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예수님 말씀] 가브리엘의 예수님 탄생 예고(눅1:26-56)

누가복음 1장 예수님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예고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그대로 처녀에서 잉태하여 탄생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임마누엘이라고 했다.

Ⅲ.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 1:26-38

우리는 이제 우리의 복된 구세주의 성육신과 수태에 관련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접하게 된다. 사가랴에게 “그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었던 천사 가브리엘이 이 일에도 역시 쓰임을 알려 주었던 천사 가브리엘이 이 일에도 역시 쓰임을 받는다. 전자에서 시작된 영광스러운 구속의 역사가 후자에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1. 주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26,27)

(1) 그녀의 이름은 모세와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같은 이름인 마리아였다. 그 이름의 의미는 존귀함이다.

(2) 그녀는 다윗의 직계 자손인 왕족의 딸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을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모든 친구들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다윗 가문의 칭호와 품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나님의 섭리로 그리고 유대인들의 돌봄으로, 그들의 혈통을 보전하고 입증할 수 있었으며, 이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지킬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에서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영예로운 자들의 후손이라는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3) 그녀는 처녀였다. 그러나 그녀처럼 똑같은 왕족이었던 낮은 신분이었던 사람과 정혼한 상태였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그 또한 다윗 가문에서 난 자였다(마 1:20).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처녀였다. 그러나 그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처녀에게 났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을 영예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4) 그녀는 인가에서 뚝 떨어진 시골인 갈릴리의 한 마을 나사렛에서 살았다. 그곳은 종교로나 학문으로나 이름이 나 있지 않았으나, 이방 지역을 접하였으므로 이방인들의 갈릴리라 불리었다. 천사는 나사렛에서 그녀에게 보내졌다. 아무리 멀고 불편한 곳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2.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28)

천사는 다음과 같이 인사하여, 그녀를 놀라게 하였다. 은혜를 받은 자여(28절). 이러한 인사말은 그녀에게서 이러한 것들을 높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1) 그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주기 위해서였다. 마리아처럼, 오직 자기의 낮은 신분에 대한 올바른 숙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온다.

(2) 외국에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중대한 소식에 대한 기대를 높여 주기 위해서였다. 평안할지어다. 그것은 통례적인 인사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여기에서 다음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녀는 존귀함을 받았다. 너는 지극히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메시야의 어머니로 너를 선택하시고, 네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어 너를 영예롭게 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거나 은혜를 얻지 못하는 일이 아무리 큰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결코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사야 1장 하나님 말씀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

셋째, 그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사람들이 너에 대해 그렇게 여길 뿐만 아니라, 네가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이 일에서 지극히 은혜를 받은 너는 다른 일들에서도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녀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8절).

3.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놀람(29)

그녀 자신이 그러한 위대한 일을 보증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이것이 무슨 인사인가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왔을까? 이러한 인사말에 대해 그녀가 주의를 기울였다는 사실은 젊은 여성들에게 매우 유익한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이로써 그들이 인사말을 들을 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인사인지를 숙고해 보게 되는 것이다.

4. 천사가 그녀에게 전해야 했던 소식(30-33)

그는 사명을 띠고 왔다(30절). 천사가 말한 것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사는 그것을 더 확실하게 이야기하였다. 마리아여 무서워말라(30절).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받은 것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나님은 당신 편인가? 그렇다면 누가 당신을 대적하든 상관없다.

(1) 그녀는 처녀이지만, 어머니가 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1절).

(2) 그녀는 가난하게 그리고 낮은 신분으로 살았지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그녀의 아들은 구주 예수라 불리울 것이다. 그는 천국과 밀접하게 관련될 것이다. 그는 큰 자 곧 지극히 큰 자가 될 것이며, 그 증거로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며 결코 잘못 불려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진정으로 큰 자들이므로 지극히 선해 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요일 3:1,2). 그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높임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종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32절).

그의 백성들은 그 위를 그에게 주려 하지 않을 것이나,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고, 거룩한 산 시온에 그의 왕으로서 그를 세우실 것이다. 천사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었다. 첫째, 그의 나라는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의 족속인, 영적인 나라를 통치할 것이다. 그는 영원히 통치할 것이며 그의 왕국은 끝이 없을 것이다. 다른 왕권들은 수 세대로 이어질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왕권은 이어진다.

5. 그녀의 질문에 대한 더 자세한 대답(34-37)

(1) 그녀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 그녀는 메시아가 처녀에게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그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면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이 말은 그녀가 믿지 못해서 한 말이 아니라,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한 것이었다.

(2) 그 질문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대답이 주어졌다(25절). 첫째, 그녀는 성령에 힘입어 임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권능, 즉 성령에 힘입어 임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 즉 성령의 힘이 그 일을 이룰 것이다. 둘째, 그녀는 그 일이 행해 질 방법에 관하여 아무런 질문도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자의 능력으로서 성령이 그녀를 덮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모태에서 아기가 형성되는 것과 생명의 영이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은밀하게 지음을 받았다. 아기 예수의 형성은 더욱 큰 신비였다. 셋째, 그녀가 낳은 아이는 거룩한 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생식으로 잉태될 수 없다. 그에 대해서는 결코 같은 자가 없었던 거룩한 자라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다. 그의 인성이 그렇게 태어나야 했던 것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신성과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3) 비록 늙었으나 그녀의 친족 엘리사벳도 아기를 잉태했다(36절)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믿음은 더욱 고무되었다. 여기 노령에 불가사의하게 아이를 밴 사람이 있다.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36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일에 대하여 그녀를 안심시켜 그녀의 믿음을 북돋워 주고,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며 보편적으로 유용한, 위대한 진리의 말로 그의 메시지를 끝맺는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 하나님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면 이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있어서 그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는한, 우리가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6.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38)

그녀는 자인한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신실한 복종이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그녀는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 둘째, 그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기를 겸허하게 간구하였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구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소망을 가져야 한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가 아니고 바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천사가 떠나갔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갔다.

Ⅳ.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39-56

여기서 우리는 행복한 두 어머니,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을 보게 된다. 때때로 선한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함(39)

이 때에(그 날 그 때). 마리아는 이 일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났다. 그녀는 신중하고 부지런히 그리고 신속하게 갔다. 그녀는 산중에 있는 유대의 한 동네에 갔다. 수십 마일이나 되어 장시간 여행을 해야 되는 거리였지만 마리아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하고 그녀의 자매와 함께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아니면 나사렛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곳에 갔을 것이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받았던 소식을 나사렛의 이웃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수천 번 숙고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를 갈망했으며, 또한 그 일에 대하여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그녀의 사촌인 엘리사벳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속에 은혜의 선한 역사를 체험한 사람에게는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유익하고 위안이 되는 일이다. 그들은 물 속에 얼굴이 비치듯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2.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40,41)

마리아는 사가랴의 집에 들어갔다. 그녀는 ‘엘리사벳에게 문안하고'(40절), 자기가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하여 그녀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1)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41절) 그녀는 아기가 태동하는 것을 종종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여느 때의 아기의 태동 이상의 어떤 것이었으므로 엘리사벳은 이에 놀라 아주 특별한 일을 기대하게 되었다. 아기가 뛰놀았다는 것은 자기 뒤에 올 자가 지금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신명기 1장 설교말씀 광야에서의 모세의 1차 설교

(2) 엘리사벳은 성령 혹은 예언의 영으로 충만해져 있었으며, 그것에 의해 메시야가 가까이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복중에 있는 아기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은 하나님의 힘에 이끌려 그녀의 영이 비범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표시였다.

3.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환대함(42,45)

예언이 영에 의해 엘리사벳은 우리 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환영한다.

(1)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받은 영광을 축하하였다. 그녀는 큰 소리로 불러 말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42절). 이 말은 천사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28절). 그런데 엘리사벳은 거기에다가 이유를 붙이고 있다. 즉 “네 태중의 아이가 복이 있으니 네게 복이 있다.”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아내였으며 연장자였지만, 자기보다 휠씬 나이가 적은 사촌이 처녀로 잉태하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반면에, 자기에게 주어진 영광은 휠씬 그만 못하다는 것에 대해 시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일을 즐거워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과분하게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받은 것보다 훨씬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결코 시기하지는 말도록 하자.

(2)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자기를 방문하여 보여준 겸손에 대해 감사한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43절). 그녀는 처녀인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마리아가 그녀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이 방문이 크나큰 은혜이며 자기는 그러한 방문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어찌 된 일인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공적은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고귀하게 생각한다.

(3) 그녀는 자기의 복중에서 아이가 마리아를 환영하여 기쁨으로 뛰논다고 알려 주었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기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44절). 그러니까 그 아이는 메시야가 자기 바로 뒤에 올 것이며, 자기는 메시야의 선구자가 될 것으므로 기쁨으로 뛰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녀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보증되었다는 사실은 동정녀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4) 엘리사벳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고 격려해 준다(45절).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믿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것은 말씀이 그들을 실족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에게 하라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신실하심은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약속을 어기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4. 이 때 마리아가 찬양의 노래를 함(46-66)

엘리사벳의 예언은 동정녀 마리아의 문안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이 노래는 그러한 예언에 대한 한층 확고한 응답이다. 복된 동정녀가 여행 끝에 매우 지쳐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잊고 있으며 여기에서 그녀의 믿음을 확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생명과 활기와 기쁨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1) 여기 기쁨과 찬양의 표현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그러한 찬양의 대상이요, 기쁨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 보자.

1) 하나님에 대해 깊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라고 말한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46절). 이와 같이 하나님을 더욱더 높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게 된 자들이, 그리고 그러한 자들만이 은혜 가운데 나아가게 된다.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영광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더욱 큰 영광을 드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우리가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우리의 영혼이 그를 찬미하게 되며,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게 된다. 찬양하는 일은 영혼이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2) 하나님을 매우 기뻐하며, 구주라고 하였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47절). 이것은 그녀의 아들이 될 메시야를 가르키는 듯하다. 그녀는 그를 내 구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니 그의 이름은 구주 예수가 되리라고 천사가 그녀에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관련시켰다. 그는 하나님 내 구주이시다. 우리 주의 어머니까지도 그를 자신의 구주로 생각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2) 이렇게 기뻐하고 찬양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 그녀 자신 때문이었다(48,49절). 그녀의 ‘영혼이 주를 기뻐하였음’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해서 자비로우신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48절). “나의 비천함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사 이러한 영광을 주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녀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함을 기억하는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은혜의 표본을 보이신 것일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영원한 영광을 보장해 주신 것이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광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엘리사벳은 두 번 마리아가 복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세대가 나를 이렇게 부를 것이다.” 그녀의 영혼이 주를 찬양한다(49절).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처녀가 잉태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일이다.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권능이 나타난다.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전능하시며, 더욱이 그 이름이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대할 수 있다. 그러한 분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며, 모든 일을 온전하게 최선으로 하실 것이다.

2) 다른 사람들 때문이다. 메시야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는 일종의 공인이 되었으므로, 밖을 내다보고,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며, 앞을 보며 하나님께서 여러 모로 인간의 자녀들을 대하심을 깨듣는다(50절).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을 예비해 두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일처럼 분명하게 나타난 적은 없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50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긍휼을 베풀어 오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례없이 이러한 은혜를 분명히 나타내시어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영원한 구원을 주셧으며, 이 일을 대대로 베푸셨다. 즉, 복음의 특권이 전해졌으며, 영원토록 계승되었다. 세상이 존립하는 한, 그분 안에서 용서하는 은혜, 치유하는 은혜, 용납하는 은혜, 무상의 은혜가 대대로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대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영예롭게 하신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전능하심을 보여 주셨듯이(48,49절),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긍휼하심을 베푸심으로써 자신의 팔이 그처럼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과정에서 인간의 기대를 초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창세기 1장 설교말씀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건

교만한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고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생각을 흩으시고 그들을 낮추신다. 권세있는 자들은 권세의 힘으로써 그들의 보좌에 앉는 것이 보장되리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끌어 내리신다. 반면에 늦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 올려진다. 영광에 관한 이러한 통찰은 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아주 가난하여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양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섭리의 놀라운 전환으로 좋은 것들로 채워지게 된다. 반면에 부자들은 이상하게 곤궁해져서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큰 일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좌절시키고, 작은 일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그 이상으로 이루어 주시기를 즐기신다. 선하신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높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위안의 말을 건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복음의 은혜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서 나타난다.

①그것이 베푸는 영적 영예에서 드러난다. 교만한 바리새인들은 거부되고,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들에 앞서 하늘나라로 들어갔을 때 즉, 의의 율법을 좇는 유대인들은 법에 이르지 못하고, 그것을 생각지 못했던 이방인들이 의에 도달했을 대(롬 9:30,31) 또한 하나님께서, 육을 좇는 지혜로운 자, 권세 잡은자, 혹은 고귀한 자를 선택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고 기독교 신앙을 심게 하시지 않고,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들을 낮추시지만, 비천한 자를 높이셨다.

②그것은 영적인 부에서 나타난다(53절). 첫째,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들 최선의 것들로 채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풍성하게 주시며, 그들은 지극히 만족하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안식을 얻게 될 것이며, 목마른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마시도록 부름을 받을 것이다. 둘째,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은 자부하며, 자기 만족에 빠져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문에서 내쫓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빈 손으로 보내신다. 그들은 자부하면서 왔다가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므로 내쫓긴다.

메시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힘과 영광이 되리라는 것은 항상 기대되었던 바인데 진실로 그는 다음의 특별한 의미에서 그러하시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5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손으로 붙드셨고, 쓰러져서 어쩔 수 없는 자들을 도우셨다. 불쌍한 죄인들에게 도움이 되신 메시야를 보내신 것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였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을 기억하신다. 이 축복이 지연되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을 이렇게 묻고자 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을 잊으셨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으며, 자신의 긍휼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신다. 그것은 의도된 자비이며, 선포된 자비이다(55절). 축복이 ‘그 자손에게 영원하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 특히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그들의 자손에게서 이루어 질 것이다.

㉢마리아가 석 달 동안 엘리사벳과 함께 지낸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이다(56절).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자리잡은 사람들은 홀로 앉아서 조용히 있는 것을 이전보다 더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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