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장 설교 말씀은 한나의 감사 노래와 엘리 가문의 멸망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한나가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이 사무엘을 주셨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므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영적으로 둔하여 결국 가문이 멸망받게 된다.
I. 한나의 노래 2:1-10
여기서는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으로 감동받은 한나의 감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해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한나가 기도하여(1절).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 때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한나의 감사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영화로운 완전하심으로 인한 한나의 승리와 하나님께서 한나를 위해 베풀어 주신 위대한 일들을 볼 수 있다(1-3절).
1) 하나님께 대하여 한나는 어떤 위대한 일들을 말하였는가. 한나는 그때 누리고 있었던 특수한 은총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한나는 자기가 받은 선물은 무시하고 그 선물을 주신 분을 찬양한다. 그에 반하여 대개의 사람들은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해서는 잊어 버리고 단지 받은 선물에만 연연해 한다. 여기서 한나는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속성 네 가지를 찬양한다. ①하나님의 거룩하심. 여호와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2절). ②하나님의 전능하심.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③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 즉 만인의 심판자이신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다'(3절). ④틀림없는 하나님의 공의. 즉 하나님은…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2)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한나는 어떻게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때 우리는 거기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①거룩한 즐거움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1절). 아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한 것이다. ②거룩한 승리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아들을 얻음으로 해서 명성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아들을 얻음으로 해서 명성이 높아졌도다.” 내 뿔이 높아졌다는 뜻은 나에 대한 칭찬이 이상할 정도로 대단해졌다는 뜻이다. 내 입이 크게 열렸으니. 다시 말해서 “이제는 나를 비난하던 자들에게 답변해야만 하겠다.”
3) 여기서 한나는 하나님과 경쟁하며 그에게 대적하는 자들의 입을 어떻게 막았는가.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2) 한나는 인간사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주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강한 자는 곧 약해지며 약한 자는 곧 강해진다(4절).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용사의 활은 꺾어진다.’ 그들의 무기는 소용없게 되며, 전에 행하던 바와 같이 행하지 못하며. 하려고 계획한 바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말씀만 하시면 약해서 비틀거리던 자 그리고 약해서 똑바로 걷고 서지도 못하던 자들이 몸과 마음에 ‘힘으로 띠를 띠며’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2) 부자는 곧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는 곧 부유해진다(5절). ‘재물은 날아가 버리며'(잠 23:5). 재물이 있을 때 그것으로 행복을 삼던 자들에게는 비참만이 남는다. 모든 것이 풍족하며 부족함과 고역을 모르던 자들에게는 가난이 갑절이나 고달픈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때때로 ‘주리던 자들은 주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전과 같이 양식을 얻기 위해 품을 파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런 일은 같은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욥의 경우와 같이 부자였던 사람을 하나님은 가난하게 만드시며 얼마 후에 다시 부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주셨다가 빼앗으시며 다시 주신다. 부자들은 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졸지에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낙심하며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멀지 않아 그들을 다시금 부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3) 식구가 없던 가정에는 식구가 많아지고 식구가 많던 가정에는 식구가 줄며 쇠잔하게 된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다’는 말은 한나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현재 한나에게는 아들 하나밖에 없지만 그 한 아들을 나실인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직접 섬기게 하면 그 한 아들이 한나에게는 일곱 아들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또는 이 말은 한나의 믿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지금 한나에게는 한 아들밖에 없다. 하지만 한나는 더 많은 아들을 갖고 싶어했으며 결국 실망하지 않았다.
4)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신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6절). 하나님께서는 어려워서 하시지 못할 일이 없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도,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도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5) 높아지는 것이나 낮아지는 것이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은 어떤 자들은 낮추시고 어떤 자들은 높이신다(7절).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시며 낮은 자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신다. 또한 위에 계신 하나님과 겨루는 자들은 진토에 묻어 밟아버리신다(욥 40:12,13).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높이신다(약 4;10). 요셉, 다니엘, 모세, 다윗은 이렇게 해서 놀라웁게 높아진 자들이다. 그들은 감옥에서 궁전으로 높아졌으며 양치는 막대기에서 홀을 잡기까지 높아졌다.
6)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경륜에는 우리가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8절). ①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의 기초가 되는 모든 피조물을 떠받들고 계시며 지금도 여전히 능력의 말씀으로 그 모든 피조물을 지속시키고 계시다. ‘땅을 공간에 다신'(욥 26:7)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초월하여 가정 일이든 국가 일이든 하시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②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비할 데가 없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논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의 방백들이나 귀인들 그리고 국가와 정부의 통치자들은 ‘땅의 기둥들이다'(시 75:3). 그들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다(시 47:9).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권력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자들을 높이실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당신이 무엇 하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
(3) 하나님의 진실한 친구들은 모두 보호를 받으며 높아지리라는 것과 하나님과 그들의 원수들은 모두 멸망하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셨으며 지금 행하고 계신 일들을 통해서 이루실 일들에 대한 즐거운 소망으로 끝을 맺고 있다(9,10절). 그 당시에는 경건한 열정이 종종 예언으로까지 승화되곤 했었다. 이 예언에 관해 살펴보자.
1) 이 예언은 보다 가깝게는 사무엘과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다윗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사사시대에는 매우 보잘것없는 민족이었으며 생존을 위해 애써야 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곧 강성한 나라가 될 것이며 이웃 민족들을 모두 복종시킬 것이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였다. 사무엘의 출생은 즉 그러한 시대의 여명이었다.
2) 하지만 이 예언이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나라, 은혜의 나라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한나는 섭리의 나라에 대해서 대략 말하고 다시 이제는 은혜의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메시야’ 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이름이 나온다. 일찍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주석가들은 이 이름이 다윗을 지나쳐 다윗의 자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중보자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①그 나라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9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을 지키신다고 하면 그들의 머리와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며 즉 하나님께서 그들이 서 있는 땅을 안전하게 하시며 그들의 보행을 견고케 하실 것이며 그들의 행위와 감정을 은혜로 인도하셔서 그들의 발이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길에서 비틀거리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②그 나라를 대적하는 어떤 권세도 그 나라를 멸망시키지는 못한다. ③그 나라를 대적하는 원수들은 모두 깨어지며 멸망할 것이다.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④그 나라는 멀리까지 확장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10절).
다윗의 승리와 통치는 먼 곳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땅 전체를 메시야의 소유로 약속되었다(시 2:8). ⑤왕이신 메시야의 능력과 영예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즉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여호와는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신다'(시 89:27). 또한 그에게 힘을 주셔서 낮아진 때에 어려움을 잘 극복하게 하시며 높아진 때에는 ‘머리를 드시고'(시 110:7) 기름 부은 자의 뿔 즉 능력과 영예를 높이시고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신다'(시 89:27).
Ⅱ.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 2:11-26
여기서는 엘가나 가정의 선한 면과 엘리 가정의 나쁜 면을 볼 수 있다.
(1) 엘가나의 가정이 얼마나 일이 잘 되어가며 전보다 얼마나 좋아졌는가 살펴보자.
1) 그들이 성전에 있는 어린 아들에게 가면 엘리는 그들을 축복해서 보냈다(20절). 한나에게 여러 아들이 있었다면 그 중에 한 아들을 바쳐 성전에서 봉사하게 한 것이 그다지 놀라운 신앙 행위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아들이 하나뿐이었다. 그 아들을 영호와께 바친 것은 결코 상을 잃지 않을 만한 영웅적인 신앙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자 수많은 후손을 약속받았다(창 22:16,17).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께 산 제물로 바치자 그 같은 약속을 받은 것이다.
2)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 말이 11절과 20절에서 두 번이나 나온다.
3) 그들은 꾸준히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매년 제를 드렸다(19절). 그들은 아들이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고 있다고 해도 그곳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이를 보기 위해서 일년에 한 번 이상씩 성전에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로는 라마에서 10마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해마다 한번씩 매년제를 드리러 올라가는 것은 눈에 띄었다. 그때 그들은 매년제를 드릴 제물을 가지고 갔으며, 한나가 아들을 위해 새로운 ‘작은 겉옷’과 거기에 따르는 것들을 모두 지어다 주었기 때문이다(19절).
4) 어린 사무엘은 일을 잘 하였다. 이 구절에서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가 네 번에 걸쳐 나온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다. 사무엘은 그 일을 정말로 잘했다. 그 아이는…여호와를 섬기니라(11,18절). 아마도 사무엘은 엘리의 바로 곁에서 섬겼던 것 같다. 그는 촛불을 켜거나 접시를 들고나 심부름을 하거나 문을 닫는 일 같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아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했기 때문에 ‘여호와를 섬겼다’고 한 것이다. ②사무엘은 여호와께 복을 받았다. 사무엘은 어린 나무같이 ‘여호와 앞에서 자랐으며'(21절) 힘과 키가 그리고 특히 지혜와 명철이 ‘점점 자랐다'(26절).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여기서 사무엘에 대하여 일컬은 바가 그대로 우리 구세주에 대해서도 일컬어진다(눅 2:52).
(2) 바로 성전 문에 앉아 있으면서도 엘리의 가정에서 일어나 악한 일들이 행해졌는가 살펴보자. 교회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진 것이다.
1) 엘리의 아들들이 저지른 악행 :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12절). 그들이 불량자였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12절). 그들은 높은 사람들과 성직자들이 사는 수원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량자였으며 금들이 가지고 있는 명예와 권력과 학식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악해졌다.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 특히 제사장들의 신성 모독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하나님을 모욕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①그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모독하였다. 그것을 취해서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거나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사치심을 만족시켰다. 첫째, 금들은 제사드리는 자들을 약탈했으며 화목제의 제물을 자기들 몫으로 정해 놓았다. 제사장들의 몫은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였였다(레 7:34). 그러나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 앞에까지 나아갔으며 하나님의 권리마저도 침범하였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일이 작은 일 인양 그들은 또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였다'(사 7:13).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매우 노하셨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17절). ㉡이로 인해 그들의 종교에 손상이 있었다.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이런 슬픈 이야기 중간에 사무엘의 경건함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러한 악한 무리들 가운데서도 사무엘을 순전하고 경건하게 지켜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입증하듯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 그리고 사무엘의 이러한 자세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속에 성전에 대한 신앙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②그들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했다(22절).
2) 엘리가 아들들에게 한 책망. 엘 리가 매우 늙었더니(22절). 그래서 전처럼 성막 일을 돌볼 수가 없었다. 엘리는 모든 일을 아들들에게 맡겼는데 그들은 엘리가 늙었다고 무시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다. 아들들이 그 여인들을 범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엘리는 그다지 아들을 책망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아들들을 책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엘리가 아들들을 책망한 데 대해서 살펴보자.
①엘리의 책망은 아주 정당하며 이치에 맞았다. 엘리는 매우 합당한 말을 하였다. 첫째, 엘리는 그 사실이 너무도 분명하므로 부인할 수 없으며 너무도 공공연히 행해졌기 때문에 숨길 수 없다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3절). 둘째, 엘리는 아들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즉 그들은 범죄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범죄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범한 죄악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만 했던 것이다. 셋째, 엘리는 아들들에게 그들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였다(25절). 엘리는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 즉 ‘그들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3:14)는 사실을 아들들에게 암시해 주었다.
②엘리의 책망은 지나치게 온건했다. 엘리는 아들들을 엄하게 꾸짖어야만 했다. 그들이 행한 범죄는 엄하게 책망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성품으로 보아서도 그래야만 했다. 엘리가 그들을 온유하게 대해 주자 그들은 더욱 강퍅해지기만 했다. 엘리가 한 말은 옳았으나 그것으로는 불충분했다.
3) 엘리의 아들들은 책망을 듣고서도 나쁜 짓을 계속했다. 자기 아버지가 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25절). 사무엘의 순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완악함을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26절).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아들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고 미천한 시골 레위인의 아들에게는 주셨다.
Ⅲ. 엘리의 집에 내린 경고 2:27-36
엘리는 아들들을 온건하게 꾸짖고 겁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엘리를 엄히 꾸짖었다. 메시지를 직접 엘리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회개시켜 구원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엘리의 아들들에게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셨다.
(1) 하나님은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의 집과 그의 가정에 베풀어 주셨던 큰 일들을 기억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아론에게 나타나셨는데 이는 장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실 은혜의 표시였다(출 4:27). 하나님은 그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며 이로써 그의 가정을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2) 하나님은 엘리와 그 가족이 치러야 할 죄의 대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그의 자녀들은 악을 행하였고 그는 이를 보고도 못 본 체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도 그 죄악에 가담하였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 고소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29절).
1)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성물을 모독하였다. 너희는…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2) 엘리는 아들들의 오만과 불신앙을 벌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범죄를 도와 준 격이 되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3) 그들은 탈취한 하나님의 성물을 함께 나누었다. 엘리가 아들들이 행하는 죄악을 미워하며 이를 책망했으면서도 그들이 탈취한 구운 고기를 먹는 것은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두려워해야만 했다.
(3) 하나님은 엘리의 가족에게 주셨던 대제사장직의 상속권을 박탈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30절).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엘리는 아론의 막내 아들인 이다말의 후손이다). 어떻게 해서 대제사장의 지위가 엘르아살의 집에서 이다말의 집으로 옮겨졌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변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이다말의 후손에게 영속된 그 지위를 계승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약속에 수반된 조건을 잘 살펴 보라.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영히 행하리라.
즉 “그들이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면 대제사장직의 영예는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그 언약의 중요한 조건이다(창 17:1). 그들의 면전에 나를 세우게 하라. 그러면 나도 영영히 그들을 내 앞에 세우리라(시 41:12).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30절). “너희가 나를 저버렸으므로 나도 역시 너희를 저버릴 수밖에 없다. 내 앞에서 행하여야 할 너희가 내 앞에서 행하려고 하지 않는 고로 너희는 내 앞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4) 이렇게 제사장직을 취소하는 정당한 사유를 하나님의 통치의 확고한 원칙에서 밝혀 주셨다. 이 원칙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창 4:7에서 가인도 이와 같은 원칙의 적용을 받았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30절). 진실로 위대해지는 길은 진실로 선한 길이어야 한다. 우리가 겸손히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을 높이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약속을 의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참조. 요 12:26)
(5) 엘리의 가족을 영원히 불명예스럽게 만들 심판이 임하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1) 그들의 권력이 무너질 것이다(31절).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그들은 모든 권위를 빼앗길 것이며 직위에서 쫓겨날 것이며 전처럼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2) 그들의 생명이 단축될 것이다. 이 말씀을 두 번이나 하고 계시다.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31절).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3절).
3) 그들의 즐거움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①그들은 성소에서 부귀와 번영을 누렸었다.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이 말씀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데에서 성취되었다(13:19). ②자녀를 통한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살아서 네 집에 짐이 되고 수치가 될 것이다.” 자식이 죽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못된 자녀를 두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다.
4) 그들은 재산을 다 허비하고 매우 가난해질 것이다(36절). “네 집에 남은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살기가 괴로울 것이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네 집의 뒤를 이은 집에 가서 머리를 숙이게 될 것이다.” ①그는 아주 하찮은 것을 동냥하게 될 것이다. 즉 은 한 조각(아주 작은 조각이라는 뜻)과 떡 한 덩이를 구걸하게 될 것이다. 가난은 방종한 자들에게 적합한 형벌이다. 산해 진미라야만 만족하는 자들은 생활 필수품조차도 부족하게 될 것이다. ②그는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시켜 달라고 애걸하게 될 것이다.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36절). “나를 탕자에게 적합한 자리인 품군으로 삼아 주소서.” 부와 권세를 남용할 때 그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이 말씀은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반역죄로 인하여 솔로몬에게 파면을 당해 성전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완전히 실현된 것 같다(왕상 2:26,27)
5) 하나님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을 통해서 그리고 그 슬픈 소식을 엘리가 살아서 듣게 되는 데서부터 이 심판의 집행을 속히 시작하고자 하셨다.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34절).
(6) 이렇게 엘리의 집에 대해서 무서운 경고를 내리는 가운데에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자비가 나타난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35절).
1) 이 말씀은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에게서 실현되었다. 사독은 솔로몬 치세의 초기에 아비아달의 자리를 대신하여 충실히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솔로몬의 신임을 얻게 된다. 신임을 배반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진실한 다른 사람들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것을 수행할 사람이 없어서 실패하는 적이 없다.
2)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서 완전히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