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장 설교 말씀] 유다 백성을 향한 회개 말씀(렘4:1-31)

예레미야 4장 설교 말씀은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회개 말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백성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Ⅰ. 진실한 회개에 대한 촉구〔1〕 4:1,2

하나님께서 배역한 이스라엘을 돌아오라고 불렀을 때(3:22), 그들은 즉시 대답하였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나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의 대답을 주목하신다.

(1) “돌아오겠노라고 네가 말하였느냐? 그렇다면 내게로 돌아오라. 철저하게 돌아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로 돌아오라. 너는 모든 죄를 완전히 버려야만 하며 우상 숭배의 어떠한 흔적도 남겨서는 아니될지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1절). 그들의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단지 자명할 뿐만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그것들은 그의 목전에서 치워져야만 한다. 이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순전한 눈 앞에서 그를 노엽게 만드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을, ‘너는 방황치 아니하며’ 혹은 ‘방황치 아니해야 한다’로 읽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2절).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그의 현존하심은 너에게 가장 신성한 사실이리라.”

(2) 그는 그들에게 결심을 굳게 하라고 격려하신다. “만일 너희가 나에게로 돌아오려고 한다면 돌아올 수 있으리라. 너희는 옛 약속대로 포로에서 풀려나 너희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신 4:29;30:2). 그들은 거짓 신들 안에서가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복을 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영화로와질 것이며 그분을 저희의 영광으로 삼게 될 것이다.

Ⅱ. 진실한 회개에 대한 촉구〔2〕 4:3,4

이제 선지자는 하나님을 힘입어 그의 설교를 그가 살고 있던 땅의 사람들에게로 돌리고 있다. 3:12에는 그가 북쪽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선포하였는지 나타난다. 곧 당시 포로로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위로였다. 그러면 이제 번영을 누리고 있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는 무슨 말이 주어지는지 살펴보자 이는 그들의 회개와 각성을 위한 설교이다. 이 두 절을 통해서 선지자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개혁하도록, 그리하여 그들에게 내려지기로 예정된 파멸의 심판을 막도록 권면하고 있다.

(1) 그들이 이행해야 할 임무들이 있다.

1) 그들은 어떤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땅을 경작하듯 그렇게 자기들의 심령을 갈아야 한다(3절). 너희 묵은 땅을 갈고. “너희 스스로를 경작지로 삼아 갈고(혹은, 너희의 경작지를 갈아 젖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오랫동안 너희가 해온 것과 같은 그러한 헛된 수고를 하지 않도록 하라. 너희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를 받기에 합당하게 만들고 너희가 그렇게 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물리치라. 그리하면 너희는 자비를 기대할 수 있으며, 너희 자신을 돕고자 하는 스스로의 노력 안에서 번영을 바랄 수 있게 되리라.”

구약성경 인물 설교말씀 갈렙(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회개하지 않은, 겸손하지 못한,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땅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울타리도 없으며,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한 땅이다. 그것은 바로 타락한 마음이 내놓는 자연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만일 은혜로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비와 햇빛은 그에 대해 쓸모없게 될 뿐이다(히 6:7,8). 우리는 이 묵은 땅을 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가시덤불과 같이 우리의 수고를 가로막는 부패한 뿌리들을 파내야 한다.

2)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육신에 행했던 할례를 저희 영혼에도 해야 한다(4절).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향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육신과 그 정욕을 극복하라. 육체의 할례를 자랑치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한낱 징표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헌신의 표이다. 할례를 행할 대 고백했던 그러한 신실함으로 행하라. 여호와께 너희 자신을 바치고 정하게 하라.”

(2) 위험이 경고되고 있다. “회개하고 개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우리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발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악행이다. 급박한 위험에 대한 경고는 우리를 각성시켜,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하도록 스스로를 깨끗케 하고,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것을 바라게끔 만들어야 한다.

Ⅲ.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 4:5-18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반적인 방법은 때리시기 전에 경고하시는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외부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즉시 그들에게 닥칠 전면적인 파멸을 유대인들에게 알려 주신다. 이 소식은 유다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마다 선포되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듣고, 회개하거나 핑계치 못하게 되어야 한다.

(1) 전쟁이 선포되었고 적들의 침입이 알려졌다.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수년 전인 그 당시의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어 진다(5,6절). 나팔을 불고 기호를 세우며 함께 모여 시온을 향하도록 백성들을 소환해야 한다. 그 성을 지켜야 할 사람이든, 그 성안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든 모드 마찬가지이다. 군대 소집령이 내리고 모든 군대는 모여져야 한다. 싸우기에 적합한 자들은 견고한 성읍들에 들어가 그것을 방어해야 하고, 연약한 자들은 지체하지 말고 도피해야 한다.

(2) 바벨론 왕과 그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급한 전갈이 왔다. 그 적은 본문에서 이렇게 비유되고 있다.

1) 배가 고플 때 먹이가 될 제물을 찾기 위해 수풀에서 올라온 사자에 비유된다(7절).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짐승들은 공포에 질려 쉽게 먹이가 되고 만다. 느부갓네살왕은 이 울부짖는 사자이며, 열방을 멸하는 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유대 땅을 향하여 나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방의 열방을 멸하는 자가 또한 유대인을 멸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는 그때 그들이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저희 자신들을 이방인과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 바벨론을 떠나 나왔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될 것이며 들과 같이 풀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2) 뜨거운 바람에 비유된다(11절). 이것은 마치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잠25:23) 땅의 결실들을 결단내며 그것들을 말린다. 또한 그것은 모든 것을 오싹하게 만드는 검은 바람이다. 그들이 어디로 갈지라도 그들을 에워쌀 것이다. 그것은 산의 높은 곳을 치며, 평지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광야 자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지금 그 사나운 바람이 그들을 향하여 불어올 것이다.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함도 아니다. 그것은 강한 바람이다(12절). 이 바람은 여호와에게로, 아니 여호와를 위하여 올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가지고 올 것이며, 그를 위하여 보내신 그 일을 수행할 것이다.

3) 구름과 날랜 회리바람에 비유된다(13절).

갈대아 군대가 바람이 몰고 온 구름 같이 올라올 것이다. ‘말들은’ 저희 먹이를 덮칠 때에 ‘독수리보다 빠르다.’

4) 치는 자와 밭을 지키는 자에 비유된다(15-17절). ‘소리가’ 가나안의 전 성읍들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단에서 선포된다. 그들은 소식을 접했으며 그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였다. 그러면 그것은 무슨 소식인가? “열방에, 열 지파의 성읍들에 고하라. 그리하여 그들이 저희 자신의 안전을 예비할 수 있도록 하라. 그것을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그들로 하여금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오고 있음을 알게 하라.” 그들은 악을 행할 온갖 기회를 엿보던 병사들이다. 그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며, 마치 밭을 지키는 자같이,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둘러 사면으로 가둔다(참조. 눅 19:43).

(3) 이 심판이 있게 된 통탄할 만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들 탓이었다.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7절). 갈대아인들이 그들을 침입하였으며 저희가 쳐들어 오도록 틈을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의 죄였다. 네 기록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18절). 그 죄는 우리의 모든 재난의 요인이다.

2) 하나님은 저희의 죄로 인해 저희에게 진노하셨다. 갈대아인들을 이처럼 사납게 만든 것은 ‘여호와의 명렬한 노이다'(8절).

3) 그는 마땅한 진노로 그들에게 이 형벌을 내리셨다.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12절).

(4) 이 심판으로 인해 비통한 결과가 나타난다. 싸워야 할 백성들은 절망하여 적들에게 대항할 마음도 갖추지 못할 것이다(8절).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칼로 무장하는 대신에 그들은 굵은 베를 두를 것이다. 적들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그들은 항복하고,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13절)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용자로 이름 높았었다. 그러나 죄의 결과를 보라. 그 죄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없앰으로써 그들에게 있었던 용기도 빼앗아갔다. 그날에 왕은 실심할 것이다.

즉, 그의 지혜와 용기를 잃을 것이다. 그의 방백들과 모사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실심할 것이다. 제사장들의 할 일은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라’고 말해야 했다(신 20:3). 그러나 이제 제사장들 자신이 놀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용기를 줄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라”고 예시하시고 있다(눅 21:26).

(5) 선지자는 백성들이 속았다고 불평한다(10절). 그 표현이 참으로 묘하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속이지 않으심을 분명히 확신한다.

1)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약속들로 그들 스스로를 속였다. 그들은 그 약속들이 수행되어지는 조건들을 행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그 약속들 위에 서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저희 자신을 속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속였다고 사악하게 불평하였다.

스바냐 3장 복음 설교말씀 예루살렘 심판과 남은 자 구원

2) 거짓 선지자들이 평화에 대한 약속으로 그들을 미혹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약속을 하였다(렘 23:17;27:9).

3)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하는 것을 허용하셨으며, 백성들이 그들에게 기만당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들이 그 미혹하는 말을 사랑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강한 미혹까지도 허락하셨다.

4) 이 구절을 의문문으로 읽을 수가 있다. “주께서 진정 이 백성을 속이셨나이까? 그들이 크게 기만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강을 기대했으나, 반대로 칼이 생명에 미쳤기 때문이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속이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종종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셨었다. 그러나 저희 자신의 선지자들이 그들을 속였으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평강을 말해 주시지 않은 자들에게 평강을 외쳤다. 사람들이 스스로 속아 자멸하고, 전쟁이 코 앞까지 다가왔을 때 스스로에게 평강을 약속하는 것을 보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6) 선지자는 백성들을 속이지 않고자 노력한다.

1) 그는 그들에게 저희의 상처를 보여 준다. 그들은 저희의 죄에 따른 징벌을 알아야만 했다(18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니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칠 것이라. 칼이 생명에 미칠 것이라”(10절).

2) 그는 그들에게 처방책을 가르쳐 준다(14절).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루살렘이라는 말로써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거민들 각각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각기 그들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공중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회개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저희의 악한 길을 돌이키고, 저희 마음의 악을 씻어야 한다. 개혁은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마음에까지 미치지 아니하면 어떠한 개혁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마음의 개혁 이외에는 어떠한 효과적인 개혁 방식도 없을 것이다. 이절의 후반 부분에서 그는 그들에게 묻고 있다.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죄를 짓고자 하는 혹은 해를 가하고자 하는 생각들은 악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악한 생각들이며, 거기에서부터 모든 다른 사악함이 나오게 된다(마 15:19). 혹자는 여기에 있는 악한 생각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의 견책과 부르심을 외면하고 자기들의 악을 계속 고집하는 모든 어리석은 구실들로 이해하기도 한다.

Ⅳ. 예레미야의 애통함 4:19-31

선지자는 여기에서 고뇌하며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와 같이 울부짖는다. 그 표현들은 돌같은 마음도 녹이기에 충분할 만큼 비장하다. 슬프고 아프다(난외주에는 ‘내 창자여 내 창자여’로 되어 있음-역주) 내 마음 속이 아프고.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해도 이 세상과 같이 악한 곳에서 살 때에는 슬픔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며, 내 심령의 격정으로 인하여 나는 평안할 수 없도다.” 그가 이와 같이 슬퍼하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요, 그의 가족 가운데 있는 것은 그의 백성들의 문제이다.

(1) 그들은 심히 범죄하였으나 개혁되기를 원하지 않는다(22절). 이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우둔할지라도 그들을 그의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그들은 그를 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롬 11:1).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22절). 그들은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다. 그들은 땅의 평화를 거스려 행악을 도모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묘안을 고안하며, 그것들을 숨기는 일에 있어서는 지혜롭다. 그러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며 마음을 쏟지 아니한다.

(2) 그들은 참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으며, 구제되어질 수 없다.

1) 예레미야는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나의 심령 네가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19절). 내가 저 기호를 보며(21절). 그는 ‘나의 귀, 네가 들었다’고 말하지 않고 ‘나의 심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가 선지자의 심령을 통하여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육체의 귀로 들었던 것과 같이, 그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것을 들었다. 비록 그가 이 재난을 예고 했을지라도, 전혀 그 재앙의 날을 바라지 아니하였다. 그는 거룩한 경외심에 대해 백성들을 일깨우고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때맞은 회개로 심판을 막고자 하였다.

2) 파멸이 예고되고 있다.

① 그 파멸은 순식간에, 홀연히 있을 것이다. 패망이 패망이 연속하여(20절). 한 슬픈 재난이 다른 재난을 뒤따라 일어날 것이다. 요시야왕의 죽음이 그 수문을 연다. 그가 죽은지 3개월이 채 못되어 그의 아들이며 계승자인 여호아하스는 애굽왕에게 붙잡혀갔다. 2,3년이 못되어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탈취했으며, 그후로 계속하여 유대 땅을 침략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완전히 예루살렘을 파괴하여 황폐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그들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 되었다.’ 시골이 먼저 황폐해졌다. 천막에 살던 목자들과 그외 모든 사람들은 즉시 탈취당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막에 거하다가 갈대아인의 군대가 처음 쳐들어 왔을 대 예루살렘으로 도피한 레갑 족속의 일을 읽을 수 있다(렘 35:11).

② 이 전쟁은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완고하여,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바벨론에 대항할 모든 기회를 모색하였다.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21절). “영원히 칼에 삼키우기야 하겠는가?”

③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20절). 처음에도 그러했으며 마침내는 완전한 혼돈의 땅이 되었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23절). 마치 창세 때와 같았다(창 1:2). 창세 때에 사용된 단어, 혼돈과 공허가 유대 땅에도 적용되어졌다.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이것은 깊음 위에 있던 흑암에 빗대어진다(창 1:2).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땅 뿐만이 아니다. 하늘도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고난과 더불어 흑암을 받게 외었다. 왜냐하면 저희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들이 불태운 그들의 집과 성읍들에서 나는 연기가 햇빛을 가렸으며, 그리하여 하늘에도 빛이 없게 되었다. 혹은 이 말을 비유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땅(즉, 일반 백성)은 불모지가 되었고 혼돈하였다. 그리고 하늘(즉, 방백들과 치리자들)도 빛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지혜도 없으며, 백성에게 줄 어떤 위로도, 그들을 이끌 안내자도 없었다.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24절). 영원한 산들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합 3:6).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장소였던 산들이 마치 백성들의 죄를 깨닫고 있다는 듯이 떨며 진동하였다. 작은 산들도 죄지은 나라의 무거운 짐을 떨구듯 가벼이 요동하였다.

“내가 성읍들을 본즉 사람이 없으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던 공중의 새조차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도다.” 유대 땅은 이제 소돔의 못과 같이 되었다(참조. 신 29:23).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26절). 모든 성읍도, 그 문들과 벽들도 무너졌으며 평지와 같이 되었다. 2차적인 원인들만 살피는 자들은 이 모든 일을 침략자들의 광포한 책략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1차적인 요인을 보는 선지자는 그 일이 여호와의 앞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나라는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즉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며 곡물 경작지나 목초지도 모두 버려질 것이다(27절).

말라기 3장 설교문 메시아 예언과 십일조 헌물 규례

기병과 활쏘는 자의 훤화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그들이 분노에 잡힌 바 되기보다는,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를 것이다. 즉 성읍들이 버림을 당할 것이다. 이는 다가오는 파멸에 대한 음울한 경고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경고들 가운데 한 마디 위로의 말씀이 나온다(27절).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은 남은 자를 보존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재건되고 땅에는 사람이 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것이다.

④ 그들이 처지는 절망적이었으며 구제할 도리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으시며 그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28절).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2: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후회하지 아니하실 것이며, 심판을 돌이키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도울 수 없었다(30,31절). 그들은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스스로 안위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막상 일이 닥치면 크게 당황하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30절).

그들은 저희가 의지하던 동맹국들에게 무시당할 것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구애를 표하곤 하던 연인들에게서 버림받은 창부에 비유했다. 그 창부는 열방들 가운데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예루살렘은 사람들을 보내어 환심을 사려고 하며 마치 부요한 듯 보이기 위해 붉은 옷을 입고, 저가 가진 보물이 아직도 가득한 듯 금장식으로 단장하여 꾸미고 있다. 현재의 불행을 감출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으로 눈을 그려 꾸며 화장하였다. 그러나 이 화장한 것이 현재에는 얼굴을 아름답게 해주나 실상은 얼굴을 해친다. 피부를 버리게 하며 주름잡히게 하고 거칠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에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너의 모든 이웃들은 네가 얼마나 빈곤한 자리에 있는지 그 참상을 참으로 민감하게 알아채리라. 갈대아인들이 너의 붉은 옷과 금장식을 벗겨낼 것이라.” 여기에는 이세벨의 이야기가 암시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자기를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자기 운명에 도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왕하 9:30,33). 그들은 자기들의 고난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소리를 들은즉…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31절). 즉, 갈대아인의 나팔 소리에 반향하는 시온의 신음 소리이다. 시온은 이웃들이 그녀를 동정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이러한 의미이다) 몹시도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인가 의지할 것을 찾으면서 손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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