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장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불렀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주어 말씀을 선포하게 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환상과 끓는 가마 환상을 보여주었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 민족에 의해서 심판받는다.
Ⅰ. 예레미야의 가계와 활동 시기 1:1-3
본문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족보와 그가 활동한 연대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1절).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제사장들 가운데서 났고, 제사장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백성을 가르치도록 위임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외에도 그에게 선지자로서의 특별한 사명까지 더하여 주셨다. 에스겔 역시 제사장이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죄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제사장 직분의 권위가 떨어졌을 때일지라도, 제사장직의 영예를 지키려 하셨다. 예레미야는 제사장들의 도성인 아나돗의 제사장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성은 예루살렘에서 대략 3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아비아달의 고향도 역시 그곳이었다(왕상 2:26). 예레미야는 요시야왕 통치 제13년에 예언을 시작하였다(2절). 요시야는 재위 12년에 종교 개혁을 시작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산당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고’ 정결케 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였다(대하 34:3). 그리고 참으로 적절한 때에 이 젊은 선지자가 저 선한 사업을 하는 젊은 왕을 돕기 위해 일어났다. 이제 이러한 두 힘, 곧 젊은 왕과 젊은 선지자의 힘이 결합되었으니(스 5:1,2에서 비슷한 경우를 볼 수 있다), 교회와 국가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완전한 개혁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하였다. 요시야 제 18년에도 여전히 제거되지 못한 수많은 우상의 잔재들이 남아 있었다.
제 아무리 훌륭한 왕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해도, 개혁되어지기 싫어하는 백성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심판을 계속하여 예언하였다. 요시야와 예레미야는 그들을 개선시키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개선되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야김왕과 시드기야왕의 통치 기간에도 계속하여 예언하였는데, 이들은 각각 11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사로잡힘'(3절)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후에도 예언을 계속하였는데(렘 40:1), 요시야 제 13년으로부터 사로잡히기까지가 정확히 40년이었다. 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행동, 곧 사악한 행동을 40년 동안 참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진노를 선포하였다.
Ⅱ. 예레미야의 소명 1:4-10
(1) 예레미야는 일찍이 선지자의 직무에 부르심을 받았다(렘 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하나님께서는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임명하셨다.’ 우선적으로 유대 민족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그는 저들을 위해서도 ‘멍에를 메어야’ 했으며(렘 27:2,3),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었다'(렘 25:17). 그는 지금도 그의 책을 통하여서 민족의 심판, 그리고 민족의 죄의 결말에 대해 여러 민족들에게 말하고 있는 열방(그 가운데에는 우리 민족도 들어 있다)의 선지자이다.
2)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있어서부터, 그는 선지자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가 받은 사명은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에 관하여 정하신 목적 중에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 그가 받은 사명은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에 관하여 정하신 목적 중에 이미 주어진 거이었다. ‘내가 너를 알았고, 너를 구별하였다’라는 말씀은 “나는 네가 선지자가 되도록 정하였으며 그 직무를 위하여 너를 따로 구분하였다”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가 부르실 그 목적에 합당하게 조성하신다.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천부적인 재능이 선지자를 만든다.
(2) 이 영예로운 위임을 예레미야는 겸손히 사양한다(6절).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선지자들이 해야만 하는 것처럼 훌륭한 사람들과 군중들 앞에서 말할 수 없나이다. 나는 유창하게 말할 수 없으며, 권위있게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요, 내 나이어림은 멸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할 어떤 임무가 주어졌을 때, 혹 우리가 그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곧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그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그와 함께 하실 것이며, 그의 맡은 바 임무에 동행하실 것이라고 보장해 주신다.
1) 그는 어린 아이이다. 그렇지만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7절). “너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니, 네가 어리다는 이유로 불순종하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나님은 모세의 겸손한 변명에 대해서조차 노하셨었다(출 4:14). 사무엘은 어린 아이였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제사장 엘리에게 전했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어린 아이를 선지자로 세우실 수 있으며 아이나 젖먹는 갓난 아기의 입을 통해서도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다.
2)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해서도 안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보호자가 되실 것이다(8절).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그들이 크게 보이고,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노려볼지라도 두려워 말라. 너는 만왕의 왕의 이름으로 말하고 그에게서 오는 권위로 말하며 그들의 체면을 돌보지 말고 말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무서워 말아야’ 한다(겔 3:9).
3)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아는 자답게 말하게 하실 것이다(9절). 그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상을 보았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머리에 지식을 넣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이는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고전 2:13).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권위를 가진자로서 말해야만 한다(10절).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이 말씀은 대단히 위대하게 들리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그 당시 보잘것없는 제사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칼로 다스리는 왕으로서 열방 만국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에 의한 선지자로서 세움을 받았다. 예레미야는 열방에게 공물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뿌리뽑고 파괴하며, 또한 오랫동안 뿌리박고 있던 악한 습관이나 관습들을 파멸하는 일을 시도해야만 했다. 죄의 왕국을 넘어뜨리고, 그들 가운데 종교와 도덕이 건설되고 심기워지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그는 그들 앞에 ‘생명과 사망’,’선과 악’을 제시해야만 했다(렘 18:7-10). 그는, 악행을 계속하는 자는 뽑혀지고 파멸되고 회개하는 자는 심기우고 세워지리라는 사실을 저희에게 확신시켜야만 했다.
Ⅲ. 예레미야가 본 두 가지 환상 1:11-19
(1)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통하여 그가 앞으로 해야 할 기본적인 사명을 보여 주셨다. 곧 유다와 예루살렘이 저희의 죄로 말미암아, 특히 우상 숭배로 인하여 갈대아인들에게 파멸될 것을 예언하는 일이었다.
1)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이 급박하게 파멸을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으며 파멸이 저희에게 임박했음을 알려 주신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네 주위를 주목해 보라.”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가지(막대기-역주)는 고통과 징벌을 의미하는데, 그들 위에 걸려 있어 그들의 잘못됨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살구나무 가지이니이다. 봄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나무로서, 다른 나무들이 아직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일 때, 싹을 돋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이니이다(히브리어로, 이 나무는 ‘성급한’ 나무라고 불리워진다).
” 하나님께서는 다음의 말씀에서 그의 말을 시인해 주셨다(12절). 네가 잘 보았도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예레미야가 본 첫 번째 환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 관찰하여 그것이 살구나무 가지임을 알라낸 것에 대해 칭찬하셨다. “너는 성급한 나무를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나의 말을 급히 이행하리라는 뜻이니라.” 예레미야는 그 자신이 살아서 성취를 목격하게 될 예언을 해야만 했다.
2)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 계획되어진 파멸이 어디로부터 일어날 것인지를 암시해 주신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로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13절). 그는 ‘끓는 가마’를 보았다. 이는 갈대아군의 급습으로 말미암아, 끓는 물과 같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될 예루살렘과 유다를 나타낸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마치 끓는 물이 증발하여 점차로 소실되는 것과 같은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이 끓는 가마가 놓여져 있는 용광로의 면이 북쪽을 향해 있었다. 곧, 이 가마를 끓게 하는 불과 연료가 북쪽에서부터 왔음을 알 수 있으며 환상 또한 그렇게 설명되어진다(14절).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오랫동안 계획되어진 것이요, 백성의 죄로 말미암아 오래 전부터 당연히 예비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하나님의 참으심으로 그 재난이 저지되고 있었다. 적들이 그 일을 계획하여 왔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고 계셨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제지가 거두어지며 재앙이 쏟아지게 될 것이었다. 이 폭풍우가, 언제나 좋은 날씨가 온다는 바로 그 북방에서부터(욥 37:2) 일어남을 주목하라. 때때로 가장 극심한 태풍이 우리가 좋은 날씨를 기대했던 곳으로부터 오곤 한다. 이 환상은 좀더 설명되고 있다(15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모든 북방의 왕들이 느부갓네살왕 아래 연합하여, 그와 함께 유다를 원정하러 올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환하심에 복종하여, 부르심을 따라 올 것이다. 여러 민족들의 군대를 통솔하는 지휘관들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다른 성읍들을 포위하고자 각기 저희의 자리를 정할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모든 심판의 용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 곧 예루살렘의 죄와 유다 성읍들의 죄 때문이었다(16절). 본문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내가 그들의 모든 사악함 때문에 그들에게 유죄를 언도할 것이라.”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다른 신들, 새로운 신들, 낯선 신들, 그리고 모든 거짓 신들에게 분향하였다. 예레미야는 어렸다. 그래서 그 백성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의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아마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전해야 할 심판의 언도가 마땅하다고 그 자신도 생각할 수 있도록 예레미야에게 말씀해 주신다.
(2)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격려해 주신다. 위대한 책무가 그에게 위임된다. 그는 전쟁을 알리는 자로 보내심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각성하여 회개함으로써 그를 만날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의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그의 심판에 대하여 미리 경고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책무를 맡았다(17절). 그는 신속히 행해야만 했다. “일어나라.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들에게 말하라.” 그는 또한 담대해야만 했다. 앞에 8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아야 했다.
1) 그는 두 가지 일에 신실해야 했다.
① 그는 자신에게 명해진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17절). “다른 사람들을 성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어떠한 것도 숨겨서는 안되리라.”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전부를 선포해야 했다.
② 그는 한쪽 구석에서 몇몇 특별한 친구들에게만 속삭여서도 아니되었다. 유다의 왕들이 사악하다면, 그는 그들 앞에서 그들을 대적해야 했다. 제사장들이라 해도 거기에서 예외가 되어서는 아니되었다. 비록 예레미야 자신도 제사장이었고, 자신의 l직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또한 비록 저희가 자신의 동포라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한 그 땅이 백성들을 대적해야 했다.
2) 왜 예레미야가 그와 같이 해야만 하는지 두 가지 이유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① 만일 그가 그릇되어 행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 앞에서 너를 당황케 하거나 두렵게 하지 않는 한, 너는 맡은 일을 저버리거나 그 임무에서 물러설 정도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적으로 삼기보다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② 만일 그가 신실하다면 사람들의 노여움을 두려워할 어떠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18절). 이 젊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쇠기둥으로 요새화되고 놋성벽으로 둘러싸여진 난공불락의 성과 같이 되었다. 그는 책망과 위협으로써 적들에게 나아가며 그들을 두렵게 할 것이다. 그들은 사방으로 그를 에워싸며 왕들과 족장들은 저희의 힘으로 그와 싸울 것이다. 제사장들은 교회적인 견책으로 그를 협박하고, 그 땅의 백성들은 그를 향해 저희의 화살을 겨누면서 온갖 비방과 혹독한 말로 대항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이며 여전히 저희에 대해 고삐가 될 것이다(19절).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