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 히브리어 성경말씀은 노아가 장막에서 술 취한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포도나무를 심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에서 잠을 잤다. 이 사실을 함이 알고 형제들에게 말했다. 노아는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했다.
성 경: [창9:18] 바이히우 베네 노아흐 하요치임 민 하테바 솀 비함 바야페트 비함 후 아비 케나안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 노아의 여러손자들 중 특별히 가나안만 그의 아비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함이 실수한 결과 저주를 받게 될 인물(24, 25절)로서 향후 전개 되는 성경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창9:19] 쉘리샤 엘레 베네 노아흐 우메엘레 나피차 콜 하아레츠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퍼지니라(나파츠) – 원뜻은 ‘산산이 때려 부수다'(삿 7:19; 시 2:9). ‘흩뿌리다’로 이 말은 노아의 후손들이 마치 잘 익은 봉숭아 꽃씨가 터져 사면에 흩어지듯 세상구석 구석에까지 확산, 정착해 살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는 ‘땅에 충만하라(1절)는 하나님의 축복의 성취인데 노아와 그 가족들은 아담과 거의 비슷한 상황 가운데(1:27, 28) 종족을 번성시켜 나갔다.
성 경: [창9:20] 바야헬 노아흐 이쉬 하아다마 바이타 카렘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 직역하면 ‘땅의 사람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이는 노아가 인류 최초의 농부였다든지 그때야 비로소 포도 재배가 이루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아담도 토지를 경작하였고(3:23) 가인도 땅의 소출을 수확하던 자였다(3:23) 가인도 땅의 소출을 수확하던 자였다(4:2, 3) 다만 이는 홍수 이후 황폐해진 땅을 노아가 다시금 경작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포도나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렘’은 복수(plural)의 의미로 많은 포도나무를 가리킨다. 아라랏 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아르메니아지역(8:4) 서북편에는 넓은 야산 지대가 있는데 이곳은 실제로 고대의 유명한 포도 생산지였다.
성 경: [창9:21] 바예쉬트 민 하야인 바이쉬카르 바이트갈 베토크 아할로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포도주를 마시고 – 포도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인’은 일종의 ‘발효된 포도즙’을 가리키는 상용어이다(레 10:9; 시 60:3; 사 22:13; 욥 1:5). 그런데 여기에 정관사 ‘하'(the)가 붙은 것은 노아가 그 같은 포도주에 이미 익숙해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Kalisch).
취하여(솨카르) – ‘잔뜩 마시다’는 뜻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된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노아의 잘못이 있는데 사실 그가 포도주를 마신 것 자체는 아무런 잘못일 수 없다(18-29절 강해). 왜냐하면 순수한 자연수를 구하기 어려웠던 히브리인들은 일상 생활시에 포도주를 음료수로 사용하였으며 하나님께 전제(奠祭)를 드릴 때에도 제물로 삼았었기 때문이다(출 29:40; 레 23:13). 그러기에 성경도 이를 과다 섭취할 때에 따르는 폐단에 대하여서만 엄히 경고하고 있다(잠 23:20, 21; 사 20:1; 28:7; 엡 5:18).
벌거벗은지라 – 직역하면 ‘그 자신을 벗었다'(he suncobered himself)로 스스로 옷을 벗어버려 알몸을 드러낸 것을 뜻한다.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노아도 이처럼 잠깐의 방만(放漫)한 자세로 인해 시험에 빠진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한순간이라도 영적 긴장을 풀어서는 안됨을 교훈해 준다(마 26:41; 벧전 5:8).
성 경: [창9:22] 바야르 함 아비 케나안 에트 에리바트 아비브 바야게드 리쉐네 아하이브 바후츠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하체’ – ‘하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르와’는 ‘벗게 하다’, ‘발가벗기다’란 뜻을 가진 ‘아라’에서 파생된 말로, 넓은 의미로는 벌거벗은 상태를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사타구니 부분의 성기를 가리킨다. 타락전 순결한 기쁨의 상징이었던 이것이 아담 범죄이후 수치(3:7;신24:1)와 불결함(애 1:8)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보고(라아) – 단순히 힐끗 지나쳐 보았다는 뜻이 아니고 만족스럽게 응시하였음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함의 실수는 아비의 하체를 본 그 자체에 있지 아니하고 그것을 보고 악의적으로 즐긴 데 있음을 시사해 준다.
두 형제에게 고하매 – 보다 더 적극적이고 경박스런 함의 죄이다. 정상적인 부자간(父子間)이라면 아들이 아비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상례인데 함은 형제들까지도 아비의 수치를 목격하고 쾌감을 느끼도록 충동질 한 것이다. 이처럼 범죄자들은 남들도 자신의 범죄에 가담토록 강요함으로써 동질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성 경: [창9:23] 바이카흐 솀 바예페트 에트 하시믈라 바야시무 알 쉐켐 쉐네헴 바옐리쿠 아호라니트 바이카수 에트 에르바 아비헴 우페네헴 아호라니트 비에르바트 아비헴 로 라우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옷을 취하여 – 옷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믈라’는 주로 겉옷(garment)을 가리키는데(신 10:18;삿 8:25; 룻 3:3) 때로는 덮개나 보자기를 가리키기도 한다(삼상 21:9). 그런데 여기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을 볼 때 셈과 야벳이 취한 옷은 노아가 벗어 아무렇게나 놓아 두었딘 바로 그 옷일 수도 있다.
뒷걸음쳐 들어가서 – 아비의 수치를 보지 아니하고 덮어 주려는 조심스럽고도 사려 깊은 행동이다. 이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초 효도의 예로서 비록 십계명으로 성문화(成文化)되지 않았을지라도 부모에 대한 존중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도덕률임을 교훈해 준다(출 20:12). 한편 다른 사람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가려 주는 행위는 성도가 지녀야 할 당연한 태도인데 왜냐하면 성도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한 허물과 수치를 가리움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18-29절 강해).
성 경: [창9:24] 바이케츠 노아흐 미예노 바예다 에트 아쎄르 아사 로 베노 하카탄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작은 아들 – 22절을 볼 때 이 자는 함인것 같다. 그러나 혹자는 가나안으로 보기도 하는데(Poole, Inglis, Lewis) 이는 25절에서 가나안이 저주받고 있는 점에 근거한 견해이다.
성 경: [창9:25] 바요메르 아루르 케나안 에베드 아바딤 이흐예 리아하이브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 난해 구절 중의 하나로 아비의 하체를 조롱한 함의 범죄가 왜 그의 아들 가나안의 저주와 연결되었는가하는 의문점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함이 받을 형벌의 가혹함을 더하기 위하여 가나안으로 대표되는 그의 후손들을 저주하였다(Calvin, Lange) (2)노아는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장차 가나안족이 징계를 받게 될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Theodoret, Willet) (3)가나안이 노아의 수치를 처음 목격하고 그 사실을 함에게 고한 진짜 범죄의 하수인이요 공범자였다(Aben Ezra, Poole, Jamieson)
(4)함이 노아의 막내 아들인것같이 가나안도 함의 막내 아들이므로 같은 원리로 저주받았다(Hoffman, Delitzsch) (5)당시 가나안도 이미 그의 아버지의 불경건함과 죄악을 답습하고 있었다(Ambrose, Keil). 아뭏튼 함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아들이 저주받은 것은 자신이 저주받은 것 이상의 형벌이었고, 또한 자신의 미래는 아들 가나안의 미래 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함은 가나안과 함께 복합적으로 저주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종들의 종 – 최상급을 나타내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가장 비천한 종’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용례로는 ‘신의 신'(신 10:17) ‘왕 중 왕’, ‘노래 중의 노래’등이 있다. 한편 이 저주는 역사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어 가나안 족속은 여호수아 시대에 셈족인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가장 비천한 종의 형태로 전락되었고(수 9:23), 그 나머지는 솔로몬 시대에 완전 정복당했다(왕상 9:20, 21). 그후에도 칼타고인이나 애굽인들과 같은 가나안 족속들은 페르샤인, 마게도냐인, 로마인 등과 같은 야벳 족속들에 의해 계속 철저히 정복당하였다(Keil).
성 경: [창9:26] 바요메르 바루크 아도나이 엘로헤 솀 비히 케나안 에베드 라모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찬송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그를 축복하다’는 뜻이 된다(신28:6;룻3:10). 따라서 본절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셈에게 축복 베푸시기를 원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셈의 하나님 – 귀하고 특수한 것이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에 대하여 얘기하고자 할 때 먼저 하나님과 연관지어 사고하며 발언하는 히브리인들의 관례를 보여 주는 구절이다(신 33:20).
성 경: [창9:27] 야페트 엘로힘 리예페트 비이쉬콘 비아할레 솀 비히 케나안 에베드 라모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야벳을 창대케 하사 – 문자적 뜻은 ‘야벳에게 넓은 공간을 주사’, 이 말은 비단 야벳 족속의 영토와 인구 뿐 아니라 문명, 문화에도 관계된 것인데 참으로 구라파의 문화와 과학, 희랍의 철학, 로마의 법정신 등은 야벳의 후손들에 의해 이룩되었다.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 이 말은 야벳 족속이 셈 족속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종교적으로 셈 족속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뜻이다. 야벳이 셈의 종교적 축복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뜻이다(Calvin, Keil, Lange). 실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3:15)은 후일 셈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셨고 그로 말미암아 복음이 온 누리에 퍼짐으로써 성취되었다. 한편 함 족속 역시 비록 종의 신세로나마 셈과 야벳의 장막에 거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배제당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오늘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얻을 수 있는 것이다(요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