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0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행군 나팔에 따라서 진이 옮겨졌다. 하나님은 질서 있게 행군하라고 명령했다. 우리도 교회 생활을 할 때 질서가 있어야 한다. 교회가 질서를 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I. 은 나팔의 제작과 사용 10:1-10
어떤 경우에는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공적으로 통고하라는 하나님의 지시가 내렸다. 나팔은 회중을 소집하기 위한 신호로 불어야 했다(2절). 제사장들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야 한다고 했다(욜 2:15). 그러나 나팔 소리의 신호가 불분명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지 천부장 된 족장들만 모이게 할 때에는 나팔 하나 만을 불도록 지시를 받았다. 온 회중을 함께 나아오게 할 때는 두 나팔을 모두 불어야 했다. 진이 행진 할 때는 각 진영이 움직여야 할 때를 알려주기 위해서도 나팔을 불어야 했으며 이때는 나팔소리를 ‘울려 불어야’했다(5절). 즉 적군을 향하여 행군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끊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굴곡이 있고 울리는 나팔 소리가 내야 했다.
이와는 반대로 계속해서 똑같은 소리가 이어지도록 부는 것은 회중을 모두 소집하는데 적합하였다(7절). 그러나 하나님께 심판을 거두어 주시도록 빌기 위해 백성이 모두 소집되어야 하는 때에는 나팔을 울려서 불었던 것을 요엘 2:1에서 볼 수 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다 떨게 할지니.’ 처음 나팔을 울려 불 때에는 유다 진영이, 두 번째 불 때에는 르우벤 진영이, 세 번째 불 때에는 에브라임 진영이 각각 행진 해 나아 가도록 했다(5,6절).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나아갈 때는 그 군대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나팔을 울려 불어야 했다(9절). 그들의 거룩한 절기를 엄숙히 지켜야 하는 때에도 나팔을 불었다(10절). 그들의 절기 중 하나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레 23:23이하)로 정한 나팔절도 있었다. 거룩한 사역은 거룩한 기쁨으로 행해져야 한다.
Ⅱ. 시내 광야에서 바란 광야까지의 이동 10:11-28
(1) 이스라엘 진이 시내산에서부터 이동해 가는 것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진이 시내산 앞에서 약 일 년 간 머물러 있는 동안에 기념할 만한 많은 일들이 발생했었다. 이제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 보자.
1) 출발하라는 신호가 있었다. 증거막 위에 머물러 있던 구름이 떠올랐던 것이다(11절).
2)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그리고 구름이 그들을 인도하는 그대로 행진을 시작했다(13절). 어떤 이들은, 이 10장과 9장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여행 중에 그들을 인도하시고 다스리신 ‘여호와의 명령’이 그처럼 자주 언급된 것은, 후일에 이스라엘이 그처럼 오래 동안 광야에서 지체했던 이유를 그들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빠져 나올 길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은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때에라도 안정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3) 그들은 삼일 동안 행진 한 후에 다시 정지했다. 그들은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바란 광야에서’ 멈추었다.
(2) 그들은 최근에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모형에 따라 각 진영이 그 순서대로 행진했다.
1) 유다 진영이 제일 먼저 진행하였다(14-16절). 이 유다 지파와 함께 머물러 있었던 그 깃발이 이제 지휘하는 깃발이 되었다는 것은 장차 다윗 시대에 유다 지파에게 위임 될 왕권에 대한 전조이며 더 나아가서는 ‘백성이 그에게로 모일’것이라고 예언 된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에게 맡겨질 왕권에 대한 전조였다.
2) 그 다음에는 회막 나르는 일을 맡은 레위 지파 중 두 종족인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회막을 메고 그들을 따랐다.
3) 다음으로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르우벤 진영의 군대가 유다 진영을 뒤따라 발행하였다(18-20절).
4) 그 다음에는 고핫 자손들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명예로운 위치인 ‘진 가운데서’ 그들에게 맡겨진 회막의 성물을 메고 나아갔다(21절).
5) 다음으로는 에브라임 진영의 군대가 언약궤를 뒤따라 행진하였다(22-24절).
6) 맨 마지막에 단 진영의 군대가 행진하였다(25-27절). 이 지파의 진영은 뒤에 남은 모든 자들이 여기에 속해 있기 때문에 모든 진의 ‘후진’이라고 불렸다. 이 뒤에 남은 자들은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아닌(아마도 이들은 각 지파 가운데서 그들이 속해 있는 종족의 두령들이 보살폈을 것이다) 부정케 된 자들, 여러 이방 무리들 그리고 약하고 힘이 없는 자들과 자기들의 진에 뒤쳐진 모든 자들을 말한다.
Ⅲ. 호밥에 대한 모세의 요청 10:29-36
1. 모세가 호밥에게 요청함(29-32_
이 일은 이스라엘 진이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 할 때 생겼다. 어떤 이들은 호밥이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동일인이며, 출애굽기 18장의 이야기는 이때에 생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호밥이 이드로의 아들이며, 그래서 이드로가 나아가 많아 자기 땅으로 돌아갈 때(출 18:27) 그의 아들 호밥을 모세에게 남겨 놓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호밥은 이스라엘이 자기 고향 땅 가까이에 있는 시내산에 진 치고 있을 때는 그들과 함께 머무르기를 기뻐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이 이동하려 하자 그는 자기 땅, 자기 친족,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1) 이때 모세는 호밥에게 함께 가나안으로 가자고 친절하게 제의했다(29절). 천국의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자들은 모든 친구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초대하고 권유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2) 호밥의 생각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었다(30절). 사실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왜냐하면 미디안 사람들은 그두라에게서 나온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 받은 것은 아니었다(히 11:8).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모세에게 이러한 대답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모세는 그의 결심을 바꾸기 위해 그에게 끈기있게 간청한다(31,32절). 모세는 그가 자기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이 지역은 호밥이 잘 알고 있는 곳이다)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모세의 말에 호밥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침묵은 곧 승낙을 의미하며 그는 그들을 떠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이 일로 인해 결코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사사기 1:16과 사무엘상 15:6에서 발견하게 된다.
2.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친교(33-36)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산’을 떠나 행진을 시작했다. 그 산은 다름 아닌,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시내산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산’을 떠날 때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호와의 언약궤를 함께 가져 갔다. 여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통해서 그들의 길을 지도하셨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언약궤가 ‘그들의 앞에서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본문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장소적인 의미로 생각하여 최소한 이번 이동에서 만은 실제로 언약궤를 맨 앞에 두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말이 진의 선두를 지도했던 언약궤의 영향력의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본문은 언약궤가(즉, 언약궤의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쉴 곳을 찾았다고 말한다.
(2) 그들은 모든 길에서 언약궤를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회중의 입 역할을 하는 모세는 언약궤가 떠나고 쉴 때에 기도를 올렸다. 이것은 매일의 삶과 활동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 맺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모범이 된다.
1) 언약궤가 떠날 때 모세는 기도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35절).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①세상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은밀한 적들이 있는가 하면 공공연히 드러난 적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그의 율법, 그의 규례,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원수들이다. ②하나님의 대적들이 흩어지고 패배하는 것은 모든 주의 백성들이 간절히 바라며 믿음으로 기대하는 사항이다.
2) 언약궤가 쉴 때도 모세는 기도했다.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36절).
①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쉬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을 돌아오게 하소서. 이 노고 후에 다시 그들의 안식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②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가운데서 쉬실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스라엘의 수천인에게로 곧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사실 그렇다. 이스라엘의 행복과 번영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임재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