 많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본처(마콤) – 성경의 여러 곳에서 ‘거룩한 한 장소’의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출 10:23;대상 15:1;대하 5:7). 따라서 ‘본 처’는 넓은 의미로는 언약궤가 원래 안치되었던 이스라엘을,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이스라엘의 성막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사망의 환난(메후마트 마웨트) – 직역하면 ‘죽음의 파멸'(adeadly destruction, KJV), 또는 ‘죽음의 공포'(a deadly panic)란 뜻이다(시 55:4).곧 갑자기 몰아 닥친 사망의 징벌로 인해 도시가 폐허화되고, 성읍 거민이 공포로 떨고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 이것은 여타 도시들 보다도 더욱 에그론(Ekron)에 하나님의 큰 진노가 내려졌음을 보여 준다. 즉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인간적인 지혜로 대처하고자 할 적마다 더욱 가중하여 진노가 임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진노는 에그론(Ekron) 성읍에 언약궤가 들어온 직후부터 에그론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후, 언약궤가 그 성읍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계속 내려진 듯하다.
성 경: [삼상5:12] 비하아나쉼 아쎄르 로 메투 히쿠 바아팔림 비티호림 바타알 샤비아트 하이르 하샤마임
주제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언약궤에 대한 두려움]
성읍의 부르짖음이 – 여기서 ‘성읍'(하이르, 문자적으로는 ‘그 도시’)은 단수로 언급되었는데, 이는 진노당하는 성읍이 현재 언약궤가 있는 에그론(Ekron) 한 도시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부르짖음'(사와)은 극한의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간절히 호소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부르짖음’은 애굽인들로부터 극심한 학대를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있었다(출 2:23;시 30:2;욘2:2). 한편 이같은 블레셋 족속의 하늘을 향한 간절한 호소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는 행위였다(욘 3:8).
사무쳤더라 – ‘사무치다'(알라)란 말은 ‘자라다’, ‘꼭대기까지 오르다’의 뜻으로서, 블레셋 족속들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크고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부르짖는 행위를 회개 기도의 형태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블레셋 족속은 극심한 독종 재앙과 사방의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도움을 호소했을 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없었던 것이다. 곧 진정한 회개는 여호와께 대하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와 같은 고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