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1–11)
Ⅰ. 서론 – 은혜는 왜 우리를 무너뜨리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기쁨과 위로, 회복과 형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진짜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무너집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쳤고, 욥은 하나님을 뵌 후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했으며,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실패의 고백이 아니라, 구원의 문 앞에 선 사람의 고백입니다.
눅 5:1–11은 예수님이 한 어부를 부르시는 이야기이지만, 그 핵심은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게 되는가에 있습니다.
Ⅱ. 본문 – 은혜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 그리고 부르심
1.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1–4절)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신 후, 시몬의 전문 영역, 곧 그의 생업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말씀은 상식과 경험을 거스르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사는 언제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자리로 사람을 부르십니다.
2. “말씀에 의지하여” – 빈 그물 위에 얹힌 믿음 (5절)
시몬은 말합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고백은 위대한 믿음의 선언이기 이전에,
더 이상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의 정직한 선택입니다.
구속사는 늘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 빈 그물만 남은 자리에서
말씀 하나에 인생을 거는 순간입니다.
3. 넘치는 은혜,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은혜 (6–7절)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히고, 두 배가 잠길 정도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이 풍요는 사람을 만족시키기보다 당황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 은혜는
기존의 삶의 구조, 기존의 그물로는 담을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에서 기적은 사람을 머물게 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밀어내는 표지입니다.
4.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은혜의 정점 (8–9절)
바로 이때 시몬 베드로는 무릎 아래에 엎드려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고기를 본 것이 아니라,
고기보다 크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구속사에서 참된 죄 인식은
율법 앞에서가 아니라, 은혜 앞에서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어부였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섰기 때문에 무너진 것입니다.
5. “무서워하지 말라” – 죄 고백 위에 선 부르심 (10절)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구속사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님을 증명한 사람을 부르지 않으시고,
죄인임을 아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6.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1절)
마침내 그들은 배와 그물과 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릅니다.
이 떠남은 손해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구속사는 소유를 늘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을 바꾸는 이야기입니다.
Ⅲ. 결론 – 죄인의 고백이 복음이 되는 순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은
신앙의 실패 선언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 자기 의를 내려놓은 자리이며
- 은혜만 남는 자리이며
- 부르심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성공한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 말씀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위로가 아니라,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구속사의 선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살아가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이 고백 위에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살리는 부르심을 시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