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헬라어성경 설교문은 보혜사 성령의 약속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헬라어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더 정확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20)
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지내면서 주님을 더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업이 잘되는 것입니까? 부와 명예를 갖고 성공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입니까? 육체의 건강의 복을 원하십니까? 성도의 목표는 세상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과 끝없이 교제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는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만 따먹지 않으면 됩니다. 다른 과일은 모두 임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이 되니 결국 뱀의 미혹에 넘어가서 엄청난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열렸습니다.
이것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고통스럽게 일을 해야 하고 잉태의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쁨의 동산에서 쫓겨나니 인생은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육체의 먹고 마시는 가장 원초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모두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인간은 세상에서 육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성도는 주님과의 끝없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매일같이 기도하고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육적인 문제를 하나님이 책임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과의 끝없는 교제 속에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체의 고민보다 영적인 고민을 할 때 하나님은 나의 육체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필요에 따라서 채워주십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의가 이 세상에 퍼져나가기를 위해서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면 육적인 것들은 하늘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6 κἀγὼ ἐρωτήσω τὸν πατέρα καὶ ἄλλον παράκλητον δώσει ὑμῖν, ἵνα μεθ᾽ ὑμῶν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ᾖ,
카고 에로테소 톤 파테라 카이 알론 파라클레톤 도세이 휘민 히나 메드 휘몬 에이스 톤 아이오나 에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께로 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보니 마음이 답답합니다. 아직도 그들의 믿음은 성장하지 못했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홀로 두고 간다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합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아버지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보혜사’ παράκλητον(파라클레토스 3875) 돕는자, 위로자, 변호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는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제자들 곁에서 위로하시고 돌보아 주시고 변호하셨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육체가 죽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으로 아버지 곁으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셔도 선택받은 자들을 고아처럼 놔두지 않으시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그 하나님이 택함 받은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구원받은 우리 안에도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를 보호하시고 어려움이 있을 때 지켜주시고 슬픔이 있을 때 위로해 주십니다.
‘그가 주사’ δώσει(디도미 1325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단수, 3인칭) 주다, 허락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성부 하나님에게 보혜사 성령을 구원받은 백성에게 보내달라고 기도하여 허락을 받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직설법은 주님이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영원히 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미래 시제는 주님의 시점에서 기도하면 앞으로 주님이 죽고 난 후에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보혜사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미 보혜사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보혜사 성령이 임재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아무에게나 임하지 않습니다. 만세전에 선택받은 백성에게 임하도록 성부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7 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 ὃ ὁ κόσμος οὐ δύναται λαβεῖν, ὅτι οὐ θεωρεῖ αὐτὸ οὐδὲ γινώσκει· ὑμεῖς γινώσκετε αὐτό, ὅτι παρ᾽ ὑμῖν μένει καὶ ἐν ὑμῖν ἔσται.
토 프뉴마 테스 알레데이아스 호 호 코스모스 우 뒤나타이 라베인 호티 우 데오레이 아우토 우데 기노스케이 휘메이스 기노스케테 아우토 호티 파르 휘민 메네이 카이 엔 휘민 에스타이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세상은 능히 진리의 영인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도 나와 함께 내 안에 계속해서 거하고 있습니다.
‘받지’ λαβεῖν(람바노 2983 동사, 부정사, 과거, 능동태) 받다, 영접하다, 취하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보혜사 진리의 영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만세전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만세전부터 이미 주님도 모르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와서도 영접하여 성령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부정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보혜사 성령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과거 시제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지금 보혜사 성령을 영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창세전부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보혜사 성령을 받고 성령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알지도’ γινώσκει(기노스코 1097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 알아보다, 깨닫다, 알게하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보혜사 성령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절대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설법은 세상의 사람들이 절대 성령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시제는 구원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은 지금 보혜사 성령이 그들의 심령 속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구원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도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신앙생활을 합니다. 구원의 확신도 없이 육적인 것에만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그를 아나니’ γινώσκετε(기노스코 1097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2인칭) 알아보다, 깨닫다, 알게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았고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셨고 알게 하셨기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직설법은 내가 실제로 보혜사 성령을 직접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시제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성령을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며 내 안에 성령께서 나를 인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항상 내 안에 계속해서 주님이 나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존재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이 떠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견인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8 Οὐκ ἀφήσω ὑμᾶς ὀρφανούς, ἔρχομαι πρὸς ὑμᾶς.
우크 아페소 휘마스 오르파누스 엘코마이 프로스 휘마스
주님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면 세상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영적 고아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은 하는데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 부모를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버려두지’ ἀφήσω(아피에미 863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단수, 1인칭) 허락하다, 버려두다, 용서하다라는 뜻입니다. 아피에미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버려둔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죄를 용서하여 빚진 것을 탕감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무거운 원죄의 짊을 모두 탕감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고아처럼 놔두지 않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마지막 종말에는 재림하셔서 나를 데리러 오십니다. 직설법은 주님께서 나를 실제로 고아처럼 버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미래 시제는 주님의 시점에서는 미래가 됩니다. 부활 승천하여 하늘 우편 보좌에 앉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버리지 않았고 마지막이 되면 직접 구름 타고 나를 데리러 오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자이며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19 ἔτι μικρὸν καὶ ὁ κόσμος με οὐκέτι θεωρεῖ, ὑμεῖς δὲ θεωρεῖτέ με, ὅτι ἐγὼ ζῶ καὶ ὑμεῖς ζήσετε.
에티 미크론 카이 호 코스모스 메 우케티 데오레이 휘메이스 데 데오레이테 메 호티 에고 조 카이 휘메이스 제세테
예수님은 육체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알고 계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본다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육의 눈으로만 보려고 하니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음으로 사라지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신령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속 사람의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됩니다. 신령한 눈으로 보니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살아 있겠음이라’ ζήσετε(자오 2198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디포, 복수, 2인칭) 살다, 살리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십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육체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직설법은 너희는 실제로 속 사람이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 시제는 아직은 육체로만 살고 있지만 육체가 죽으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중간디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육체는 죽어도 속 사람은 살아나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 영원히 주님과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지만 구원받은 나는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미래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너희는 반드시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14: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0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γνώσεσθε ὑμεῖς ὅτι ἐγὼ ἐν τῷ πατρί μου καὶ ὑμεῖς ἐν ἐμοὶ κἀγὼ ἐν ὑμῖν.
엔 에케이네 테 헤메라 그노세스데 휘메이스 호티 에고 엔 토 파트리 무 카이 휘메이스 엔 에모이 카고 엔 휘민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에는 주님은 아버지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부활이 되면 완전한 주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신령한 몸이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연합하여 살게 됩니다.
‘너희가 알리라’ γνώσεσθε(기노스코 1097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디포, 복수, 2인칭) 알아보다, 깨닫다, 알게하다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아직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없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가 연합된 것을 알게 됩니다. 직설법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주님과 함께하게 될 것이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미래 시제는 아직 부활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부활되어 신령한 몸이 됩니다. 중간디포는 예수님 안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살고있는 자들은 실제로 주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주님은 나를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데리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신부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사순절 기간에 살면서 주님과 더 밀착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복음의 말씀을 들어서 구원의 확신을 얻는 사순절 기간이 되어야 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사람은 신부의 삶을 살아서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의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혜사 성령을 받음으로 항상 주님과 연합하면서 성령이 이끄시는 데로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