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구원말씀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백성은 성화 구원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성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복음 말씀으로 양육받아 주님이 원하는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2:1-5)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십자가 복음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나를 선택하여 주시고 구원의 반열에 올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은 성화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의 구원만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이가 나왔으면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늘로부터 새롭게 태어났다고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시작입니다. 이제부터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성장이 멈추게 되면 기형아가 되든지 미성숙한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서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미성숙한 신앙이 되어 기형적인 믿음과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네가 구원을 받아 태어났다면 이제부터는 열심히 신령한 젖을 먹고 성장하여 미숙아가 아니라 성숙한 하나님 자녀로 성장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구원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일꾼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얼마나 믿음이 성장한 사람인가를 말씀을 통해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아이와 같은 신앙이라서 미성숙한 사람으로 작은 일에 삐치고 울고 보채는 신앙인지 아니면 믿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까지 성장하여 스스로 알아서 하는 신앙인지를 자신이 체크하셔서 나의 신앙이 어떤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성화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합니까?
첫 번째, 말을 잘해야 합니다.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입으로 죄를 많이 짓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말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말 때문에 낙심한 자가 다시 소망을 얻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술에 악독과 시기와 비방하는 모든 말을 버릴 때에 성화구원을 이루어갈 수가 있습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는 하늘의 언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시정잡배와 같은 상스러운 언어가 있습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버리고’ 헬라어(아포티데미 659 VRAMNMP2 동사 명령분사 과거 중간태 주격 남성 복수 2인칭) 제거하다, 벗어버리다, 벗어던지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비방하여 악독한 말로 공격하는 것과 남을 속이는 기만적인 행위와 자신을 가장하여 위선을 떠는 것과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여 비방하는 입술을 완전히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버려야 합니까? 자신의 옷이 더러워지면 완전히 벗어 알몸이 되는 것과 같이 추악하고 악독한 비방의 말을 나의 입술에서 옷을 벗듯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벗어던지는 것이 성화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악독한 말과 남을 해롭게 하는 언어들을 버리는데 시간과 장소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 있으면 교회에서 이 말을 버리고 가정에 있으면 가정에서 버리고 직장에 있으면 직장에서 버리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버려도 그만 버리지 않아도 그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령분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서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이런 말들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말씀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 자녀가 태어나서 엄마가 젖을 주면 투정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내 입에서 상대를 죽이는 언어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언어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술에서 남을 비방하는 언어를 버린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마음이 평안함을 찾게 됩니다. 내가 항상 입술에 불평과 불만과 사악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도 괴롭고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어로 바뀌는 자들은 사랑과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이 나에게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들에게 큰 축복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있는데 엄마가 젖을 주는데도 젖을 먹지 않고 투정하면서 매일같이 울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성장할 수도 없고 결국에는 영양실조에 걸려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늘 입술에 불평만 늘어놓고 사악한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양분을 먹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영양실조가 되어 결국 믿음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오지만 하나님은 나를 보시면서 너무나 마음 아파하시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 이유가 중간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젖을 먹고 있습니까? 이 젖이 싫다고 투정하면서 보채지는 않습니까? 젖이 나에게는 맛이 없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최고의 젖을 주는 것입니다. 입맛에 맞지 않아도 영양가치가 있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입술에서 사악한 말과 남을 비판하고 비방하는 언어가 사라져서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벧전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하늘로부터 다시 거듭났다면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통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하니까? 구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죽을 때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구원은 영혼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화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태어났습니다. 태어났으면 이제는 자라나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화구원입니다. 아기가 젖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자라날 수가 있습니까? 그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의 젖을 먹어야 만이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구원입니다.
‘사모하라’ 헬라어(에피포테오 1971 VMAAP2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복수 2인칭) 간절히 사모하다, 심히 원하다, 그리워하다, 사랑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면 반드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인 젖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젖을 항상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자를 연모하듯이 매일같이 신령한 말씀인 젖을 원하여 먹으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항상 때가 되면 젖을 먹어야 합니다. 엄마는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때가 되면 젖병을 준비해 두었다가 아이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젖병을 물고 열심히 먹습니다. 그때에 엄마는 아이가 젖을 먹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열심히 사모하여 먹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나는 믿음이 성장해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신령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아이는 이 신령한 젖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내가 이 젖을 사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병이 들었든지 아니면 신령한 복음이 맛이 없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세상의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이 건강에는 더 좋은 것입니다. 축복의 말씀만 듣다가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신령한 복음을 들으면 맛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나의 영적 건강에는 더 좋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직접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명령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그리워하고 원하여 젖을 먹어야 합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항상 말씀을 상고하고 신령한 젖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병들어있지 않다면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열심히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먹을 때에 성화구원을 이루어갈 수가 있습니다.
‘자라게 하려 함이라’ 헬라어(아욱사노 837 VSAPP2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복수 2인칭) 번성하다, 왕성하다, 자라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영혼구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이 자라나야 한다고 하니까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태어난 자들에게 신령한 젖을 주어 성장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바로 성화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까지 성장해 나갈 때에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신령한 젖을 열심히 먹는 자들은 성장 속도가 빨라서 왕성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 보다 신체도 건장하여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이 짧은 아이들은 성장 속도도 늦어서 또래 아이들보다 처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젖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령한 젖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성장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령한 젖을 열심히 먹으면 성장이 빨리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선택받은 자들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열심히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먹어도 내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먹는다고 성장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영적 건강과 육적 건강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화구원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열심히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먹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먹을 때에 하나님께서 성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예수그리스도에게 날마다 나가야 합니다.
벧전2:3-4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면 예수그리스도에게 날마다 나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엄마입니다. 엄마와는 항상 교제하고 눈을 맞추고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탄생되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주님과 눈을 맞추고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의 손길을 떠나서는 우리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떠나는 순간 죽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손길을 떠나는 순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은 멈추게 되고 신령한 젖도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교만해져 자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신령한 젖을 포기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손길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피하는 순간부터 배고픔의 고통과 외로움의 고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손길을 회피하는 순간 배고픔의 고통이 찾아오게 됩니다. 또한 세상에서 외로움의 고통과 두려움들이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돌이신 예수그리스도께로 매일같이 나가서 배고픔을 채우시고 두려움과 외로움의 고통을 채우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는 엄마의 품속에 있을 때에 제일 평온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품속에 있을 때에 제일 평안함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의 성화구원의 최고점은 바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할 목표입니다. 내가 산돌과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신령한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신령한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구원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자체가 성화구원을 이루면서 가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직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폐하여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데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입니다. 그래서 성화구원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루어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제사장 직분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끝나는 것입니다.
‘세워지고’ 헬라어(오이코도메오 3618 VIPPP2/VMPPP2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복수 2인칭/동사 명령법 현재 수동태 복수 2인칭) 만들다, 세워지다, 건축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산돌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아 연합된 자들은 예수님처럼 신령한 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의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세우리니 라는 단어가 헬라어(오이코도메오)입니다. 이것은 산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한 자들은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절대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을 했다면 내 안에는 신령한 집이 건축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신령한 제사장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집이 세워졌는데 지금 실제로 세워졌습니다. 직설법과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에 신령한 집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집이 만들어진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며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명령하셔서 반드시 신령한 집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화구원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영혼구원과 성화구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이 자란다고 하니 영혼구원으로 알고 계속해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예정일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모는 아이가 태어날 예정일이 있습니다. 그때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화구원이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으니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성화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 구원의 최고 목표는 거룩한 제사장까지 가는 구원입니다.
아직 내가 이 단계까지 오지 못했다면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듣고 실천하여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젖을 먹는 수준에서 밥을 먹는 수준으로 갈 때에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성화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화구원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이루어나가야 할 일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