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장 예수님 말씀] 회개하라는 세례 요한의 외침(마3:1-6)

마태복음 3장 예수님 말씀은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먼저 보낸 선지자다. 율법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님을 증거 했던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세례 요한이 먹었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다.

Ⅰ. 세례 요한의 출현 3:1-6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세례와 설교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된다.

1. 세례 요한의 출현 시기(1)

그 시기는 ‘그 때에’ 혹은 ‘여러 날 후에’이다. 여기서 ‘여러 날 후에’라는 말은 예수님의 유아 시절을 다룬 앞장에서 기록된 사건들이 지난지 오랜 후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때에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복음의 시작을 위해 정하신 시기이며 때가 찬 시기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관하여 출생시와 출생 전에 영광스런 일들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들의 어린 시절에 그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이 특별하게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사람들에게 주었을 것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수께서 열 두 살 때 선생들과 논쟁한 사실 외에는 30세가 되기까지 예수님이나 세례 요한에게 주목할 만한 어떤 일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주는데 첫째, 그 때조차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즉 구주로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둘째, 우리와 믿음은 주로 그의 직무와 활동 속에서 그리스도를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지만 평상시에는 그 능력이 그의 속에 감추어지기 때문이다.

마태는 누가가 상세히 기록한 세례 요한의 잉태와 출생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마치 광야에서 떨어져 내려 온 것처럼 성년이 된 요한의 이야기를 갑작스럽게 시작한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까지는 선지자가 없었고 선지자인 체하는 자들도 없었다.

2. 세례 요한이 맨 처음 나타난 곳(1)

그곳은 ‘유대 광야’였다. 그곳은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황무지가 아니라 다른 지방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밀집해 살지는 않지만 그 안에 6개의 성읍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 있는 광야 지방이었다. 요한은 이 성읍들과 마을에서 외쳤는데 그 이유는 그때까지 그가 그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이 여기 광야에 있는 요한을 찾아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방문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할 만큼 먼 곳이란 결코 없다. 다윗이 시편 63편을 지은 곳이 바로 이 유대 ‘광야’였는데, 그 시편에서 다윗은 그가 그곳에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가진 신령한 교통에 관해 많은 언급을 하고있다(호 2:14).

민수기 21장 설교문 모세가 놋 뱀을 장대에 세움

세례 요한은 아론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었으나, 우리는 그가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고 오히려 광야에서 외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론의 자손이 아니셨지만 자주 성전에 나타나시고 권세를 가진 자로서 성전에 앉아 계시곤 하셨다. 여기서 볼 때 ‘너희가 찾는 주께서는 홀연히 그의 성전에 임하실'(말 3:1) 것이지만 그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는 그렇게 성전에 나타나게 되어 있지 않다.

복음이 광야에서 시작된 것은 광야와 같은 이방 세계에 위로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광야가 기뻐할 것이다'(사 35:1,2).

3. 세례 요한의 설교(2)

요한은 설교를 자기의 본업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워 지기 때문이다.

(1) 그가 전한 내용은 회개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회개하라’ 고 외쳤다(2절). 그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 전하지 않고 유대 광야에서 평범한 시골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그 이유는 스스로 유혹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도시의 허영과 악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죄할 수 없으며 회개함으로 죄를 씻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의 임무는 사람들에게 자기 죄들을 ‘회개하라’ 고 외치는 것이었다.

회개하라는 것은 너희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즉 너희가 잘못 생각하였으니 다시 생각하고 바르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참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은 두 번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할 것이다. 이같은 회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의무이며(행 17:30) 그리스도의 복음의 위로를 받기 위해 필요한 준비와 자격이다. 상처는 살펴져야 한다. ‘나는 상하게도 하고 낫게도 하는 자니라'(신 32:39).

(2) 요한이 이 회개의 외침을 강조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주장은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천국은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계시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이다. 요한은 이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쳤다. 사실 그때 천국은 문 앞에 있었고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강한 촉구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만큼 죄에 대해서 또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마음을 찢는 것은 없다.

사랑은 멸시를 받을지라도 마침내 승리하며 남을 겸손케 하고 녹아지게 한다. 그와 같은 은혜와 이러한 천국의 법과 사랑을 져버리고 죄를 범한 자는 얼마나 못된 인간인가! 또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는 큰 격려이다. 사죄의 선포는 이전에 도망하고 피했던 죄인을 발견하고 데려 온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한 사람의 끈과 사랑의 띠로 회개하도록 이끌려진다.

4. 세례 요한에게서 성취된 예언(3)

세례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서 주로 복음적이며 복음의 시기와 복음의 은혜를 가리키는 부분의 첫머리에 언급된 바로 그 사람이다(사 40:3,4). 여기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1)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언급된다. 요한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요 1:23). “나는 그 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 목소리로 자기 뜻을 전달하는 것처럼 요한을 사용해서 자기 뜻을 알리신 하나님께서 바로 외치는 자이시다. 그래서 요한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서 깨우는, 크게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불린다. 그리스도는 말씀이라고 불리웠는데, 이것은 독특하고 분명해서 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소리인 요한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그들을 가르치셨다.

(2)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것이 그의 임무로 언급된다. 요한은 그 말씀대로 주의 길을 예비한다. 그는 스스로 그 당시 세대의 사람들 가운데서 주의 길을 예비하였다. 이 당시 유대인의 교회와 국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제 길을 잃고 있었다. 백성들은 전반적으로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고 자신들이 받은 특권을 빙자하여 극도의 자만에 빠져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을 겸손케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최근에 그들의 나라가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겸손해지지 않았다.

이제 세례 요한은 이러한 산들을 평탄케 하기 위해, 즉 스스로에 대한 그들의 교만한 생각을 꺾기 위해 보냄을 받았던 것이다. 회개와 겸손에 관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영혼 속으로 모셔들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의로는 도저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장애물은 치워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장애가 되기 마련이다. 죄와 사단의 길은 삐뚤어진 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려면 그 길은 곧아야 한다.

5. 세례 요한의 옷차림과 생활 방식(4)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위대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신’것처럼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비천하였다.

(1) 그의 옷차림은 검소하였다.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었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 그의 이러한 옷차림은 그가 시골에 살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그의 생활 습관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서 우리를 놓아 두신 장소와 환경에 스스로 순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다. 그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그가 야곱처럼 평범한 사람이며 또한 이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이 세상의 기쁨과 쾌락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둘째는 그가 선지자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선지자들이 고행을 하는 사람들처럼 거친 옷(털옷)을 입었기(슥 13:4) 때문이다. 셋째는 그가 결심이 굳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허리띠는 그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던 것으로서 별로 좋지는 않지만 질긴 것이었다.

(2) 그의 음식 또한 간소하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메뚜기는 나는 곤충의 일종으로서 정한 음식으로 허락된(레 11:22) 매우 유용한 음식물이다. 석청은 가나안 땅에 흐르던(마 14:26) 꿀이었다. 이것은 그가 검소하게 즉 조금 모자란 듯이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가 메뚜기와 석청으로 배를 다 채우기도 전에 사람이 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는 영적인 일들에 아주 몰두하였기 때문에 음식먹을 겨를조차도 없었다.

민수기 6장 설교말씀 나실인 규례와 제사장 축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슬퍼하게 하며 그것을 극복하도록 하는 임무를 띤 사람들은 스스로 진지한 삶 즉 자기 부정의 생활을 해야 한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 금식하는 날이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헛됨을 깨닫는 것이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받아 들이기 위한 최상의 준비이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6. 세례 요한의 외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많은 무리들이 각 곳으로부터 그에게 나아왔다. 이 사실은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큰 명예였다. 때때로 명예의 그림자조차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실제적인 명예를 얻곤 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와 존경을 부여한다. 이러한 명예가 요한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또 그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그가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그에게 물어보려고 하였다. 세례 요한의 사역이 주는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광야에 있는 그에게로 나가서 그의 질책을 들어야 한다. 회개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분요함으로부터 나와서 고요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을 많았지만 실로 그 세례를 고수한 사람들은 지극히 적었다. 이와 같이 자진하여 들으러 나아온 청중들의 무리는 지극히 많다 할지라도 거기에 참된 신자는 단지 소수밖에 없다.

7. 요한이 그에게 나아 온 자들에게 베푼 의식(6)

그의 교훈을 받고 그의 가르침에 복종한 자들은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죄를 자복함으로써’ 자기들의 회개를 증거하였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도록 배워왔으나 요한은 그들에게 자신을 정죄하도록 가르쳤다. 용서와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같이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자기 죄를 인정하는 자들만이 자기들의 의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요일 1:9). 그래서 가까이 온 천국의 은혜가 세례에 의해서 그들에게 보증되었다.

요한은 모든 부정으로부터 하나님이 그들을 깨끗케 하실 것이라는 징표로써 사람들을 물로 씻었다. 그것이 곧 회개의 세례였다(행 19:4). 모든 이스라엘은 모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전 10:2). 의식법에는 여러 가지 씻는 것 즉 세례들이 있다(9:10).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치료법 즉 회개와 신앙의 범에 관련된다. 여한은 세례를 줌으로써 그들이 공언한 고백에 따라 거룩하게 살도록 그들에게 의무를 지워 주었다. 죄의 고백은 언제나 거룩한 결심을 수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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