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장은 예수님이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를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를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들과 죄인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비난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레위를 부르심(막 2:13-17)
Ⅰ. 그리스도께서바닷가에서 복음을 전하심(13절).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두 번째 시험은 어디로 가시나 그 많은 청중을 수용할 만큼 큰 방이나 넓은 길거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에는 얼마든지 모여들어도 되었다. 주 예수께서는 아마 튼튼한 목청을 가지셨으며 큰 소리로 외치실 수 있었고 그렇게 외치셨던 것 같이 생각된다. “지혜가….광장에서 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면 비록 그게 바닷가라 할지라도 많은 무리가 그에게 나왔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성실하게 전파되는 곳이면 그 곳이 거리의 모퉁이거나 광야이거나 우리는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Ⅱ. 그리스도께서 레위를 부르심.
레위는 마태라고도, 부르며, 세관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곧 그가 세리였음을 말해 준다. 그 장소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고 보며 그리스도께서 그리로 지나가시다가 그 곳에 들려 레위를 만나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이 레위는 여기에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말했는데 알패오(글레오바)는 동정녀 마리아의 자매나 친척으로 보는 저 마리아의 남편이었다고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레위는 야고보나 유다나 가나안 사람 시몬의 형제였을 것이며 그들 네 형제는 모두가 사도였다. 마태는 아마 사치를 즐기는 젊은이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유대인으로서 그가 세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장 큰 죄도 용서해 주시는 자비가 있고, 가장 큰 죄인도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다. 마태는 세리로서 복음 전도자가 되었고 복음서의 첫 권을 기록하였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원만하게 기록하였다. 회개하기 전에 있었던 중한 죄나 허물은 하나님의 귀한 은사나 은혜나 신앙의 전진에 방해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후에 새 사람이 된 그런 자들로부터 더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선수를 써서 이렇게 마태를 부르셨다. 예수께서 육신의 병을 고치실 때는 많은 무리가 찾아왔으나 영적 병을(죄) 고치실 때는 그러하지 않았다. 죄의 병에 걸려 있는 자들은 고침을 받으려는 안타까움이 없으니 영적 병의 고질과 위험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Ⅲ. 그리스도께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심(15절).
1.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15절). 레위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집을 떠나는 마당에서 친구들을 위해 송별회를 마련하고 여기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초청하였다. 그런 송별회는 엘리사와 같이(왕상 19:21)그가 모든 것을 등지고 그리스도를 따름에 대하여 즐거움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마련하였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념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마치 불 속에서 나무 토막을 끄집어 내듯 세관에서 건져내 주신 그 친절에 대해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2.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쫓음이러라”(15절). 그들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를 좇았다고 본다. 그들은 사정상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에서 그리스도를 보려고 레위의 잔치에 참석하였다. 그들이 어떤 동기에서 여기에 모였던지 그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세리들은 여기에서나 다른 곳에서나 죄인들과 같이 취급되었다.
(1) 세리들은 대개가 그러했다. 세무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부정한 일을 범했으니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뇌물 등 부당 취득을 하고 무소하였다(눅 3:13, 14). 성실하게 그 직무를 감당해 낸 사람은 드물다. 로마에서 그 세무직을 맡아 보면서 자기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은 사비너스(Sabinus)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묘비 비문에 “여기에 한 정직한 세리가 잠들어 있다”라는 찬사가 기록되었다.
(2) 유대인들은 세리들과 세무직에 대하여 자기 나라의 자유에 대한 모욕이며 자기들의 속박에 대한 상징이라고 혐오를 가졌다. 그러므로 세리들에 대해서 악명을 붙였고 그들의 일행 중에 그런 자가 보이면 불명예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죄인의 모양으로 오신” 우리 주님은 이러한 세리들과 기꺼이 대화를 나누시었다.
Ⅳ.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일을 공격하였다(16절).
그들은 예수의 설교를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 설교에 그들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고 교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앉아 잡수시는”것을 보려고 나왔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주가 거룩하고 덕을 지닌 그런 훌륭한 분이 아니라고 비난하기에 열심이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16절).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우시고 가장 훌륭하신 분이 훌륭하게 계획하시고 행하신 일이 잘못 판단을 받고 비난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음을 기억하라.
Ⅴ. 이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정당화하시었다(17절).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공격을 해 왔지만 당신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정당함을 주장하고 나가셨지, 베드로가 훗날에 한 것처럼(갈 2:12)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과 같이 미명 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절하였으며 그런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선한 일을 보임으로 그들의 명성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세리들은 마땅히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그들은 동정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으며, 그들은 병들었으니 의원이 필요하고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세리들과 멀리 하실 줄로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임무는 그들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절).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다. “만일 세상이 의롭다면 회개하고 죄 사함 받으라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내가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보냄을 받은 것은 이 죄 많은 세상이다. 그러므로 나의 임무는 세상에 있는 큰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까”(말 3:7). 또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회개할 수 있으리까? 라고 묻는다. 그러나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세리는 회개하라고 청함을 받거나 권함을 받는 것을 기뻐한다. 희망이 있는 자들을 다루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면 누가 바랄 것이 있는 자인가 보자.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잠 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