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지명설교] 갈그미스 전투 교훈(Carchemish) 대하35:20-25

갈그미스 Carchemish

갈그미스 전투의 교훈

대하35:20-25 …애굽 왕 느고가…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 방비하였더니…

우리 역사 속에는 민족의 운명과 역사의 맥을 바꿔 놓은 유명한 전투가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 왕 요시야와 애굽 왕 느고사이에서 벌어졌던 갈그미스 전투도 선민과 세계 역사에 큰 전환을 가져온 유명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 유다와 애굽은 패망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바벨론이 신흥 대제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본 전투에서 전사한 요시야 왕의 경솔한 행동과 그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이 땅에서 늘 선한 신앙의 싸움을 수행해야 하는 우리 성도들이 기억해야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평안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1) 땅의 평안은 일시적인 것임

유다 왕 요시야의 통치 말기 때에 팔레스타인 세계는 ‘힘의 진공상태’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대제국 앗수르는 쇠퇴하여 멸망해 갔으며, 후에 등장할 바벨론 제국은 아직 그 세력이 미미했을 때였습니다. 애굽도 그 세력이 앗수르로 인해 약해져서 종이 호랑이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은 유다 왕국에 유래없는 평온을 선물했습니다. 포악한 앗수르 제국의 위협에서 벗어난 유다는 태평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화는 마치 폭풍전야의 적막같이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앗수르가 약화되자 애굽이 일어서려고 한 것입니다. 애굽 왕 느고가 전에 앗수르에게 빼앗겼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패권을 되찾고자 군대를 동원하여 유브라데 강가의 변방 도시인 갈그미스로 진군해 온 것입니다. 이처럼 이 땅이 주는 평화와 평안은 순간적이요, 거짓된 것입니다. 그 평안을 의지하면 언제나 낭패를 보기 마련입니다. 성도의 평안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언약을 의뢰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연단의 공백상태가 더 위험함

애굽 왕이 갈그미스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들은 요시야 왕은 그 길목인 므깃도로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그러자 느고는 유다 왕국과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요, 앗수르를 치려고 왔으며, 이와 같은 계획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알려왔습니다(21절). 사실 애굽 군대가 앗수르 제국의 잔존 세력을 없애 주는 것이 선민 유다에게도 큰 유익이요, 앗수르 제국을 멸절시키려는 하나님의 뜻과도 부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시야 왕은 분별없이 애굽 군대와 싸우다 패망한 것입니다. 앗수르 제국의 압제가 사라져 버린 ‘연단의 공백기’가 요시야 왕의 영적 분별력을 둔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연단과 시련의 공백기는 환난과 시련으로 고난당하는 때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과 경계심이 둔해지게 되고 안일무사하게 되므로 적당한 시련과 고난은 성도의 삶을 진보시키는 활력소가 됨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 공을 세운 후 조심해야 합니다

1) 자만에 빠지기 쉬움

성경은 요시야가 “이 모든 일…하기를 마친 후”(20절), 애굽 군대와 싸우게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무슨 일을 마쳤다는 뜻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시야 왕은 신앙이 극심하게 타락한 선민공동체에 역사적인 종교개혁을 일으킨 선왕입니다. 성경은 요시야 왕을 “여호와를 향하여…온전히 준행한 임금”(왕하23:25)이라고 극찬합니다. 요시야는 갈그미스 전투전에 온 국민과 더불어 하나님이 명하신 유월절을 성대하게 치뤘습니다(16-19절).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성공했으며 그와 같은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즐겁게 유월절을 지켰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큰 공을 세운 요시야 왕은 자연히 자만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 자만심으로 더 큰 공을 세우기 위해 느고 군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나 사회에 공을 세운 후에는 스스로 공로주의에 빠져 자만해지기 쉽습니다.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경고합니다.

2) 분수를 넘어서기 쉬움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자칫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요시야 왕이 애굽의 느고 왕에게 도전한 원인 중 한 가지가 자신의 능력을 과대하게 믿었던 탓이었습니다. 큰 개혁에 성공했으니 애굽과의 전투도 능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종교 개혁가였지 다윗처럼 전투에 능한 장수는 아니었습니다. ‘갈그미스’라는 지명에는 ‘성벽’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요시야는 자기 한계의 벽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모한 전투를 벌여 패망을 자초한 것입니다. 교회에 큰 공을 세운 성도는 이처럼 자만하여 무모한 행동을 하기가 쉽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사랑으로 사회를 영적으로 개혁시키는 영적 개혁가일 뿐이지 싸움꾼, 정치꾼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일을 잘 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일도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3. 인간적인 계교를 경계해야 합니다

1) 옛 사람의 구습에 얽매이게 됨

요시야 왕은 ‘변장'(22절)을 하고 느고와 싸웠다고 했습니다. ‘히트하페쉬’라는 구약성경의 ‘변장’이라는 뜻은 “거짓으로 자신을 꾸민다”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요시야는 느고와 싸우는 군대가 유다 군대가 아니라 앗수르 군대인 것처럼 변장하고 싸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은 선민 군대가 앗수르 군대로 변장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으로 성도가 옛 사람의 구습을 다시 행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옛 사람의 구습을 벗으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인간적인 생각과 계교로 행한다면 타락하고 부패한 옛 사람의 습성에 다시 얽매이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됨

결과적으로 요시야는 전사하고 유다 왕국은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앗수르를 치려고 갈그미스에 온 것은, 애굽과 앗수르가 싸움을 일으켜 멸망하게 함으로써 신흥 바벨론을 세계 무대에 등장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렘46:20-25).

구약성경지명 설교말씀 갈그미스

우리 성도들은 선한 싸움을 하되 오직 진리와 의와 사랑만을 영적 싸움의 병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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