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4장 31–37절
설교 제목: “권위 있는 말씀, 무너지는 어둠”
1. 서론: 말씀이 사라진 시대, 다시 들려오는 ‘권위 있는 음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말과 정보가 우리 귀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말들 가운데,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죄를 깨뜨리고, 어둠을 몰아내는 권위 있는 말씀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많은 말이 있지만 권위가 없고, 많은 소리가 있지만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의 말은 감동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을 해방시키지는 못합니다. 철학과 이론은 문제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죄의 사슬을 끊어낼 힘은 없습니다. 설득은 가능해도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영적인 세계를 흔들어 놓는 말씀이었고, 더러운 귀신조차 벌벌 떨며 순종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본문 32절에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무엇을 변화시키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신앙을 ‘감정’이 아닌 ‘권위’ 위에 세우도록 부르고 있습니다.
2. 갈릴리 가버나움, 어둠이 드러나는 자리
31절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가버나움에 내려가 안식일마다 가르치셨다고 기록합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숫가에 위치한 상업적이고 번성한 도시였으며, 이방 문화가 섞여 들어오고, 종교는 형식화되고, 영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회당’입니다. 경건한 사람이 모이고, 율법이 낭독되고, 기도가 울려 퍼지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회당 안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33절에 보면,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귀신 들린 사람이 세상 한복판이 아니라, 회당 안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 건물 안에 앉아 있는 것이, 영적으로 안전함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종교적인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사로잡혀 있을 수 있고,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둠의 결박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현장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복음이 드러납니다.
어둠이 깊다고 해서 예수님이 못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는 곳마다 어둠이 드러나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자, 귀신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빛이 임하면, 그림자는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3. 귀신의 외침 – 그러나 사람들이 몰랐던 진실
34절에서 귀신이 이렇게 외칩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여기에서 매우 역설적인 장면이 벌어집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 율법을 알고 예언서를 외우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예수님의 정체를 귀신이 먼저 알아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세계는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나사렛 출신 목수가 아니라, 하늘에서 오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약속된 메시아, 어둠을 멸하러 오신 참된 왕이십니다.
귀신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묶고 있던 죄와 사탄의 권세를 멸하러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위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가 선포된 전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패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4. 한 마디 말씀, 그리고 완전한 해방
35절에서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복잡한 의식도, 긴 주문도, 특별한 도구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충분했습니다.
귀신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갔지만, 그 사람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권위가 얼마나 완전한지를 보여줍니다.
사탄은 언제나 파괴하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회복하십니다.
사탄은 상하게 하지만, 예수님은 온전하게 하십니다.
여기에 구속사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원은 단순한 ‘죄 사함’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미 이 땅에서, 귀신 들린 한 사람의 삶 속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의 놀라움과 퍼져 나가는 예수님의 소문
36절과 37절에 보면,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그 결과, 예수님의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능력에 놀랐지만, 그분의 주권 앞에 무릎을 꿇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예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놀라운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그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삶을 내어드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도 동일합니다.
잠잠하라.
묶인 것에서 나오라.
자유하라.
새로워지라.
그리고 그 말씀은 여전히 권위와 능력이 있습니다.
6. 결론: 오늘 누구의 음성에 순종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까?”
세상의 소리입니까?
사람의 평가입니까?
두려움과 염려의 속삭임입니까?
아니면 권위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명령이며,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그분이 “나오라” 하시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자유하라” 하시면, 자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안에 아직 남아있는 두려움과 죄의 습관, 상처와 어둠을 향해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 음성 앞에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 앞에 우리 모두 겸손히 무릎 꿇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복된 인생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