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장 설교 말씀] 예수님의 속죄사역 완전성(골2:1-23)

골로새서 2장 설교 말씀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의 완전성에 대해서 말씀한다. 율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죄의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심으로 완성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죄를 해 주신 것을 믿음으로 우리의 원죄와 자 범죄가 사라졌다.

Ⅰ.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염려 2:1-3,5

사도 바울은 결코 골로새에 가 본 적이 없었으나 골로새 교인들을 그가 책임져야 할 유일한 사람들인 것처럼 그 교회에 대해 크게 염려하였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1절).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염려는 전투에 대담할 만한 염려였다. 그는 일종의 고민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조차도 믿음과 소망과 거룩한 사랑에 의해 친교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육체로는 결코 알지 못하는 사람도 천국에서는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1. 바울이 그들에게 바라는 것(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그들의 ‘마음이 위안 받을 수 있도록’ 바울이 열망한 것은 그들의 영적인 복리였다. 영혼의 번영은 최상의 번영이다. 그러면 그 영적인 번영에 대한 바울의 서술을 보자. (1) 그 때에는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해하는 데까지 자란다.’비밀을 이해한다’는 이 말은 그 비밀을 단지 암기하여 말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 비밀의 의미와 의도를 깊이 이해한다는 말이다. (2) 그 때는 우리의 믿음이 이 비밀에 대한 충분한 확신과 담대한 인정을 하는 데 가지 자란다. 그러므로 그 때에 우리는 충분한 확신, 혹은 확고한 판단에 이르기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음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입으로 고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인 것이다.

심오한 지식과 강한 믿음은 영혼을 부요한가 한다. (3)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상태이다.’영혼이 기쁨과 평화로 충만할 때 영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다. (4) 그것은 ‘사랑 안에서 연합되는 상태이다.’ 우리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의 위로도 더욱 더 커진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의 존귀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즉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3절).지혜의 보화는 우리로부터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직된 재산을 사용해야만 하며 그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어야 한다.

2. 골로새 교인에 대한 바울의 염려가 되풀이 됨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대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우리는 몸으로 떨어져 있는 사들과 심령으로는 함께 있을 수 있다. 비록 바울은 그들을 본 적이 없었으나 그는 그들 가운데 있으며 그들의 선한 행위에 대해 기뻐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확고하면 할수록 우리의 교제 안에는 더욱더 질서가 잡힌다.

요나 3장 회개 말씀 요나의 순종과 니느웨 백성 회개

Ⅱ.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영광된 경륜(1)2:4-12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속이는 자들을 조심하도록 경고한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4절)혹은 누가…너희를 노력할까 주의하라(8절). 사단은 그들을 기만함으로써 그들의 영혼을 노략질한다. 사단은 그들을 속이며, 그 속임수를 써서 그들을 죽인다. 그가 우리를 속이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없다. 또한 그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이용하지 않고는 우리를 속일 수 없다 사단의 대리자들은 유혹하는 말로써 그들을 기만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이려고 엎드려 기다리는 자들의 아첨에 의해 파멸되었던가! “아첨하는 자들의 의도하는 바는 너희를 해치는 것이다.”

1. 유혹자를 대적할 수 있는 최상의 대책(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6,7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예수 그리스도를 주로서 받아들였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의 최대 관심사는 ‘그 안에서 행하는’것이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을 그와 함께 행하여야 하며 그와의 교제를 계속 지속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욱 친밀하게 행하면 행할수록 우리는 더욱’믿음 안에 뿌리를 박게 되고 세움을 입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 안에서 행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 뿌리를 박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 안에 뿌리를 박게 되는 것이 확고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밀접하게 그 안에서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게 되되 교훈을 받음대로 ‘된다. 훌륭한 교훈은 우리가 서는 데 있어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는’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하며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한다.’

2. 우리들로 경계하도록 한 올바른 경고(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8절). 우리의 이성적인 기능을 고상하게 발휘시키는 철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헛되고 속이는 철학도 있다. 즉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것’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장로들의 유전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이방인들은 철학의 공리들을 기독교의 원리와 혼합하였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로부터 떠나 이었다. 자기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려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좇아 따르기를 거절했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림자에 불과했던 모든 의식적 율법의 실체를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들이 세키나(shechinah) 혹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체험했었는가? 이제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같은 것을 체험한다. 즉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9절). 신성의 모든 충만이 그 안에서 육체로 거하셨다는 이 말에서의 육체는 영에 반대되는 의미가 아니라 그림자에 반대되는 의미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신성의 충만은 상징적이 아니고 실제적인 것이다. 그들이 언약의 보증으로서 할례를 받았었는가?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는다.”(11절).

그들이 받은 할례는’손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다. 즉 어떤 피조물의 능력에 의하여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된 영의 능력에 의하여 할례를 받은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의식적인 율법 안에서 그 자신들을 완성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진다'(10절). 유대인의 율법은 불완전하며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율법의 모든 결함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보완되어졌다.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구약의 제사장직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왕국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다. 그는 주님이시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의 머리이시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에서 그와 함께 한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12절). 우리는 그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장사한바 되고 일으키심을 받은 것은 모두 우리의 세례에 의해 표현된다. 바울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말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말미암는다고 말하고 있다. 세례에 의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보증하셨고 또한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됨을 보증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은혜에 의하여 죄의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된다.

Ⅲ.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영광의 경륜(2) 2:13-15

[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된.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13절). 죄의 상태는 영적 죽음의 상태이다. 죄 가운데 있는 자는 죄 가운데서 죽은 자다. 육체의 죽음은 육체의 부패를 초래하는 것과 같이 죄는 영의 타락을 초래한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습적인 죄인은 도덕적으로 무력하다. 이와 같은 상태가 바로 우리의 상태다. 이제 죄 가운데서 죽은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살아났다. 그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의 죽음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영혼의 소생이다.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았다.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죄의 용서는 범죄자에게 있어서 생명이 된다.

[3] 우리를 거스리는 것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는’우리를 거스리는 의문에 쓴 증서'(14절)로부터 우리를 합법적으로 해방시키셨다.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저주를 받는다. 이것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증서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저주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의문에 슨 증서는 의식적인 율법으로 해석됨이 분명하다. 주 예수께서는 그것을 제하여 버리사 그것을 자신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즉 율법에 대한 의무를 무효화시키셨다. 실체가 올 때 그 그림자는 사라진다.

[4]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으셨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15절). 율법의 저주가 우리를 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단의 세력도 우리를 대적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의 집행자인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능력과 고귀하신 손으로 구원하셨다. 마귀와 지옥의 모든 세력들은 죽으신 구속자에 의해 정복되고 무력하게 되었다. 그 구속자는 죽음으로써 정복하신 것이다. 그의 가시관이 월계관으로 바뀐 사실을 생각해보라. 그는 그들을 멸하시고 그들을 밝히 드러내셨다. 마귀의 왕국은 주 예수가 공격한 것과 같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십자가와 그의 죽음으로 그들을 정복하셨다.

Ⅳ.경고와 교훈 2:16-23

[1] 유대인의 풍습을 따르게 하려는 선생들을 조심하라는 경고(16,17절):그러므로 누구든지 먹고 마시는 것….인하여 너희를 편론 하지 못하게 하라(16절). 어떤 사람도 그러한 일들을 너희에게 강요하지 못하게 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들을 강요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17절). 그것들은 이젠 사라진 것이다.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즉 그림자의 참 몸이 나타나셨다. 그들은 그림자를 가졌으나 우리는 그 그림자의 실체를 가졌다.

[2] 그는 이방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천사 숭배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유의하라고 한다(18,19절). 누구든지 이루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8절). 그들이 겸손한 모습을 하였을지라도 그 겸손은 자의적인 겸손이지 계명에 의하여 주어진 겸손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겸손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며 정당한 것이 아니다. 그 외에 이 같은 행위의 근거가 되는 관념은 단순히 인간에 의해 날조된 것이며 인간 이성의 교만한 자만이다.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저가 보지 못한 것에 참견하여)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그 행위에 겸손의 모습이 있을지라도 그 원리에서는 실제적인 교만이 도사리고 있다.

에스더 1장 원어설교문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 왕후를 폐위

실제로 교만은 수많은 오류와 부패의 주원인이며, 심지어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겸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무수한 악한 행위들의 주원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행동하는 자들은’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19절)자들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붙잡은 손을 놓쳤을 때 그들 곁에 있는 것을 붙잡게 되며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치하시는 머리이실 뿐 아니라 교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머리이시다. 그리스도의 몸은 자라나는 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크게 그리고 풍성하게 자란다.

[3] 바울은 다시 그들을 경고한다.(20-23절)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20절). 붙잡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21절), 그와 같은 관습은 인간들의 전통과 교훈에 불과하며 그 이상의 권위는 없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에 있어서 지혜있는 모양이다'(23절). 그들은 그 이웃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에는 참된 경건이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에게 의식적인 관심들에 의해서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가르치며, 어떤 천사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서만이 경배할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경배에는 지혜의 모양은 있으나 사실은 어리석은 짓이다. 복음의 약속들을 가까이 하고 교회의 유일한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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