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3장 회개 말씀은 다니엘의 세 친구인 메삭과 아벳느고와 사드락이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음으로 풀무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음으로 바벨론에 끌려와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럴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믿음의 정조를 보여주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지키지 못했던 믿음의 정조를 이방 땅인 바벨론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것 때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Ⅰ. 느부갓네살이 금 신상을 세움 3:1-7
(1) 경배케 하기 위해 금 신상이 세워졌다. 바벨론은 우상들로 가득찬 곳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많은 신들을 세우는 자들은 자기들이 세운 신들이 그렇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결국 한정없이 그 우상의 수효를 늘려갈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금으로 한 신상을 세웠는데 그것은 ‘고가 육십 규빗이요 광이 여섯 규빗’되는 크기로 마치 그 생명없음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기라도 하듯이 괴물처럼 큰 것이었다.
아마도 느부갓네살왕은 자신의 형상대로 그것을 세워 그것을 통해서 경배받으려 했던 듯싶다. 그가 받았던 귀한 감명들은 아주 빨리, 그리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며 모든 왕의 주재이심을 인정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하나님의 명백한 법을 무시하고 스스로 경배받고자 한 신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선한 감명을 주었던 그 꿈과 그 해석이 이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고 말았다. 즉 그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대담하게 맞서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2) 모든 국가 관리들은 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도록 소집되었다(2,3절).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용무로 긴 여행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상들이 어리석은 것들이듯이 그 우상 숭배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3) 그 신상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명령이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내려졌다.
(4) 이 명령에 대해 전 회중이 순응하였다(7절). 누구든지 그 신상에 대해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그곳에 준비된 극렬히 타는 풀무에 즉시 던져지리라는 포고가 발해졌다(6절).
Ⅱ.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참소됨 3:8-18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이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은 이상스런 일이지만, 틀림없이 그들은 왕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 악한 우상 숭배에 반대함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위해서 참석했을 것이다.
(1) 이 세 사람에 대해서 적의를 품고 있던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이들을 왕에게 참소했다(8절). 아마도 참소자들은 ‘갈대아 사람들’로 술객이나 점장이였을 것이다(단 2:2,4). 그들은 또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등용된 것에 대해서 시기하고 있던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4). 그들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고소하였다.
1) 바로 전에 공포된 법, 즉 어떤 민족이든, 어떤 방언을 하는 자이든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해야 한다는 것을 왕에게 상기시켰다(10,11절).
2) 왕에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이 그 칙령에 따르지 않았음을 알렸다(12절). 왕이 이들에 대해 더욱 격분하도록 그들은 다음과 같이 행했다. 첫째, 그 범법자들이 왕에 의해 등용된 높은 신분의 사람들임을 왕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그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무례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들의 지위로 말미암아 그들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둘째, 그러한 행위는 왕과 왕의 권세를 경멸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2) 이 경건한 세 유대인들은 왕 앞에 불려와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느부갓네살왕은 지극히 격노하였다. 느부갓네살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명하매(13절).
(3) 왕은 그들이 과연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다(14절). 왜냐하면 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왕은 만일 그들이 금 신상에 대해 절하기만 한다면 족하게 여기고 그들의 이전 과오를 기꺼이 사해 줄 속셈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끝까지 자기들의 주장을 고집한다면 즉각 극렬한 풀무불에 던져 넣을 생각이었다. “돌이키든지 아니면 불에 타 죽든지 하라.” 또한 그는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확신하며 계속 그들의 고집을 굽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 역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15절). “할 수 있거든 해보게 하라.”
(4) 그들은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결의를 고수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16-18절). 우리는 이들을 세 소년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들은 연소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세 용사라고 부름이 더 합당할 듯싶다. 실로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자 중 첫 삼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결코 순교를 하기 위해 억지로 힘쓰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극렬한 시험이 찾아들자 용감히 맞섰을 뿐이었다.
1)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경건하고 초연한 태도로 자신들의 곤경에 임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16절). 그들은 무례하게 왕에게 답변하기를 거부하거나 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신들이 그 일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대답하기 위하여 시간을 지체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순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코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 있어서 무엇이 죄며, 또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는 제 2계명에 의해서 결정되어있는 바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서는 물을 여지도 없었다. 그들은 딱 자랄 분명하게 대답하여야만 하는 자리에 처하게 되었을 때 결코 회피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며 또 그를 의탁하였다(17절).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다. “만일 우리가 당신의 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여 극렬함 풀무불 가운데 던져지게 된다면 당신은 다음의 사실을 아시게 되리이다. 즉 비록 당신의 신에게 경배하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니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나이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섬기나이다.우리는 이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구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며 설혹 하나님이 극렬할 풀무 가운데서 우리를 구하지 않으신다 해도 당신의 손에서는 우리를 구하시리이다.” 느부갓네살은 단지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여 죽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후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혹은 죽음 가운데서일지라도 구하실 것이다.
3) 그들은 어떠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의 신앙을 고수할 것을 확고하게 결심하였다(18절).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포기하라든가 그에게 경배를 드리지 말도록 요구받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받은 것은 단지 한 행위, 즉 한순간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으며 나중에 그런 일을 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을 그들이 왕의 명령에 굴복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무 가혹한 것이기에 사유함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열 지파가 오랫 동안 단과 벧엘에서 금 송아지를 숭배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만일 그들이 순응한다면 그들의 생명은 구원받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동포를 위해 크게 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한 육신의 논거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에 답하고 침묵시킬 것으로 하나님의 한 말씀이면 충분하다. “너는 아무것의 형상이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그들은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받기로 하였다. 또한, 선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악을 행하지 않기로 하였다. 따라서, 참으로 그들이 이런 죄악을 따르는 데서 구원함을 받은 것은 극렬한 풀무불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 만큼이나 큰 이적이었다.
Ⅲ. 세 사람이 풀무불 속에 던져짐 3:19-27
(1) 이 세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극렬한 풀무불 속에 던져졌다.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말한 것에 의해 깨우침을 받기는커녕 격분하였고 더욱 노를 발하였다(19절).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느부갓네살이 이처럼 격앙되자 왕으로서의 그의 위엄은 “그물에 걸린 들소의 분노”와도 같은 무서운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그들의 형벌을 가볍게 해 주기는커녕 더욱 심하게 하도록 명하였다.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고.
그는 그들을 옷입은 채로 결박하여 그대로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지도록 명하였으며 그 명령은 즉시 이행되었다(20,21절). 하나님은 기적을 더욱 크게 드러내시기 위하여 섭리로써 그와 같이 되도록 하셨다. 그 안에서 그들은 그들의 옷이 그슬리는 일조차 당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결박하여 풀무 가운데로 던진 사람들은 그 맹렬한 불길에 타죽고 말았다(22절). 그러나, 이 사람들은 단지 그 잔인한 일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일을 하게 한 자의 죄는 더욱 큰 것이었다. 느부갓네살 자신은 훗날의 셈을 위해 남겨졌다.
(2) 하나님께서는 이 세 신실한 종들을 풀무불 가운데서 구원하셨다.
1)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 것을 보았다. 느부갓네살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24절). 그는 놀라서 모사들을 불렀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답변하였다. 왕이여 옳소이다. 풀무불 속을 보고서 다시 왕이 말하였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25절). 그들은 결박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즉 그들의 옷조차 그슬리지 못한 불이 그들을 결박하고 있던 밧줄을 태워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불 가운데로 다녔다.’ 풀무 안은 넓었으며 그들이 상하지도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 안을 걸어다닐 수가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평온했으며 그랬기에 마치 낙원이나 극락의 동산을 거닐 듯이 마음이 내켰던 것이다.
불 속에는 그들과 함께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느부갓네살의 판단에 의하며 그의 모양은 ‘하나님의 아들 같았다.’ 그는 신성을 지닌 하늘로부터 온 사자로 나타났으며 종이 아닌 아들로서 나타났다. 외경에서는 이에 대해 ‘주의 천사가 풀무 가운데 내려왔다’고 전한다. 또한, 느부갓네살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사 그들을 구원하셨다'(28절)고 말하고 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을 때 사자의 입을 봉한 것도 바로 천사였다(6:22).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자들은 그들의 고난이 극렬한 풀무불이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건, 그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의 자리에 처하건, 어떠한 악과 마주하게 되건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풀무 밖으로 불러내었다(26절).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그들이 기적적으로 보호되자 그는 자신이 그들을 풀무불 가운데로 던져 넣은 것이 악한 행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모양이 하나님의 아들같았던 네 번째 사람은 사라져 버렸고 나머지 세 사람은 ‘불 가운데서 나왔다.’ 그들은 불에 의해 조금도 상해를 입지 않았다(27절).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옷의 빛이 변하지 아니하였으며 불탄 냄새도 없었다. 하물며 그들의 몸에 해가 미쳤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갈대아 사람들은 불을 숭배하였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불은 태양의 표상이었다. 따라서 그 불을 통제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왕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까지 수치스럽게 하셨던 것이다.
Ⅳ. 왕이 하나님을 찬양함 3:28-30
우리는 여기서 위의 기적이 느부갓네살에게 가져다 준 영향을 보게 된다.
(1)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그 하나님은 자기를 경배하는 자들을 능히, 그리고 기꺼이 보호하시는 자라고 영광을 돌린다(28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면전에서 그를 저주했던 자들조차 그를 송축하는 고백을 하게끔 만드신다.
1)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영광을 돌린다.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29절). 만일 하나님이 다른 어떤 신도 할 수 없는 그러한 구원을 행하실 수 있다면 그분은 또한 다른 어떤 사람도 요구할 수 없는 그러한 순종을 요구하실 수 있는 것이다.
2) 그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 일을 행하신 것에 대해 영광을 돌린다(28절).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벨은 자기를 숭배하는 자들이 풀무 아구에서 타죽는 것을 구할 수 없었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숭배하는 자들이 다른 신을 섬기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을 때 그 타죽게 된 자리에서 그들을 구하여 주셨다.
(2) 그는 이 세 사람이 끝까지 자기들의 신앙을 지킨 것에 대해 칭송하며 그것으로 그들을 존귀케 하고 있다(28절).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들의 몸을 극렬한 풀무불 가운데 던지게 하였다. 그들은 왕의 명을 변경시켰다. 즉 그들은 그것을 거역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회개케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렬한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내심으로 살려주시든가 아니면 극렬한 풀무불을 통하여 그들을 하늘 나라로 인도하시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 자신들의 생명에 대해서 개의치 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3)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비방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금하는 왕명을 발하였다(29절).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의 능력에 의해 나타난 그 기적은 수많은 바벨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진 것이므로 이 칙령을 정당화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교회를 대적하고 있는 자들이 비록 마음을 돌이키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입이 봉해지고 그들의 혀가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만 해도 교회로서는 여간 큰 은혜가 아닌 것이다.
(4) 그는 이 세 사람의 직위 박탈을 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원래의 다스리는 자리로 복귀시켰다. 원문대로 하자면 ‘그들을 더욱 영화롭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