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장 헬라어 원어성경 원어설교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종교인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모르니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의 의를 내세웠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이런 자의 신앙을 본받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자(롬10:2-3)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온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원죄의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 자신의 행위를 거룩하게 살면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거룩한 행위를 했지만 마음에는 더 공허감만 채워져 갔습니다. 의인의 길은 거룩한 행위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인간은 원죄의 죄인이기 때문에 행위 자체가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 거룩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만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진 백성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가만히 놔두면 자신의 행위의 의를 주장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 모두가 거부합니다. 하지만 믿음도 맞지만 자신의 거룩한 행위가 이루어져야 의인이 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 이런 말은 따라가게 됩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거짓 복음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자도 저주를 받고 거짓 복음을 따라가는 자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이 의롭게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의인이 되는 길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거룩해져야 만이 의인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공덕을 쌓고 선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얻는데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겉 사람인 ‘야차르’의 몸이 믿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이 땅에서 소멸됩니다. 인간이 죽을 때에 육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갈 때에 사라지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데 즉각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믿음을 ‘바라’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속사람이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영원히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원죄가 사라지는 믿음이기 때문에 의인이 되어 구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육체가 믿는 믿음은 자 범죄를 해결하는 믿음이기 때문에 속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겉 사람의 믿음과 속사람의 믿음을 구분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겉 사람의 믿음은 ‘야차르’의 믿음이요, 속사람의 믿음은 ‘바라’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겉 사람의 믿음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요? 자기의 의를 드러내게 됩니다. 속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겉 사람만 거룩해지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롬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사람인 ‘바라’의 몸이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인 ‘야차르’의 몸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열심이’ 헬라어(젤로스 2205 NAMS 명사, 목적격, 남성, 단수) 열심, 질투, 분노,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께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최고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알아주지 않으면 이들은 서슴없이 질투와 분노를 하나님께 쏟아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한 만큼 하나님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들은 주님께 화를 내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의롭다하면 질투를 내게 됩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열심히 헌금하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기 때문에 부정한 자들과 다른 사람이며 구별된 자라고 말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로서 속사람인 ‘바라’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인 ‘야차르’의 몸으로 행위를 주장하여 구원을 얻고 의인이 되려고 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올바른 지식을 모르고 스스로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모르고 자신의 행위를 주장하여 하나님께 진노 받을 자들입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모르고’ 헬라어(아그노에오 50 VPPANMP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복수) 알지 못하다, 모르다, 깨닫지 못하다, 잘못 생각하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시켜서 의인되게 하시겠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잘못 생각한 자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현재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의를 알지 못하니 자신의 의만 드러내는 ‘야차르’의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야차르’의 믿음은 자 범죄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 범죄를 해결했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를 해결 받을 때에 구원받고 의롭게 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야차르’의 믿음으로 원죄를 해결하려고 하니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원죄의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고백하여 ‘바라’의 속사람이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헬라어(휘포탓소 5293 VIAPP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복종하다, 순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의에 절대 복종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거부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과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께 창세전에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고 싶지만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쳐 주고 믿을 것을 말씀하지만 절대 믿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나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준 ‘바라’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믿게 됩니다. 자신의 행위의 의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무죄 판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무죄라고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바라’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의인이 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고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고 의롭다고 말씀하신 이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고발하리요’ 헬라어(엥칼레오 1458 VIFAS3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단수, 3인칭) 고소하다, 비난하다, 고소를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사탄이나 누구든지 고소할 수 없습니다. 무죄를 선언해 주셨기 때문에 비난하거나 정죄하거나 고소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바라’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원죄가 사라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지금 즉각적으로 구원을 얻어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이 취소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과 미래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번 구원받아 의인이 된 사람은 미래에 자 범죄를 지어 거룩한 행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구원을 취소하거나 의인에서 다시 죄인으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지 고소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바라’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며 속사람이 깨끗하게 변화된 사람입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런 자를 정죄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나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에 정죄할 수 없습니다.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헬라어(엔튕카노 1793 VIPAS3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 만나다, 다가가다, 간청하다, 라는 뜻입니다. ‘바라’의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런 자들을 매일같이 만나주시고 다가와 지켜주시며 항상 정죄하지 못하도록 간구하며 죄를 짓지 못하도록 통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매일같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직설법과 현재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모든 것이 문제가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거룩한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취소되고 탈락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의롭게 된 자는 다시 더럽혀지거나 취소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 복음을 믿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 이런 자들의 말을 들으면 결국 속사람은 죽게 됩니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원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된 것을 의미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죄를 찾으려고 해도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주님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나의 원죄가 주님께 전가되어 나의 ‘바라’의 몸의 원죄가 완전히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이런 자가 의롭게 된 자입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겉 사람인 ‘야차르’의 몸이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면 구원받은 줄 알고 의로운 자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볼 때는 이런 자가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부정한 자요, 의로운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 의인되는 길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의인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겉 사람이 거룩하게 살아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의인이 있습니다. 이런 의인은 자 범죄를 해결한 의인입니다. 다른 의인은 ‘바라’의 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해져 의롭게 된 의인입니다. 이런 자는 원죄가 사라져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자입니다. 세 번째의 의인은 ‘바라’의 몸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져 원죄가 사라졌고 ‘야차르’의 몸도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인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약2:17-1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라’의 속사람이 원죄를 해결 받고 구원받았다면 ‘야차르’의 몸으로 거룩한 행함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거룩한 ‘야차르’의 행함이 없으면 이것은 그 구원이 참 구원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행위로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 번째 온전한 믿음은 ‘바라’의 몸도 구원을 받아 의인이 되고 ‘야차르’의 몸도 거룩한 행함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았다고 말로만 떠들어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의인이 되었다면 거룩한 행함을 하나님 앞에서 함으로 온전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바라’의 몸이 의인이 되고 ‘야차르’의 몸이 거룩한 행실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