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설교문은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사건에 대해서 말씀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배가 고픈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오병이어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소망해 본다.
Ⅰ. 오병이어의 기적 6:1-14
본문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조각으로 먹이신 사건이 등장한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의 공생에중 복음서 기자 네 명이 모두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사건이다. 대체로 앞 사람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은 언급치 않던 요한이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이것이 이것 뒤에 나오는 강론(26절 이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1. 기적이 일어난 장소와 시간(1-4)
(1) 그리스도께서 계셨던 지방 :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1절). 그리스도께서는 목적지로 곧바로 가신 것이 아니라 같은 연안에 위치해 있는 다른 장소에도 배를 타고 들르셨다.
(2)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사람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표적을 봄이러라(2절). 우리 주 예수께서는 두루 선을 행하시며 다니는 동안에 계속해서 군중 속에서 생활하셨다. 선량하여 유용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느라 일에 너무 쫓기게 되어도 불평을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우리에겐 우리가 장차 하나님을 즐거워 할 세상에 이르렀을 때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쫓게 했으나 실상은 그에게 이끌린 것이 아니었다.
(3) 그리스도께서 군중을 대하기에 적당한 위치를 잡으심: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3절).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나가셔서 야외 전도자가 되셨지만 그리스도께서 광야로 나가도 그리스도를 따르고, 비록 가파른 오르막 길이 마음 내키지 않지만, 산에 오르셨을 때도 여전히 그를 좇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씀의 권위가 결코 떨어지지는 않았다. 누구나 그에게 나아오고자 하는 사람은 거기서 그리스도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
(4) 그 일이 있었던 시기: 그후에. 여기 4절에는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라고 되어 있다. 유월절 삼십일 전에 유월절을 미리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은 유대인의 종교적 관습이었다. 유월절이 다가옴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심으로 당분간 그 지역에 계시지 않을 것을 알았던 모든 사람들은 더욱 부지런히 그의 주변에 모여들어 큰 무리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기회를 놓치게 될 기미가 보이게 되면 그 기회를 증진시키려고 두배의 열심을 내게 된다.
2. 기적이 일어남(5-13)
(1)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몰려오는 군중들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5절). 그리스도께서는 비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겸양하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양무리에 포함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무리 중에서는 천대하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기쁨을 나타내 보이시며 그들의 뒷 일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셨다.
(2)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는지 물으셨다. 그리스도는 맨처음부터 자신의 제자가 되었고 자신이 행한 모든 기적을 목격했던 빌립에게 질문의 화살을 던지셨다. 그리스도의 기적을 친히 목격해 왔고 그 기적들의 유익한 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그가 광야에서 이찌 음식을 준비할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면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빌립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계신 지역의 이웃 동네인 벳새다 출신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마련하는 일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5절).
주님은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식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그가 그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또 병을 고쳐 주셨다면 그로서는 할 일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는 그들을 대접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선물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선물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그 선물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겠느냐?’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사서 주도록 했으나 우리는 수고하여 주도록 해야 한다(엡 4:28).
(3) 질문하신 저의: 질문하신 의도는 단지 빌립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6절). 우리는 알지 못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알고 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을 당혹케 만들곤 하셨는데 이는 오직 그 백성들의 상태를 드러내 보이시기 위한 의도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4) 이 질문에 대한 빌립의 대답: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제공할 만한 곳도 없으며 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돈도 없습니다.” 빌립은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또 줄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고자 했다. 빌립이 이렇게 한 후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하셨으리라. “빌립아, 지금까지 네가 나와 함께 그렇게 오래 지내왔는데 아직도 나를 모르느냐?” 이와 같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보통의 수단으로 성공하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기 쉽다. 즉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그 이상 진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5) 그 사람들이 마련했던 양식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듣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손에 무엇을 들고 왔는지를 그리스도께 알려 준 사람은 안드레였다. 이 점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하자.
1) 안드레는 자기가 모시는 주님께서 그 사람들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을 보고 그들에 대한 사랑이 용솟음쳐, 비록 그 사람들도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죄다 모아 보려 하였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자선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때 자기의 먹을 음식을 준비해 온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 소년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 이리 저리 피해 다니지 않았다. 그것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였다. 그 음식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보잘 것 없는 보리떡이었다.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보리떡도 기꺼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형편없는 음식만 먹을 필요는 없으며 또한 그것으로 신앙심을 평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좀더 좋은 것을 건네 주신다면, 그것을 감사히 받도록 하자). 그런데 그 보리떡은 너무 부족하고 모자랐다. 가져온 보리떡은 겨우 다섯 조각에 불화했으며, 그것은 어린 소년이 사람들 앞에 내어 놓은 전부였다. 물고기도 두 마리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작은 물고기였다. 떡이라고 내놓은 것도 거의 없다시피 하였지만 떡의 양에 비할 때 물고기는 그보다 더 적었다. 우선 안드레는 힘자라는 데까지 그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이도록 하려고 했다. 모자라리라는 불신적인 우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2) 그러나 다음의 말 속에서 우리는 안들에의 믿음이 연약한 면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9절). 빌립과 안드레는 모두 그리스도의 권능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6)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을 앉히도록 제자들에게 지시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10절). 이것은 마치 이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하여 돈 없이 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장만해 오도록 하나님의 섭리를 심부름 보낸 격이라 할 것이다. 1)연회장의 장식: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이곳은 잔디가 많이 자라던 곳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복음은 그것에 수반되는 또다른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풍족한 잔디는 땅위에 앉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였으며 푹신한 느낌도 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들의 풀에 대해 하셨던 말씀을(마 6:29-30) 생각해 볼 때에 이 잔디밭은 아하수에로의 침실을 능가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자연의 장관은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라. 2)찾아온 사람들의 숫자: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복음의 한 성격을 대표하는 큰 연회, 그것은 모든 민족을 위한 축제요(사 25:6), 거기에 온 모든 이들을 위한 축제이다.
(7) 양식의 분배: 이 분배는 감사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11절). 우리는 우리의 양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자비 덕택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양식이 보잘 것 없고 적을지라도, 또한 우리가 풍족하거나 진수성찬을 먹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대하는 음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법이다. 그 음식은 그리스도의 손에서, 제자들의 손을 거쳐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다(11절). 우리에게 오는 모든 위로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위로를 누가 우리에게 가져오든, 그 위로를 보내신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분배는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각 사람이 조금씩 갖게 하지 않고 저희의 원대로 나누어 주셨다. 이 기적의 음식을 대한다는 것은 보통 음식을 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기분 좋은 일이었으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으로 먹이신 자들에게 조금도 아까와하지 않으신다. 거기엔 애당초 작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은 두 마리로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먹었다.
(8) 먹다 남은 떡조각을 거두어 들이는 배려: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대하여도 분부하셨다. 저희가 배 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12절).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을 쓸데없이 낭비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이 지으신 세계를 허락하시되, 제멋대로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조건부로 우리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낭비해 버렸을 때 모자라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풍족할 때, 다른 사람이 모자란다는 사실과 우리도 핍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자선할 것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근검 절약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야 먹다 남은 떡조각을 모아 들이라고 명을 내리셨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모든 사람이 마땅히 먹을 만큼 먹은 뒤에야 비축도하고 모아 들이기도 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부가 지켜졌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13절). 이는 기적의 진실성만 아니라 그 기적이 얼마나 굉장했던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 사람들 모두 배 불렀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풍족하게 넘쳤다. 하나님의 관대하신 은혜는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충분한 양식이 있을 뿐 아니라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다. 남은 조각은 열두 광주리 즉 열두 제자 한 사람 당 하나씩 들고 나간 광주리에 가득찼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공공을 위한 봉사에 기꺼이 참예한 대가를 받았던 것이다.
3. 이 기적이 백성들에게 끼친 영향(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14절). 유대의 민중들까지도 큰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오실 메시야, 위대한 선지자인 메시야를 대망하여 왔다. 바리새인들은 유대 민중을 율법의 율자도 모르는 무식장이라고 경멸하였지만 그들은 바리새인 이상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신 메시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은 자신이 약속된 메시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 위대한 선지자이심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그가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임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스도가 그 선지자임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