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4장 성경주석 강해설교말씀은 제사장과 족장과 평민과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 규례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 속죄제의 규례(레4:1-35)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레위기 4장은 속죄제(캇타스 חטאת)에 대한 규정이다. ‘속죄제’라는 원어(캇타스 חטאת)는 ‘죄’라는 말로서 ‘속죄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불신앙적 성경학자들이 부정하는 모세 오경의 신적 권위성을 증거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그것은 또한 인류 전체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주셨는지를 보인다. 즉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인다.
속죄제는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을 때 죄사함을 위해 드려야 했던 제사이었다. 십계명을 중심한 하나님의 법은 인류 전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죄는 그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릇’(비쉐가가 בשגגה) 범하였다는 말은 ‘부주의하여, 부지중에, 실수로’ 범하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그의 계명을 범하는 죄와 구별되었다.
민수기 15:30,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여기에서 ‘짐짓’이라는 원어(베야드 라마 ביד רמה)는 ‘높은 손으로, 건방지게, 고의적으로, 도전적으로’라는 뜻이다. 출애굽기 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여기에서 ‘짐짓’이라는 원어(지드 זיד)도 ‘주제넘게, 건방지게, 뻔뻔스럽게’라는 뜻이다. 고의적인 죄는 이처럼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실수로 범한 죄는 속죄제를 통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다.
[3-4절]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속죄제를 드려야 할 사람에 따라 속죄제는 네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제사장의 경우이다. 본문은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말한다. ‘기름 부음받은 제사장’은 대제사장이 아니고 일반 제사장을 가리킨다고 본다. 원어 성경에서는 ‘기름 붓는다’는 말(pour, 야차크 יצק)과 ‘기름 바른다’는 말(anoint, smear, 마솨크 משח)이 구별되게 사용된다고 보인다. 본문은 원문에 ‘기름 바른 제사장’이라고 되어 있다.
성경은 대제사장 아론만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보인다. 출애굽기 29:5, 7,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 . .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야차크 יצק).” 레위기 8:12,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야차크 יצק) 거룩하게 하고.” 레위기 21:10, “자기 형제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야차크 יצק)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단지 기름 바름을 받았다. 출애굽기 30:3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출애굽기 40:14-15,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바름](마솨크 משח)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발라서](마솨크 משח)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바름](마솨크 משח)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민수기 3:3,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 레위기 10:7, “여호와의 관유(기름 바름)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기름 바른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집행하는 자로 구별된 자이기 때문에, 그의 범죄는 매우 큰 죄로 간주되었다. 제사 집례자가 범죄하면 그의 제사가 흠결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기름 부음[바름]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이라고 표현하였다. ‘죄얼을 입게 하였다’는 말은 ‘죄 곧 죄책(아쉬마 אשמה)을 얻게 하였다’는 뜻이다.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백성이 죄 곧 죄책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범죄는 매우 큰 죄이며 그는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야 했고 그것을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죽여야 했다. 흠 없는 수송아지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그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그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轉嫁)시키는 뜻이 있었다. 또 그는 그 제물을 여호와 앞에서 죽여야 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범죄한 인간 대신에 제물이 죽임을 당했다.
‘여호와께 드리라’는 말씀은 제사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나타낸다. 성경적 속죄 개념은 죄인의 죄에 대한 대리적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5-12절]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 . . .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야 했다. 족장의 범죄나 평민의 범죄에 대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지 않았지만(25, 30, 34절), 제사장의 범죄나 온 회중의 범죄에 대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야 했다. 그것은 그 죄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회막에 들어간 제사장은 그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즉 지성소)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다.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한다. 또 그는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 이것은 중보자와 예배자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힘있게 올려진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였고 그의 중보 기도와 또 그 안에서 우리의 기도들이 하나님 앞에 올려지고 받아지게 하였다.
제사장은 회막에서 나와 그 제물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피를 다 쏟으셨다. 제사장은 또 그 속죄제물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물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해야 했고, 그는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또 그는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로 나무 위에 살라야 했다. 진 바깥 재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은 성소로부터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처소로부터 떨어진 형벌의 장소 곧 지옥을 예표했을 것이다(안드류 보나).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성밖 갈보리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히브리서 13:11-12,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21절]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 . . .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도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그 규례는 제사장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은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회막 안에 들어가 성소 곧 지성소 앞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고 그 피를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 또 그는 회막에서 나와 그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
또 그는 그 제물의 모든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야 했고 또 모든 고기는 진밖으로 가져다가 불살라야 했다. 본문 20절은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죄사함을 얻는 방법이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했다.
[22-26절]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 . . .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으면, 그는 흠 없는 숫염소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그는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 번제 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죽여야 했고,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같이 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이 속죄제는, 더 중요한 앞의 두 경우와 달리,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지 않고 회막 밖에서 제사를 집행하는 속죄제이었다. 그러나 속죄의 효력은 동일하였다.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가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27-31절]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 . . .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 규례는 족장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하여야 했다.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는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32-35절] 그가 만일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 . . .
그가 만일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면 흠 없는 암컷을 드릴 수 있었다. 그 규례는 앞의 경우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를 전부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살라야 했고, 이와 같이 제사장이 그의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해 속죄하면 그가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속죄의 방법을 감사히 받자. 죄는 속죄가 필요한데, 하나님께서는 제사 제도를 통해 속죄의 길을 주신 것이다. 그 속죄의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마 1:21).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의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이었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말씀하셨다(요 6:51). 또 그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0:28).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완전한 속죄제물이시다.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성탄의 참 의미는 단순히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데 있지 않고, 속죄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하는 데 있다. 요한복음 1:11-12는 말하기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속죄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며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자. 죄는 반드시 속죄를 통해서만 사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가장 귀한 선물로 보내주셨다. 죄의 대가는 크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죽으셨다. 죄는 개인과 인류 전체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자.
속죄의 규례는 또한 죄에 경중(輕重)이 있음을 보인다. 율법은 ‘부지중에’ ‘실수로’ 범죄한 경우에 속죄제를 드리도록 규정한다. 고의적인 죄에 대한 죄사함의 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의적인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속죄의 규례는 또 직분이 중할수록 죄의 책임이 크다는 것도 보인다. 제사장의 죄는 족장이나 평민의 죄보다 더 무거운 죄임을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더 중요한 직분을 받을수록 범죄치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죄라도 직분이 없을 때 짓는 죄보다 직분을 받은 후에 짓는 죄는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