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3장 회개 말씀] 요나의 순종과 니느웨 백성 회개(욘3:1-10)

요나 3장 회개 말씀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여 하나님이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하신 후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니느웨 있는 백성들이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심판하려고 하다가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심판을 잠시 보류했습니다.

Ⅰ. 요나의 선포 3:1-4

(1) 요나에게 사명이 주어졌으며 그는 기꺼이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와 완전히 화해하셨다. 그에게 다시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은 곧 그의 이전의 불순종을 사유하신다는 증거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1절). 그가 바다에 내던져지고 다시 그곳에서 나온 뒤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오셔서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요나야 이제 니느웨로 가겠느냐?” 요나는 다시 신뢰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당하게, 우리가 우리를 배반한 자를 대하듯이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법으로 처리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시는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그에게 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때는, 모든 것을 잊으시며 그가 용서하시는 자를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전 상태로 화목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신다는 것은 곧 그가 우리와 화목하다는 가장 좋은 증거가 된다. 요나는 하나님과 화해하였다. 즉 이제는 하늘이 보여준 것에 대해 피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것에 순종하기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불평도, 쟁론도 하지 않았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느웨로 가니라(3절). 그곳으로 가는 길이 아주 먼 길이었고 또 추측컨대 전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으나 그는 곧바로 니느웨로 갔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여행길로 행했던 것이다.

(2) 그에게 명령이 내려졌다. 그는 니느웨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배냄을 받았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2절). 요나는 그 당시 이방 세계의 중심 도시였던 니느웨로 보냄을 받았다. 이는 이방의 어두운 지역에 계시의 빛을 비추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뜻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소돔과 고모라, 두로와 시돈이 은혜의 방편을 갖기만 했었더라면 그들이 회개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마 11:;21,23). 또한 하나님께서는 만일 니느웨가 은혜의 방편을 갖고 있다면 그들이 회개하리라는 것을 아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방편을 주기 위하여 요나를 보내셨던 것이다. “가라,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니느웨사람들에게, 그들의 악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보수하심이 그들 위에 임하리라는 것을 말하라.” 이것은 요나가 전하기 싫어하여 다시스로 도망쳤던 말씀이었다. 이제 두 번째로 그 말씀을 대면함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그의 비위를 맞추거나 혹은 더 잘 전하게 하기 위하여 그 말씀을 변개시키지 않으신다. 요나는 처음 선포하도록 명령받고 응하지 않았던 그 말씀을 선포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이며, 그가 니느웨에 있게 될 때 예언의 영이 그에게 임하심으로 계속해서 지시를 주실 것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힘이 되었다. 요나는 맹목적인 신앙으로 가야만 하였다. 때때로 제독들이 멀리 해외로 파견될 때 바다로 아주 멀리 나가기까지 명령서를 개봉하지 못하곤 했는데 요나도 그와 같이 니느웨로 가야만 했으며 거기에 도착한 뒤 지시를 받게 되었다.

출애굽기 1장 짧은 설교문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3) 요나는 신실하고 담대하게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가 니느웨에 갔을 때 그는 그곳이 삼일 길이나 되는 극히 큰 성읍인 것을 알았다(3절). 히브리어로는 “하나님께 큰 성읍”이라는 뜻이므로 ‘극히 큰 성읍’이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니느웨의 광대함은 주로 그것의 규모에서 드러난다. 즉 니느웨는 바벨론 성보다도 훨씬 더 컸으며 디오도루스 시클루스가 “사람이 지은 중 가장 큰 성읍”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성읍이었다.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조금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지시대로 곧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요나가…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것이 그의 메시지의 목적이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읍이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즉각적인 강타에 의해서, 즉 지진이나 불에 의해서 또는 소돔처럼 유황불에 의해서 무너지리라는 것을 외쳤고 그들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고를 받은 그들이 겸비하게 되어 자신의 행위를 고침으로 경고된 멸망을 피할 것인지를 보시고자 오랫 동안 기다리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 더 기다리지는 않으실 것이다. 사십 일은 심판을 연기하신 의로우신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오랜 기간이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불의한 백성에게는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기한이 정해졌다는 것은 온갖 가능한 확증과 함께 그 경고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라는 사실을 확신케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Ⅱ. 니느웨 성읍의 회개 3:5-10

(1) 여기에, 임박한 멸망을 경고함으로 니느웨를 회개시키고 돌이키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나타나고 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 12:41). 니느웨는 그 당시 이스라엘의 회개하지 아니함과 완고함을 정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말과 행사에 능한’ 것으로 알려진 많은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 보내셨다. 반면에 니느웨에는 단 한 명을 보내셨다. 게다가 그는 낯선 사람이었으며 몰골이 초라했고 또한 긴 여행 후인지라 육체도 약해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한 반면에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요나는 단지 한 말씀만을 전파했으며 어떤 이적이나 표적을 행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회개를 한 반면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완고하였다. 요나는 단지 진노와 멸망을 경고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가 그들에게, 만일 회개하게 되면 자비를 얻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회개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이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기를 계속 거부하였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었다. 즉 그들은 요나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들에게 전파한 말씀을 신용하였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한 분 계시며, 자기들이 그분께 죄를 범했고, 임박한 멸망에 대해 그들에게 주어진 경고도 그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믿었다.

또한 그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므로 만일 그들이 경고받은 죄에서 돌이킨다면 경고된 진노도 돌이켜지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 경고의 말을 자기들의 왕에게 전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 당시 니느웨 왕이 사르다나팔루스(Sardanapalus)였다고 생각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궁정에서가 아니라 니느웨의 거리에서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그러나 니느웨 왕에게 소식이 들어갔다. 공공의 평안을 혼란케 하는 자로서 요나를 고소하는 그런 소식이 아니라 하늘의 메시지가 전하여졌다. 이는 공공의 안녕을 염려하는 이들에 의해 행해졌다. 왕은 겸비의 본을 보였다(6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보좌에서 일어났는데’ 이는 그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죄에 대한 근심과 수치 때문이었다.

그는 제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조복을 벗었는데 이는 강포와 악행을 금하고 공의를 행하는 데 자신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자신의 보좌와 조복이 빼앗긴 바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왕까지도 참회자의 의복을 입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왕이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니느웨 백성이…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5절). 육체적인 고행만으로는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이면 단지 장난에 불과하다(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마음이다, 사 58: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애통할 것과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일 것을 요청하실 때, 우리는 내적인 슬픔을 외적으로 표현함으로 최소한 장식물을 치우는 것으로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우리의 몸으로 드러내야 한다.

요나 2장 새벽 설교문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는 요나

그 큰 성읍 전체를 통틀어 범국민적 금식이 행해졌다(7-9절). 정해진 날에는 ‘사람이 짐승이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아야’했다. 더욱이 ‘불도 마시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육체적으로 곤고케 해야 했는데 이는 죄에 대한 슬픔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들이 마음이 매우 곤고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금식과 애통 외에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하여야 했다. 이는 금식은 육체로 하여금 영혼이 기도하는 일을 돕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 우리는 견고한 믿음과 경건하고 헌신적인 열정으로 힘써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금식과 기도 뿐 아니라 생활의 혁신과 변화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그들은 부당하게 취한 것을 돌려 주어야 했으며 그들의 악행을 보상하여야 했다. 죄 때문에 금식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죄에서 떠나 금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 금식은 선포되자마자 경건하게 지켜졌다(9절). 그들은 자기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경우 하나님께서 자기들에 대하여 내리신 선고를 취하하실 것이라고 소망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때 온갖 선한 것을 구하듯이 하나님의 진노를 방지하는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온갖 악한 것을 방지하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요나는 그들에게 소망을 가질 것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그런 것을 말해 줄 선지자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성품을 가지고 계시며 인간에 대해 자비하시다고 하는 일반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사실로부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감히 단정을 짓지는 못하나 또한 절망하지도 않은 것이다.

(2) 여기에,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가 나타나고 있다(10절). 하나님이…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희생 재물을 드린 따위에 대해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하나님의 희생 제물은 상한 심령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과 같이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아니하신다. 그는 그러한 자들을 지지하시며 존귀히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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