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2Jo) 설교 말씀] 종말에 적그리스도 경계(요이1:1-13)

요한이서 설교 말씀은 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경계하라고 말씀했다. 성도가 적그리스도를 경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요한이서는 종말에 있을 거짓 이단자들의 거짓 복음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성도는 적그리스도를 경계하여 믿음을 지켜야 한다.

Ⅰ. 문안 1:1-4

〔1〕문안하는 자: 그는 자기 이름을 대지 않고 선택받은 신분을 통해 문안하고 있다. 장로는(1절). 어투와 문체 그리고 사랑과 친근미는 요한1서의 저자의 것과 동일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현재 가장 연로한 사도로 생존해 있음이 틀림없다. 거룩한 봉사와 희생을 쌓으며 연로해진 그는 이미 천국을 목격하고 또 경험했으며 이제는 그가 처음 믿는 때보다 훨씬 더 천국에 가까이 이르렀다.

〔2〕문안을 받는 자: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즉 아주 지체 높은 부인이다. 복음이 그런 신분의 사람들 사이에도 들어간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귀인들이나 숙녀들이라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면 불쌍한 존재들이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말은 단순히 선택된 자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부녀는 아마 틀림없이 과부인 듯하다. 우리는 자녀들이 그리스도들의 편지가운데 당연히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 볼 수 있으며 그 자녀들도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42대 족보 설교말씀

이러한 사실은 그들을 격려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안부가 전해지고 있다. (2) 사도 자신이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즉 “내가 진심으로, 성심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말로 안부를 전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던 그는 사랑의 역사와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2) ‘나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즉 그녀를 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안부를 전하고 있다. 진리는 인사를 드리는 일을 요구하며 이는 순수한 신앙의 확증을 깨닫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사실을 고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또 이 부녀와 그 자식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근거는 진리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었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2절). 자기들 안에 있는 진리와 경건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진리와 경건도 귀히 여겨야만 한다. 믿음은 우리 안에 즉 우리의 마음과 심령 속에 그리고 우리의 신뢰와 사랑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

〔3〕문안은 실로 사도가 주는 축복이다(13절). 사도는 거룩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존귀한 성도의 가정에 축복을 쏟아 부었다. 곧 있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이다.

1) 이러한 축복은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가?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축복의 원천이시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거룩한 축복의 창조자이시오 전달자이시다.

2) 사도는 무엇을 간가하는가? 첫째, 은혜. 거룩한 사랑과 선한 뜻이다. 둘째, 자비. 이것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죄와 용서이다. 이미 은혜를 풍성히 받은 자에게도 계속적인 용서가 필요하다. 셋째, 평강. 이것은 영혼의 평화와 양심의 평온이다. 사도는 이러한 것들을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구하고 있다. 이러한 축복들로 인하여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진정한 진리와 사랑이 계속 함께 할 것이다.

〔4〕이 훌륭한 부녀의 자녀들이 행한 모범적인 품행에 대한 축하(4절): 이 부녀의 자녀들은 해외로 여행을 했으며 그 여행 도중에 지금 이 요한 사도가 기거하고 있는 장소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에베소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거기서 요한 사도와 반갑게 상면을 하였을 것이다. 젊은 여행자들은 신앙을 굳건히 붙들고 여행에 임해야 한다. 그 신앙을 집에 두고 떠나지 말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가는 곳마다 목도하게 되는 못된 습관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도로서는 훌륭한 부모의 양육 아래에서 자란 자녀들을 보게 된 것이 참 기쁜 일이다. 또한 그렇게 훌륭한 평가자로부터 자식에 대한 좋은 칭찬은 듣는 일이 그 부녀에게 있어서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또한 참된 행실의 기준인 아버지의 계명이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할 때만이 우리의 행실은 참되며 우리의 말은 의롭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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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그리스도인의 사랑 1:5,6

〔1〕사도의 간구: 사도는 부녀에 대한 존경심과 사도의 온유함으로 ‘부녀여 내가 이제 구하노니’ 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간구했다. 사랑은 권위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느 종종 권위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 권위를 경멸해 버리는 현상을 볼 수 있다.

〔2〕사도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부탁드린 것은 사랑이 장성하도록 함이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의 덕성임이 풍성한 사람이라도 아직도 사랑이 성장해야 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1) 큰 사랑을 갖도록 권고하였다. 이것은 계명에 따른 성도의 의무이다(5절).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피차간 사랑해야만 한다는 이 계명은 어디서든지 기독교에 꼭 따라 다니는 문제이다.

2) 이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였다(5절).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기독교인의 사랑과 성숙성과 신실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덕성의 진실성을 밝혀 주는 증거가 된다. 복음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바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다.

Ⅲ. 미혹하는 자에 대한 경고 1:7-9

〔1〕불길한 소식이 이 부녀에게 전달되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으니(7절). 따라서 너희의 견실함이 시험을 받을 수가 있다. (1) 미혹하는 자와 그의 거짓 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7절). 그는 주 예수의 인성에 대한 오류와 비 진리를 초래케 하는 자이다. 그런 말로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가 됨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2) 이 자가 악화시키는 것(7절): 이런 자는 사람을 속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더럽힌다.

〔2〕여기서 부녀에게 주어진 권고의 내용(8절): 두 가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 이 처음에는 잘 가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노고의 대가를 모두 잃기 때문이다. (1)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은 이전에 그 신앙을 통하여 얻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만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들을 결국 모두 상실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2) 장래에 보장된 상급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온전한 상을 얻으라(8절). 온전한 상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안에 진실하게 거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데 있다.

〔3〕사도가 이러한 권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복음의 빛으로부터 떠나는 위험과 죄악: 그것은 실제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떠나는 것이 된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9절). 즉 그리스도의 교훈을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자가 된다. (2) 기독교의 진리를 확고히 신봉하는 데서 얻는 유익과 행복은 무엇인가.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9절).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복 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고 바라는 만큼 거룩한 교훈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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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그리스도 교훈을 가지지 않은 자에 대한 취급 1:10, 11

〔1〕요한 사도는 이런 미혹자들을 다루는 법에 대하여 지시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10절). 악한 일에는 거룩한 축복을 줄 수가 없다. 하나님은 거짓과 죄의 후원자가 아니시다. 치명적인 악의 파급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그것과 상종을 말아야 한다.

〔2〕이런 지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호의와 사랑을 베푸는 것은 죄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죄악을 분담하는 자가 될 수 있다.

Ⅴ. 작별 인사 1:12, 13

사도 요한은 여기서 이 서신을 끝 맺고 있다. 이는 편지로 알리기보다는 추후에 만나서 말로 하는 것이 더 나은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펜과 잉크를 사용하여 편지를 보내는 것도 즐겁고 친절한 있이 될 수 있지만 서로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 될 수가 있다.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13절). 이 가정에 내린 은혜는 아주 풍성한 것이었다. 이 가정에는 택하심을 입은 그들의 자녀가 있음에 틀림없다. 은혜 받은 후손들과 친척들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는 이러한 부녀와 같은 자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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