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 말씀은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의 영원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율법에 매이지 않고 성령의 영이 임하여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주의 신앙을 버리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의 영원성(갈3:12-18)
바울은 모세를 말씀하면서 율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 내려올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세를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얼굴에 광채가 났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았을 때 이렇게 광채가 있었다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은 사람은 얼마나 영광이 있겠는가? 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물론 빛이야 있지만 결국 이 빛은 구원의 은혜의 빛이 아니라 자신의 의가 나타난 빛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상급과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율법과 자유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후 3:12-13)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바울은 우리에게 이 같은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얼굴에 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율법의 대표입니다. 이 율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키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모세가 얼굴에 광채가 나자 수건을 쓴 것은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율법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시켜야 합니다.
(고후 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하지만 유대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도 구약을 읽을 때에 예수그리스도를 찾지 못합니다. 율법의 수건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렸기 때문에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예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은 모두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수건이 벗겨지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필요합니다.
‘완고하여’ 헬라어(포로오 4456 VIAPS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둔하게 하다, 우둔하여 지다,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진 것은 자신들의 생각에 휩싸여 둔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이나 율법주의자들의 마음이 둔하게 된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으며 이들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에 눈이 어두워질 것이 계획되어 있고 자신이 아무리 율법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으려고 해도 절대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모세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를 본 것처럼 율법에 눈이 가려진 자들도 개인적으로 마음이 우둔하여진 것입니다.
‘벗겨지지 아니하고’ 헬라어(아나칼륍토 343 VPPPNMS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남성 단수) 벗어지다, 베일을 벗다,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과 지금의 율법주의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율법의 베일이 벗어져야 만이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이 가려진 때가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의를 나타내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도 그랬지만 현재도 십자가의 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율법의 의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들이 이 율법의 수건을 벗고 싶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의로 눈에 덮고 있는 율법의 수건을 벗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열심을 내지 않고 십자가의 의로 구원을 얻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율법에 빠진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눈을 가려 놓으신 것입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율법으로 눈을 가려 예수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없어질 것이라’ 헬라어(카타르게오 2673 VIPPS3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단수 3인칭) 폐하다, 멸하다, 제거되다, 무효로 하다, 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수건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율법으로 구원을 받은 것을 무효로 하고 제거되어 더 이상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은 이미 구원에서 떨어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자들은 구약의 율법이 예수그리스도의 공로 안에서 수건이 벗겨졌습니다.
이런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으며 지금 현재도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공로로 인해 구원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눈에 구약의 수건이 벗어진 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된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공로로 완전히 율법의 의가 사라졌고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개인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눈에 율법을 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구원받을 자를 택하여 율법을 벗어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지금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율법주의자들의 마음을 덮었다고 했습니다.
‘덮었도다’ 헬라어(케이마이 2749 VIPNS3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포 단수 3인칭) 눕다, 놓여있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는데 결국 구약을 읽을 때에 율법이 사람들의 마음을 닫아 예수그리스도가 깨달아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도 구약을 읽고 있지만 율법을 중요시 하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고 현재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율법에 빠진 자들이 열정을 내고 열심을 내어 구약을 읽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이들의 눈을 가려 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율법에 대한 짐과 고통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답답함이 가득차고 십자가 예수님의 공로는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고후 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그러나 율법에 빠진 자들이 언제든지 주님께로 돌아가면 율법의 수건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돌아가면’ 헬라어(에피스트레포 1994 VSAAS3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돌이키다, 돌아서다, 저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공로를 저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돌아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가정법을 쓰고 있다는 것은 율법의 의를 돌아서는 자는 구약의 수건이 벗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대 율법의 수건이 벗어지지 않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율법의 수건이 벗어지는 것이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전에 계획하신 자들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약의 율법의 수건을 벗어내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도 주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율법의 수건이 벗어져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벗겨지리라’ 헬라어(페리아이레오 4014 VIPPS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끊다, 제거하다, 죄를 제거하다, 죄를 속하다, 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율법의 수건이 벗겨지는 것은 모든 죄를 제거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속죄함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동을 끊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죄가 제거되어 오직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의만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율법의 의의 수건이 완전히 벗겨지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런 사실이 실제적으로 현재 나타나고 있습니다. 율법의 수건이 벗어지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벗겨진 것입니다. 내가 율법의 수건이 벗겨져 구원을 받은 것은 철저한 예수그리스도의 공로이지 내가 믿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율법의 수건을 벗어놓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율법의 수건을 벗겨주셨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보인 것입니다. 율법의 안경을 쓰고 있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무슨 안경을 쓰고 있습니까? 율법의 안경입니까? 십자가의 안경입니까? 율법으로는 정죄만이 있을 뿐입니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예수그리스도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얻은 자들은 자유 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영이시니’ 헬라어(에이미 1510 VIPAS3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 나는 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습니다. 그것도 현재 나와 함께 하여 주님이 능동적으로 찾아오셔서 각 개인적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모든 율법의 수건을 눈에서 벗겨주시고 십자가 공로의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자유가 있느니라’ 히브리어(호르 2715) 귀족,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가 임하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는데 바로 귀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귀족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여 주셨지만 나는 죄로 인해 잠시 눈이 가려지고 율법의 수건에 가려 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못 박아 사라지게 하시고 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귀족이 되어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귀족의 아들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종의 신분에서 귀족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죄로 인하여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원히 살려주셨습니다. 바로 주의 영이 임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귀족의 자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본다고 했습니다. 율법의 수건을 벗어 던질 때에 예수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도 절대 율법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수건을 벗은’ 헬라어(아나칼륍토 343 VPRPDNS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여격 중성 단수) 베일을 벗다, 벗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 율법의 수건이 벗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때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수건을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이미 벗어주시기로 행동이 끝난 자들만 가능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약의 율법의 수건이 구원받은 자들의 눈에서 벗어지게 됩니다. 각 개인적으로 벗어나게 하여 십자가 예수님이 깨달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수건이 벗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백성들만 구약의 율법의 수건이 벗어지게 하셔서 예수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헬라어(카톱트리조 2734 VPPMNMP1 동사 분사 현재 중간태 주격 남성 복수 1인칭) 거울로 보는 것처럼 보다, 숙고하다, 반영하다, 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벗어지고 난 후에 거울을 보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의 의를 나타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지만 십자가의 의를 나타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나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반영되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 거울을 보는 것같이 보겠습니까? 바로 구원받고 나의 행실이 온전할 때에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현재 내가 주님의 삶을 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율법의 수건이 벗어진 자들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주님의 영광만이 나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율법으로 정죄하는 것이 사라지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이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변화하여’ 헬라어(메타몰포오 3339 VIPPP1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복수 1인칭) 변형되다, 변화 받다, 변화하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의 수건이 벗어진 사람들은 주의 영광을 보게 되는데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을 보게 되고 이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일은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며 현재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부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부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되어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어 부활된 사건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율법과 주님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약의 율법 수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깨닫고 싶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 안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자유 함을 누린다고 했는데 주님의 영이 임하는 것도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주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귀족으로서 귀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이미 귀족입니다. 원래는 귀족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모든 인간들이 천사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들입니다. 귀족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여 죄 때문에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십자가 복음으로 살아나서 천사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 귀족의 반열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영이 함께 있는 곳에는 율법의 정죄함이 없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 있는 것입니다. 귀족의 아들로서 살아가게 우리의 삶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내가 살아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