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 논문 중에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복음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복음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구속사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해 나가야 하며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이란 이 세계와 인류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소외되고 타락한 인간과 역사와 세계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시고자 하는 무한하신 섭리(providence)와 경륜을 보여 주신 신령한 책이다.
성경 신학은 모든 성경의 신학적 계획과 의미를 정하고 묘사하는 형식적 학문이다. 성경 신학을 복음적인 것으로 추구하는 것은 영감 되고 권위 있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본질에 대한 교리적인 전제와도 일치해야 하는 문제이다.
개혁주의 성경해석자들은 역사적 본문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을 해야 한다. 구속사적 해석이란 하나님 중심의 해석을 말한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경 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따라서 성경 신학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성경의 해석이 될 수 없다.
성경 신학은 신구약 계시의 특별성과 구속사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 신학을 깨닫지 못하면 바른 성경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파에서는 인간 중심의 성경 해석을 배제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여 복음을 전하게 된다. 바로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해석을 해야 한다.
복음적 해석자는 성경을 단순히 문학으로만 또는 역사로만 다루는 데 만족할 수 없다. 이렇게 다루는 것은 계시와 신학적 의미라는 신적인 요소를 무시하는 에비온(Ebionite)주의의 경향을 드러내게 된다. 성경 신학의 과제는 성경계시의 큰 그림을 밝혀내는 것이지만 성경의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이 없는 신학적 메시지만을 다룰 수는 없다.
성경 신학은 성경의 다양성이 성경의 통일성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려는 활동이다. 이 문제의 중심은 신구약의 관계이다. 통일성과 다양성은 계속해서 복음적 해석자들의 관심사다. 성경 신학은 해석학적 과정의 중심에 서 있다. 왜냐하면 리차드 린트(Richard Lints)가 잘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해석하는 모형은 성경이 해석하는 모형이 되어야 한다.” 성경 신학은 바로 이러한 모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성경해석학에서 성경신학적 측면은 본문과 독자 사이에 있는 간격의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사항이다. 성경 신학으로 말미암아 독자는 자신이 전체 성경계시 가운데 어디에 부합하는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조심스럽게 찾아낸다면 성경 신학은 문맥에서 본문의 의미와 현대인들에게 의미의 적용 사이의 타당한 연결고리를 준다.
필자는 복음적 성경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문화와, 문명과, 학문과, 지식이, 폭발적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신학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수준 있는 신학자들이 많이 나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의 학문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데 성경의 내용은 뒷전이고 세상 학문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의 지식수준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성경은 반드시 구속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성경을 인간의 초점에 맞추어 해석하면 인본주의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사상이 사라져 버리고 인간이 구원에 관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 주권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열심을 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인간의 열정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다.
자신 스스로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은 육체를 구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려는 책이다.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반드시 나타내는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해야 만이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으면 잘못된 해석이 된다. 그래서 성경 조직신학이 필요하다.
조직신학은 개념화된 믿음의 틀을 제시한다. 이 틀에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이해하려고 성경에 다가간다. 기독교 교리는 성경의 본문을 교회라는 공동체나 세상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재 삶에 적용하였다. 성경 진리는 교리적이어서 조직신학을 만드는 기초가 된다.
복음은 하나님에 의해 보냄 받은 자를 통한 복음의 전달이다. 복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신언이며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다스림이다. 피조물들의 자발적인 순종을 통해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는 영광이다. 그러므로 영광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이를 만족시키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원이 일치되는 소식이다. 이 땅 위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날 나라와, 민족과, 방언과, 모든 백성들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의 예배에서 찬송으로 메아리치게 될 사실이다.
바로 성경 신학은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중요하다.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은 성경 신학이 성경계시의 구조를 찾아내어 성경에 있는 중심주제나 주제들을 연구하려고 성경에 있는 특정 주제의 발전을 추적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오스본(Osborne)이 제안한 것처럼 “성경 신학은 각 본문의 주석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교회를 위한 의미를 설명하기까지 모든 과정의 첫걸음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복음에 입각한 성경해석방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논리를 제시했다. 성경은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 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는데 창조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은 창조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노아의 방주가 나온다. 이 방주는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예표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사건이나 사물들은 본래 이상의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찾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이 바로 신학적인 해석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가 어떠한 신학적 기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성경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자는 성경해석을 인간의 생각에 맞추어 해석하게 된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자는 성경을 복음적으로 해석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필자의 주장은 성경은 확실히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이며 확고부동한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복음을 증거 하여 죽은 영혼들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이 증거 되지 않으면 영혼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