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3장 설교말씀은 예수님이 성도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을 상징하는 돕가의 성경 지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를 떠나서 돕가에 진을 쳤습니다.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돕가에 와서 진을 쳤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가야 할 곳은 천국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정욕을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면 안 됩니다.
심령의 문을 두드리는 성경 지명 돕가(민 33:12-13)
(민 33:12-13) 신 광야를 떠나 돕가에 진을 치고 돕가를 떠나 알루스에 진을 치고
12절 바이시우 미미드바르 신 바야하누 비다피카
13절 바이시우 미다피카 바야하누 비알루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리는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또한 고기가 없다고 불평을 했을 때에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광야의 생활 가운데 하늘에서 만나가 계속해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식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만나를 찾으러 간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서도 불순종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식을 채워주시는데도 입과 몸으로는 계속 하나님께 가시 돋은 말과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돕가’ 히브리어(도프카 1850) 돕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다파크 1849) 몰다, 두드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찾았습니다. 이곳에 머물면서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광야로 더 들어가도 먹을 양식도 없을 것 같고 고기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신 광야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돕가에 오게 하셨는데 신 광야에 머무르려고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두드려 돕가로 내 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신 광야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들을 돕가로 몰아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돕가도 잠시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근심걱정 없이 살면 세상에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보다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여 빠져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자들의 마음을 두드려 주님을 모시게 하는 것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두 헤스테카 에피 텐 뒤란 카이 크루오 에안 티스 아쿠세 테스 포네스 무 카이 아노익세 텐 뒤란 에이셀류소마이 프로스 아우톤 카이 데이프네소 메트 아우투 카이 아우토스 메트 에무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함께 거주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자들의 마음을 두드려서 열게 하시고 그 속에 천국의 소망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돕가의 장소는 내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을 천국에 소망을 두도록 재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제 발길을 재촉하여 천국으로 발길을 향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세상에서 빨리 나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를 재촉하여 말씀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에도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를 모셔 들여야 합니다. 교회만 나왔다고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할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에 들어오기를 원하셔서 두드리고 있습니다. 돕가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서 항상 함께 하셔서 먹고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두드리노니’ 헬라어(크루오 2925 VIPAS1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 단수, 1인칭) 두드리다, 노크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면서 신앙생활이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노크를 하고 있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으면 인기척을 듣고 빨리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자고 있으면 주님이 문을 두드리는 것을 인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실제적으로 있습니다. 지금도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말씀하시면서 문을 노크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신앙의 잠을 자고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내 안의 임재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돕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신앙과 안주하는 신앙을 하고 있을 때에 주님이 이들의 마음을 두드려서 빨리 떠나라고 독촉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안주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에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노크하시고 내세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을 독려하시는 것입니다.
이때에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서 문을 여는 자는 주님과 함께 풍성한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들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열심히 잠을 자고 있으면 주님은 문을 두드리다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니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긴장이 있을 때에 깨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맞이할 날을 고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