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3장 설교 말씀은 거짓 선지자 발람이 두 번에 걸쳐서 예언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발람은 발락의 초청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입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다. 하나님이 발람의 입을 잡고 있으니 저주가 나가지 않았다.
I. 발람의 첫 번째 신탁 23:1-12
(1)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큰 준비가 행해졌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수소의 고기를 먹거나 염소의 피를 마시기를 원하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성대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목적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버리시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으로 모압편을 들게 하거나 아니면 중립을 지키시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열납 될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이 없이 다만 제물들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의 은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더구나 그들은 이 제물들을 그들의 지방신들 중의 어느 한 신에게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 곧 최고의 신에게 드렸던 것이다.
(2)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저주를 축복으로 변화시키셨다. 이에 대해 모세는 신명기 23:5에서 언급하고 있다.
1) 하나님은 발람의 입에 축복의 말씀을 넣어 주셨다. 제물이 불살라지고 있는 동안 발람은 거기에서 물러났다.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갈지라(3절). 그는 혼자 그 산 꼭대기에 있는 어둠침침한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사태난 산에 이른 즉. 그는 홀로 있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좋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 품고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있다. 또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서 자기를 만나주셨던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발람으로서는 다음과 같이 의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3절).
그러나 발람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에 발람에게 오셨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4절). 이때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라도 발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선언,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무력으로 대항하는 자들은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말을 하게 하려고 하셨다. 발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임하신 것을 알고서는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였다. 내가 일곱단을 베풀고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비록 그 제물은 가증스러운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입에 말씀을’주시기 위해 발람의 기대를 이용하셨다(5절).
2) 발람은 발락이 듣는 데서 축복을 선언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안전하고 복되다고 선언하므로써 그들을 축복한다.
①그는 이스라엘이 안전하며 발락의 독화살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리라고 선언한다.
㉠그는 발락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사람들을 보낸 목적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과 따라서 자기도 그 일로 인해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7절)
㉡그는, 발락의 계획이 좌절될 것이며 자기에게는 그 계획을 성사시킬 능력이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마디의 악한 말이나 저주를 할 수조차 없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8절). 이 말은, 그가 저주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도무지 저주를 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첫째, 그 자신의 주술적인 능력에 있어서의 무능력에 대한 올바른 고백이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의 주권과 지배에 대한 올바른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도록 허락하시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안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②그는 이스라엘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복되다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다른 모든 민족들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복되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9절). 아마도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 지방 도처에서 아무렇게나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 거칠고 무질서한 오합지졸로 알고 있었던 것 같으나 실상은 그들이 규율과 훌륭한 질서를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정연하고 잘 조직된 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아주 크게 놀랐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헌신한 자들이 세상과 따로 구별되는 것은 그들의 본분이자 명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본분을 깨닫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권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게 된다.
㉡이스라엘은 그 수에 있어서 복되다. 발람이 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수가 적거나 미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므로 그 점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명예롭고 두려운 존재로 보였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10절).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발락이 듣고 심히 두려워할 정도였다(22:3). 발람은 이스라엘의 수를 지적하면서 먼저 ‘야곱의 티끌’에 대해 지적한다. 야곱 백성, 곧 근 수가 땅의 티끌같이 되리라고 예언된(창 28:14) 백성에 관해서 말한 것이다. 다음에는 ‘이스라엘 사분지 일’에 대해서 지적한다. 이 말은 네 개의 군기 아래 네 진영으로 편성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진의 형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종말에 있어서 복되다.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10절). 이 말의 의미는, 나의 종말 혹은 나의 미래 상태가, 즉 저 세상에서의 나의 보상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의로운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그가, 죽음이 모든 사람의 종말이라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인들도 죽고야 만다. 여기서 발람 자신이 의인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둘째, 영혼은 불멸하다는 것과 죽음 저편에서 각기 다른 상태로 있게 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것은 내세의 존재가 옛 부터 알려졌고 믿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훌륭한 증언이며 증거이다. 셋째, 그는 의인은 참으로 복을 받되 살아 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죽을 때도 복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넷째, 그는 신앙이 자신의 결심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대부분의 많은 이들이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바라나 의인의 생활같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의인의 죽음과 같은 종말은 기꺼이 바라나 의인의 길은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천국에서도 성도가 되기를 바라나 지상에서는 성도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3)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보게 된다.
1) 발락은 발람의 이 말을 듣고 무척 초조해하였다(11절). 발락은 제물을 드림으로써 여호와를 경외하는 척했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실 답변을 기다리는 척하였다. 그러나 그 답변이 자기 기대에 어긋난 것을 알자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2) 발람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잠자코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는 어쩔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복종한 것이다.
Ⅱ. 발람의 두 번째 신탁 23:13-30
(1) 앞에서처럼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두 번째 준비가 또다시 행해졌다.
1) 그 장소가 바뀌었다(13절).
2) 발락은 새로 단을 쌓고 각 단에 다시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제물로 드렸으며 이전처럼 제물 가까이에 서 있었다(14,15절).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고 하나님은 두 번째로 그에게 임하셔서 그 입에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은 이전에 주셨던 말씀의 번복이 아니라, 그것을 더 굳게 확증하는 것이었다(16,17절).
(2)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에 의해 그들의 두 번째 저주가 축복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이 두 번째의 축복의 말씀은 첫 번째의 축복의 말씀보다도 훨씬 크고 강력하여서 이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보려는 모든 희망까지도 완전히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발락이 앞으로 나아와서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발람에게 묻자 (17절), 발람은 특별히 발락을 지적하며 말을 한다.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18절).
1) 발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발락에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점을 알린다.
①그가 이스라엘을 파멸시킬 수 있으리라는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파멸시키려는 시도는 전연 헛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로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마음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언약을 취소하지도 않으신다. 둘째, 현재로서는 이스라엘에게 비난 받을 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의 이스라엘 가운데서 특별한 죄악과 강퍅함으로 불리는 우상 숭배가 없었다. 발람은 죄 말고는 아무 것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갈라 놓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셋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세력이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다. 그들은 그 임재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렸고 언제나 그 안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발람은 이 모든 사실을 통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재간을 다 부리어 그들을 저주한다 해도 그 저주는 전연 헛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23절). 지옥의 저주가 천국의 축복을 추방할 수 없는 것이다.
②오히려 그가 이스라엘에게 멸망 당할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다고 말해 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발락의 이웃 나라들에게 피 흘리는 일을 일으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와 그의 나라가 피 흘림을 당하지 않게 된다 해도 그것은 그의 나라가 이스라엘에게 너무 강력해서가 아니라, 그의 나라가 이스라엘이 받은 계획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4절).
2)이 낙담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①발락과 발람은 모두 이 하나님의 말씀에 실망하였다. 발락은 이제 발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면 축복 역시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발람은 여전히 자기로서는 어찌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며 이 일을 시작할 때 했던 말로써 변명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26절).
②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과 발람은 다시 한 번 더 저주해 보려고 결심한다. 발락이 이때 발람을 데려간 곳은 그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인 브올산 꼭대기였다. 아마도 그곳은 바알신을 예배하는 곳이어서 ‘바알 브올’이라고 불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