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많은 해석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 해석 방법 중에서 알레고리 해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박사 논문 중에서 일부분의 알레고리 해석 방법에 대해서 기재했습니다.
성경 해석 알레고리 해석 방법에 관한 연구
알레고리적 해석은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무시하고 상징적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성경 해석에 알레고리적 해석법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단순한 문자적 의미를 넘어 신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헬라인과 유대인 모두 알레고리를 해석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헬라인들은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그들의 종교전통과 철학전통의 긴장을 해결하려고 했다. 헬라화 된 유대인은 알레고리를 그들 종교전통과 헬라 철학자들의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 이해하였다.
해석 사에서 알레고리적 해석과 모형론적 해석은 하나의 동일한 해석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름으로 불려 졌는지 아니면 실제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해석 방법인지에 관한 질문이 종종 제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 해석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이 서로 다른 이름, 즉 모형론적, 알레고리적, 신비적 해석 방법 등의 이름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해석법이다. 플라톤은 참된 실체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놓여 있다고 하였다. 이런 가르침이 글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외견상으로 보이는 문자적 의미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의미를 찾도록 영향을 미쳤다. 이 해석법은 당시의 일반 문학을 해석하는 데도 많이 사용되었다.
알레고리 해석의 창시자로 추정되는 이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헬라 인물 테아게네스(Theagenes of Rhegium)이다. 철학자들은 철학적인 사상들을 신화적인 심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가운데서도 필로(Philo)는 성경의 철학적인 의미를 알레고리적인 방법을 추구했다. 그는 물질과 비 물질이라는 이원론을 그리고 초월적인 하나님과 물질의 세계 사이에 로고스를 중보자로 여기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로고스를 받아들였다. 성경은 다중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신약성경 해석에 있어서 A.D. 100-150년의 사도적 교부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법이 알레고리적 해석법이었다. 그 후에도 알레고리적 해석은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오랫동안(1900년 가까이) 신약성경 해석법의 주류를 이루었다.
알레고리 해석은 뭔가 낯설고, 특별하며,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내어 소개함으로써 본문의 깊고도 참된 의미를 제시하고자 하는 문서에 대한 해석이다. 게프겐(Geffcken)은 알레고리적 해석이 “본문을 해석하기 위해 전혀 낯설고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였으며 호스킨스(Hoskyns)와 데이비(Davey)는 “알레고리는 어떤 사람과 사물간의 관계를 전혀 다른 경험의 차원의 사람이나 사물로 대체함으로써 표현한다.”고 하였다.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Origen)은 플라톤 철학과 알레고리 해석학에 의존했다. 두 사람 다 플라톤 철학의 대부분을 구약에 기원을 두는 철학으로 간주하였다. 클레멘트는 문자적 의미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출발점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플라톤의 사상에 따르면 땅의 사물은 하늘의 형상보다는 열등하고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와 비슷하게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영적인 의미보다는 열등하다는 것이다. 더 깊은 알레고리적 의미는 수단이 되어 더 좋은 이해로 이끌게 된다. 그래서 모든 본문은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서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추가적이고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상징적 의미를 찾는 데 있어 해석자의 자의적 해석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상징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실제로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본문에 들어 있는 알레고리적 성격을 발견하여 그에 합당한 상징적 의미를 찾아 해석하는 것이다. 자의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한 해석이다. 이 비유를 문맥에 맞추어 해석하면 그 뜻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보다 교리적으로 더 중요한 ‘구원’이라는 주제에 맞춰 해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한다.
문맥에서 볼 때 이 비유는 이웃 사랑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보여 주며 비유의 요소들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알레고리적 해석은 단순히 문자적 의미를 넘어 상징적 의미를 찾는데 특히 비유의 요소들이 각각 영적인 어떤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은 하늘나라, 여리고는 달(月: 죽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함), 강도들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 강도 만난 자는 아담, 선한 사마리 인은 예수, 제사장과 레위인은 구약의 제사직과 율법, 여관은 교회, 여관 주인은 바울, 등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이웃 사랑을 가르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심을 보여 주는 비유로 해석되는 것이다.
알레고리적인 성격을 가진 본문의 경우에는 알레고리적 해석이 필요하다. 본문에 알레고리적 성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몇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문이 알레고리적 해석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둘째, 본문에 나타난 표현들이 상징적 의미가 강할 경우이다. 셋째, 본문의 내용이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되었을 경우이다. 이렇게 알레고리적 성격이 있는 본문은 본문이 명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존중하거나 혹은 전통적인 지식에 의해 알 수 있는 상징적 의미를 이용하여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
알레고리적 해석의 심각한 두 가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해석법은 본문이 역사적 배경과 문맥, 그리고 문자적 표현을 통해 명백히 가르쳐 주는 내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본문의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통일된 의견이 없고 자의적 해석이 많아 주관적인 경향을 띤다. 따라서 그 해석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알레고리적 해석의 대표 격인 오리겐마저도 자기 해석의 정확도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자의적 해석 때문에 이 해석법은 본문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의 생각을 본문에 집어넣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둘째, 본문의 고유한 의미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 성경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아닌 다른 교훈을 주는 본문도 있다. 그러나 알레고리적 해석은 본문의 문자적 의미가 교리적으로 중요한 교훈이 아니면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주요 교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교리에 얽매여 본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메시지를 질식시킬 위험이 있다.
필자는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을 옹호하지 않는다. 이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다보면 자의적인 생각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정확한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방법이 역사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을 다룬 것이다. 알레고리 해석방법으로 해석할 것들이 물론 성경에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상징적인 것들로 성경을 해석하다보면 해석에 있어서 많은 오류를 범할 수가 있다.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을 하면 성경이 더 재미는 있을 것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본문에서 끌어내어 해석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솔깃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는 전혀 다른 의도로 해석하여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너무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